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의 인문학][라떼극장] 간호사는 왜 독일로 갔을까?



최근에 전공의와 의대생이 정부의 공공의대 설립에 반대하면서 일어난 일련의 사태로, ‘PA간호사 합법화’라는 의제가 수면 위로 떠올랐습니다. 

그러면서 간호사 이야기가 뉴스에 계속 등장하기 시작했죠.


그런데 간호사가 지금처럼 뉴스를 장식하던 시절이 또 있었습니다. 그것도 의료보다 경제와 관련해서 말이에요. 



🎬Scene #1. 

‘조국 근대화의 산업 역군’

파독 간호사


옛날 간호사 : 라떼는, 그니까 1966년~1976년까지 1만 간호사 부대가 나라 경제를 일으켰거든. 독일에 파견나간 간호사와 광부가 보내는 외화가 국민총생산의 2%를 차지할 정도였다고.

어피티 : 파독 간호사 얘기는 교과서에서 얼핏 봤던 것 같아요. 이 분들은 요즘 어떻게 지내시나요?

옛날 간호사 : 그 뒤로는 독일에서 전문인력으로 일하다가 지금은 은퇴하고 쉬고있지.


혹시 ‘파독 간호사’를 아시나요? 

우리나라가 아주 어려울 때 간호유학생으로서, 해외인력 수출정책에 따른 이주노동자로서 독일(서독)로 파견을 나간 간호사입니다. 

이 분들의 이야기를 되짚어보면 최근에 간호사라는 직업이 많이 언급되는 이유와 이주노동에 대한 경제적, 사회적 지식, 이 이슈 속의 한국 경제를 조금 더 깊게 알 수 있을 거예요.

 

 

그 시절, 여성에게

허용됐던 전문직

 

간호사는 일제강점기 때부터 대표적인 여성 직업이었습니다. 

여성이 직업은 커녕 글자 배우는 것도 허용되지 않던 시절. 간호사만은 여성의 전문적인 직업 영역이었죠.



🎬Scene #2.

1908년,

‘한국 간호사’의 시작


옛날 간호사 : 옛날에는 간호학교에 여성들만 입학을 허락해 줬다니까. 최초의 졸업생이 1908년에 나왔는데, 이후로 아주 인기가 많았어.

어피티 : 자료를 보니까 1940년대 중반 조선에는 전체 간호사가 총 2,254명이었는데, 그중 조선인이 1,017명이나 되더라고요.

옛날 간호사 : 면허 없이 기술 익혀서 간호사로 일하는 여성들은 세 배, 네 배는 됐을걸. 간호사만큼은 일본 식민정부에서 조선 여성한테도 교육과 취직을 허락했으니.

어피티 : 지금도 보건의료 전문가 되기가 힘든데, 그 시절에 그렇게 다들 열정이 있었네요.

옛날 간호사 : 그땐 말이지, 간호사를 포함해서 2년 이상 의료보건업을 하면 의사 면허를 줬다고. 그래서 간호사들이 각종 외과 수술도 하고 그랬어.

어피티 : 그럴 수가 있군요…!

옛날 간호사 : 어차피 의사 되면 수술해야 하거든. 그렇다고 의사 자격을 신청하는 여성들이 그렇게 많지는 않았지만 말이야.

 

📚 이꽃메, 『일제 강점기 우리나라 간호제도에 관한 보건사적 연구』, 서울대학교 박사학위논문, 1999, 240쪽.

📚 Mary Cutler, “Po Ku Nyo Koan” 1907, pp. 13-28



나라 경제에 보탬이 되고 싶었지만

나 자신도 잘살고 싶어


보통 언론이나 교재에서 파독 간호사에 대해 묘사할 때는 ‘동양인 여성 이주노동자로서 겪은 차별이나 서러움’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습니다. 

그래서 ‘외화벌이를 위해 우리 누이들을 값싼 노동력으로 팔아버린 가난해서 슬픈 역사’라는 보도가 많이 됐어요.



🎬Scene #3.

심금을 울리는 이야기?

 

어피티 : 사실인가요?

옛날 간호사 : 절반 정도만? 일단 간호사가 정식으로 파견된 게 1966년부터인데, 당시 못 사는 나라였던 한국에서 선진국인 독일로 간호사를 보낸 데는 이유가 있지 않을까?

어피티 : 그 이유가 뭔가요?

옛날 간호사 : 1950년대부터 한국 여성들이 간호사로 많이 가 있었거든. 하도 많이들 가 있으니까 나중엔 아예 정부 차원에서 공식 제안이 된 거야.

