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에 가업을 이은 이유 도깨비 마을 ‘장수’에서 김치를 빚다 🌶️

📌필진 소개 : 안녕하세요. 전북 장수에서 부모님을 도와 장수도깨비동굴김치를 만들고 있는 명지입니다. 원래는 도자기를 전공했지만, 지금은 흙 대신 배추를 다루며 가업을 이어가고 있어요. 장수의 깨끗한 자연과 전라도 전통 손맛이 어우러진 김치 이야기를 들려드릴게요..

도깨비 전설이 숨어있는 마을, 장수를 아시나요? 장수는 전주에서 차로 1시간 남짓 떨어진 도시예요. 대한민국 최초의 ‘도깨비 권역’이죠. 옛날 옛적에 농부가 장날 늦도록 술을 마시고 어두운 길을 걷는데, 누군가 앞을 막아서더니 씨름 한 판 하자고 했다고 해요. 술김에 씨름에 응한 농부가 고목나무같이 꿈쩍않는 상대를 보면서 도깨비라는 것을 알아챘고, 도깨비의 약점이 왼발이라는 걸 알고 있던 농부는 왼발을 걸어 도깨비를 쓰러뜨렸다고 하죠. 그 자리엔 도깨비가 아니라 빗자루 하나가 남았다는, 어렸을 때부터 한 번쯤은 들어봤을 이야기 있죠? 이 이야기가 태어난 곳이 바로 장수군이에요.


그래서 장수로 오시는 길에는 도깨비 조형물과 함께 ‘도깨비 권역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라는 글이 입구에 적혀있어요. 이곳의 이름을 따서 저희 가족은 ‘도깨비동굴김치’라는 김치 사업을 함께 하고 있답니다.

장수군 도로 입구 ⓒ 명지 님


물성은 달라도 본질은 같다!
흙에서 배추로, 도자기에서 김치로 🏺


저는 원래 음식, 요리 쪽으로는 아예 문외한이었어요. 고등학교 때는 공예와 미술을 전공했고, 대학에선 도자기를 공부했죠. 흙을 만지고 손으로 무언가를 만들어가는 시간이 참 좋았거든요. 그렇게 대학원까지 진학하며 도자기의 길을 계속 걷던 중, 부모님의 사업이 어려워지면서 자연스럽게 가업에 발을 들이게 됐습니다.

대학시절 도자기를 빚는 모습 ⓒ 명지 님


보통 우리 세대에서는 가업을 잇는다는 게 흔한 일은 아니잖아요. 저도 나름대로 하고 싶은 일이 있었는데, 가족을 돕기 위해 진로를 바꾸기 쉽지 않았어요. 본격적으로 김치 사업을 맡기 시작하니 막막했죠. 회사생활 경험도 없는 제가 한 회사의 체계를 잡아가는 일은 큰 도전이었고, 부족한 점도 많았습니다. 그렇게 우여곡절을 겪으며 어느덧 8년이란 시간이 흘렀네요. 지금은 부모님이 하기 어려워하시는 생산관리부터 거래처 응대와 관리, 고객응대, 전체적인 사무업무까지 제가 다 맡아서 하고 있어요. 해외박람회나 국내박람회도 직접 챙기고요.  

해외박람회 참가 모습 ⓒ 명지 님


제가 김치와 친해진 건, 어느 날 도자기와 김치가 본질적으로 비슷하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에요. 도자기를 만들 때 가장 중요한 건 호흡이에요. 흙이 숨을 쉴 수 있어야 하거든요. 흙으로 빚은 옹기나 장독대가 미세한 기공을 통해 공기를 순환시키는 것처럼요. 이 숨구멍들이 있어야 온도와 습도 변화에도 깨지지 않고, 오래도록 제 역할을 할 수 있죠.


김치도 마찬가예요. 장독대에 담긴 김치가 맛있는 이유는 옹기의 미세한 기공이 김치 발효에 꼭 필요한 공기 순환을 도와주기 때문이에요. 김치 속 유산균이 활발하게 활동하려면 적당한 산소 공급이 필요한데, 옹기가 바로 그 역할을 해주는 거죠. 이런 발효 과정에서 김치는 숨을 쉬어요. 장독대와 김치가 함께 호흡을 맞춰가는 과정에서 비로소 그 특유의 깊은 맛이 만들어지는 거예요.


물성은 완전히 다르지만, 본질은 놀랍도록 비슷했어요. 둘 다 시간과 온도, 그리고 만드는 사람의 손맛이 어우러져야 비로소 완성되는 거죠. 급하게 서두르면 안 되고, 적절한 환경을 만들어주고, 인내심을 갖고 기다려야 하는 것도 같고요. 김치는 알면 알 수록 정말 신기하고 재미있어요.


김치를 만드는 일은
살아있는 전통문화를 지키는 일


혹시, ‘김치도 기분을 탄다’는 말을 들어보신 적 있나요? 저희 공장에서 김치를 담그시는 분들이 자주 말씀하시는 말인데요. 처음에는 무슨 말인지 도통 이해가 되지 않았어요. 날씨가 흐리거나, 온도가 조금만 달라도 맛이 확 달라지거든요. 절이는 소금 농도, 숙성 온도, 젓갈의 종류까지 하나하나가 결과를 좌우해요.

