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의 인문학][라떼극장] 서울 부동산 🏘 왜 강남, 강남, 할까?



1975년, 강남4로 지하차도 시설 기공식의 모습

(출처: 서울사진아카이브)

 

부동산 뉴스를 보다 보면 빠짐없이 등장하는 한 지역이 있습니다. 바로 서울 강남이에요. 집값 이슈에 단골 손님으로 불리는 강남. 

수도를 서울로 정할 때부터 강남을 콕 찍어 부동산의 메카가 되도록 한 것도 아닐 텐데, 지금은 대한민국 부동산 이슈의 상징 같은 곳이 되어버렸습니다. 

강남구·서초구·송파구는 한데 묶어 강남 3구라는 이름까지 붙었죠.


사실 강남은 원래 서울이 아니었습니다. 서울이 위치한 자리는 조선시대 때부터 전국의 자원이 집중되던 곳이지만, 서울의 역사에서 강남이 편입된 건 얼마 되지 않았거든요. 다산 정약용이 지방으로 유배 가서 아들에게 쓴 편지에도 이런 내용이 적혀 있습니다.


‘아들아, 절대로 사대문 밖을 떠나지 마라.

한 번 떠나면 다신 못 들어온다.’ 


여기서 정약용이 말하는 ‘사대문’은 지금의 종로구나 중구 주변을 의미합니다. 

이때는 강남이 수도에 속하지 않았으니, 아들이 강남으로 넘어갔다면 정약용에게 등짝 맞을 상황이었겠죠.


그럼 강남 3구는 도대체 언제부터 이렇게 핫(?)해진 걸까요? 그 이유는 또 무엇일까요? 

오늘 라떼극장에서는 강남의 역사를 돌아보며 그 힌트를 찾아보겠습니다. 



명문고등학교? 

학교 이름인가... 


1970~1990년대의 대한민국은 고도성장기이자 민주화운동의 시대, 그리고 소위 말하는 ‘명문고등학교’의 시대였습니다. 

경기고등학교·서울고등학교·경북고등학교·광주제일고등학교 등 50대~60대 국회의원, 고위공무원들의 학력에서 자주 볼 수 있는 학교들이 명문고등학교라고 불렸어요.


대학 진학률 낮고 다들 중학교나 고등학교가 최종 학력이었던 시절, 오로지 대학을 보내는 것이 목적이었던 순수 학업 중심의 고등학교는 ‘입시’를 통해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이 입시에서 높은 성적을 받아야 ‘명문고’에 진학할 수 있었죠.


신문과 방송에서도 대놓고 ‘10대 명문고’라고 할 정도의 공식 서열이 있었습니다. 

당시에는 서울대학교 학생의 절반이 ‘10대 명문고’ 출신이었고, 2009년 조사에 의하면 3급 이상 고위 공무원의 30% 정도가 ‘10대 명문고’ 출신이었답니다. 

부동산 이야기를 하면서 왜 난데없이 10대 명문고 타령이냐고요? 

강남 집값을 유지하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인 강남 8학군의 시작이 바로 거기에 있기 때문이죠. 



🎬Scene #1. 

명문고등학교

강남으로 간다, 실시!


정부: 경기고, 서울고, 휘문고, 숙명여고, 정신여고 등등 다 강남으로 옮긴다. 실시!

어피티: 왜죠…?

정부: 그래야 인재들이 강남으로 이주해 갈 것 아닌가!

어피티: 인재들이라뇨?

정부: 자식을 명문고 보낼 정도라면 어느 정도 교육 수준이 있는 중산층 이상의 욕심 있는 부모가 대부분일 터. 강남을 개발하려면 그런 인재가 필요하다.


1970년대, 박정희 정부는 강남 개발 촉진하기 위해 강북, 특히 종로구와 중구에 있던 명문고등학교를 강남으로 옮깁니다. 

당시 기준 ‘진짜 서울’이던 강북에 애정이 깊은 동문들이 강하게 반발했지만, 경기고등학교를 정독도서관으로 바꾸어 보존하는 등 몇 가지 대책이 진행되자 불만도 사그라들었죠.


정책은 아주 효과적이었습니다. 자식 교육에 관심 많은 중산층이 대거 강남으로 몰려오기 시작한 거예요. 

사람이 들어왔으니 강남에 도로, 상업시설, 편의시설 등 인프라를 깔 명분이 생겼습니다. 



🎬Scene #2. 

다른 인프라들도 

강남으로 같이 간다. 실시! 


정부: 강북에는 백화점, 고등학교, 도매시장 등등 신축 금지!

어피티: 네? 그러면 강북에 살기 너무 불편해지지 않나요?

정부: 그게 바로 이 정책의 이유! 도심지 재개발도 금지! 하여튼 강북은 다 금지! 인프라에 돈 쓰고 싶으면 강남에다 써야 허가해준다! 대법원도 고속버스터미널도 강남에 지어버릴 테다! 강남에 부동산 사고 싶어? 양도소득세, 국세, 취득세, 등록세, 재산세, 면허세, 도시계획세 다 면제야 면제!