어피티 : 1950년대부터요? 왜요?

옛날 간호사 : 여성들이 말이야, 뭐라도 배워서 존경도 받고 돈도 많이 벌고 싶은데 한국에선 할 게 없었거든. 열정 있고 정보력 있는 여성들은 교회나 선교단체를 통해서 독일로 유학을 가서 배우고 일하고 그랬지. 돈을 못 받더라도 간호학생 신분으로 일한거야.

어피티 : 돈을 못 받더라도요?

옛날 간호사 : 기숙사 주고 밥 주고 의료기술도 가르쳐 주는데 돈까지 주겠어? 그래도 일단 자격 따서 독일에서 정식으로 취직하면 한국에서 받던 월급의 최소 열 배는 받았으니까. 3년 일하면 한국에 집 한 채 살 수 있는 돈이었어.

어피티 : 그래서 독일에서 일을 했던 거군요!

옛날 간호사 : 그렇게 번 돈을 한국으로 착실하게 송금했지, 모두들. 아, 1960년대 후반부터는 학생 말고 정식 간호사들이 독일로 왔고.


1950년대부터 1960년대 후반까지 한국은 정말로 ‘못 사는 나라’였습니다. 하지만 다들 잘 살고 싶어 해서, 어떻게든 자식들을 가르치려 했죠. 

경제규모는 작아서 일자리는 부족한 와중에 많이 배운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고학력 실업자 문제가 심각했습니다. 

동시에 경제 개발을 위한 자본도 부족해서 외국에서 달러 빚(차관)을 빌려와서 충당했습니다. 원금도 이자도 모두 달러로 내야 하니까 외화도 부족했죠.


그러니까 독일로 간호사를 파견 보내는 건


① 여성들의 학구열과 돈벌이에 대한 개인적 욕망 충족

② 나라 전체적으로 높았던 실업률을 해외 취업으로 해결

③ 파독 간호사들이 한국으로 달러를 부치면 외화 부족 완화


세 가지 문제가 한 번에 해결되는 일이었어요.


📚 나혜심 「파독 한인여성 이주노동자의 역사(2007)」, 한국학술진흥재단



왜 독일이었을까? 


그런데, 왜 독일에서만 굳이 한국의 간호인력을 필요로 했을까요? 

문제적 발언이지만 독일은 당시 역사적, 문화적인 이유로 간호인력을 하녀의 섬김활동이나 종교적 봉사 활동처럼 여기곤 했습니다. 

그런데 1960년대에 독일은 최고로 잘 나가는 나라였거든요. 경제성장도 빠르고, 다른 일자리도 많았어요. 

간호사는 월급은 낮고 일도 힘들었으니 하려는 사람이 별로 없었죠.


사실 1950~1970년대 독일 사람들의 입장에는 2020년 한국 사람이 참고할 만한 부분이 있답니다. 이 얘기는 독일인 입장에서 들어보겠습니다. 



🎬Scene #4.

각성해버린 독일


어피티 : 그래서 ‘못 사는 나라’인 한국에서 노동 인력을 수입한 거군요. 

옛날 독일 사람 : 그것도 그렇고, 당시 한국 간호사의 의료전문성 수준이 독일 간호사의 수준보다 훨씬 높았거든. 한국 간호사들은 미국식 체계로 교육을 받았는데 독일 간호사들은 좋은 교육을 못 받았어.

어피티 : 그럼 계속 한국 사람을 간호사로 부르지, 왜 1970년대 후반에 인력 수입을 그만뒀대요?

옛날 독일 사람 : 1960년대 즈음 독일 경제가 자리를 잡고 복지체계도 정비됐어. 평균수명이 높아지면서 장수하는 노인들이 갑자기 늘었거든. 병원에 자주 다녀야 하다 보니 간호인력 필요가 늘어났지. 그 간격을 한국인 간호사들이 채운 거야. 그때 깨닫게 된 게 있었어.

어피티 : 뭘요?

옛날 독일 사람 : 간호사라는 직업이 아주 중요한 전문직이라는 걸 말이야.


1970년대 후반부터는 독일 간호사의 월급도 아주 많이 올랐고, 처우도 좋아지고 체계도 개선돼서 독일 사람들이 간호사를 하고 싶어 했어요. 

‘값싼 외국인 노동자’가 필요 없어진 거죠.



그리고 지금,

한국의 이야기

 

2020년 현재 한국은 심각한 간호인력 부족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OECD 평균의 절반 정도밖에 안 되죠. 

