[돈의 인문학][라떼극장] 중국은 언제부터 세계 2등이 되었을까? 🤔



옛날 사람

“라떼는 말이야, 중국 그러면 쳐주지도 않았다고.

아직도 ‘메이드 인 차이나’는 잘 안 쳐주잖아”


세계무역기구(WTO) 사무총장 선거가 미국과 중국의 패권 다툼으로 확장되는 모양새입니다. 


이번 선거는 우리나라의 유명희 통상교섭본부장이 후보로 나서면서 화제가 됐었죠. 

선거 결과, 나이지리아의 응고지 오콘조이웨알라 후보가 더 많은 국가들로부터 표를 얻었습니다. 중국, 일본, 유럽연합(EU), 아프리카 등이 이 후보를 지지했죠.


WTO 사무총장 선거는 ‘만장일치’제입니다. 그래서 선거 이후, 득표수가 적은 후보(ex. 유명희)에 투표한 국가(ex. 미국)를 설득하는 과정이 필요하죠. 

이들에게서 만장일치 선언을 받아야 하거든요. 관행적인 일이라, 여기서 굳이 선거 결과를 반대하고, 자신이 택한 후보를 꿋꿋이 지지하는 경우는 없었습니다. 

이번에 미국이 거부권을 행사하기 전까지는 말이죠.


응고지 오콘조이웨알라 후보는 164개 WTO 회원국 중 104곳의 지지를 받았지만, 미국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고 거부권(Veto)을 행사했습니다. 

그러면서 유명희 후보에 대해 공개적인 지지에 나섰어요.


미국이 진심으로 유명희 후보라는 사람을 보고 지지했다고 보기에는 좀 어렵습니다. 

세계 1, 2위 경제 대국인 미국과 중국의 오랜 무역 갈등 구도가 WTO 사무총장 선거 이슈로 번졌다는 해석이 더 유력해요.



🎬 Scene #1. 


어피티: 우리나라 후보자가 밀린 게 논란이 될 정도라니. 한국의 위상도 많이 높아졌군요! 

미국: 으 화난다, 화나!

어피티: 뭐가 그렇게 열불이 나시나요?

미국: 유명희 후보, 내가 공개적으로 밀어줬단 말이지. 근데 유럽이랑 중국이 붙어서 내 공개 지지를 거역한다네? 내 참 어이가 없어서 정말.

어피티: 화 많이 나셨네요. 특히 ‘중국’ 부분이…


이론적으로는 국제기구는 중립적이어야 하고, 국제정치에 있어 주권을 가진 모든 나라가 평등해야 하겠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돈 많고 군사력 센 나라가 아무래도 발언권이 세기 마련이죠. 지금은 그 ‘돈 많고 힘센’ 나라가 미국입니다. 

WTO도 사실은 미국이 주도해 세웠던 국제기구이기도 하고요.


그런 미국이 공개적으로 ‘내 뜻은 이래!’라고 했는데 다른 나라들이 ‘어쩌라고?’ 한 상황입니다. 

사실, 이건 좀 큰일입니다. 미국의 감정이 상한 건 둘째 치고, 수십 년간 유지돼 왔던 국제 정치의 질서가 흔들리고 있다는 뜻이니까요.


무엇보다도 다른 나라들이 미국이 아니라 중국의 리더십을 따랐다는 게 충격적인 일입니다. 이걸 이유로 미국이 WTO를 탈퇴할 수도 있다는 보도가 나올 정도예요.


‘미국의 지위를 넘어서고 있는 중국’. 놀랍지만 새롭지는 않은 이야기입니다. 미국이 견제할 정도로 중국이 경제 강국이 됐다는 사실은 이제 꽤 익숙하게 들리죠. 

그런데, 대체 중국이 세계 1, 2위를 다툴 정도로 경제 강국이 된 건 언제부터였을까요?



제1차 세계대전 때부터

모든 걸 다 가진 미국 🇺🇸


미국의 힘이 약해졌다고 하려면 미국이 얼마나 힘이 셌는지, 왜 힘이 세진 건지부터 알아야겠죠? 

너무 긴 이야기를 해야 하니까 핵심만 짧게 정리해보도록 할게요. 

