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의 인문학][라떼극장] 사랑의 LNG 🚢



싹~ 다~

한국에서 만들어주쎄요


경제 뉴스를 관심을 두고 보시는 분이라면, 아니 그렇지 않은 분이더라도 한 번 들어보셨을 최근의 카타르 LNG 선박 수주 관련 기사

코로나19 발생 이후로 경제와 관련해서는 우울한 뉴스들이 한가득이었는데 오랜만에 시원하고 상쾌한 소식이었죠. 

자세한 내막은 몰라도 일단 뭔가 큰 금액의 수주가 이루어졌다는 소식은 좋은 일 같지 않나요? 


이번 수주뿐만 아니라 경제뉴스에 큰 비중으로 등장하는 조선업 관련 소식을 잘 이해하려면 대한민국 산업 발전의 특성과 조선 산업의 특징, 경남 지역경제와의 연관성, 그리고 중국과의 미묘한 관계에 대한 종합적인 이해가 필요한데요.

오늘 라떼극장에서는 그 각각의 맥락들을 하나씩 풀어보겠습니다. 

 


1. 라떼는~

수출하려면 조선은 필수였어!

 

한국 조선산업이 세계 1위다, 2위다 하는 말은 가끔 들었지만, 왜, 어떻게 배 만드는 산업이 우리나라에서 발전하게 된 건지는 아는 사람들이 별로 없죠. 

이것을 알려면 먼저 ‘수출'의 개념부터 짚고 넘어가야 합니다. 

 

수출이란 무엇인가

① 물건을 만들어서 외국에 팔고 달러를 받아오는 것

② 물건을 만들어서 외국에 비행기와 배로 실어 날라서 갖다 팔고 달러를 받아오는 것

(전 세계 교역의 90%, 우리나라 수출입의 99.7%가 해운으로 이뤄짐

③ 물건을 많이 팔면 팔수록 실어나를 일도 많다는 것

해(상)운(송)업

④ 실어나를 일이 많을수록 상업용 화물선이 많이 필요하다는 것 

⑤ 어차피 수출로 먹고살 거 배까지 우리가 만들면 배 빌리는 비용도 안 들고 수출도 하고...?

조선업 발달


그러니까 수출로 먹고살 생각을 하는 나라라면 해운과 조선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 굉장히 자연스러운 전개죠? 

원래 돈이 많은 나라였으면 수출을 위한 배를 자주 빌려 쓸 수도 있겠지만 경제성장기 우리나라 조선업은 그럴 형편이 되지 못했습니다. 

뭐든 만들어서 갖다 팔아야 했고 그러려면 배가 필요했던 입장이었으니까요. 


게다가 배를 건조하기도 좋은 환경이었습니다. 삼면이 바다였거든요. 

아무리 수출로 먹고살아야 한다고 해도 국경이 모두 산과 들이라면 어디서 배를 만들겠어요?



2. 왜 조선소는

대부분 경남에 있을까?


바다에 띄워서 항해하라고 만드는 운송수단인 배를 육지에서 만들었다간 바다까지 실어와야 하는 대참사가 벌어집니다. 

대용량 화물선은 말 그대로 화물칸만 축구장 여러 개 면적만 합니다. 운반을 염두에 두는 것 자체가 무리죠. 


게다가 큰 배는 물 밑으로 가라앉는 부분도 깊기 때문에 암초에 부딪히거나 개펄에 걸리지 않도록 연안 항구의 수심도 깊어야 합니다. 

거기에 수출물량이 모이는 무역도시면 더 좋겠죠?


2016년 기준 조선업은 우리나라 GDP의 1.6%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단일산업이 1.6%라는 것도 꽤 큰 숫자지만 이 1.6%가 경상남도 경제의 핵심이라고 생각하면 중요성은 훨씬 더하죠. 

거기다가 배를 건조하는 데 드는 기자재나 원재료 등까지 염두에 두면 배 한 척이 지역 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무지무지 큽니다.


