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버블 논쟁에 대처하는 투자자의 자세

 

글, 치타

최근 ‘AI 버블’ 논쟁이 한창입니다. 천문학적인 AI 투자가 과연 정당한가에 대한 말들이 많이 나오고 있죠. 급격히 오르던 관련 주가가 11월 초 조정을 받으며 하락한 후로, 다시 반등하지 못하고 있어요. ‘버블인가, 아닌가?’에 대한 논쟁은 점차 발전해, ‘버블은 이미 시작됐고 언제 터질지가 문제’라는 식의 말들이 오가고 있는 것 같아요.

지난 4일에는 영화 <빅쇼트> 의 실제 모델이었던 투자자 마이클 버리가 AI 붐의 주역 엔비디아와 팔란티어에 풋옵션, 즉 ‘숏(하락)’에 베팅했다는 사실이 알려졌고요. 그는 계속해서 빅테크들이 감가상각비를 축소해 회계상 이익을 부풀리고 있다며 ‘AI 버블’론에 불을 지피고 있어요. 도이치뱅크와 같은 대형은행이 데이터센터 채무에 리스크를 줄이기 위해 다양한 헤지 전략을 모색하고 있다는 소식도 우려를 불러일으켰고요. 본의 아니게 ‘빅쇼트’ 저승사자들이 시장에 어둠을 드리우고 있는 것 같죠. (<빅쇼트> 라이언 고슬링이 연기한 ‘제라드 베넷’은 도이치뱅크 소속이었습니다)

게다가 지난 5일엔 오픈AI에서 내놓은 ‘AI 인프라 투자를 위해 정부지원이 필요하다’는 발언은 버블 논쟁의 불쏘시개가 됐는데요. 천문학적인 돈을 AI 인프라에 투자하고 있는 기업에서 이를 정부에게 보장해 달라고 요구하다니, ‘이거 좀 불안한데?’ 하는 불안감이 자극된 거죠. 문제가 불거지자, 샘 알트먼 CEO는 바로 ‘데이터센터 보증을 원한 것은 아니었다’며 진화에 나섰고요. 미국 정부도 AI 기업에 대한 구제금융 계획은 없다며 선을 그었어요.

원래 여론이라는 것은 그렇죠. 풍요로운 미래만 가득할 것 같던 ‘AI 붐’이지만 아직 수익성이 입증되지 않다보니 그 믿음이 얕을 수밖에 없잖아요? 셧다운 연장, 단기 금리 급등, 해고율 증가 등 여러 이유가 맞물려서 11월 첫째 주 주가를 눌렀죠. 게다가 그간 너무 단기간에 소수의 AI 관련 기업들의 주가만 급등했으니까요. ‘조정’ 명분도 필요했을 거고요.

구글트렌드 ‘영화 빅쇼트’(파란색), ‘AI 버블’ (빨간색) 검색량 비교(25.11.9 기준)


이런 불확설성은 자꾸 마음을 갈팡질팡하게 만들고 흔들어 놓죠. AI는 버블일까요, 아닐까요? 만약 버블이라면 언제 터지는 걸까요? 당연한 말이지만, 정답은 없습니다. 이럴 때는 차근차근 짚어 보고 각자가 생각하는 최선의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어요. 그럼에도 언제나 ‘올바른 태도’라 할 것은 분명 존재하기 마련이죠. 오늘은 AI 버블 논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투자자로서 가져야 할 태도에 대해서 짚어봅니다.

AI 버블을 바라보는 관점 세 가지
AI의 미래에 대한 각기 다른 관점을 가진 이들이 주장하는 바를 정리해볼게요. 

먼저, 낙관론입니다. “AI는 우리 삶을 바꿔 놓을 거야. 지금의 투자는 다음 단계로 나아가기 위한 초석이고, 생산성이 올라가면서 수익성도 당연히 증명될 거고, 게다가, 반도체 슈퍼사이클과 수요를 봐. 엔비디아는 새로운 시장을 창출하고 있어. 오픈AI의 기업가치는 5000억 달러에 이르잖아. 지금도 그랬고 앞으로도 AI가 세계 경제를 끌어올릴 거라고. 게다가, 지금 투자 말인데. 빅테크들이 투자하는 전력·건설·반도체·네트워킹 등은 모두 ‘실제’하는 거야. 이 모든 인프라는 결국 미래에 도움이 될 거고. 실체 없는 허황된 꿈이 아니야.

출처: 무디스, AI 데이터센터 전력 수요의 급격한 증가


머지않은 미래에는 AGI(범용 인공지능)가 등장하면서 인류는 풍요로워질 거야. 예전에 힘든 노동은 다 AI가 대체하고, 인간은 더 창의적인 활동들을 하게 될 거야. 그리고 말이야. 이건 ‘좋은 거품’ 이라고.”

