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의 인문학][라떼극장] 그만 소환해도 되는 그 이름, IMF 🌏



지난주에는 외환위기가 대한민국에 찾아오기 전까지의 과정을 살펴보았습니다. 

걸프전 이후, 미국의 금리 인상으로 촉발된 외환위기가 페그제를 시행하고 있던 동남아시아를 차례로 넘어뜨리고 난 뒤, 비로소 한국에 상륙했다고 말씀드렸는데요.

오늘은 우리의 이야기, 그 당시 한국의 경제 상황과 금융위기가 닥쳤을 때 정부와 기업들의 대처, 그리고 

IMF 구제금융을 받은 이후 우리가 겪게 된 것들에 대해서 더 자세히 다뤄볼게요. 



그때의 한국, 

어깨 좀 펴보려던 시기 


🎬Scene #1.

오버 더 국민소득 1만 달러 


(똑딱똑딱, 어피티 스피드 퀴즈!)

어피티: 2002?

사람들: 한일월드컵!

어피티: 시험 잘 보란 덕담을 다른 말로 하면?

사람들: 100점 맞아라!

어피티: 승부는?

사람들: 삼세판!

어피티: 개발도상국과 선진국의 기준은?

사람들: 오버 더 국민소득 1만 달러!


1995년. 우리나라는 국민소득(GDP) 1만 달러 돌파가 큰 이슈였습니다. 이 1만 달러가 당시 한국 사회에서 굉장히 상징적인 의미였거든요. 

세계은행(WB)은 1인당 GDP가 1만 2,375달러 이상인 국가를 ‘고소득국가(high-income countries)’로 분류하는데 그에 거의 근접한 금액이니까요. 

전쟁으로 세계의 원조를 받던 나라가 이제 먹고살 만해졌다는 거죠.


이렇게 1만 달러도 넘기며 기세를 높여가던 대한민국이 IMF 외환위기를 맞아 쓰러진 이유는 도대체 무엇일까요? 

결론부터 얘기하면 한국이 가진 달러가 부족했기 때문입니다. 왜 부족했냐고요? 

그게, 의외로 경제 자체의 구조적 문제보다는 정부의 금융에 대한 무지와 기업의 경영 실책이 컸답니다.


시간을 돌려 1995년 이전, 국민소득 1만 달러 돌파를 향해 달려가던 그때. 

한국은 세계 선진 25개국의 경제정책협의기구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가입하기 위해 열심히 준비 중이었습니다. 

가입을 위해 맞춰야 할 조건은 금융을 포함한 각종 무역과 서비스 관련 160여 개. 조건들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금융 자유화였죠.

국가 간 자본의 이동을 쉽게 하는 것입니다.


금융 자유화가 이루어지면 이런 것들이 가능해집니다.

① 외국 은행에서 달러(외국 돈) 빌려오기

② 외국인들이 한국회사 주식을 해외/국내에서도 제한 없이 사고팔 수 있게 하기

③ 외국인이 우리나라 땅이랑 우리나라 건물 살 수 있게 하기

④ 외국인들이 우리나라 돈을 선물옵션으로 거래할 수 있게 하기


OECD 가입을 위해 높은 수준의 금융 자유화가 필수였고, OECD 가입이 간절하던 상태였지만, 우리나라는 금융시장 개방에 선뜻 나서지 못했습니다. 

일단 그게 뭔지 잘 몰랐거든요. 모르는 상태에서 외국 자본에 문을 확 열어버리면 망할 것 같으니, OECD에는 차례차례 해나가겠다고 약속하고 조금씩 열고 있었습니다.



🎬Scene #2. 

정부와 기업, 환상의 짝꿍


한국 사람들: 얼른 1만 달러를 넘겨야 한다니까? 더 열심히 일합시다! 

한국 정부: 기업 여러분들, 수출 힘내고 있습니까?

한국 기업: 일단 덩치를 불리고 있습니다! 글로벌에서 경쟁을 하려면 규모의 경제죠!

어피티: (규모의 경제가 그 뜻이 아닌 거 같은데...마냥 덩치만 불리면 위험한 건 알고 있겠지?)

한국 기업: 그런데 말입니다. 정부의 도움이 좀 필요한데 말입니다. 

