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되는 돈 이야기 

머니칼럼

돈의 인문학[고소한 금융] 1조 7천억의 피해, 동양그룹 사태




화요일엔,

화난 어피티와 화난사람들


돈은 버는 것도 중요하지만, 잃지 않는 게 더 중요합니다. 최소한 몰라서 돈을 잃는 일은 없어야겠죠. 


당하지 않기 위해 알아야 할 금융 이야기. 금융소비자를 위한 경제 미디어, 어피티와 공동소송플랫폼 화난사람들이 만나 풀어냅니다. 

앞으로 매주 화요일, 우리 주변에서 일어난 금융소송 이야기를 들려드릴게요. 

화나는 이야기들이지만, 금융시장에서 을이 되지 않기 위해 독자님이 알아야 할 정보들이 가득할 거예요. 


첫 번째 주제는 ‘동양그룹 사태 소송’입니다. 

오늘은 이 사태에 대한 전반적인 설명을, 다음 주에는 이 사건과 관련된 소송을 담당한 법무법인 대호 이성우 변호사와 자본감정을 전문으로 하는 폴리데이터랩 이종욱 대표의 인터뷰를 가져올게요.




1조 7천억의 피해, 동양그룹 사태


독자님은 어떤 증권사를 이용하시나요? 키움증권? 삼성증권? 미래에셋대우증권? 이번엔 다른 질문을 해볼게요. 독자님은 어떤 이유로 그 증권사를 택하셨나요?

저렴한 수수료, 기업의 평판, 지인의 추천 등 다양한 이유가 있겠지만, 최소한 사람들이 잘 모르는 증권사를 택하진 않으셨겠죠. 

얼마 뒤에 망할 것 같은 증권사를 택하지도 않았을 거고요.


동양증권이 그런 곳이었습니다. 한 번쯤 들어봤을 ‘동양그룹’의 자회사인 데다, 2010년대 초반까지는 가장 지점 수가 많은 증권사였고, 2010년에는 증권업계에서 매출 4위를 기록할 정도로 잘 나가던 곳이었어요.

그런데 이렇게 ‘잘 나가던 증권사’로 손에 꼽히던 동양증권이 2013년, 동양그룹 부도로 인하여 수많은 소송에 휘말리게 됩니다.



다급한 동양의

조급한 선택


동양그룹은 동양시멘트를 주축으로, 동양매직, 동양증권, 동양네트웍스 등 여러 계열사를 가진 대형그룹이었습니다. 

2006년에는 24개까지 계열사를 확장하면서 공격적으로 몸집을 불려가고 있었어요. 


하지만 2000년대 후반, 건설 경기가 나빠지면서 동양그룹의 수익성은 점점 악화되기 시작했습니다. 

핵심 사업인 시멘트와 레미콘 사업에서만 수천억 원대 적자가 났고, 무리하게 사업을 확장한 탓에 돈 나갈 일이 너무나도 많았습니다. 

동양그룹에 돈이 급한 시점이었죠.


결국 2008년, 동양그룹은 회사에 돈을 끌어오기 위해 회사채기업어음(CP, Commercial Paper)을 발행하기 시작합니다. 




회사채 vs CP


회사채와 CP 모두 기업이 자금을 끌어오기 위해(빌리기 위해) 발행하는 채권입니다. 

회사가 돈을 잘 갚는다는 전제 아래, 채권에 투자한 투자자는 만기 시점에 투자한 원금과 이자를 돌려받을 수 있습니다. 


회사채는 발행 절차가 까다롭고 만기가 1년 이상으로 비교적 깁니다. 반면, CP는 만기가 1년 이내로 짧고, 일반 채권에 비해 발행 절차가 간단해요. 

그래서 신용도가 낮은 기업이 단기 자금을 끌어오려고 할 때 발행하곤 합니다.




빌려준 돈으로

빌린 돈을 갚다


문제는 회사채, CP 발행 배경에 있었습니다. 당시 동양그룹은 계열사를 매각하거나 구조조정을 하는 등 현금을 마련하기 위한 몇 가지 수를 두지만 모두 실패하던 중이었습니다. 결국 투자자들에게 빌린 돈으로 사업을 정상화한 게 아니라, 빚으로 빚을 막는 ‘돌려막기’를 하게 됩니다. 