이런 정책 아래, 1963년~1979까지 약 20년간 중구의 땅값이 20배 정도 오르는 동안 강남구의 땅값은 1,000배 올랐답니다. 

땅값만 오른 건 아니겠지요? 아파트 구매비용 등 주거비용도 올랐고 모든 비용이 올랐습니다. 



🎬Scene #3. 

강남행의 진짜 이유 


어피티: 와… 강북도 같은 서울인데 너무 차별하신다.

정부: 강북은 그냥 고색창연한 옛 조선의 수도로 남는 게 좋겠다는 판단이다.

어피티: 그러니까, 왜죠?

정부: 북한이랑 가깝잖아!



강남 개발의 또 다른 이유  

당시에 정부가 갖고 있던 북한공포증에도 이유가 있긴 합니다. 1970년대 중반까지는 북한이 남한보다 잘 살았거든요. 

북한이 방송이나 삐라로 ‘얘, 느이 집엔 이거 없지?’ 하면 설득력이 있었던 때였어요. 

1968년 1월, 무장공비 김신조의 청와대 습격 미수사건도 대한민국 정부에 엄청난 충격을 줬습니다.



🎬Scene #4. 

한강을 방어선으로 서울을 지키자! 


정부: 한국전쟁이 막 터졌을 때, 서울에서 민간인 피해가 컸던 이유가 뭐였습니까?

어피티: 학교에서 배우기로는 한강철교가 폭파되는 바람에 다들 한강을 건너지 못하고…

정부: 북한이 이렇게 나오는데 전쟁이 다시 터지지 말란 법 있나? 서울 시민들이 전쟁 나면 한강 때문에 피난이 어렵다면 아예 강 남쪽에 도시를 집중하지! 다들 강남에 모여 살고, 중요 기능도 다 강남에 있으면 한강을 방어선 삼아서 북한을 저지하면 된다!

어피티: 와… 전쟁 개시 상황이 도시계획에 실제로 반영되던 시절이 고작 50년 전이라니 놀랍네요.

정부: 그러니까 지하철 2호선은 강남을 통과하게 건설한다.

어피티: 어라, 그거 원래 지하철 건설 계획이 아니었잖아요.

정부: 지금 계획이 중요해? 강남이 중요하지?


이런 식으로 지하철 2호선과 고속버스터미널, 경부고속도로가 뚝딱 생겨납니다. 

이 시기에 지어진 고속도로가 물류를 개선시키며 경제발전에 크게 기여했다는 사실은 유명하죠. 

그 고속도로의 중심지인 서울 강남 역시 빠르게 성장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때도, 지금도,

서울은 인구 폭발  


사실 일반 사람들에게는 북한 이야기보다 훨씬 중요한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바로 서울 인구 문제예요. 이때는 서울 인구가 폭발하고 있었거든요. 1960년대에서 1970년대로 넘어오는 10년 새에, 서울 인구는 240만 명에서 550만 명으로 두 배가 되던 시기였습니다.


그런데 당시 서울은 지금 서울 같지 않았습니다. 상하수도나 각종 도로 등 도시의 주요 인프라를 막 짓기 시작한 시기였어요. 

1980년대 초까지 서울 시내 빈민촌만 220곳에 달했습니다. 빈민촌은 동네 전체가 공동화장실을 쓰고, 수돗물이 나오지 않고 전기도 없는 수준이었죠. 

주택도 심각하게 모자랐습니다. 아파트가 흔하지 않던 시절이었으니까요. 


1975년 잠실시영아파트 주택 평면

(출처: 서울사진아카이브)


이런 동네에 사람들이 이삿짐을 들고 마구 몰려온다고 생각해 보세요. 얼른 인프라를 만드는 데 집중할 수밖에 없겠죠. 이렇게 강남은 ‘없는 인프라가 없는’ 동네가 됩니다. 인프라가 잘 갖춰져 있으니 회사가 몰려오고, 회사가 몰려오니 인프라가 점점 더 좋아졌어요. 


부동산 가격을 결정하는 건 ‘입지’고 입지는 ‘주변 인프라’를 고려하죠. 그리고 그 인프라는 국민들을 위해 정부가 정비하고 마련합니다. 2010년부터 10년 만에 인구 33만 명의 도시가 된 세종시를 생각해 보세요. 국가가 마음먹고 인프라를 깔기로 하면 위력이 어마어마하답니다.


강남 개발의 역사를 보면서 부동산 정책과 개발의 방향에 대한 감을 조금 잡으셨나요? 

무엇이든 맥락을 알고 나면 이해가 훨씬 쉬워지죠. 새로운 부동산 정책이 나올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그 정책의 배경이 무엇인지를 생각하며 읽어보시면 정부가 가고자 하는 방향이 무엇인지, 그리고 나는 어떻게 대응을 해야 하는지 조금 더 선명해지실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