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의 인문학][라떼극장] 한국 증시 개미의 역사 🐜



개미 필패의 시대,

끝난 것인가!

 

코로나19의 전 세계적 유행으로 글로벌 경제가 멈추면서, 지난 3월 19일에는 증시가 대폭락 했었죠. 

5만 원 넘던 삼성전자 주식이 4만 원대 초반으로 떨어졌던 그때, 주식 좀 오래 봤다 하는 사람들은 눈을 질끈 감았을 겁니다.


“외국인이랑 기관이 한국 증시에서 돈을 빼고 있네.

너도 나도 주식을 팔아 치울 테니

살 사람은 없고 파는 사람만 많아서

주가가 폭포처럼 떨어지겠구나.”


그런데, 생각했던 그런 일들은 벌어지지 않았습니다. 

‘개미’라 불리는 개인 투자자들이 주식시장 주류 세력인 외국인과 기관의 매도세에 맞서 한국 주식 가격을 방어해낸 거예요. 

쉽게 말해서 외국인과 기관이 파는 금액과 개미들이 사는 금액 총량이 비슷했던 거죠. 

3월 1일부터 20일까지, 외국인은 10조 원어치의 주식을 팔고 개미는 9조 원어치를 사들이며 팽팽하게 맞섰답니다


살다 보면 그럴 수도 있지, 왜 다들 그렇게 호들갑이냐고요? 

지난 60년간 한 번도 없었던 일이거든요. 그동안 개미들은 외국회사·자본이나 외국인, 기관 및 투기자본에게 주머니를 탈탈 털려온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갑자기 뭔가에 눈을 뜬 것처럼 바뀐 거예요.


① 국내 증시가 곤두박질친다는 것의 의미

② 시장참여 개인이 성숙한 투자 태도를 보인다는 것의 의미

③ 그래서 이번 사태의 의미를


라떼극장에서 찬찬히 짚어보겠습니다. 

 


🎬Scene #1. 

뭐가 없어도 너무 없던 대한민국


🇰🇷정부: 일제로부터 독립한 지도 17년, 한국전쟁 끝난 지도 9년… 이제 뭐로 먹고 살지??

🏢회사: 저희 같은 ‘회사들’을 키우셔야죠! 

🇰🇷정부: 그쵸. 그런데 어떻게 키우냐고요. 공장이 없으니 만들어 팔 물건도 없고, 물건을 만든대도 사람들이 물건 살 돈도 없어요. 

🏢회사: 공장만 좀 세워주시면 어떻게든 수입, 수출로 힘써보겠습니다. 

🇰🇷정부: 아니 그럼 좋긴 한데. 물건 재료랑 공장 돌릴 연료는 공짜로 나옵니까. 그리고 외국에 수출하려면 품질이 좋아야 하는데 만든다고 무조건 좋다는 보장도 없고... 

🏢회사: 일단 공장을 세우고 고민을 해보자니까요. 하다못해 가발공장이라도? 표현이 좀 그렇긴 하지만, 머리카락 같은 건 국내에서도 구할 수 있는 원료잖아요. 


1970년대 대한민국의 전체 수출품의 약 11%가 인모(人毛)로 만든 가발이었답니다. 

2019년 전체 수출의 10%를 차지하는 품목은 반도체니까, 가발이 1970년의 반도체였던 셈이에요.


요즘 같으면 사회에 꼭 필요한 상황이다 싶을 땐 정부가 나서서 돈을 풉니다. 하지만 1960년대, 1970년대엔 정부도 가난했어요. 

다른 부자나라들의 원조로 제일 중요한 공장 몇 개는 세웠지만 전국의 모든 공장과 회사를 정부가 맡을 순 없잖아요. 


그래서 정부는 주식시장을 열기로 합니다. 

그래야 투자자들이 어떤 회사가 있는지도 정보를 찾아볼 수 있고, 그러다 주식을 사서 투자도 하고, 투자받은 회사가 쑥쑥 커서 세금을 내고, 세금을 내면 또 정부가 그걸로 다른 공장을 세울 테니까요.



🎬Scene #2. 

주식시장 만들어 놓긴 했는데요…


🇰🇷정부: 상장시킬 회사도 몇 개 없고, 사람들이 주식이 뭔지도 잘 모르고… 너무 일렀나?