먼저, 미국이 얼마나 힘이 센지 보여주는 지표들입니다.

  • 제1의 산유국
  • 국토 넓이, 인구수 세계 3위 
  • GDP(국내총생산) 세계 1위
  • 군사력 세계 1위 
  • 기축통화국

대중문화나 최첨단 기술처럼 증명하기 어려운 부분을 제외하고, 순위를 매길 수 있는 부문만 나열해도 이 정도입니다. 

미국은 여러모로 힘센 부자 나라예요. 특히 군사력의 경우, 전 세계 국방비 지출 액수 순위 2위부터 10위까지 더해야 미국 국방비와 비슷해질 정도죠. 


GDP가 높다는 건 국내 경제 규모가 크다는 이야기입니다. 물건을 많이 만들고, 소비도 크게 일어나고, 거기서 발생하는 부가가치도 상당하다는 뜻이죠. 

이건 다시 말해, 미국 안에 돌고 있는 돈이 많다는 걸 의미합니다. 

물건을 만드는 데도, 사는 데도, 만들 사람을 고용해 월급을 주는 데도, 연구개발을 시키는 데도 돈이 드니까요.



🎬 Scene #2.


어피티: 처음에 그 돈이 다 어디서 왔는데요?

옛날 영국&프랑스: 우리한테서 난 거예요.

어피티: 제1차 세계대전 때요?

옛날 영국&프랑스: 전쟁은 돈이 엄청나게 많이 드는 일이거든요. 우리가 독일에 맞서서 피 흘리고 싸울 때, 미국은 우리한테 무기와 식량을 팔아서 돈 벌고 있었어요.

옛날 미국: 엥, 우린 중립이었는걸요? 그 돈도 주로 미국회사가 벌었지 미국 정부가 벌지는 않았다고요!

어피티: 흠, 미국 회사가 벌었으면 미국이 번 거나 마찬가지 아닐까요? 

옛날 미국: (...)


1914년까지만 해도 세계 최대의 채무국이던 미국. 제1차 세계대전을 거치며 1918년, 미국은 세계 최대의 채권국이 됐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는 본토가 공격받지 않은 유일한 국가가 되면서 전 세계 제조업 생산량의 50%까지 차지했었죠. 

전 세계적인 위기가 기존 강대국이었던 유럽을 시들게 하고 새로운 패권 국가 미국을 피워낸 셈입니다. 


다시 중국 이야기로 돌아와 볼게요. 

미국이 패권을 잡기 시작한 지 90년이 조금 더 지난 2008년 즈음, ‘역사상 최대 규모의 파산’이라 불리는 세계 금융위기가 온 시점부터 시작합니다.



2008년 세계 금융위기가

중국을 길렀네 🇨🇳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는 전 세계 국가들을 마이너스 성장으로 몰아넣었습니다. 예외가 있다면 중국이었죠. 

중국 정부는 2008년 11월, 빠르게 4조 위안을 집행하는 등 적극적으로 돈을 풀었습니다. 

금융위기의 시작점인 미국이 2009년 2월이 되어서야 경기 부양 예산 집행을 시작한 걸 생각하면, 발 빠른 조치였죠. 

중국은 그렇게 2009년 4분기 10.7%의 고속 성장을 이뤄냈습니다.


금융위기 이후, 세계 경제가 회복될 수 있도록 끌어내 준 것도 중국입니다. 당시 선진국의 높은 인건비와 부동산 임대료 등을 감당할 수 없는 기업들이 많았는데요.

중국은 낮은 인건비와 낮은 지대를 제공해 공장을 옮겨올 수 있도록 했습니다. 덕분에 적당한 품질의 공산품이 아주 낮은 가격에 전 세계에 풀렸죠. 


해외에서는 중국산 저가 물품이 밀려 들어와 서민의 인기를 독차지하기 시작했습니다. 중국과 무역을 시작한 기업들도 금세 성장세를 회복했어요. 

그렇게 세계는 ‘메이드 인 차이나’ 없이는 살 수 없게 되었습니다.


2000년대 초반부터 미국은 돈이 급해 국채를 마구 발행했습니다. 그리고 중국은 어마어마한 수출 흑자를 갖고 미국 국채를 잔뜩 사들였죠. 