고랭지 배추밭 ⓒ 명지 님


장수는 해발 고도가 높은 편이라 고랭지 배추가 잘 자라는데, 아삭하면서 단맛이 나고 특유의 고소함이 있어요. 일 년 넘게 두고 먹는 김장김치도 이 배추로 담그면 다 먹을 때까지 무르지 않고 아삭아삭하답니다. 뜸봉샘이라는 깨끗한 물줄기와 맑은 공기 덕분에 배추가 단단하거든요. 저희는 전라도 전통 방식 그대로, 지역 농산물을 중심으로, 양념을 아낌없이 듬뿍 넣어 감칠맛 가득하게 만드는데요. 김치도 지역 별로 맛이 정말 다르답니다.


전라도 김치는 한마디로 인심이 푸짐해요. 양념을 아낌없이 넣어서 진하고 깊은 맛을 내죠. 새우젓, 멸치젓, 갈치젓까지 다양한 젓갈을 사용해서 감칠맛이 정말 깊어요. 숙성되면서 그 맛이 더욱 깊어지는데, 이게 바로 전라도 음식 특유의 손맛이라고 할 수 있어요.


강원도 김치는 동해안과 가까운 지역이 많아서 생선이 들어간 김치가 많아요. 오징어, 가자미, 명태 등 다양한 생선을 넣거나 생선 아가미, 내장 등을 넣기도 해서 시원하고 독특한 맛이 나죠. 


서울이나 경기 지역 김치는 말 그대로 단정한 도시 스타일이에요. 은은한 단맛이 있고, 젓갈 사용도 적어서 깔끔하고 세련된 맛이 나요. 아무래도 다양한 지역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이다 보니, 누구나 부담 없이 드실 수 있는 방향으로 발전한 것 같아요.


이처럼 장수군에서 김치와 함께하는 시간이 길어질 수록, 김치를 담그는 건 살아있는 전통문화를 이어가는 일이라고 느끼게 되었어요. 이런 마음이 더 간절해진 건 우리 동네 도깨비 이야기 때문이기도 해요. 

ⓒ 투어전북


우리나라 전통 도깨비는 착한 사람에게는 복과 재물을 주고 나쁜 사람에게는 벌을 주는 권선징악의 상징이에요. 장난꾸러기 같고 친근한 녀석이죠. 이런 전통을 잊지 않도록 장수에는 장수 도깨비 박물관도 있었고 장수 도깨비 축제도 있었는데, 최근에는 아쉽게도 문을 닫아 갈 수가 없어요. 우리의 진짜 도깨비 이야기가 점점 사라져가는 걸 보면서 정말 안타까웠어요.

어린 학생들을 위한 김장 체험 진행 ⓒ 명지 님


김장문화도 마찬가지예요. 이제는 김치를 사서 먹는 게 자연스러운 새로운 소비 문화가 되었잖아요. 그렇다면 김치를 파는 저희 같은 사람들이 더욱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단순히 상품을 파는 게 아니라, 우리 전통 김치의 진짜 맛과 문화를 제대로 전해드려야 하는 거죠.


장수는 저에게 제2의 고향이에요. 처음엔 그저 일하러 오는 곳이었는데, 지금의 도깨비동굴김치를 만들어준 땅이기에 애정이 깊습니다. 산과 들이 아름답고, 공기가 맑고, 사람들도 정감 있고요. 김치가 천천히 익어가는 것처럼. 저도 장수에 천천히 스며들고 있나봐요. 


장수 빨간 맛 한번 보러 오세요!


장수는 사과와 한우도 무척 유명한 지역이에요. 그래서 ‘장수 한우랑 사과랑 축제’도 매년 열리고, 이번 가을에도 축제가 진행될 예정이에요. 사과랑 한우 모두 빨갛고, 그 외에도 오미자나 토마토 같은 장수의 특산물도 빨개서 레드푸드 페스티벌이라고 부르기도 해요. 생각해보니 김치도 빨갛잖아요? 김치까지 더하면 제대로 레드푸드겠네요.


장수한우랑사과랑축제는 생산자와 소비자가 수확의 기쁨을 나누며 정성스레 수확한 건강한 농산물을 함께 즐기는 축제예요. 축제 기간에 놀러오셔서 김치 맛도 보시고, 아름다운 장수의 매력도 실컷 즐기고 가세요. 제가 발견한 장수 맛집들도 알려드릴게요.


맑은 다슬기 식당 📍 전북 장수군 장계면 서동로 21

장수는 깨끗한 물에서 자란 다슬기가 정말 많아요. 주변에 다슬기 식당들이 여러 곳 있는데, 그중에서도 저희 가족 원탑은 바로 이곳이에요. 반찬들도 다 손수 만드시고, 김치 또한 정말 맛있어요. 특히 다슬기전이 진짜 별미거든요. 바삭하게 부쳐낸 전에 다슬기의 고소한 맛이 어우러져서 한 번 드시면 잊을 수 없을 거예요.


장수 만남의 광장 📍 전북 장수군 계남면 장무로 13-23

1층에는 온실카페 겸 베이커리 카페가 있고, 2층은 장수군에서 나는 재료로만 만든 음식점이 있어요. 장수 사과로 만든 빵이 정말 맛있어서 빵순이들의 성지 같은 곳이죠. 지역 재료로 만든 빵과 음식을 맛보면서 장수의 진짜 맛을 느끼실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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