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의 인문학][라떼극장] 돈이 없는데 💸 주식을 사고판다고요?



지난주, 개미연대기


지난주에는 한국 증시의 역사와 함께 개미투자자의 진화과정(?)을 살펴보았습니다. 

매번 외국인, 기관 투자자에 밀려 패배하던 개인 투자자들이 코로나19 이후 폭락장에서는 세 달 평균 67%의 수익률을 올리며 승리의 기록을 세웠어요.


그런데 말이죠. 일부 전문가들은 개인투자자가 이번 폭락장에서 버틸 수 있었던 이유를 두고 ‘공매도 금지 조치’ 덕분이라고 얘기합니다.


3월 11일, 증권시장에 코로나19의 경제적 타격이 본격적으로 반영되자 정부가 증권시장 안정화를 위해 일시적 공매도 금지 조치를 취했거든요. 

올해 9월까지 적용되는 한시적 조치인데요. 공매도는 그간 '없애야 한다.',  '유지해야 한다.' 말이 많던 제도라서 9월 이후에도 금지 조치를 그대로 두어야 할지 풀어야 할지 고민 중이라고 해요.


아참, 공매도가 뭔지 설명을 안 드렸죠. ‘없는 것(空)’을 ‘팔아넘긴다(賣渡)’, 공매도. 

공매도없는 주식을 미리 파는 거랍니다. 반대로 공매수없는 주식을 미리 사는 거예요. 

‘없는 걸 판다? 산다?’ 여기서부터 뭔가 말이 안되는 것 같지만, 이 개념이 한국 주식시장을 쥐락펴락해왔답니다.


한국 주식시장 역사 속 공매도와 공매수 이야기, 

이번 주 라떼극장 시작합니다! 



아십니까, 증권파동(1962)


지난번 라떼극장에서 ‘증권파동’에 대해 살짝 언급했었죠. 

한국 첫 주식시장이 열리자마자 닫히게 만든 커다란 사건이었습니다. 이제부터 설명해 드릴 공매수 때문에 시작된 일이에요.


회사와 주식, 자본주의와 주주라는 개념은 세계적으로는 이미 익숙한 상황이었습니다. 

일본은 1878년부터 주식거래를 시작해, 1920년대에는 이미 선물거래를 하고 있었어요. 

미국은 1790년에 첫 증권거래소를 열었고 유럽은 그보다 더 오래됐어요. 공매수, 공매도와 같은 각종 고급(?) 투자기법이 이미 세상에 나와있던 때였습니다.


이때 쯤, 한국의 첫 주식시장에는 일반주식이 총 12종류 상장돼있었습니다. 

상장된 기업 수가 적어 발행된 (종이)주식도 몇 장 안 되니, 당시 돈 좀 있다 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주식은 없어서 못 사는 지경이 됩니다. 



🎬Scene #1. 

너 같으면 안 사겠니?


사람들: 12개 종류의 주식 중에서 대증주(증권거래소 주식), 연증주(연합증권금융 주식), 한전주(한국전력 주식)가 제일 인기 많아. 왜일까? 

어피티: 대증주는 증식거래소가 자체적으로 발행한 주식인데... 증식거래소가 망하지 않는 한, 되는 주식이니까...?

사람들: 정답! 다들 대증주 사려고 얼마나 난리인지. 연증주도 증권금융이라 그런지 쑥쑥 오르던데?

어피티: 한전주는요…?

사람들: 전기 안 쓰는 현대국가 있음? 앞으로 더 씀. 너도 돈 있으면 지금 사놓는 거 추천. 20년 후에는 공기업 주주 가능, 대주주도 가능.


위 대화에 나온 ‘사람들’은 쌀 한 포대를 참기름 한 병과 바꾸며 물물교환하던 1960년대의 일반인이 아닙니다. 일제강점기, 한국전쟁, 군부독재 시기를 모두 거치면서도 수중에 돈이 있고, 주식이 뭔지 아는 사람이에요. 권력층이거나 대기업을 창업할 수도 있었던 영민한 장사꾼 또는 상류 부유층이 대부분이었죠.


