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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니칼럼

돈 불리기[금투자] ???: 아 그때 금 좀 사둘 걸!

???: 아 그때 금 좀 사둘 걸!

글, 수진


👉 지난화 보러가기


옛날사람1: 라떼는 말이야. 금 가격이 잘 변하지 않았어. 그리고 개인이 금을 사는 것도 힘들었다고.

옛날사람2: 라떼는 말이야. 금 가격이 엄청나게 올랐어. 물가도 같이 엄청 뛰었지. 

the 독자: 도대체 누구의 말이 맞나요?! 서로 다른 시대에서 오셨어요?! (혼란)


‘금은 위기에 강하다’는 말은 진짜일까요? 그렇다면 과거의 경제위기 때는 금 가격이 어떻게 움직였을까요? 


오늘은 이 질문들에 대한 답을 준비해보았습니다. 1920년대 말에 시작된 대공황과 1970년대 오일쇼크 시기의 금 가격에 대해 알아볼게요. 


👉 들어가기에 앞서

오늘날 대표적인 금 거래소는 미국의 COMEX, 영국의 런던금시장입니다. 이외에도 각국에 거래소가 있고, 우리나라에도 ‘한국금거래소’가 있는데요. 오늘 이야기하는 금 가격은 미국과 영국 시장이 기준이에요.

옛날사람1이 살던 시절, 대공황


1920년대 호황기를 겪어온 미국 경제는 1920년대 말부터 급격히 가라앉았습니다. 거품이 꺼지면서 주가도 폭락했고, 이 위기는 유럽까지 퍼졌어요. 

👉 대공황에 대해 더 자세히 알고 싶다면? 어피티의 대공황 시리즈를 읽어보세요. 


대공황 때의 금은 지금 우리가 보는 ‘투자자산’으로서 금과 조금 다릅니다. 이 시기에는 금이 화폐의 근본 가치가 되던, 금본위제가 남아 있었어요. 즉, 금이 화폐로서의 기능을 하던 때였죠.


금본위제 아래서는 정부가 금 가격을 통제합니다. 금이 화폐의 가치를 할 수 있도록 조절하기 위해서였어요.


대공황 시기에도 금의 공식 가격이 정해져 있었습니다. 그래서 과거 금 가격 그래프를 보면 금본위제가 완전히 해제된 1971년까지는 변동폭이 작은 것을 볼 수 있어요. 


출처: macrotrends, 인플레이션 미조정 수치, 사이트에서 연도를 움직여서 기간별 가격을 확인해보세요


금의 공식 가격과 시장가격을 볼게요. 대공황 때 금 1온스당 공식 교환비율은 20.67달러였습니다. 이 가격은 1934년 온스당 35달러로 오르기 전까지 비슷하게 유지됐어요. 시장에서 사고파는 금 가격도 공식 가격 주변에서 조금씩 오르락 내리락 했습니다. 

금본위제가 흔들리기 시작할 때


1930년대는 1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2차세계대전이 들어가기 전, 전간기였어요. 금본위제가 제대로 존재하는 것도, 완전히 사라진 것도 아닌 혼란스러운 시기였습니다. 


당시 많은 국가들이 금 부족으로 어려움을 겪기도 했습니다. 전쟁으로 폐허가 된 땅을 복구하려면 돈이 많이 드는데, 금을 가진 만큼만 화폐를 발행하자니 턱없이 부족했어요.


결국 하나둘씩 금본위제에서 벗어나기 시작했습니다. 1931년에 독일이 금본위 제도를 폐지를 선언했고, 1933년부터 1936년까지 미국과 이탈리아 프랑스도 뒤를 따랐어요


이후로도 일부 국가는 금본위제를 유지하고 몇몇은 포기한 혼란의 시기가 계속됐습니다. 혼란은 1944년 브레턴우즈 체제가 나오면서 정리됐어요. 브레턴우즈 체제에서 미국 달러가 기축통화로 인정받고, 금 1온스당 35달러의 교환 비율이 확정됐습니다. 

그때 금 사놓았으면 떼부자?


‘100년 전에 금을 왕창 사두었다면 어땠을까?’


한 번쯤 해볼 법한 상상이지만, 실제로는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당시에는 정부가 금을 강력하게 통제해서 개인이 금에 투자해 차익을 벌기는 어려웠거든요.