한국 정부: 아, 어차피 금융 자유화도 해야 하고. 외국에서 돈 빌리는 거, 기업 키우고 수출 목적이라면 무조건 허가! 일단 질러요! 안 되면 되게 한다! 못 갚으면 정부가 도와드려요. 


이렇게 1인당 국민소득 1만 달러를 넘기기 위해 마구 달려오는 동안, 기업과 정부도 손발을 맞춰 함께 달렸습니다. 

먼저 1993년, 우리 정부는 금융자유화의 일환으로 무역 관련 금융과 해외지사 단기차입*을 허용했습니다. 

상환 기간이 짧아서 바로바로 갚아줘야 한대도, 일단 필요하다면 외국에서 바로 빌려와도 된다고 한 거죠.

(*단기차입이란? 원금 상환 및 이자 납입 기한을 1년 이내로 정하고 돈을 빌려 쓰는 일. 또는 그 돈)



🎬Scene #3. 

덮어놓고 빌리다 보면 거지꼴을 못 면한다(?)


어피티: 아니, 근데 자꾸 이것저것 여기저기에 투자하셔서 사업 확장하시는 건 좋은데요. 지금 사업 확장하느라 빌린 돈 못 갚고 계신 거 아닌지… 미래(?)에서 온 입장에서 너무 걱정되는데요.

기업: 아, 또 빌리면 됨. 다들 요새 돌려막던데? 못 갚으면 정부가 갚아준다고 함.

어피티: 저기, 은행님. 이거 계속 빌려주고 계신 거예요? 은행에서 컷해야 하는 거 아닌가요?

은행: 음? 기업이 돈 필요하다는데? 물 들어올 때 노 저어야지, 요새 세계 금리 낮아서 우리도 외국 은행에서 돈 빌려다가 기업들 빌려주는 중. 

어피티: 근데 일본에서 너무 많이 빌려오신 거 아닌가요? 일본이 회수 결정하면 부채의 반 이상 당장 갚아야 할 텐데요…

은행: 일본도 요새 돈 빌려주면서 투자한다고 바빠. 이자 쌀 때 빌려야지.


외국인 투자는 회사의 주식을 국내 주주들에게 팔아서 하는 자본 확충보다 리스크가 큽니다. 

주식이야 주주가 워낙 여럿이니 웬만하면 한 번에 무너지지 않는 데다, 상환 일정 같은 것도 없지만 진짜 차입금은 이자도 내야 하고 상환 일정도 있잖아요. 

여러 곳에서 나눠 빌린다고 해도 한계가 있고요. 


그렇지만 정부에게는 개방이 우선이었습니다. 기업이 무역한다고 하면 일단 다 허가를 내줬어요. 

그 와중에 기업들은 그렇게 빌려온 돈으로 동남아에 투자합니다. 외국에서 투자를 받았으니, 우리도 다른 곳에 투자해서 거기서 번 돈으로 빌려준 돈을 갚아야죠?


방금, 우리가 투자한 곳이 어디라고 했죠? 

네. 1997년 연초부터 외환위기로 도미노처럼 무너진 그 동남아였습니다. 

빌린 돈으로 투자했는데, 투자금을 회수할 길이 사라졌습니다. 상환 시점은 계속 다가오는데 말이죠!



저금리 잔치부터 

대출 상환의 도미노까지


지난 주 라떼극장 기억나시나요? 

은행과 기업들이 외국에서 돈을 마구 빌려온 이유와 동남아 외환위기의 원인에 대해 얘기 드렸는데요. 

가장 먼저 미국 금리 인상이 시작이었죠. 대략 이런 내용이었습니다.


은행&기업: 요새 세계적으로 금리 엄청 낮은데? 일단 빌려서 뭐라도 하자.

미국: 우리 경제 지금 너무 활황인데? 버블이다. 금리 올려. 

동남아: 야야, 큰일이다. 투자금 빠진다 (와르르 경제 무너지는 소리)

한국: 아니, 우리 투자금 돌려줘야죠...여보세요? 듣고 있니? 


당시에 우리 못지않게 투자금 못 받게 생긴 나라가 있었으니 그게 바로 일본입니다. 

그런데 우리나라 은행과 기업이 어느 나라에서 돈을 제일 많이 빌렸을까요? 그것 또한 일본입니다. 



🎬Scene #4. 