대한민국이라는 나라가 망할 게 아닌 이상, 그 당시 한전이나, 증권거래 주식을 사 놓으면 단기적으로는 시세차익을 엄청나게 벌 테고, 장기적으로는 공기업의 대주주가 될 수도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물론 그분들도 한국이 60년 만에 G11에 초대받을 만큼 성장할 줄은 몰랐겠지만, 한 달 월급을 털어 넣고 GDP 기준으로 세계 열 손가락 안에 꼽히는 나라 공기업의 대주주가 될 수 있었다고 생각하면… 주식, 사지 않을 사람이 없겠죠?


주식 가격이 가파르게 치솟는 게 당연했습니다. 사려는 사람은 많고 주식 발행 개수는 한정돼있으니까요. 그래서 돈도 벌고 미래 한국의 큰손이 되어 볼까 싶었던 사람들은 ‘공매수’를 써가며 거래를 하기 시작합니다.



🎬Scene #2. 

공매수 없다? 있다? 


[공매수 없다컷]

① 오늘은 6월 22일입니다. 이 종목이 앞으로 오를 것 같습니다.

② 하지만 나는 주식 살 돈이 없죠.

③ 공매매가 금지라면, 내가 오를 거라 생각한 주식 가격이 속절없이 올라가는 걸 보며 흐느낄 수 밖에 없습니다.


[공매수 있다컷]

① 오늘은 6월 22일입니다. 이 종목이 앞으로 오를 것 같습니다.

② 하지만 나는 돈이 없죠.

③ 공매매가 가능하니 ‘외상거래’를 합니다. 일정 정도의 보증금만 맡기고요. 

④ 지금 한 주에 100원 하는 A주식을 10주 사기로 합니다. 결제는 나중에 하기로 약속하고요.

⑤ A주식 가격 1,000원(100원*10주)은 ‘청산일’이라고 하는 지정 결제일에 지급하면 됩니다.

⑥ 청산일에 가격을 확인해봤더니 A주식은 한 주에 200원! 10주에 2,000원이 되었습니다.

⑦ 주식 가치가 올라 돈 갚을 능력이 되니, 어디서 돈을 빌리기가 쉽습니다. 돈을 빌려 A주식 10개를 산 대금 1,000원을 냈습니다.

⑧ 사놓은 주식을 파니 2,000원이 내 손에 들어오네요. 

⑨ ⑦번에서 빌린 1,000원을 갚고, 나는 시세차익 1,000원을 갖습니다.


🎬Scene #3. 

[공매수 있다 상세컷]


사람1: 아... 이거 꼭 오르는데. 진짜 오르는데.

사람2: 너 돈 없잖아?

사람1: 공매수 된대. 일단 산다.

사람2: 돈은?

사람1: 지금 당장 안 내도 돼. 청산일에 내면 돼. 그때까진 돈 빌려줄 사람 생길 거야.

사람2: 돈 빌리는 게 그렇게 쉽냐?

사람1: 청산일에 이득만 나 봐. 당장 눈앞에 이득이 보이는데 너도나도 빌려주려고 할걸?

(진짜 오름)

사람2: 야, 진짜 엄청나게 올랐어...

사람1: 그것 봐라.  주식 창 보여주고 당일 상환에 이자 10% 주겠다니까 바로 빌릴 수 있더라고. 


이렇게 공매수와 공매수를 거듭한 결과, 증권파동 사건 당시 주식 가격은 4개월 만에 50배에서 200배까지 올랐습니다. 

비트코인도 이렇게 오르지는 않았을 거예요.


어쨌든, 공매수를 했다가 주식 가격이 내려가면 비쌀 때 산 만큼 손해가 난다고 쳐도, (공매수했다가 주식 가격 내려가서 43억 원 손해 본 조흥은행 사건) 지금은 200배나 올랐는데 무슨 문제냐고요?


Scene #2의 [공매수 있다컷] ⑦ 을 주목해봅시다. 


주식이 올라 갚을 능력이 되니

어디서 돈을 빌리기가 쉽습니다. 

돈을 빌려 A주식 10개를 산 대금 1,000원을 냈습니다.