개인의 입장으로 비유해서 설명하면 이런 방식으로 돈을 계속 빌린 겁니다.


  • 1단계: 생활비가 부족해 A은행에서 대출을 받음
  • 2단계(A은행에서 받은 대출 만기일): B저축은행에서 대출을 받아 A은행의 대출을 갚음
  • 3단계(B저축은행에서 받은 대출 만기일): C카드사에서 대출을 받아 B은행의 대출을 갚음


이미 동양그룹의 신용은 빠르게 추락하는 중이었습니다. 우리 같은 개인과 마찬가지로 기업도 신용평가사에서 신용도를 평가받습니다. 

한국신용평가는 2012년~2013년, (주)동양을 포함해 동양그룹 계열사의 신용등급을 수차례에 걸쳐 강등했어요.


기업 신용도가 낮아지면 기업이 발행하는 회사채와 CP의 신용등급도 내려갑니다. 동양그룹 계열사들도 마찬가지였죠. 

갈수록 만기는 짧아지기 시작했고, 상환 시 수익률이 연 8%를 넘어서는 상품도 있었습니다. 투자 리스크가 상당히 높았다는 뜻이죠.


동양그룹의 회사채와 CP는 동양증권뿐만 아니라 다른 증권사에서도 팔 수 있었는데요. 다른 증권사들은 직접 팔지 않겠다고 할 정도였습니다. 

잘 팔면 증권사가 수수료를 벌 수 있지만, 투자상품에 문제가 생기면 괜히 휘말리게 되니 그 리스크를 지고 싶지 않았던 거죠. 


결국 동양그룹의 회사채와 CP는 동양그룹의 계열사인 동양증권에서만 판매하게 됩니다. 

같은 그룹 계열사의 회사채를 판매할 경우, 전체 물량의 절반만 받아올 수 있다는 규제가 있었지만 동양증권은 편법으로 다른 증권사로부터 2차 물량을 끌어와 판매했어요.



팔기 위한

거짓말


(주)동양을 비롯해 동양레저, 동양인터내셔널 등 모두 여러 차례 수백억 원어치의 회사채와 CP를 찍어냈고, 그 물량은 동양증권이 ‘팔아야만’ 했습니다. 

회사가 속한 그룹이 망하지 않으려면 어쩔 수 없는 일이었죠. 동양증권은 상품 판매를 위해 공격적으로 영업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그 타깃은 주로 개인 투자자였습니다.


“원금 보장이 된다”,

“동양그룹이 망할 일은 없다”, …


상품에 대해 안내하는 과정에서는 사실과 다른 말들이 오가기도 했습니다. 

사건 이후에 밝혀진 내용이지만, 이 당시 ‘불완전판매’가 있었다는 민원만 1만 7천여 건이 접수됐죠. 이렇게 동양증권을 통해 동양그룹 회사채와 CP를 매입한 개인 투자자는 약 4만여 명에 달했습니다.




불완전판매


은행, 증권사, 보험사 등 금융회사가 소비자에게 금융상품을 판매하는 과정에서, 반드시 지켜야 할 사항을 누락했거나 정보를 허위, 과장해서 소비자가 상품에 대해 잘못 인식하도록 판매한 사례를 뜻합니다. 동양그룹 사태는 동양증권이 회사채와 CP를 판매하면서, 기업의 부실 정도를 소비자에게 제대로 알리지 않고 판매했다는 점에서 불완전판매의 대표적인 사례로 꼽힙니다.




돌려막기는

시한폭탄


빚으로 빚을 돌려막는 방식은 오래갈 수 없습니다. 갑자기 돈이 많이 들어와서, 돈을 다 갚고도 추가로 돈을 빌리지 않을 정도가 되어야 돌려막기를 멈출 수 있죠. 

