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백화점 사업이 어렵다고 합니다. 작년에는 5대 백화점의 매출이 전반적으로 줄었어요. 2020년 대비 매출이 늘어난 곳은 전국 67개 점포의 5대 백화점 중 단 9개 점포밖에 없었죠. 무엇보다 관광객의 발길이 끊어지면서 면세점 사업이 쉽지 않아졌습니다. 면세점 매출 중 95%가 외국인 관광객으로 발생하거든요. 신세계면세점 강남점은
3년 만에 문을 닫았고, 다른 면세점들도 위기랍니다.
쿠팡, 11번가 등 온라인 쇼핑몰이 백화점과 같은 오프라인 쇼핑몰을 추월했다는 소식도 더이상 놀랍지 않은데요. 아무리 그래도 이제 막 움트기 시작한 새싹과 만개한 꽃은 다른 법. 잘나가던 시절의 이야기는 저물어갈 때쯤 ‘라떼는~’ 하면서 꺼내야 제맛이죠.
오늘은 오래전, 머니레터에 소개했던 기사를 재가공해 가져왔어요. 바로 백화점이 쑥쑥 커나가며 혁신을 가져왔던 시절에 대한 TMI입니다.
우리… 백화점 갈래?
손님이 아니라 가게 주인이 왕이었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지금으로 비유하면 매장은 이런 분위기였죠.
손님: XX년에 삼성 구미 제2공장에서 4라인 감독자 미스터 리가 모서리 마감을 친 모델명 B-651 검정색 셀룰러폰 주세요. (도도)
매장 직원: oh 미스터 리~를 아시다니! 서울 백 작가신가요, 나주 김 작가신가요? 미스터 리에게는 오셔서 가져가셨다고 말씀드릴게요. (찡긋)
분위기가 느껴지시나요? 이때는 상품 구경 같은 것도 없었습니다. 제작자와 물건명을 정확히 알고 들어가 받아와야 하는지라, 쇼핑이라는 말 자체가 없었죠.
그러던 시절, 마음대로 가게에 들어가서 진열된 물건을 구경만 하고 나올 수 있던 백화점은 그야말로 쇼핑의 4차 산업혁명이었습니다. 일단 2021년의 현실과 1830년의 현실을 단순 비교해볼까요?
2021년
동생: 면접용 정장 사야 하는데 사러 갈 시간이 없네...
언니: 인터넷으로 사, 그게 더 싸~
동생: 그래도 옷인데 만져보고 입어보고 그래야지…
언니: 사러 갈 시간 없다면서? 인터넷 후기 잘 찾아보고 사면 돼. 같이 찾아줘?
동생: 응...
1830년
동생: 커튼 새로 달아야 하네...
언니: 천만 있으면 돼? 천은 내가 빌려줄 수 있어~
동생: 손을 다쳐서 바느질하기도 힘들어...
언니: 시내에 있는 어피티 씨네 커튼 가게에서 사는 건 너무 비싼가?
동생: 비싼 건 괜찮은데, 내가 귀족도 아니고 가게에서 뭘 어떻게 사…
언니: 하긴, 어피티 씨 입장도 있는데 백작님 성에 달 커튼을 우리한테 막 팔긴 좀 그렇지?
동생: 그래서 말인데, 백화점이란 델 가볼까 싶어. 물건 질이야 떨어지겠지만... 같이 갈래?
돈이 있는데 왜 가게에 못 갈까요? 어피티 씨가 언니에게 커튼을 팔면 왜 곤란해진다는 걸까요?
1830년, 뭐가 문제였냐면요
① 물건 자체가
귀했습니다
물건은 10개인데 사려고 하는 사람이 10,000명이면 물건값이 비싸집니다. 반대로 물건이 10,000개인데 사려고 하는 사람이 10명이면 가게 주인은 재고 처리를 한다고 반값에 1+1 행사까지 열겠죠.
그런데 이 시절이 어떤 시절이냐. 맞춤으로 주문을 하지 않으면 물건이란 게 만들어지질 않았던 시절이에요. 물건을 다 수작업으로 만들어야 해서, 수십 년간 스승님 밑에서 ‘베개 만드는 법’ 하나만 배워온 장인이 베개를 생산했습니다.