공매수는 돈이 없어서 빌린 다음, 청산일에 이익으로 돈도 갚고 나도 벌고 하는 구조입니다. 공매수까지 해가면서 주식을 사려는데 주식을 한 개, 두 개 살까요? 많이 샀겠죠. 1만 원짜리 주식 1만 개 사면 1억 원에, 200배면 200억 원입니다. 200억 원을 어디서 빌리겠어요. 당시에는 그런 부자 찾기도 힘들 거예요. 그리고 슬프지만 자꾸 하는 이야기, 당시 한국 사람들 대부분은 가난했습니다.


네. 빌려서 감당하기엔 너무 올라버린 겁니다. 망했죠. 주문은 들어갔고, 돈을 빌려서 갚아야 되는데 아무도 그만한 돈을 가진 사람은 없고. 이거 어떻게 합니까. 거래소가 일단 물어줘야죠. 하지만 거래소에도 그런 돈은 없는 겁니다.


예를 들면 이런 상황입니다.



🎬Scene #4. 

주문 들어갔으니 돈 내셔야죠


초등학생1: 나 내일 도시락으로 햄 싸올 거임!

초등학생2: 우와! 내가 백 원 줄 테니까 나눠주라.

초등학생3: 나는 2백 원 줄게, 나 줘!

...

초등학생248: 나는 3백억 줄게!


초등학생 1이 햄을 가져오고 

3백억을 내기로 한 초등학생248과 나눠 먹은 다음 날, 


초등학생248의 부모: 아니... 저희한테 3백억은 없어요...

법원: 보호자가 내셔야죠. 아니면 파산 신청을 하시겠습니까?


이해를 돕기 위한 비유이긴 하나 실제로 이런 ‘맥락’의 거래에 법적 효력이 있었다고 보시면 됩니다.


그렇게 1962년 5월, 문 연 지 4개월 만에 거래소가 망하게 됩니다. 대증주, 연증주도 함께 망했죠. 짧은 기간에 큰돈을 만지고, 막 일어서는 나라의 공기업을 손에 넣으려고 했던 욕심에 모두 달려들어 벌인 투기의 결과예요. 이 투기 세력 중엔 정부 관료도 있었지만, 이 사태에 대해서 아무도 책임지지 않았고 도덕적 해이의 끝판왕을 보여주죠. 이게 바로 세계적으로 유명한 ‘증권파동’ 사건이에요.


증권파동 사건은 위에 설명한 내용 이외에도 굉장히 복잡한 부정부패가 얽혀 있습니다. 공매도, 공매수를 처음 이해하는 입장에서 더 헷갈릴 수도 있으니 오늘 여기서 더 다루지는 않을게요. 하지만 흐름을 이해하기 위해서 역시나 중요한 내용이니, 더 궁금하신 분들은 이 기사를 참고하세요.


이 사건은 대한민국 금융 역사에 큰 상처를 남겼습니다. 일반 국민들은 ‘주식’이라고 하면 일단 ‘도박’을 연상하게 되어버렸어요. 그리고 증권거래가 한 번 크게 주저앉았기 때문에 다시 회복하고 금융자본주의를 도입하는 데 오래 걸렸고, ‘공인인증서’로 대표되는 금융규제는 저 때부터 유례 없이 강력해졌답니다.



이제 중요한 건 공매도


2000년대 한국은 부자나라가 되었습니다. 주식시장도 얼마나 많아졌게요. 

대기업 위주의 코스피 따로, 중소기업 위주의 코스닥 따로. 2020년 6월 기준 코스피·코스닥 합쳐서 상장기업 수는 약 2,200개. 증권파동을 일으켰던 거래소의 약 184배 정도 많아졌네요.


시험성적 10점 받던 친구가 60점 받는 것보다 92점 받던 친구가 99점 받는 게 더 어렵듯, 덩치가 커진 한국에서는 쏘아 올린 로켓처럼 성장하는 기업보다는 한때 엄청나게 빨리 성장했다가 큰 변화 없이 유지되는 대기업과 기업 경영 삐끗하고 대외 여건 악화해서 날개 없이 추락하는 기업이 더 많아졌어요.


주가도 급등하는 종목보다는 급락하는 종목이 더 많아진 상황에서, 추락하는 기업의 날개를 잡아 한 몫 챙기려는 공매도가 활개를 칩니다. 