조금 애매하게 말하는 쪽도 있습니다. “닷컴 버블 때와 비슷한 걱정을 할 수도 있는데, ‘아직은’ 아니야. 빅테크 기업들이 돈을 잘 벌고 있고, 무리하게 투자하는 것도 아니니까. 현재 마이크로소프트, 메타, 알파벳, 아마존 등 주요 글로벌 기술 기업은 올해 3600억 달러(약 515조 원)를 투입하고, 내년에는 더 투자할 계획이지만 이 지출은 대부분 부채가 아닌 잉여 현금 흐름(Free Cash Flow)으로 조달하고 있어. 과거 닷컴 버블은 과도한 부채 때문에 시장이 무너졌던 거거든.


우려하는 거 알지. 요즘에 많이 빅테크에 주가 상승이 집중된 것도 좀 과하긴 하잖아. S&P500 지수 상위 8개가 테크 기업이고, 이 종목이 시가총액의 36%를 차지한다는 것도 그렇고 말이야. 근데, 그거 알아? 예전에도 그랬어. 핵심 경제 동력이었던 산업이 시장을 지배했던 사례(운송, 에너지 이후 지금은 테크)가 있으니까. 좀 불안하긴 해도 아직 버블이라고 보기에는 일러. 이 기대감이 소멸되고, 과잉투자가 지속되면서, 실적이 둔화하면 그게 위험 신호겠지. 여하튼 지금은 아니야.”

빅테크들의 투자 규모 (좌) : 챗GPT 등장 이후 2배가 증가한 CAPEX
FCF 대비 CAPEX 지출 비교(우) : 닷컴 버블 때에 비해서는 무척 낮은 수준
출처: 골드만삭스 보고서(Why we are not in a bubble… yet)


그리고 아주 비관적인 쪽도 있습니다. “닷컴 버블이랑 비슷해서 우려스러워. 물건을 파는 쪽이 물건을 사려는 고객사에 투자하거나 자금을 빌려주고 고객사가 그 돈으로 제품을 사는 ‘벤더 파이낸싱(vendor financing ·판매자 금융)’이 또 벌어지고 있어. 게다가, 채권을 발행해서 투자하는 경우도 늘고 있잖아. AI 관련 기업의 누적 채권 발행 규모가 1410억 달러(약 203조 원)나 된다던데. 오라클, 메타, 이제는 알파벳, 아마존까지 다 채권 발행한다면서. 회사채 발행이 늘면서 국채와 회사채 간 금리차를 나타내는 신용 스프레드도 늘고 있거든. 이 스프레드가 커질수록 리스크가 커진다는 거니까.


오픈AI는 어떻고. 이 회사 말인데 연 매출 130억 달러라고 하지만, 아직 적자 기업이야. 이런 회사가 1조 달러가 넘는 지출 계약을 맺는다는 게 말이 돼? 기업가치가 무려 5000억 달러로 책정되고, 앞으로 이익이 급증할 거라고 다들 가정하고 있지만, 글쎄.


아래 그림을 봐. 얽히고설킨 AI 기업들의 관계를 보여주잖아, 하나 터지면 정말 끝이다?”

출처: 블룸버그


IMF는 최근 보고서에서 이렇게 경고하기도 했어요. “AI를 둘러싼 투자 열풍은 위험할 정도로 1990년대 닷컴 버블을 닮았다. 높은 수익 기대치가 궁극적으로 충족되지 못하면 심각한 시장 조정이 올 것이다. 당장은 아니라고 하더라도 수요가 증가하면 결국 인플레이션을 불러올 것이다. 그럴 경우, 중앙은행은 긴축 정책을 펴게 된다. 이는 시장 전체의 총자산 감소로 이어져 소비를 위축시키고, 금융 시장 전반으로 충격이 확산할 수 있다.”

지금까지 AI 버블을 둘러싼 관점을 살펴보았습니다. 이 말도 맞는 것 같고, 저 말도 맞는 것 같다고요? 더 헷갈린다고요? 맞아요. 결론은 아직 알 수 없어요. 어떤 가능성을 더 믿을지는 각자의 선택이겠죠. 하지만,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 있어요.

아무리 AI 기업들이 성장하고, 투자가 늘고, 증시가 오른다고 하더라도 실물 경제가 무너진다면 결국 주식 시장도 같이 무너져 내립니다. 실업률이 급증하고 세상에 발을 딛고 있는 사람들이 돈을 쓰지 않는다면, 기업들의 수익성은 하락하고, 투자도 멈출 수밖에 없기 때문이에요.


최근 ‘AI 대부’이자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인 제프리 힌턴 교수는 최근 인터뷰에서 AI가 대량 실업을 유발할 것이라고 경고한 바 있어요. “AI 혁명은 인간의 노동을 대체하지 않고서는 경제적으로 지속될 수 없다. 기술기업이 돈을 벌기 위해서는 인간의 노동을 반드시 더 저렴한 것(AI)으로 대체해야 한다.”