기업이 못 갚으면 정부가 갚아라


일본: 우리도 지금 빌려준 돈 못 받게 생겨서 급하거든.

한국: 무슨 얘기할 건지 알 거 같은데 한 번만 봐주라. 

일본: 아니, 급하다고. 빌려준 돈 지금 주라.

한국: 이제까지 추가 대출도, 만기 연장도 잘해줬었잖아?!

일본: 급! 하! 다! 고!

한국: 솔직히 그렇게까지 급한 거 아니잖아! 사정 봐줄 수 있는 부분도 있잖아!

일본: 싫.어. 그리고 만기 안 된 대출들도 오른 금리 적용이야. 은행이랑 기업이 못 갚겠으면 정부 나와.


사실 당시 한국 정부가 단기외채를 갚을 능력이 아예 없는 건 아니었습니다. 물론 한국의 경제구조가 기형적인 데다, 부정부패도 심각한 편이었지만 자체적으로 구조조정 중이었고, 무엇보다도 밖에서 돈을 못 벌어오지는 않았어요. 시간이 조금 더 있었다면 평소처럼 재정을 운용하여 얼마든지 넘길 수 있는 부분이었죠. 하지만 결론적으로는, 속된 말로 일본에 ‘까입니다’.


야속하죠. 과거의 안 좋은 기억도 있는데 더더욱 감정 상하는 일이 아닐 수가 없죠. 

하지만 빌린 쪽은 우리나라였고, 억지를 부려서 돈을 뜯어 가는 것도 아닌 상황이잖아요. 한국 정부는 통렬한 후회를 합니다. 


“달러를 더 쌓아놓을 걸….”


더 쌓아놓으려면 쌓아놓을 수 있었는데, 그냥 그만큼만 쌓아놓은 거예요. 모자랄 줄 전혀 몰랐던 거죠. 원래는 최소한 ‘단기외채’ 만큼은 쌓아놔야 해요. 

그래야 한 번에 갚으라고 했을 때 갚을 수 있죠. 하지만 1993년에 금융시장을 일부 열면서, 빌려오는 건 쉽게 만들어 놓고 빌려오는 만큼 쌓아와야 하는 외화준비금은 1993년 이전과 똑같은 수준을 유지했던 거예요.


중장기적 능력은 있지만, 너무 늦어버렸습니다. 이걸 ‘유동성 위기’라고 해요. 돈을 못 버는 게 아니라 돈이 순간적으로 못 돌아서 생긴 위기죠. 

돈을 못 갚은 기업은 바로바로 쓰러져 나갔습니다. 한국 기업 주식 구매로 투자한 투자자들도 한국 주식을 마구 팔았습니다. 

한국 주식을 팔아 한국 원화를 손에 쥔 외국인 투자자들의 다음 스텝은 뭐였을까요?


“달러로 환전해주세요.

이득 본 거 달러로 바꿔서 가져갈래요.”


다들 자기 나라에서 돈을 쓰려고 해외 주식에도 투자하는 거니까요. 하지만 이미 환전해줄 달러마저도 바닥난 상황. 

국민들의 금을 팔아 달러로 바꿔야 할 정도였어요. 여러분이 기억하는 ‘금 모으기 운동’은 아마 이러한 이유로 시작된 것일 겁니다. 


결국 우리나라 정부는 IMF에 SOS를 치게 됩니다. 그 결과, 우리가 받은 처방전(?)은 이러합니다. 


① 고금리 정책

② 전면적 구조조정

③ 전면적 시장개방


구조조정 요구는 우리만 받은 건 아니었습니다. 동남아시아도 IMF의 개입을 요청했으니까요. 

하지만 우리만 충실하게 이행했고, 너무 착실한 모범생이었던 나머지, 잘못된 지시까지도 군말 없이 따르면서 부작용이 생겼답니다.


1997년 외환위기는 사실 IMF의 구조조정 요청과 상관없이 1998년 겨울에 해소됐습니다. 

1998년 겨울 즈음엔 빌려온 만큼의 달러가 생겼거든요. 우리나라가 수출을 못 하고 있는 상황은 아니었으니까요. 

