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유럽 등의 주요 선진국들은 노년부양비가 0.25와 유사한 수준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즉, 돈을 버는 청·장년 4명이 노인 1명을 부담하는 구조예요.
우리나라도 2023년 기준으로 이 수치가 0.26이니 주요 선진국과 비슷한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문제는 여기서 15년 정도만 지나도 이 수치가 급격하게 나빠진다는 거예요.
작년인 2023년에 태어난 아이들이 15살이 되어 ‘생산가능인구’에 포함되는 해가 바로 2038년입니다. 이때가 되면, 노년부양비는 두 배 가까이 늘어난 0.55 정도로 치솟습니다. 지금은 젊은이 4명이 노인 1명을 부담하고 있지만, 15년만 지나면 젊은이 2명이 노인 1명을 부담해야 한다는 계산이 나와요.
현재의 돌봄 재정이 그대로 유지된다고 가정하면 노인 1명에게 쓸 수 있는 돈이 절반으로 줄어드는 셈입니다. 이런 예측 때문에 현재는 복지 지출이 늘어나는 걸 최대한 억제하고 있어요.
돌봄 재정이 부족한 두 번째 이유:
한국의 노후대비와 세금의 구조적 특징
선진국으로 분류되는 일부 서유럽 국가들과 미국은 은퇴 후 연금으로 생활한다는 전통이 강하게 자리잡은 편입니다. 애초에 연금이라는 제도가 출발한 곳이 유럽 지역이에요. 두 지역 모두 2차 세계대전 이후에는 본격적인 연금제도가 자리를 잡아, 1970년대 이후로는 거의 전 국민을 포괄하는 연금제도를 구축하는 데 성공했어요.
일부 서유럽 국가들과 미국에선 연금제도가 자리잡은지 최소 100년이 넘은 셈입니다. 그러니 직장인들도 은퇴 이후의 생활비를 연금의 형태로 저축해 두는 걸 당연하게 생각하고, 그 제도에 맞춰 ‘소득’에 과세하는 문화가 자리를 잡았어요. 소득은 비교적 과세하기 용이하고, 전체 세수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큰 데다 경제활동을 하는 다양한 사람들에게 부과할 수 있어요. 증세의 필요성이 제기될 때마다 소득세가 가장 먼저 거론되는 이유에요.
반면, 우리나라는 연금제도의 역사가 짧은 편입니다. 우리 사회에서 은퇴한 어르신들의 상황을 떠올려보면, 은퇴 후 연금으로 생활한다는 얘기보단 ‘노후 자금’으로 생활한다는 얘기가 더 익숙해요.
노후 자금은 보통 세상을 떠날 때까지 안심하고 거주할 수 있는 주택을 구매하거나, 매달 월세를 받기 위한 수익형 부동산을 매입하는 형태로 사용돼요. 우리나라 국민 대부분은 은퇴 후 매달 생기는 일정 금액의 ‘소득’이 아닌, 목돈을 모아 구매한 ‘자산’을 통해 노후 생활을 한다고 볼 수 있어요.
이런 방식을 제주대 김도균 교수는 ‘자산 기반 복지’라고 정의했어요. 그 자체가 잘못된 건 아니지만, 한 가지 문제가 있습니다. 우리나라 의료를 지탱하는 건강보험은 물론이고 노인 돌봄에 대한 재원으로 쓰이는 장기요양보험 역시 실질적으로 ‘소득’에만 부과**되고 있다는 점이에요.
많은 사람이 노후 대비를 자산 형태로 했는데, 세금과 사회보험료를 걷는 건 소득에 대해서만 진행되니 재원이 부족해질 수밖에 없는 거예요. 꾸준한 현금 흐름 없이, 은퇴 후 집 한 채가 거의 전 재산인 분들의 삶이 쉽게 궁핍해지기도 하고요.
** 현재 지역가입자에 대해서는 재산에 따라서 보험료를 일정부분 부과하고 있긴 합니다
지금 사는 내 집을 나라에 담보로 맡기고, 매달 생활비를 대출받다가, 사후에는 주택을 매각하는 방식의 제도를 주택연금이라고 하는데요. 반드시 주택연금에 가입하지 않더라도, 내 노후를 현금화하기 어려운 ‘자산’에만 의존하는 현재의 방식이 바뀔 필요는 있습니다.
돌봄 재정이 부족한 세 번째 이유:
복지 재정을 둘러싼 딜레마
인구구조 문제와 재정 문제만으로도 이미 상황이 어려운데, 한 가지 문제가 더 있습니다. 바로 복지 재정을 둘러싼 딜레마예요. 이 부분은 예시를 통해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최근 일본에선 어린이 놀이터들이 노인들을 위한 생활운동시설로 바뀌고 있어요. 어린이가 줄고, 노인이 늘어나니 벌어지는 당연한 일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찬반 대립이 존재합니다. ‘한정된 공공부지’에 어떤 시설을 들여놓을 것인가를 두고 어느 쪽을 택해도 정답이 아닌, 딜레마가 발생하는 것이죠.
공공부지가 한정되어 있듯, 우리 사회의 복지 재정도 규모가 거의 정해져 있습니다. 그런데 앞서 확인한 두 가지 이유로 인해 노인에 대한 복지 지출은 계속 늘어날 수밖에 없어요.