그러니까 미국은 중국에 빚을 진 셈이었습니다. 이렇게 중국이 2001년부터 사들이기 시작한 미국 국채는 미국이 약해졌던 2008년에 빛을 발합니다. 



🎬 Scene #3.


중국: 저기 미국아~ 너 요즘 힘들어 보이는데, 만기 때 이 빚 다 갚을 수 있겠니? 난 잘 모르겠어서^^ 만기 오기 전에~ 너희 국채 다른 곳에 팔까 하는데~ 

미국: (속으로 욕하며) 에이 왜 그래^^;

다른 국가들: (웅성웅성) 중국이 미국 국채를 판다고? 미국 이거 뭐 돈 갚는 데 문제 있는 거 아니야?


중국이 ‘미국 채권 매도’라는 카드를 만지작거리자마자, 전 세계가 미국의 상환능력을 의심하기 시작했습니다. 

투자처의 신용, 즉 돈을 갚을 능력이 낮아지면 금리가 오르게 되죠. 미국 국채 가격은 급락하고, 국채 수익률은 10개월래 최고치인 2.597%까지 크게 올랐습니다. 


이때부터 중국은 ‘결코 무시할 수는 없지만 그래봤자 못 사는 공산국가’에서 ‘언젠가 역사적 영광을 되찾을지도 모르는 실질적인 강대국’으로 빠르게 변모했습니다. 세계 경제가 중국에 의존하기 시작해, 금융위기 이후 10년간 의존도가 깊어진 거예요.


코로나19 국면에서도 중국이 앞으로 세계 경제를 이끌 수 있을 것인지 다루는 기사가 많습니다. 

2020년 중국 GDP는 2010년 GDP의 거의 두 배가 되었죠. 지난 역사와 비슷하지 않나요? 

제 1·2차 세계대전 이후 세계 경제를 끌어내 준 게 바로 미국이었고, 덕분에 미국은 세계 유일의 초강대국이 되었으니까요. 



기축통화국은

진짜 1등의 상징 💰


미국과 중국이 세계 패권을 두고 팽팽하게 줄다리기를 하고 있지만, 결국 돈을 찍어내는 국가가 세계 경제의 기준이 됩니다. 

100여 년 전, 영국에서 미국으로 패권이 넘어올 때도 마찬가지였어요.


미국은 이미 1872년부터 영국의 경제 규모를 뛰어넘었지만, 세계 기축통화가 영국 파운드화에서 미국 달러화로 넘어온 건 1944년의 일입니다. 

미국이 기축통화국이 되면서 세계의 경제 패권을 잡은 국가로 공식 인정받게 되죠.


사실 중국은 오래전부터 기축통화국의 지위를 노리는 중입니다. 미·중 무역전쟁도 이런 패권 경쟁의 일환이죠. 

중국의 힘이 세졌고, 미국이 예전만 못한 건 사실이거든요. 이런 뉘앙스의 발언이 공식적인 국제 석상에서 빈번하게 나올 정도죠.



🎬 Scene #4.


중국: 아아~ 이렇게나 방탕하고 결점 많은 기축통화라니 (미국) 사라져줬으면~ 

러시아: 내 말이~ 달러가 기축통화 역할 제대로 하고 있는 건지~

영국: 솔직히 달러 지위는 1971년 그때랑 그냥 똑같은 듯!


오늘의 이야기는 중국이 언제부터 이렇게 힘이 세졌나 하는 것이었어요. 

요약하면 역사적으로 기존 강대국의 위기는 신흥 강국의 기회가 되어 왔고, 2008년 세계 금융위기가 미국을 시들하게 하고 중국을 지금의 중국으로 길렀다는 것입니다.


티 나지 않더라도 평소에 꾸준히 체력을 길러 뒀다가 위기에 흔들리지 않고 기회를 잡는 것, 국가뿐 아니라 우리에게도 중요한 교훈이겠죠?


📚 <라떼극장>에 참고한 자료

  • <2011년 하반기 세계 경제 이슈와 향방>, 2011, 삼성경제연구소
  • <위기 이후 세계 경제질서의 변화와 대응> 2011, 삼성경제연구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