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기적인 최대 수혜국은 인도예요
화학적으로 합성되는 의약품은 화학물질을 이용해 원료의약품(API)을 만들고, 원료의약품에 최종 가공을 거쳐, 우리가 흔히 보는 완제의약품을 만드는 순서로 제조돼요. 일상에서 흔히 접하는 타이레놀을 예로 들면, 4-Aminophenol이라는 화학물질을 이용해서 아세트아미노펜이라는 원료의약품(API)을 만들고, 이렇게 만들어진 원료의약품을 다양하게 가공해 ‘타이레놀’이나 ‘타세놀’, ‘챔프시럽’을 만듭니다.
현재 전 세계적으로 원료의약품(API)의 절반 정도(45%)는 중국에서 생산되고 있고, 나머지는 인도(20%), 유럽(15%), 미국(10%)이 나눠 가진 구조예요. 우리나라와 일본도 각각 3~5%를 생산하고 있고요.
만약 중국에 대한 규제가 원료의약품(API)으로까지 번진다면, 현재 중국이 생산 중인 원료의약품을 대신 생산할 국가가 나와야 하는데, 가장 유력한 후보는 인도입니다. 중국을 대체하려면 낮은 마진율을 규모의 경제와 저렴한 인건비로 극복하는 구조가 가능해야 하는데, 선진국에서는 사실상 불가능한 모델이에요.
실제로 미국 식품의약국(FDA)의 cGMP 기준을 만족한다고 인증받은 의약품 제조업체는 중국이 약 300개, 인도는 약 800개 정도입니다. 상대적으로 영세한 인도의 의약품 제조업체들이 현재 중국과 같은 집중화-거대화를 통해 현재 중국이 차지하고 있는 원료의약품(API) 시장을 일정 부분 대체할 것으로 기대되는 이유예요.
흔히 복제약이라고 불리는 제네릭 의약품도 상황은 비슷합니다. 중국과 인도가 압도적으로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어, 일부의 희망 섞인 전망과 달리 이미 선진국형 산업구조인 우리나라가 중국이 규제를 받는다고 해서 반사이익을 얻을 개연성은 낮습니다. 미국에서 중국산 일회용 젓가락 수입이 금지된다면, 그 젓가락은 우리나라가 생산하기보단 베트남이 생산하게 될 개연성이 큰 것처럼요. 그렇지만 바이오의약품은 상황이 다릅니다.
장기적 바이오 수혜국은
한국과 일본, 그리고 유럽이 될 수 있어요
지난 연재에서 설명했듯, 바이오의약품은 기술적 해자가 있는 탓에 가격 경쟁에 내몰리지 않는 고부가가치 상품의 지위를 유지하고 있어요. 원료의약품(API) 생산이 저부가가치 제조업으로서의 성격을 지닌다면, 바이오의약품 생산은 첨단반도체와 유사하게 고부가가치 제조업으로서의 성격이 훨씬 강하죠. 이해를 돕기 위해 실제로 바이오의약품의 생산 규모를 살펴볼게요.
2020년대 초반 기준, 전 세계 바이오의약품 생산량은 미국이 대략 절반(45%)을 차지하고 있고, 유럽(25%), 중국(15%), 한국(10%)이 그 뒤를 잇는 구조예요. 원료의약품(API) 생산과는 거의 반대되는 경향이죠. 중국과 한국이 낀 게 의외라고 여겨질 수 있지만, 중국의 우시(Wuxi) 바이오로직스, 우리나라의 삼성바이오로직스나 셀트리온, 롯데바이오로직스 같은 대형 바이오의약품 위탁생산(CDMO) 업체들이 일궈낸 성과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인도가 쏙 빠진 게 이를 여실히 보여주죠.
바이든 행정부에서 이미 바이오안보법이 공표 직전까지 나아갔던 점, 해당 법안에서 콕 집어 규제하겠다고 밝혔던 곳이 우시바이오로직스의 계열사였던 걸 고려하면, 트럼프 2기 행정부가 노릴 지점도 쉽게 예상할 수 있어요.
중국 전자 분야의 대표 기업인 화웨이를 표적으로 삼아 거꾸러트렸던 것처럼, 중국 바이오의약품 산업의 거목인 우시바이오로직스가 다음 규제 대상이 될 개연성이 높습니다. 실제로 바이오안보법 발의 직후 우시바이오로직스의 주가가 폭락하기도 했고요.
중국 바이오 기업에 대한 제재가 현실화된다면 현재 우시바이오로직스를 비롯한 중국계 기업이 생산하고 있는 물량은 일차적으로는 미국, 이차적으로는 미국의 핵심 동맹국인 유럽 국가들과 한국, 일본으로 분산될 개연성이 아주 높아요. 뭉뚱그려 제약-바이오 분야가 수혜를 입느냐, 피해를 보느냐를 얘기할 게 아니라 항목을 명확히 나눠서 확인해야 하는 이유예요.
투자할 ‘종목’ 고르기 전에
‘거시 변화’ 먼저 이해해야 해요
여느 산업이 그렇듯, 제약-바이오 분야에도 트렌드가 있습니다. 최근에는 ‘비만’이 가장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고, 조금 앞선 시기에는 ‘치매’가, 코로나19 대유행 시기에는 여러모로 ‘백신’이었죠. 암 분야로 좁혀보자면 ‘면역항암제’라는 키워드와 ‘항체-약물접합체(ADC)’를 지나, 근래에는 ‘항체-분해약물 접합체(DAC)’나 ‘방사성의약품’ 같은 것들이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트렌드에 동떨어진 종목에 투자하거나, 트렌드에 너무 뒤떨어진 종목을 붙잡고 있는 것도 미련한 일일 수는 있습니다만, 그보다 먼저 고려해야 하는 건 거시적인 변화일 거예요. 예컨대 비만치료제로 개발된 바이오의약품이 전도유망해 보인다는 이유로, 트럼프 2기 행정부가 막 들어선 시기에 중국 계열 바이오기업에 투자하는 건 그리 현명하지 못한 선택이 될 개연성이 높습니다. 시장을 뛰어넘는(outperform) 기업도 있긴 하겠지만 보통은 시장을 따라가니까요.
당장의 직접적인 투자 정보와는 거리가 있을 수 있지만, 이번 연재가 투자 종목 선정에 앞서 기업 바깥의 외부요인을 보는 눈을 키우는 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기를 바라며 연재를 마칩니다.
💌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 긴급 기획 <트럼프 시대의 제약-바이오 산업> 연재를 마칩니다. 지난 연재는 어피티 홈페이지에서 모아 보실 수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