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국 제조업 부활과 무역 적자 회복을
원했던 미국의 ‘진짜’ 사냥감은 일본
자국 제조업 경쟁력의 부활과 무역 적자 회복을 외치는 미국이라니, 마치 지난해나 올해 뉴스를 보는 것 같죠? 이 문제는 전혀 새로운 문제가 아니에요. 기축통화국이 맞닥뜨릴 수밖에 없는 문제이고, 1980년대 초중반에는 지금만큼이나 세계에서 중요하게 다뤄지는 문제였어요. 특히 1985년을 전후로 미국이 낸 무역 적자는 당시 기준으로 역대 최대였어요. 일본과 독일에서 수입하는 전자제품이 아니면 미국 사람들은 생활이 안 될 정도였으니까요.
이런 상황은 미국의 금융정책의 결과이기도 했어요. 1970년대 두 번의 오일쇼크가 있었죠. 당시 미국은 오일쇼크로 인한 인플레이션을 전혀 잡지 못하고 있었어요. 경기는 시들시들한데 물가는 폭등했거든요. 미국은 물가를 잡겠다고 금리를 파격적으로 올려버렸어요. 볼커 쇼크라고, 기준금리가 20%까지 올랐었어요.
돈값(금리)이 그렇게 비싸니 미국달러는 굉장히 가치가 높았고, 수입품들은 가격경쟁력이 올라갔죠. 기술력도 있는 데다 동북아시아 특유의 근면한 일꾼들이 저렴한 인건비로도 최선을 다해 일하는 일본 공장에서 생산한 자동차며 라디오, 냉장고와 워크맨이 없어서 못 파는 수준이 됐어요. 그러자 일본 기업은 미국 시장을 품질과 가격경쟁력, 양대 강점으로 휩쓸었어요.
미국 기업: 미국 국민 여러분, 승용차 한 대 장만하시는 데 6천 달러로 모십니다! 🚙
일본 기업: 더 꼼꼼하게 만들고 연비도 좋은 일제 승용차는 3천 달러로 모실게요. 😁
미국 기업: 50% 할인이라니, 그렇게 말도 안되는 가격에 손해 보고 파는 건 억지로 시장점유율을 높이려는 불공정 거래 아닙니까?! 😡
일본 기업: 손해 아닌데요. 미국에서 경쟁사 반값에 팔아도 환전해서 일본 본사로 가져가면 이익률 짭짤한데요. 😏
미국 기업: 레이건 대통령님! 일본 좀 어떻게 해봐요! 환율이라도 어떻게 좀 해보라고요! 😫
레이건 대통령: 우리 미국에 수출 많이 하는 일본 외 독일과 프랑스 등. 뉴욕 플라자 호텔로 모여 봐. 지금 소련이 공산화 야욕을 드러내는 이 시점에 자유진영의 리더인 미국이 무너지는 게 너희한테도 좋지만은 않을 거야. 잘 생각해. 😤
미국과 일본, 서독과 영국과 프랑스는 1980년대 초중반 세계를 이끄는 선진국인 G5였어요. 이들이 모두 달러화를 기준으로 자국 통화 절상을 합의했지만 일본 외 다른 국가의 경제에는 큰 영향을 미치지 않았어요. 서독은 플라자 합의 5년 후인 1990년 동독과 통일을 이루었는데, 이때 너무 큰 국가적 구조 변화가 있어서 통화 절상 같은 건 아주 사소한 문제가 되어 버렸어요.
영국은 애초에 상징적인 참여만 했어요. 프랑스는 미국과 나눈 무역 규모가 작았고, 당시 수출이 둔화된 경제 위기에 봉착해 있었어요. 라이벌인 독일을 견제하는 측면에서 참여한 면이 더 컸다고 봐야 해요. 독일이나 프랑스, 한쪽의 통화 가치만 올라가면 싫잖아요.
하지만 일본은 달랐죠. 1985년, 미국의 무역적자 45%가 일본과 거래하며 생겨난 손해였으니까요. 처음부터 플라자 합의의 목적은 ‘일본 누르기’였어요.
일본은 나름 국익을 따져서 합의했던 거예요
어피티: 그래서, 일본은 순순히 합의해준 거예요? 왜요? 그렇게 커다란 충격을 받을 걸 알면서도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인 거예요?
옛날 사람: 설마 그랬겠어. 나름 계산기 두들겨보고 얻을 것, 잃을 것 영수증이 나왔으니 도장 찍은 거지. 일본이 그렇게 만만한 국가는 아니야.
어피티: 하지만 결과가 너무 안 좋았잖아요.
옛날 사람: 크게 겁을 집어먹은 동시에 지나친 자신감을 가져버린 컬래버레이션이 스스로의 발목을 잡은 격이었달까?
어피티: 그게 무슨 뜨거운 아이스 아메리카노 같은 말씀이세요… ☕🧊
옛날 사람: 그땐 무시무시한 냉전시대였다고. 공산주의 소비에트 연방이 살아있고 중국이 대나무 장막 뒤에 웅크리고 있던 시대 말이야.
1980년대 초중반, 이제는 러시아와 독립국가연합 등으로 해체된 ‘소련’은 여전히 초강대국이었어요. 미국과 팽팽하게 냉전을 지속하고 있었죠.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지 40년, 한국전쟁이 끝난지는 30년이 막 지나가고 있던 시기, 일본은 물론 전세계에는 여전히 참혹한 전쟁의 기억이 살아 있었어요. 헌법상 군대를 가질 수 없는 패전국 일본은 미국에 안보를 크게 의존해요. 환율 합의를 해주지 않아 미군이 철수하기라도 하면 소련이나 중국이 다시 전쟁을 벌일 수도 있다는 두려움이 있었어요.
미국과 동맹을 유지해야 한다는 압박에 시달리던 외교-안보와 달리, 경제 쪽에서는 자신감이 넘쳤어요. 환율을 절상하더라도 충분히 버틸 수 있는 경제 체력이 된다고 생각했죠. 마침 내수가 수출을 따라잡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 일본 경제 관료들의 고민이기도 했어요. 아무리 수출을 많이 하더라도 내수가 너무 작으면 수출기업과 수출기업에 다니는 소수 엘리트만 부자가 될 뿐, 평범한 자영업자와 중소기업은 허리띠를 졸라매며 살아갈 수밖에 없으니까요. 엔화를 크게 절상하면 수입품 가격이 크게 하락하기 때문에 내수 소비가 살아나게 돼요. 그러면 수출과 내수가 균형잡혀 안정된 선진국형 경제 구조를 가져갈 수 있어요.
실제로 플라자 합의 이후 일본 경제는 내수가 크게 성장합니다. 화려하고 찬란하기로 잘 알려져 있는 ‘버블 시대 일본’의 시작이에요. 여기까지만 보면 해피엔딩인데, 어째서 ‘잃어버린 30년’이 찾아왔느냐고요? 경제 관료들도 버블이 그렇게 심각하게 부풀어 오를 줄 미처 몰랐거든요.
잃어버린 30년의 시작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