지금 미국에서 일어나는 일은 그 시작에 대해 불과할지도 모르겠어요. 아마존부터 타겟, UPS, IBM 등 대기업들은 대규모 해고를 연이어 발표했고, 올해만 미국 대기업에서 6만 개가 넘는 일자리가 줄었어요. 물론, 이 해고는 모두 AI 때문이라고 할 수는 없고, (AI 분야 외에서) 다가올 경제 둔화에 대한 방어용 조치라는 의견도 있어요. 하지만, 이런 해고가 지속된다면 경기가 부러질 수밖에 없을 거예요. AI와 함께 살아갈 미래는 그저 물흐르듯 평탄하게 오지 않을 것만 같죠.

어쨌거나, 이미 인류는 AI라는 신세계를 경험했고, 변화의 흐름을 다시 돌이키긴 어려울 거예요. 앞으로 그 속도는 더 빨라질 거고요. 미국과 중국의 기술 패권 전쟁의 중심에 AI가 있는 것도 의미심장한 부분이에요. 두 나라 모두 규제를 완화하고 그러면서 핵심 기술이 유출되지 않도록 지키고(엔비디아 칩 수출 금지 등), 기간 산업 급으로 육성하는 등 총력을 다해 지원하고 있으니까요. 지금의 상황이 버블로 판명날 수도 있겠죠. 그러나 언제나 그렇듯, 과잉은 자멸을 불러오기도 하지만 또 그것이 다음 단계로 나아가는 초석이 될 겁니다. 닷컴 버블의 인터넷이 그러했듯이 말이죠.

<빅쇼트>를 통해 배울 수 있는 것
마지막으로, 영화 <빅쇼트> 이야기를 해볼게요. 이 영화는 2008년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의 원인인 금융 시스템의 탐욕을 비판하는 블랙코미디인데요. 사회 비판에만 그치는 게 아니라 기회를 수익으로 바꾸기 위해선 지난한 기다림과 고통을 감내해야 한다는 교훈을 담고 있는 영화이기도 해요. 구체적으로는 이것이었어요. 


  1. ‘숏’에 베팅하는 것은 어렵다.
    금융시장이든, 기업이든 대상이 망하는 것에 베팅하는 건 괴롭고 외로운 과정이에요. 근본적으로는 타인의 고통으로 돈을 번다는 사실은 바뀌지 않죠. 결국 누군가의 희생이 뒤따릅니다. 필요한 경우 숏은 필요할 수 있으나, 결국은 희망(상승)에 즉, ‘롱’에 베팅하는 것과의 무게는 다르기 마련이고요.

  2. 탐욕은 결국 ‘끝’을 불러온다. 다만 그 ‘끝’이 언제인지는 모른다.
    그렇기에 감히 시기를 맞추려 들지 않되, 예민하게 시장을 파악해야 합니다. 너무 빨리 발을 빼버리면 그에 따르는 손해를 감수해야 하고, 또 그렇다고 너무 늦게 나와버리면 다음이 없을 수도 있어요.


1998년 닷컴 버블 때도 그랬고, 이 영화의 배경인 2008년도 그랬고, 17년이 지난 지금도 변하지 않는 사실이에요.

투자자로서 우리가 가져야 하는 자세
그렇다면, 이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우리가 가져야 하는 자세는 무엇일까요? 어쩌면 우리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은 불확실성에 인정하고 경계하면서 기회를 놓치지 않도록 노력하는 것 아닐까해요. 닷컴 버블은 5년 동안 지속되었고,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가 터지기 전 주택 시장 호황은 6~7년간 유지되었어요. 지금의 시장이 그때와 똑같을 거라고 확신할 수는 없지만 참고는 할 수 있을 거예요.

단순히 너무 많이 올랐다는 것이 버블이 터질 이유가 되지는 않아요. 하루이틀, 아니 일주일의 하락이 버블 붕괴를 단언할 수 없듯이요. 연준의 금리 인하 기조가 변하는지, 인플레이션 혹은 스태그플레이션 조짐이 있는지, 잠시 유예된 무역 전쟁의 여파가 어떨지, AI 기업들이 지금처럼 성장과 투자를 동시에 잡을 수 있는지 등을 입체적으로 살펴보아야 하죠.

모건 하우절은 책 <불변의 법칙>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비관론자처럼 저축하고 낙관론자처럼 투자하라. 비관론자처럼 대비하고 낙관론자처럼 꿈꾸라. 얼핏 생각하면 낙관론자나 비관론자 중 하나를 택해야 할 것 같다. 그러나 장기적으로 성공하는 모든 일에서는 그 둘이 공존한다.”

지나친 낙관론은 경계해야겠지만, 그렇다고 비관론에 빠질 필요는 없을 것 같아요. 불확실성 속에서 어떤 것이 정답인지 알 수 없고 예측할 수 없다면,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의 위험을 떠안고 나아가야 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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