1933년, 미국은 행정명령 6102호를 내려서 개인의 금 소유를 금지했습니다. 이 조치로 개인은 모아 놓은 금을 가져다가 은행에서 달러로 바꿔야 했어요.


‘정부가 개인의 금 소유를 금지한다’라는 게 지금으로서는 상상도 안 가는 일이죠. 하지만 그때는 금이 통화였고, 금에 대한 정부의 통제가 강력했기 때문에 가능했습니다. 미국에서 개인이 금을 소유할 수 있게 된 건 1974년부터였어요.

옛날사람2가 살던 시절, 오일쇼크


두 번째로 볼 경제위기는 오일쇼크입니다. 1차 오일쇼크는 1973년에, 2차는 1979년에 발생했어요. 


오일쇼크의 직접적인 원인은 중동 국가가 원유 생산량을 확 줄인 것이었어요. 

👉 1970년대 오일쇼크에 대해서 더 알고 싶다면? 어피티의 오일쇼크 시리즈를 읽어보세요!


출처: macrotrends, 인플레이션 미조정 수치, 사이트에서 연도를 움직여서 기간별 가격을 확인해보세요


결론부터 말하자면, 오일쇼크 때 금 가격은 아주 크게 올랐습니다. 1온스당 1970년에 35달러였던 금 가격은 1974년에는 100달러를 뛰어넘었고, 1980년대에 들어서면서 600달러까지 넘겼어요. 

격동의 1970년대와 미국 달러 약세


첫 번째 오일쇼크가 일어난 건 1973년입니다. 1970년대, 뭔가 익숙하지 않나요? 1971년은 미국 닉슨 대통령이 금본위제를 폐지한 연도예요. 


금본위제를 폐지하고 2년 뒤에 오일 쇼크가 일어난 것. 우연의 일치일까요? 금값 폭등과 오일 쇼크, 이 두 사건을 연결하는 배경에는 미국 달러 약세가 있습니다. 


1970년대 초, 금본위제가 폐지된 뒤 미국 달러의 가치는 엄청 떨어졌습니다. 화폐 가치가 갑자기 떨어지면 같은 물건을 사기 위해 훨씬 더 많은 돈을 내야 합니다. 이때 경제성장률은 크게 떨어지고 물가상승률은 두 자릿수로 높아지는 ‘닉슨 쇼크’가 왔어요.

금과 석유 가격이 급등했어요


금 가격도 급등합니다. 달러 가치가 뚝뚝 떨어지고 물가가 올라가는 와중에 안전자산을 찾는 사람들의 수요가 몰린 거예요. 


문제는 달러 가치가 떨어지자 오일 가격도 쑥쑥 올라갔다는 사실입니다. 미국 달러의 가치가 떨어지면 석유수출국기구인 OPEC의 이익도 줄어요. 이를 방어하고자 OPEC은 석유 가격을 끌어올렸습니다. 


그때도 지금처럼 석유 가격을 미국 달러로 표시했고, 석유를 살 때는 미국 달러를 내야 했어요. 그런데 당시, OPEC이 달러가 아닌 금을 기준으로 석유 가격을 산정할 정도로 미국 달러 가치가 떨어졌습니다. 

위기에 빛나는 금?


오늘은 대공황과 오일쇼크 시대의 금 가격을 알아보았습니다. 두 시기 모두 지금과 상황이 달라서 현재에 곧바로 비교하기는 힘들어요. 대공황은 금본위제가 남아있던 시기였고, 오일쇼크 때는 금본위제가 해지된 직후였기 때문이에요. 


그래도 공통점을 찾는다면 전쟁 등 큰 위기가 닥치면 사람들이 금을 샀다는 점이에요. 한 나라의 화폐는 그 나라의 경제가 무너지는 등 화폐 가치가 불안정하면 가치가 낮아질 수 있지만, 금은 다른 나라에서도 그 가치를 인정받습니다. 


그러면 금본위제가 해지되고 시간이 흐른 뒤 일어난 경제위기는 어땠을까요? 다음 시간에는 2008년 금융 위기와 2020년 코로나19 때의 금 가격에 대해서 알아볼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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