그렇지만, 고통스러운 구조조정은 이미 시작되었습니다. 스스로 구조조정을 하면 그 과정에서 생기는 피해자들을 구제하는 방안도 마련해놓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국내의 이해관계에 얽혀 있지 않은 사람들이 구조를 뜯어고칠 땐 사심 없이 칼을 휘두를 수 있다는 장점부작용은 전혀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는 단점이 함께 있습니다. IMF 체제 구조조정이 딱 그랬어요.


당시 한국은 ‘평생직장’ 개념이 강했습니다. 한 번 직장에 들어가면 당연히 ‘요람부터 무덤까지’, ‘가족 같은 회사에 충성’하며 모든 비용을 회사에서 대줬죠. 

그러던 회사가 구조조정을 해야 한다고 갑자기 사람들을 모두 해고해버린 겁니다. 안전망도 부족한 상황에서 해고된 사람들은 어디로 갔을까요? 


간신히 살아남은 사람들의 일자리는 정규직이 되고, 해고됐다가 다시 고용돼야 하는 사람들의 일자리는 비정규직이 됩니다. 

‘업무의 필요성’에 따라 정규직-비정규직이 갈린 게 아니었어요. IMF 체제 이전에도 계약직은 존재했지만, 지금 같은 개념은 아니었습니다. 

그때에 비해 사회안전망이 많이 보강되기는 했다지만 1997년 이전 같은 보호는 이뤄지지 못하고 있어요. 


이런 후유증에 대해 2010년, IMF는 공식적으로 사과한 바 있습니다. 

당시 아르헨티나 같은 나라는 구조조정을 끝까지 거부했는데, 결국 구제금융은 받았으면서 구조조정은 면했죠. 

그리고 지금 우리나라 같은 후유증은 겪고 있지 않답니다.


요약해볼까요?


ⓐ 우리나라의 경제구조가 문제가 없는 상황은 아니었습니다. 자체적으로 몇 번의 구조조정을 시도하며 체질을 개선하고 있었죠.

ⓑ 하지만 경제 체질과 상관없이 금융 자유화의 일환으로 해외 단기 외채 빌려오기가 쉬워지자 기업은 마구마구 (특히 일본의) 돈을 빌려와 회사 덩치를 키웁니다.

ⓒ 혹시 물건이 안 팔려서 돈을 못 갚게 되거든 정부가 대신 갚아주겠단 약속을 했기 때문에 더 잘 빌려줬죠.

ⓓ 그러나 여기저기 지급보증을 남발하던 정부는 정작 돈을 쌓아놓고 있진 않았습니다. 돈이 없어서라기보단, 그냥 습관적으로 쌓아두던 만큼 쌓아둔 거죠.

ⓔ 그러다 미국이 금리를 올려버렸고 중남미에서부터 동남아시아까지 외환위기가 닥쳤습니다. 동남아시아에 투자했다 돈을 잃은 일본이 급하게 빌려준 돈을 회수합니다.

ⓕ 마치 월급날 기다릴 여유 없이 카드값 당장 막아야 하는 사람의 상황이 된 한국 기업과 은행은 연쇄 부도가 납니다.

ⓖ IMF는 급히 돈을 빌려주며 ‘자비 없는’ 구조조정을 시작합니다.

ⓗ 구조조정이 시작되고 1년 후, 외환위기는 알아서 해소됩니다.

ⓘ 하지만 IMF 체제의 구조조정은 이미 진행되고 있었죠.


IMF를 겪은 이후, 너무 고통스러웠던 탓일까요? 

2020년인 지금도 경제 위기 때마다 IMF가 소환된답니다. 

틈만 나면 소환되긴 하지만, 지금까지 살펴본 것처럼 외환위기와 경제불황은 큰 상관이 없고, 외환위기는 기업의 도덕적 해이와 정부의 무지가 불러온 면이 컸습니다. 지금은 다른 경제 위기는 와도 외환위기는 오기 어렵답니다. 앞으로 경제 뉴스에서 ‘제2의 IMF가 온다!’라고 하거든, 어려운 상황의 비유적인 표현으로 이해하시거나 ‘아, 그건 아닐 테니 더 정확하게 말해주는 기사를 찾아봐야겠다.’라고 받아들이시면 될 거예요.


📚 이 글은 2007년 발표된  「한국의 외환위기」 이제민, 경제발전연구 제13권 제2호 pp.1-43을 참고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