🎬Scene #5. 

공매도 없다? 있다?


[공매도 없다컷]

① 오늘은 6월 22일입니다. 이 종목이 앞으로 떨어질 것 같습니다.

② 지금 사면 비싸지만, 떨어진 다음에 사서 지금 가격으로 팔면 돈 벌죠.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는 단점이 있지만요.

③ 공매매가 금지라면 타임머신을 개발해야겠다 생각하며 울면 됩니다.


[공매도 있다컷]

① 오늘은 6월 22일입니다. 이 종목이 앞으로 떨어질 것 같습니다.

② 지금 사면 비싸지만, 떨어진 다음에 사서 지금 가격으로 팔면 돈 벌죠.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는 단점이 있지만요.

③ 없는 주식을 팝니다. (응?)

④ 안 가진 주식을 (아무한테나) 빌려서 지금 한 주에 천 원 하는 A주식을 10주 팝니다. 만 원 받고요, 주식은 나중에 넘기죠.

⑤ 자고 일어났더니 정말로 A주식이 폭락해서 어제까지 1,000원 하던 게 100원 하네요? 

⑥ 천 원에 10주를 사서 주식 빌려준 사람한테 갚아줍니다.

⑦ 9,000원 벌었네요. 돈 벌기 쉽다.


공매도 방법은 여러 가지지만 원칙은 변하지 않습니다. 없는 걸 빌려 팔고 나중에 쌀 때 사서 갚는 거죠. 

그러다 가격이 내려가지 않으면? 손해 보는 겁니다. 더 비싸게 사야 할 테니까요.


공매수든 공매도든 중요한 포인트가 있습니다. 정보가 힘이라는 거예요. 

주가가 오르거나 떨어질 만한 정보를 미리 알고 움직여야 이길 수 있는 싸움이니까요. 

그래서 한국 주식시장에서는 이 공매도 때문에 개미들이 늘 돈을 잃는다는 말이 많았습니다. 아침 9시까지 출근해서 생업에 종사하며 일하기 바쁜 개미들보다는, 국민연금과 같은 기관이나 외국인 투자자가 한발 앞서 고급 정보를 손에 넣지 않겠어요?


점심시간에 잠시 주식창 들여봤다가 어어, 오르기 시작한다 싶어서 샀거나, 떨어진다 싶어서 판 개미는 다음날 그게 공매수나 공매도였다는 걸 알고 파랗게 마이너스가 붙은 잔액을 보며 슬퍼하곤 했죠.

2008년 같은 경우엔 미국발 금융위기가 직전 외국인 공매도가 터져서 그 물량을 떠안은 개미들이 큰 손해를 봤답니다. 손해가 너무 컸던 나머지 5년간 금융주 공매도 금지 조치를 취하기도 했어요. 


그런데 왜 공매수/공매도를 허용하냐고요? 

나름의 순기능이 있습니다. 본래의 위험 회피 기능도 있긴 하지만, 여기서는 그보다 정보를 미리 안 사람들이 공매매를 하면서 거품을 제때 빼주지 않으면 나중에 사고가 더 크게 터지거든요. 주가가 실제 가치보다 너무 부풀려졌다 싶을 때 시장의 자정 기능 같은 거예요.


그래서 주식투자를 할 땐 해당주의 공매수/공매도 거래 현황도 염두에 둬야 합니다. 

2017년 3월 우리나라 정부는 공매도 과열 종목 지정제를 도입했는데요, 과열 종목으로 지정돼도 거래가 가능하긴 하지만, 어쨌든 확인은 해봐야 하는 거죠.


코로나19가 심각해지자 서둘러 공매도를 금지했던 금융당국, 이제 공매도 금지를 단계적 해제하는 카드를 만지작거리는 듯한데요. 

지금 한국 증시가 선방하는 현상이 공매도 금지의 영향일 수 있으니 어피티 독자 여러분은 정부가 어떤 선택을 하는지 유심히 지켜보아야겠죠? 


일확천금을 노리는 투기 세력보다는 기업의 미래 가치를 보고 투자하는 주주들이 건강하게 수익을 올릴 수 있도록 한국 증시도 체질 개선이 되면 더 좋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