경남에는 그 모든 조건을 충족하는 도시들이 많았습니다. 거제·통영·울산·부산 같은 항구 도시들이죠. 

이 도시들은 IMF 외환위기 시절에도 상대적으로 덜 어려웠답니다. 

수출로 외환위기를 극복해야 하는데, 수출이 활발하게 이뤄진 도시가 바로 경남의 항구 도시들이었으니까요. 

그래서 한때 통영이나 거제에선 ‘돈 자랑 하지 말라. 길에 널린 게 부자다’ 하는 우스갯소리가 돌았죠. 


그런데 이 항구 도시들의 현재 상황은 매우 좋지 않습니다. 

아파트 가격이 반 토막 나고, 산업위기 대응 특별지역에 실업자도 많아요. 고용촉진 특별구역이 될 정도죠. 


전 세계는 수출입, 즉 무역으로 먹고살기 때문에 수출을 많이 하는 국가도 수입을 많이 하는 국가도 화물선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세계 경기가 좋으면 해운도 잘 나가고, 해운이 잘 나가면 조선도 잘 나가는 것이 자연스러운 흐름인데요. 

2008년 금융위기 때부터 미국과 중국이 피 터지게 싸우는 2010년대, 그리고 코로나19가 강타한 지금, 세계 무역 물동량이 줄어들어 배를 주문하는 국가가 줄어든 것입니다. 


게다가 조선업 특성상 신규 선박 수주에는 ‘방학’이 있답니다. 새로운 배를 여러 척 만들고 나면 그 배가 낡을 때까지 새로운 배가 필요하지 않겠죠? 

너무 복잡하고 어려운 관계로 자세한 이야기는 생략하겠지만, 방학과 KIKO사태, 중국에 경쟁력이 밀리는 등 악재가 겹쳐 2016년부터 경남 조선업은 그야말로 생존의 기로에 놓인 상황이었죠.


그런데 이 시점에, 가뭄에 단비 같은 카타르의 대규모 수주가 들어온 겁니다. 

규모도 규모지만, 주문한 배가 원체 비싸기도 해요.



3. 벌어서 남 준다?


이번에 우리나라가 카타르에서 수주해온 LNG(액화천연가스)운반선은 한 척당 2천억 원이나 한답니다. 

이렇게 비싼 데는 다 이유가 있어요.


🎬Scene #1.

거기서 프랑스가 왜 나와?


🇰🇷한국: 바다에는 도로라는 게 없어요. 운전이 말도 안 되게 험하답니다. 게다가 먼 바다에서 이는 파도는 웬만한 큰 선박도 뒤집어 버려요. 그리고 석유, 가스 같은 연료를 운반하는데 배가 너무 흔들려버리면 연료가 누출되거나 정말 큰 폭발 사고가 날 수 있으니까요. 이 배를 만드는 게 쉬운 일이 아닙니다. 

🇫🇷프랑스: 그렇죠. 그게 정말 쉽지 않은 일이죠. ‘아무리 흔들어도 흔들리지 않는 가스 탱크' 같은 특별한 기술이 있어야겠네요. 

🇰🇷한국: 네, 그래서 프랑스 특허 기술 적용한 선박 만들고 있죠. 덕분에 기술 잘 쓰고 있습니다...

🇫🇷프랑스: 감사합니다, 고객님. 자, 그럼 배 1척당 100억 로열티 주세요. 

🇰🇷한국: (지갑을 열며 깊은 한숨) 그래도 프랑스 기술 쓰면서 배 만든 덕분에 오래된 방식으로 LNG운반선 만들던 일본 제치고 조선업 1위 하긴 했지… 


LNG운반선 건조는 굉장히 어려워서 가능한 나라가 몇 안 됩니다. 

그리고 그 LNG운반선의 핵심인 화물창 원천 기술을 보유한 회사가 프랑스의 GTT죠. 조선업계 세계 1위라고 해도 마냥 웃을 수만은 없는 것이 이 지점입니다. 

