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의 인문학][라떼극장] 그렇게 신용불량자가 된다 💳




절제력을 가지고 잘 쓰면 여러 혜택을 누릴 수도 있지만, 생각보다 소비 조절이 쉽지 않은 신용카드. 

이 신용카드 때문에 온 나라가 뒤집혔던 적이 있다는 사실, 알고 계시나요? 

오늘 라떼극장에서는 2000년대 초반에 일어났던 신용카드 대란의 이유와 배경을 살펴봅니다. 

20년 가까이 된 일이지만 이 사건이 2020년의 우리에게도 여전히 의미하는 것이 있습니다. 이번 주, 라떼극장 시작합니다! 



정부와 카드사의 

콜라보레이션


힘겹게 IMF 구제금융의 시대를 견디며 이제 한숨 돌리나 했는데, 다이나믹 코리아는 잠시도 조용할 틈이 없었습니다. 

2003년, 신용카드 대란이 터지면서 온 나라에 난리가 났어요. 


신용카드 대란의 심각성은 3년 만에 폭증한 개인파산 신청자의 수만 봐도 알 수 있습니다. 

당시에는 경제적 어려움에 처해도 개인파산 같은 금융 조치를 하는 것을 좀 꺼리는 분위기였는데요. 

2001년 1월부터 2002년 1월까지 53명이었던 개인파산 신청자가 2003년 1월까지는 208명, 2004년 1월에는 519명, 그리고 그해 7월까지 813명으로 늘어납니다.


당시 시대의 키워드가 ‘신용불량자’였던 것, 기억하시나요? 

신용불량자도 2002년에는 1백만 명, 2003년에는 380만 명으로 늘었고, 4개 이상의 신용카드로 돌려막기를 하던 잠재적 신용불량자는 50만 명이 넘었습니다. 

당시 언론은 그 원인을 무분별한 신용카드 발급으로 꼽았는데요. 도대체 어느 정도로 무분별하게 발급했길래 난리였을까요? 



🎬Scene #1. 

#살려야한다

카드 규제 다 풀어드림


정부: 돈이 왜 돈인지 아나?

어피티: 글쎄요.

정부: 돈은 돌아야 돈이라 돈인 거야!

어피티: 네?

정부: 사람들이 돈을 써야 물건이 팔리고! 물건이 팔려야 물건을 만들고! 물건을 만들어야 만들 사람이 고용되고! 고용돼야 월급이 나오고! 월급이 나와야 돈을 쓰고! 그런데 지금 외환위기 지나갔다고 다들 언제 또 망할지 모른다, 저축해놓자, 대비하자, 이러니까! 돈이 안 돌고 경제가 안 돌고 이거 이러다 진짜 망한다고!

어피티: 틀린 말은 아니긴 한데… 

정부: 그래서 고심 끝에 결정했다. 카드사 대출 제한 폐지! 신용카드 영수증을 복권으로 만들어서 당첨되면 상금을 무진장 주는 게 어떨까. 신용카드 긁고 다니면서 돈 좀 쓰라 이거지.

어피티: 그렇게 다 제한을 풀어버리면 부작용이 있을 텐데요…

정부: …부작용 감수하고도 이럴 수밖에 없는 이유가 또 있어.

어피티: 뭔데요?

정부: 사람들이 현금 거래를 주로 하니까 새는 세금이 너무 많아.

어피티: 맞아요. 신용카드로 긁으면 기록이 투명하게 남지만, 현금만 오고 가면 기록이 전혀 안 남으니까…

정부: 사업자들이 매출을 과소신고하니 진짜 지원을 해줘야 할 사업체가 어딘지도 모르겠고… 신용카드 소득공제는 탈세 때문에 도입한 거라고.


무엇이든 과하면 탈이 나는 법. 과할 정도로 제한을 풀어버린 정부는 과연 관리감독을 잘했을까요?

결론부터 말하면 No. 철저한 관리감독을 해야 하는 정부가 오히려 과소비에 불을 댕깁니다.



🎬Scene #2. 

신용카드 사용, 

적극 권장. 퐈이아!!!


정부: 선진 경제로 나아가기 위해 쓸모없는 규제를 없애야 해.

어피티: ...? 규제가 너무 없어서 문제입니다.지금 카드사가 미성년자한테도 카드 발급해 주고 있는 상황이에요. 소득도 없는 사람에게도 막 발급되는 바람에 15세 이상(경제활동인구) 1인당 평균 신용카드 5개씩 들고 다녀요. 이건 과열입니다…!


당시만 해도 지금처럼 신용 경제가 발달하지 않았던 시절이었죠. 

마치 신제품 런칭 초기에 제품 홍보하듯이 ‘이제는 신용카드가 대세예요!’라는 분위기를 조성하기도 했죠. “여러분, 부~자 되세요.”, “열심히 일한 당신, 떠나라!”와 같은 유명한 광고카피들도 다 이때 나온 광고들이랍니다.