놀이터나 생활운동시설이냐 하는 문제처럼, 재정을 놓고도 의료와 돌봄 사이에서도 누가 더 많이 가져갈 것인지 갑론을박이 발생해요. 조금 더 시선을 넓히면 노인에 대한 복지 지출은 교육이나 보육, 장애인 같은 소수자 복지와도 재정을 둘러싼 슬픈 쟁탈전을 벌이고 있습니다.
복지 재정은 한정돼있습니다. 이 재정을 미혼모에 대한 양육비 지원에 더 많이 써야 할까요, 아니면 장애인 활동지원사에게 우선해서 써야 할까요, 아니면 돌봄이 필요한 노인의 재활 운동에 먼저 써야 할까요?
세금과 보험료 개편이 필요해요
윤리적 딜레마를 불러일으키는 현실에 놓이지 않으려면, 복지 재정의 절대적 규모 자체를 늘리는 수밖에 없습니다. 세금의 형태가 되었든, 아니면 특정한 목적에만 쓰게끔 만든 사회보험의 형태가 되었든 간에 재원 자체가 늘어야만 한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에요.
그렇지만 재원 자체의 확대에 대한 반대나 저항도 그만큼 크다는 게 현실입니다. 만약 상위 1%나 상위 10% 같은 부유층에게 엄청나게 높은 소득세를 부과하더라도, 실제로 계산해 보면 필요한 복지재원에선 한참 모자라요. 결국은 중산층부터 상위층까지 모두가 동참해야 그 정도 규모의 재원을 마련할 수 있어요.
흔히 복지 선진국이라고 얘기되는 스웨덴 같은 국가는 소득세율이 32% 수준이며, 직접적인 소득세를 안 내는 인구가 전체의 6.6% 수준에 불과합니다.
반면에 우리나라는 33.6% 정도의 국민이 소득세를 납부하지 않습니다. 스웨덴과 같은 국가에서 전국민을 대상으로 넓고 촘촘한 복지를 제공할 수 있는 이유는 세금도 그만큼 넓고, 촘촘하게 걷어가기 때문입니다.
똑같이 연봉 3,600만 원을 받는 1인 가구 직장인이 있다고 가정하고 한국과 스웨덴의 세금 납부액을 비교해 볼게요.
한국과 스웨덴은 내는 금액 자체가 너무 차이가 나죠? 스웨덴의 경우는 ‘조금 더 내고, 많이 받는다’가 아니라 ‘많이 내고, 대신 그만큼 받는’ 형태에 가깝습니다.
꼭 세금을 올려야만 하나요?
부족한 복지재정을 충당하기 위해 꼭 세금을 올려야만 하는지 궁금증을 갖는 분들도 계실 것 같아요. 복지재정을 늘리는 데는 몇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첫 번째는 다른 분야에 쓰이는 세금을 줄이고, 그만큼을 복지재정으로 돌리는 거예요.
그런데 우리나라는 2024년 기준으로, 1년 예산의 32%가 사회복지 재정으로 사용하고 있어요. 유관 분야인 보건까지 포괄하면 46%를 관련 분야에 쓰는 중이라,
다른 분야의 세출을 조정하기도 현실적으로는 어려운 상황이에요.
두 번째는 국가에서 우선 빚을 내 복지재정으로 사용하고, 나중에 이를 갚는 형태예요.
국가채무, 보통은 줄임말인 ‘국채’로 더 많이 쓰는 식의 재정확보 방법인데요. 우리나라는 다른 OECD 선진국과 비교해 국가채무 비율이 상당히 낮은 축에 속하긴 합니다. 그렇지만 미래에 원금과 이자를 갚아야 하는 건 일반 대출과 다를 바가 없어서, 지금 발행되는 국채를 후속 세대가 갚아야만 한다는 문제가 있습니다. 지금의 증세를 유예하여 미래 세대가 세금을 더 내게 만드는 거죠.
다만, 국채 발행은 재정확보 목적만이 아닌 경기 부양 등 복잡한 효과를 내서 단순히 좋다/나쁘다로 단정지어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마지막 세 번째가 앞서 설명드린 대로, 나라에서 걷는 세금을 늘리는 방식이에요. 다만, 소득이 늘어난다고 소비가 무한정 늘어나는 건 아니기 때문에, 부가가치세 처럼 소비에 붙는 세금은 도리어 저소득층에게 더 부담을 지우는 식으로 작동할 가능성이 있어요.
소득재분배를 수행하려면, 저항을 감수하더라도 소득이나 자산에 세금을 더 부과하는 게 가장 현실성이 있는 방안이라고 볼 수 있어요. 결국 세금은 모두가 내기 싫어하지만, 충분한 복지재정을 확보하려면 일정 정도의 세금이나 사회보험료를 올리는 것은 장차 불가피한 선택이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갑자기 스웨덴만큼은 아니라도, 세금과 사회보험료가 충분히 높아지지 않는다면, 돌봄이 ‘외주화’를 벗어나 ‘사회화’된 형태로 자리잡기란 쉽지 않습니다. 우리 사회가 앞으로 어떤 합의를 이룰지가 중요한 이유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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