🏢회사: 나… 죽네... 돈 없어서… 나… 죽… 소…

🇰🇷정부: 증권거래소 세운다. 세워! (주식 12종류 상장^^)

🤷투자자들: 여기서 뭘 사라는 건지ㅎ


오랜 식민지 기간을 거쳐 참혹한 전쟁이 막 끝난 시점, 한국의 화폐경제는 그야말로 엉망이었습니다. 

한국정부가 발행한 화폐는 엘리트층만 사용하고, 일반 국민들 사이에선 아직도 일본 화폐가 통했고요. 

물자가 넘쳐 나는 미군부대 주위에서는 달러가 통했죠. 


화폐보다는 물물교환이 더 활발했던 시절이었습니다. 

‘진짜 일반인’은 시장에서 쌀 한 포대와 참기름 한 병을 교환하는 게 일상인데 구경도 잘 못 해본 한국화폐를 들고 주식이라는 종이 쪼가리를 덥석 사버리긴 어려웠겠죠.



🎬Scene #3. 

일제강점기 증권거래소


옛날사람1: 내일 ‘조선증권취인소’ 정문 앞에서 만나요.

옛날사람2: 네. 만나서 점심 드시죠.

😀어피티: 혹시 ‘조선증권취인소’가 뭐 하는 곳인지 아시나요?

옛날사람1: 잘 모르는데… 일본사람들이랑 양복쟁이들이 열심히 드나들던데요?

옛날사람2: 건물이 참 찾기 편해. 약속 잡기 쉬워.


한국 사람들은 주식을 거래하는 증권거래소 자체엔 익숙했습니다. 일제강점기에 이미 있었거든요. 

당시 일본은 1878년부터 주식거래를 시작, 1920년에는 선물거래를 하고 있었습니다. 미국은 1790년에 첫 주식거래소를 열었고 유럽은 그보다 더 오래됐죠. 

그러니까 회사와 주식, 자본주의와 주주라는 개념은 세계적으로는 이미 익숙한 터였습니다.


하지만 한국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는 형태는 아니었습니다. 일본 사람들만 식민지 조선에 세운 일본회사 주식을 거래했달까요. 

그러니까 증권거래소 건물에는 익숙하지만 아무도 증권이 뭔지는 잘 모르는… 그런 상황인 거죠.



🎬Scene #4. 

1956년, 대한증권거래소 출범!



옛날사람3: (지폐를 들며) 이게 뭐라고. 금도 아니고, 쌀도 아니고.

옛날사람4: (종이증권을 들며) 이 종이 쪼가리랑 저 종이 쪼가리를 뭐 어떻게 하라는겨.

옛날사람5: 일본사람들이 건물에 모여서 하던 게 뭐 종이랑 종이 바꾸는 거였나?


이렇게 주식은 ‘진짜 일반인들’ 사이에서는 인기가 없었지만, 돈이 뭔지 아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그야말로 인기 대폭발이었어요. 

가장 먼저 거래를 하려고 새벽부터 증권거래소 앞에서 줄을 서거나 아예 그 앞 여관에 숙소를 잡아놓는 사람들이 굉장히 많았습니다.


이후로 1962년의 증권파동이 있었는데요. 이건 최근에 이야기가 나오고 있는 공매도에 대한 설명과 함께 다음주에 좀 더 자세히 설명해드릴게요! 



주식, 

얼마나 가까워졌을까?


그러다가 1987년 민주화항쟁 이후 금융 쪽에 많은 변화가 있었는데요. 주식거래도 전산화가 됐습니다. 여기서 두 가지 질문이 생깁니다.


① 주식이 뭔지 이해하는 사람은 얼마나 늘었을까?

② 전산, 즉 컴퓨터를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은 얼마나 늘었을까?


늘기는 늘었겠지만 다들 소액이나마 주식에 투자해서 금융자산을 축적하기에는 아직 어려운 상황이었습니다. 

그러니 일반인들에게는 여전히 주식이 멀게 느껴질 수밖에 없었죠.


한국 주식시장의 짧은 역사, 그리고 사람들에게 익숙하지 않았던 주식, 그리고 이런 점을 악용했던 몇 가지 큼직한 사건들. 

이런 과정 속에서, 한국 주식시장에는 한국사람보다 외국인이 먼저 투자를 많이 했습니다. 

주식투자에 갖게 된 거부감과 교육 부족, 경험적 수익성에 따라, 한국인은 돈이 생기면 주식보다는 부동산에 투자했어요.