귀족의 주문이 선금과 함께 들어오면, 베개의 푹신한 정도와 베갯잇에 수놓는 꽃잎 색과 사이즈까지 맞춤형으로 제작을 시작해 납품하는 식이었죠.
② 웬만한 사람들은
직접 만들어 사용했습니다
보통 사람들은 돈이 없는 것도 문제지만, 장인에게 베개를 주문해놓고 두세 달을 기다리는 동안 ‘여분으로 쓸 다른 베개’도 없다는 게 더 문제였습니다. 다시 말해, 물건을 주문할 만큼 생활에 여유가 있었던 귀족만이 소비자가 될 수 있었죠.
장인을 비롯해 판매자들은 귀족의 입맛을 맞추는 게 제일 중요한 일이었고, 귀족들은 자신이 베고 잘 베개가 옆 동네 귀족보다 더 예쁘고 편하길 바라는 동시에 가~암히 보통 사람이나 돈만 많은 상인이 자신과 같은 베개를 쓰면 자존심이 상했습니다.
귀족: 미스터 리, 자네 내가 선결제한 돈으로 베개 하나 더 만들어서 바닷가 졸부 미스터 김에게 물건을 넘겼다면서?
미스터 리: 아 그게 제 자식이 아파서, 급전이 필요해서…
귀족: 됐고, 이제 자네와 거래 안 해. 나보고 졸부랑 같은 베개 베라는 거야 뭐야! 😡
이런 식으로, 장인은 사회경제적으로 부유한 계층에 속한 고객에게만 물건을 팔았습니다. 밥줄이 끊기기는 싫으니까요.
물론, 시장에서도 물건을 팔긴 팔았습니다. 다만 장인이 만든 물건과는 질 자체가 달랐습니다. 보통 사람들이 남는 시간에 대충 만든 의자나 옷, 신발 등이었죠. 번듯한 가게에서 거래되는 건 장인의 물건뿐이었습니다.
③ 산업혁명이 시작되며
공장이 돌아가기 시작합니다
1830년대는 산업혁명이 시작되던 시기죠. 물론 기술이 충분히 발달하지 않아 공장제 베개가 장인의 고급 베개보다는 질이 떨어졌습니다. 하지만 평범한 사람들이 손으로 만든 하급보단 훨씬 좋고, 빨리 많이 만들 수도 있었죠.
이때 상인 입장에서는 고민이 생깁니다. 공장제 중급 베개를 갖다 팔아야 하겠는데, 시장에 내놓자니 평범한 사람들은 중급 베개를 사려고 돈을 더 낼 것 같지는 않고, 이 사람들이 주 고객이 되면 우리 베개 이미지가 안 좋아질 것 같고, 가게에 입점시키자니 중급 베개 따위를 받아줄 것 같지 않습니다.
바로 이때 백화점이 등장합니다. 타깃 고객은 ‘귀족은 아니지만 돈 좀 있는 사람들’. 돈 좀 있는 사람들의 니즈가 뭔가 하니, ‘귀족은 아니지만 귀족처럼 대우받는 것'이었죠.
④ 백화점, 귀족 체험관이 되다
이때 백화점은 결심합니다. 돈이 많지만 교양과 권력은 귀족에 미치지 못하는 중산층의 니즈를 마구 자극하기 위해, 백화점을 귀족 체험관으로 만들기로 말이죠. 그러려면 점원들에게도 기품과 자부심이 필요합니다. 귀족들의 집사나 하인처럼 고객님을 교양있게 모셔야 할 테니까요.
애사심이 넘쳐 올라서, 고객님이 제발 우리 회사 물건을 하나라도 더 샀으면 싶습니다. 그래서 백화점은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다 직원들에게 월급을 어마어마하게 줍니다. 물건을 하나씩 팔 때마다 인센티브도 주기로 하죠. 이때 최초로 인센티브라는 제도가 시행됐습니다.