카드사:

카드 만들면 무조건 가입축하 사은품 드려요. 

사은품만 받고 카드는 한 번도 안 쓰시고

잘라버리셔도 돼요. 

한도 없으니까 할부로 쫙쫙 긁으세요.

현금서비스도 심사 없이 드려요^^!


신용카드:

현금서비스 이자 15~24%,

할부 수수료는 12~17%랍니다^^!


카드사는 상환능력을 제대로 심사하지 않고, 미성년자에게도 무차별적으로 신용카드를 발급해줍니다. 

덕분에 카드사는 2001년 한 해 총 2조 5천억 원의 순익을 내죠. 

이 금액이 확 와닿지 않으시죠? 당시 대한민국 최고의 빅 이벤트였던 2002년 월드컵의 부가가치 유발효과는 약 4조 원으로 환산됩니다.


그렇게 2002년 1분기, 단 3개월간 카드 대출이 100조 원에 도달하게 됩니다. 

이는 2001년 1분기의 61조 원에서 62.7% 증가한 금액인데요. 1999년에는 3,800만 장이었던 신용카드 발급 수가 2001년 말에는 1억2천만 장이 되죠. 

안 그래도 외환위기 직후인데, 이건 분명히 과열이었습니다.



“돌리고~ 돌리고~”

신용불량자 400만 


카드빚을 또 다른 카드빚으로 막는 ‘돌려막기’. 더이상 돌려막기를 할 수 없게 된 사람들은 고금리 사채를 찾게 됩니다. 

2002년 금융감독원 조사에 의하면 사채이용자의 절반이 카드값을 갚기 위해 찾아온 사람들이었죠. 

카드빚으로 인한 자살, 범죄 등 각종 사회문제도 늘어났습니다. 신용불량자로 인한 문제는 개인뿐만 아니라 사회, 경제적으로도 나라의 큰 문제가 됐어요.


카드빚을 못 갚는 사람이 늘어나면 카드사도 망합니다. 

신용카드는 결제할 당시 내 돈이 빠져나가는 게 아니라, 한 달 치를 모아서 결제일에 한 번에 빠져나가는 구조입니다. 

손님의 카드를 받아 결제한 사장님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카드사가 한 달 치 결제 건을 모아서, 카드 수수료를 뗀 금액을 가맹점에 보내줘요. 

결제하자마자 손님 돈이 내 돈이 되는 건 현금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카드 이용자가 카드값을 못 갚는다면? 카드빚으로도 감당이 안 되는 상황이 된다면? 

중간 역할을 하던 카드사는 망하게 됩니다. 그렇게 LG카드가 망했죠



거 사고가 너무

잦은 거 아니오?


사회적으로 큰 난리였지만, 수습은 비교적 간단하게 이루어졌습니다. 2003년 4월 11일 정부가 발표한 금융시장 종합안정대책이 어느 정도 먹혔거든요. 

그렇지만 그다지 좋은 사례는 아니었습니다. 아무리 그래도 카드사도 사기업인데, 남의 회사 일에 언제까지 정부가 개입해서 굶으면 밥 차려주고, 아프면 손잡고 병원에 가줘야 하겠어요. 이런 ‘관치금융’은 한국 금융계의 고질병 중 최고봉으로 꼽히고 있답니다. 



🎬Scene #3. 

사고 치는 사람 따로

수습하는 사람 따로


어피티: 그런데 신용불량자 400만 명은 어떻게 됐나요?

정부: 이자랑 원금… 30% 깎아줬어.

어피티: 그거 갖고 충분했나요?

정부: 본인 책임도 있으니까…


이후 역대 정부 때마다 빚 탕감 대책이 계속되긴 했습니다. 72만 명을 신용대사면하거나, 국민연금에서 빚의 절반을 대출받아 악성 채무를 갚게 했어요. 

모두 우리의 세금이 들어간 일이었죠. 이쯤 되면 사람들이 들고일어날 만한데 왜 유야무야 넘어갔을까요? 

더 큰 뉴스에 묻혔기 때문입니다. 바로 북한의 핵 관련 뉴스였죠. 북한이 NPT 탈퇴하고 핵을 개발하기 시작한 게 2003년이었거든요. 

 

당시의 카드대란은 20년쯤 전의 일이지만 아직도 완전히 해결되지 않았습니다. 

그때 신용불량자가 된 사람들의 신용 회복도 다 이뤄진 게 아니고, 급증한 가계대출도 아직 한국경제의 지뢰라고들 하고 있어요. 


돈 문제는 내 선택과 내 책임이라지만, 정부와 기업도 개개인의 건전한 소비생활을 위해 개선할 부분이 많습니다. 

우리 어피티 독자님들은 어피티와 함께 열심히 경제금융상식을 갈고 닦아서, 외부에서 무슨 일이 터지더라도 크게 흔들리지 않는 가계경제를 꾸려가기로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