🎬Scene #5. 

한국주식, 외않사?


외국인1: 한국 주식 쓸만한데, 왜 한국인들은 별로 안 사는지 모르겠네?

외국인2: 1992년부터 투자했는데 20년간 수익률 780% 넘었음.

외국인1: 잘 성장하다가 수익 실현 시점 돼서 팔기 시작하면, 이상하게 그때 사려고 들어온다니까?

외국인2: 그러고 더 떨어질까 봐 그런지, 오르기 전에 팔아서 왕창 잃고 다신 주식 안 한다고 하고… 꾸준히 길게 보면 수익률 나쁜 시장이 아닌데.

외국인1: 예전에 증권파동 때 같은 주식 거래만 하고 싶은가봐.

외국인2: 하긴, 불안해서 그럴지도. 미국 주식 있고 한국 주식 있는데 둘 중 하나만 갖고 간다고 하면 당연히 미국 주식이지.

외국인1: 한국회사 주식들 언제 떨어질지 몰라서 본인들도 안 사고 있는 거면 인정.

외국인2: 우린 평소에 쌀 때 사놨다가 북한이나 중국이랑 트러블 생겼을 때, 확 팔아버리자. 

외국인1: 개미 필패야. 개미 필패.


여러분의 쉬운 이해를 돕기 위해 최대한 상황을 쉽게 압축해서 표현했지만, 수십 년간 한국 주식시장은 대략 이런 타이밍으로 돌아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미숙하게나마 전략적으로 투자하는 개미가 많아진 겁니다. 

이렇게 된 데에는 다양한 이유가 있겠지만 기술의 발전으로 MTS(모바일 트레이딩 시스템)가 개발되어 투자의 접근성이 좋아지고, 주식 관련 정보에 대한 접근성이 좋아지면서 더 똑똑한 개미가 된 것도 큰 몫을 했죠.


요즘사람1: 삼성은 망하지 않아. 반도체 수요는 꾸준할 거랬어.

요즘사람2: 사람들이 여행을 못 해도 화물 수요는 늘어날 테니 항공주를 살 거야.

요즘사람3: 황사도 매년 발생하고 코로나19 쉽게 끝날 것 같지 않으니까 마스크 원료 기업에 투자할래.

요즘사람4: 언택트 시대라며? IT기업으로 가자.

외국인들: 뭐? 이런 비상사태에 미국도 아니고 한국의 대폭락한 주식을 사겠다고? 헐…

요즘사람들: 오를 거야. 회복할 거야. 믿어.


그리고 정말 회복했죠. 개미 수익률 67% 달성!



개미운동의 나비효과?


이번 ‘동학개미운동’의 장기적인 효과를 기대해본다면 이렇습니다. 

일단 다양한 계층, 다양한 성향의 사람들이 회사 주주가 된다면 자연스레 기업 경영이 사회의 눈높이를 반영하게 되겠죠. 

투자한 사람 입장에서는 경제뉴스를 주의 깊게 보게 되니까 경제에 대한 이해도도, 경제 사건에 대한 주관도 생길 거예요. 

그렇게 감시의 눈이 많아지면 시장은 더욱 잘 돌아가게 됩니다. 

일반인들의 유동자금을 끌어들여 주식시장이 커지고, 상장한 기업들도 더 원활한 투자를 받게 되겠죠.


특히나 한국은 가계자산의 대부분이 부동산입니다. 하지만 한국 부자들의 자산 포트폴리오를 보면 금융자산의 비중이 일반인들보다 높습니다. 

부자들에 비해 일반인들은 주식을 자산 증식을 위해 활용하는 경향이 낮다는 것이죠. 한국의 건강하고 건전한 개미들이 더 많아져야 합니다. 

기업의 가능성을 잘 찾아보고 열심히 투자하는 사람들이 부자가 되어야겠죠.


개인투자자들이 성숙한 투자 태도(?)를 좀 보여줬다고 이렇게까지 난리가 난 건, 슬픈 역사를 넘어 이상적 시나리오를 기대할 수 있게 됐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제 시작일 뿐입니다. 

모두가 자신의 판단과 기준에 따라 투자생활을 하는 그날까지! 

어피티가 함께할게요 😊


📚 참고: 성승제, 2013년 한국사회경제학회 학술대회 자료집, p1~p38 「1960년대 초반 증권파동이 갖는 함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