우리나라의 많은 기술자가 애써서 배를 만들었는데 외국에 로열티로 빠져나가는 건 너무 속상한 일이죠?



4. 중국,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Scene #2.

중국 조선업의 약진


🇨🇳중국: 어차피 전 세계에서 수출입되는 물건은 ‘세계의 공장’인 우리 중국에 오는데 배도 우리 중국에서 만들어서 현지에서 싣고 가는 게 어때. 배가 오고 가는 비용도 아끼고…

🌏다른 나라들: (그럴듯한데…?)

🇨🇳중국: 금융 파격 지원! 가격도 엄청나게 인하! 중국 회사는 무조건 중국 배만 탄다!

🌏다른 나라들: 몰아주기 하는 것 같아 좀 찝찝하지만 중국도 요샌 기술력도 많이 올라갔고, 무엇보다 싸니까…


🎬Scene #3.

한-중-카, 묘한 삼각관계


🇶🇦카타르: 호주 프로젝트에 투입한 ‘글래드스톤 호’, 수명이 20년이라며 왜 2년 만에 운항 불능…?

🇨🇳중국: 누구나 처음엔 서툰 법이잖아. 우리한테 맡겨주면 LNG가스 호주에서 안 사고 카타르에서 살게.

🇶🇦카타르: 그래… 4월 주문 물량인 16척은 그럼 중국 LNG운반선으로!

🇰🇷한국: 어어, 이러다가 시장판도 정말 뒤집히는 거 아냐? LNG운반선 기술은 우리가 세계 최곤데?

🇶🇦카타르: 걱정 마세요. 2차 대규모 주문은 한국에 할 거니까. 퀄리티도 그렇고, 납기 좀 잘 맞춰주세요. 

🇰🇷한국: 진짜 잘 만들어드릴게요. 믿어주세요. 메이드인코리아!!! 

🇨🇳중국: 두고 봐라. 우리가 기술 수준 따라잡는 데 진짜 얼마 안 걸린다. 다른 것도 다 그랬듯^^

🇰🇷한국: (빨리 독자 기술 개발해야겠는데 큰일이네ㅠㅠ 쉽지 않네ㅠㅠ)

🇶🇦카타르: 잘 좀 만들어주세요. 우리 일단 이번 계약은 LNG 1위 호주 견제해야 해서 배 만들 수 있는 도크부터 잡은 것이니 우리 실제 주문 물량은 좀 줄어들 수도 있어요. 

🇰🇷한국: 네. 끝까지 믿고 맡겨 주세요! (이럴 때 세계 경제라도 좋으면 돈이 좀 돌아서 투자금이 생길 텐데. 휴)


이번 수주는 이렇게 완전히 마음 놓을 수 있는 상황이 아니기도 합니다. 

실제로 1차 물량(최대 16척) 수주전에서는 중국업체가 수주에 성공하면서 긴장감이 맴돌기도 했었죠. 

카타르가 LNG선 수주와 연계하여 중국 은행들이 제공하는 금융지원의 달콤함을 거부할 수 없었을 것이라는 추측도 있지만, 여전히 긴장을 늦출 수 없는 게 사실입니다.


지난 2016년 이후 조선업계의 엄청난 불황이 지역을 강타하면서 우리나라가 1위를 달리고 있던 중소형 선박들, 그러니까 중소형 선박을 만드는 중소형 조선소들이 대부분 폐업을 했었답니다. 

현재 중소형 선박 시장은 중국이 다 먹은 상황. 대형선박 수주도 중소형 선박 기술 흡수를 토대로 덤벼온 거였죠. 


그런데 어쩌면 이번 대규모 수주를 계기로 중소형 조선소들까지 상황이 나아질 수 있을지 조선업이 오래간만에 희망에 부풀어 있어요. 

우리가 직접 타게 될 배는 아니지만, 경남 지역과 그 도시들의 거대한 도크에서 멋진 배들이 잔뜩 만들어지는 상상을 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