하지만 동양그룹 계열사들은 기적을 바랄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타들어 가던 시한폭탄의 심지에 더 큰 불을 댕겼습니다. 금융당국이 ‘더이상 동양그룹 부도 위험을 금융소비자에게 전가해선 안 된다’며, 동양증권을 겨냥해 “10월부터 ‘증권사가 부실 계열사의 채권을 파는 일’을 전면 금지한다”라는 규정을 발표한 거예요. 시한폭탄이 터지는 순간이었죠.


새 규정 시행을 하루 앞둔 2013년 9월 30일. (주)동양, 동양레저, 동양인터내셔널은 동시에 법정관리 신청을 공시합니다. 

다음 날인 10월 1일에는 동양시멘트와 동양네트웍스도 법정관리를 신청했죠. 빚으로 유지해오던 동양그룹 계열사들이 줄줄이 무너지기 시작한 겁니다. 


동양시멘트가 법정관리 신청을 한 그날, 동양증권 직원들은 고객들에게 동양시멘트 채권을 팔고 있었습니다

윗선의 지시로 바쁘게 상품을 판 직원들에게도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었죠. 

죄책감을 느낀 동양그룹 직원이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안타까운 일이 발생하기도 했습니다.



파편은

밖으로 튄다


“측정 불가 규모의 피해가 우려됩니다” 


2013년 10월 18일, 동양증권 이사회에서 나온 말입니다. ‘측정 불가 규모의 피해’는 동양그룹에 투자한 개인 투자자들에게 고스란히 전가됐습니다. 

약 4만여 명에게서 발생한 피해 금액은 1조 7천억 원. 개인 금융상품 사상 최대 피해였습니다. 

피해자들은 크게 반발했고, 집단소송과 개별소송이 산발적으로 일어났습니다. 


금융감독원의 조사 결과, 동양그룹 사태와 관련된 민원 중 67%가 불완전판매로 인정됐습니다. 금융감독원은 분쟁 조정을 통해 동양증권에서 피해 금액의 15∼50%를 피해자들에게 보상하라는 조정안을 내렸죠. 당시 전체 피해자 중 85%(1만 2,918건)가 이 조정안에 수락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피해 금액의 절반도 되지 않는 상태였고, 동양그룹 계열사들이 빌린 돈을 갚으려면 상당한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투자자보다 더 우선순위에 있는 채권자(돈을 빌려준 곳)들이 있었거든요. 동양그룹 계열사들이 다른 회사로 매각되더라도, 투자자들은 나중에야 상환받을 수 있었습니다.


동양시멘트와 동양네트웍스가 법정관리를 신청한 지 딱 1년 뒤인 2014년 10월 1일, 동양증권은 대만계 금융사 유안타그룹에 매각돼 유안타증권으로 사명을 변경합니다. 

이날부터 동양그룹 사태 피해자들은 유안타증권을 대상으로 소송전을 벌이게 되죠. 



다음 주

이 시간에는


2018년 7월 3일, 동양그룹 사태와 관련된 민간소송에서 첫 대법원 확정판결이 나왔습니다. 

동양그룹 사태의 피해자 손모 씨가 유안타증권(구 동양증권)과 소속 직원 윤모 씨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청구 소송이었는데요. 


피고(증권사)가 원고(피해자 손모 씨)에게 ‘손해액의 60%’를 배상한다는 판결이 나온 겁니다. 

기존에 불완전판매에 대한 판매사의 책임으로 ‘손해액의 20%’를 인정해왔던 선례가 있었다는 걸 고려하면, 이례적인 판결이었어요.


다음 주 화요일에는 이 사건을 담당한 법무법인 대호의 이성우 변호사, 폴리데이터랩 이종욱 대표의 인터뷰 기사를 가져오겠습니다. 

동양그룹 사태의 뒷이야기와 불완전판매 소송에서 승소할 수 있었던 이유, 비슷한 상황에서 우리가 당하지 않기 위해 알아야 할 것들을 자세히 알려드릴게요. 



📍 이 기사는 경제적 대가 없이 어피티와 화난사람들의 협업으로 제작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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