고객님이 신발을 사러 와서는 ‘바로 내가 어제 보러 간 공연에서 베토벤의 운명교향곡을 연주한 피아니스트가 삑사리를 내더라’고 말씀하시면 ‘요새 교향곡은 현악보단 기악이 중요한데 피아니스트가 그렇게 실수하다니 저런!’이라고 대답할 수 있도록 사내학교도 만들어 줍니다. 이게 바로 백화점 문화센터의 시작이랍니다.
또 요즘 CF에도 종종 등장하는, ‘당신의 품격을 아는 00아파트’ 이런 간지러운 멘트는 1830년대 백화점에서부터 쓰이기 시작했답니다.
⑤ 예상치 못했던 재미, ‘쇼핑’
중산층이 점점 늘어나고, 백화점을 찾는 고객이 늘어나면서 사람들은 이전에 모르던 재미를 알게 됩니다. 바로 쇼핑이죠.
예전엔 장인에게 맞춤형 물건을 받는 게 최고였습니다. 이 방식의 가장 큰 문제는 주문자의 수준이 높지 않으면 웬 이상한 결과물이 튀어나올 수도 있다는 점이었죠. 장인의 스타일과 내 스타일이 맞지 않을 수도 있고요.
그런데 백화점에서 이것저것 구경하다 고르면 내 맘에 딱 드는 걸 살 수 있지 뭐예요.
그 후 200년이 지나, 세계는 점점 더 잘살게 됐고 귀족은 사라지고 백화점은 남았습니다. ‘당신을 귀족처럼 만들어 드립니다’라는 광고카피도 남았어요. 여전히 현대인에게 백화점 물건은 최고급 물건 중 하나죠. 이제 온라인 쇼핑에 밀리고 있지만요.
시간이 지나도 변치 않는 것
백화점들이 문을 닫는 2021년에 이 이야기가 무슨 의미가 있냐고요? 세상이 변하더라도 좋은 건 계속 살아남으니까요.
1830년이면 우리나라는 무려 조선 말, 순조와 철종이 있을 때입니다. 그랬던 시절에 인센티브니 문화센터니 마케팅을 위한 고급 이미지 전략이니 하는 판매기법들이 나온 건데, 이게 너무 괜찮았기 때문에 아직도 쓰이고 있는 거예요.
이렇게 세상이 바뀔 땐 ⓐ 정보를 빨리 얻어야 하고 ⓑ 그 정보가 ‘나’한테 무슨 의미인지 알아야 합니다. 만약 베개 장인이 평소 정보에 빠삭해서, 시대가 변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백화점에 납품을 시작했다면? ‘아랫동네 백작 집에 납품하던 고급 베개(feat. 플로럴 향)’라며 중산층에게 무진장 많이 팔았다면? 그 브랜드는 지금쯤 200년 역사의 베개 명가라며 다시 맞춤형 주문만 받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 참고 자료
QUIZ / 이번 주 머니레터, 퀴즈 풀면서 복습해요!
✔️ 오늘의 증시 일정
우리나라 돈과 중국 돈이 소울메이트도 아닌데 왜 함께 움직이는 걸까요? 여기에도 크게 세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 원·달러 환율이 상승해 달러의 가치가 높아지면, 국내 증시 투자자나 금융당국 입장에서는 중장기적으로 어려움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대외 부채 부담이 늘어나는 데다 달러자산을 확보하려는 움직임이 나타나면서, 우리나라 증시에서 외국인 자금이 빠져나갈 수 있거든요.
✔️ 카카오웹툰을 서비스하는 곳은 카카오엔터테인먼트입니다. 카카오가 지분 63%를 보유한 자회사이자, 최근에 음원 서비스 ‘멜론’을 제공하는 멜론컴퍼니와 합병을 진행해 뉴스에 올랐던 곳이죠. 아직 비상장사지만, 1~2년 내로 상장을 준비하고 있다고 해요. 비상장주식 거래 플랫폼에서는 주식을 사려는 사람들만 줄을 서 있는 상태입니다.
귀했습니다
직접 만들어 사용했습니다
공장이 돌아가기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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