인력 부족의 원인은 1960년대 독일과 어느 정도 비슷하지만, 우리는 독일처럼 이주노동이라는 해결책을 사용할 수 없답니다. 

보건의료 직종에 외국인 노동자를 채용하기가 현실적으로 불가능에 가깝거든요. 


한국의 의사와 간호사는 한국의 국가자격시험을 봐야 면허를 취득할 수 있습니다. 외국의 의사나 간호사 면허를 인정해주지 않고 있어요.


하지만 간호사 수요는 계속 늘어납니다. 사람들은 65세 이후 평생 쓰는 의료비의 절반을 지출합니다. 

1975년만 해도 한국 평균 수명은 63세였는데요. 2018년 평균 수명은 82세까지 올라왔습니다(여성들은 이보다 더 오래 살고, 의료비를 더 많이 지출합니다.) 

모두가 더 오랫동안 병원에 들락거리며 병원비를 지출하게 됐다는 뜻이에요. 1970년대 후반, 독일이 간호사의 중요성에 눈뜰 때와 비슷한 상황입니다.


한편, 간호사가 몹시 부족하지만 간호대 졸업생이 부족한 건 아닙니다. 

간호사가 부족한 이유는 ① 장시간 노동 ② 야간 근무 ③ 경력 관리의 어려움 ④ 낮은 임금 체계 ⑤ 간호사에 대한 사회적으로 낮은 인식 때문이라고 합니다. 

어떤 직군의 노동환경이 업무의 수준에 비해 열악하면 인력수요에 비해 인력공급이 부족해집니다. 이건 1960년대의 독일과 무척 비슷하죠. 


📚 김학선, 홍선우, 최경숙 「파독간호사 삶의 재조명(2009)」,  한국산업간호학회지 제18권 제2호



간호사가

더 부족해지면


간호사 수요공급 문제가 우리 모두에게 중요한 이유. 앞으로도 수요는 계속 늘어날 텐데 이대로라면 공급은 줄어들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에요. 

그러면 경제학적으로 결과는 단 하나입니다. 서비스의 가격이 올라갑니다. 


가격 인상을 인위적으로 막는다면 부작용으로 서비스 이용이 심각하게 제한되죠. 은퇴한 이후 의료비를 크게 지출해야 하는 지금. 

간호사 문제는 빨리 해결해야 할 경제적 문제입니다. 노후자금의 대부분을 병원비로 날릴 수는 없으니까요.


다행히 50년 전 독일이 우리와 비슷한 상황을 한 번 겪었고, 우리에게는 참고할 만한 자료가 존재하죠.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 문혜경, 「전담간호사 제도 개선방안에 대한 통합적 연구(2020)」, The Journal of the Convergence on Culture Technology (JCCT) Vol.6 No.3


 

다시 뉴스로,

PA간호사 이야기


모든 직업은 일상 속에서 유기적으로 자연스럽게 작동합니다. 

그러다가 직업에 어떤 변화가 요구되거나, 직업이 세상에 변화를 요구할 때 뉴스에 자주 등장하곤 하죠. 최근에는 ‘PA간호사 합법화’가 수면 위로 떠올랐습니다.


PAPhysician Assistant의 약자로 전공의(인턴과 레지던트. 의사면허를 갓 따서 전문의 자격을 취득하기 위해 수련 중인 의사)의 역할을 일부 대체할 수 있는 간호사입니다. 미국에서 특히 활성화돼있고, 한국에서도 계속 발전하고 있어요.


현재 한국에서도 PA간호사는 전공의와 함께 교육을 받을 정도로 보편화되어 있습니다. 직접 의료업무를 보는 건 불법이지만요. 

PA간호사를 언급하는 사람들은 ‘PA간호사의 의료행위를 합법화하면’ 의사 부족과 간호사 부족을 모두 완화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현재 여론 흐름에 부정적인 사람들도 ‘의사와 수가 문제를 말하다 말고 왜 간호사냐’는 취지에서 부정적이지, 간호인력 처우 개선과 PA간호사 제도 개선을 반대하는 목소리는 적습니다.

결국 노동환경은 사람들이 얼마나 귀하게 생각하느냐에 따라 결정되는 부분이 있거든요.


자세하게 들어가면 굉장히 전문적이고 복잡한 내용이기 때문에 이 부분을 더 깊이 다루지는 않을게요. 

어피티는 어디까지나 경제적인 관점에서 이슈를 짚어가고 있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