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덩게르크💸 100년 전, 돈의 기준

글, 정인

📌 경제와 전~혀 상관없을 것 같은 작품을 어피티가 소개한다? 네, 그렇습니다. <어피티 인생극장>은 드라마, 영화를 주제로 경제 이야기를 줄줄 떠드는 시리즈로 기획되었어요. 스포일러 없이 영화 추천도 받고 얼떨결에 경제상식도 얻어갈 수 있는 어피티 인생극장 시리즈, 재미있게 읽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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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영화, <덩케르크(2017)>

장르: 범죄

추천인: the 독자 

the 독자의 별점: ⭐⭐⭐⭐⭐

“생존은 불공평해”

영화 <덩케르크>는 현대 블록버스터의 거장,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실화 기반 전쟁 영화입니다. 1940년 6월 초, 영국과 프랑스 등 연합군이 나치 독일군에 밀려 전멸하기 직전이었던 시점을 배경으로 하죠. 

연합군은 프랑스의 ‘됭케르크(Dunkirk)’에서 도버 해협을 건너, 영국까지 30만 명 넘는 병사들을 구출했습니다. 이 대규모 철수 작전은 제2차 세계대전의 기적이라고 불리기도 해요.

작품의 배경이 된 제2차 세계대전 초기에는 나치가 정말 강력했습니다. 전 세계가 곧 나치 독일의 손에 들어갈 수 있을 것 같았어요. 

그런 분위기에서 덩케르크 전투가 벌어졌습니다. 여기서 30만 명 넘는 연합군을 죽거나, 포로가 되게 내버려 둔다면 반격의 희망마저도 사라질 듯한 상황이었죠. 그래서 덩케르크 해변에 모인 30만 명은 반드시 도버 해협을 건너야 했습니다. 

33km 너비의 해협, 살기 위한 몸부림

도버해협은 33km 너비입니다. 길쭉한 타원형인 제주도 본섬의 세로 길이가 31km 정도예요. 종단하는 데는 자동차로 한 시간이 채 걸리지 않아요. 

그 가까운 33km를 건너지 못하고 죽음을 기다리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였습니다. 

  • 영국군에는 30만 명을 태울 선박이 부족했고
  • 구출 선박이 접근하면 독일군 잠수함과 전투기가 격침시켰어요

1940년 6월, 그 해변에 있던 당사자들에게는 절망뿐이었을 거예요. 그래서 많은 병사들이 오지 않는 구출 선박을 기다리느니, 어떻게든 직접 건너보려고 시도했습니다.

주인공인 영국 병사 토미는 다른 병사들과 함께 해변가에 버려진 네덜란드 어선에 숨어들어 갑니다. 조용히 숨어 있다가 배가 뜨면 영국으로 도망칠 생각이었죠. 

그런데 문제가 생깁니다. 독일군이 총탄 세례를 퍼부어서 배에 구멍이 뚫린 데다, 사람들이 너무 많이 타서 배가 뜨지 못하고 자꾸만 가라앉아요.

영국이 패권을 잡던 시절

제2차 세계대전, 특히 초기를 다루는 작품을 들여다보면 의외로 미국의 비중이 작습니다. 영화 <덩케르크>에는 미국인이 단 한 명도 나오지 않아요. 대신 영국이 세계의 운명을 홀로 짊어지고 있습니다. 

당시 영국의 파운드화가 세계 거래의 기본이 되는 기축통화였어요. 영국은 다른 나라에서 물건을 많이 수입하고 파운드화로 지불해서 기축통화 자리를 지켰어요. 

미국이 세계 경제의 리더이자, 기축통화국인 현재 시점에서는 다소 낯선 모습입니다. 지금은 미국이 미국 금리를 올리는 데도 전 세계가 들썩이니까요.

🗞 < 디플레에 美금리 폭주…이대로면 다시 글로벌 경제위기>,

헤럴드경제, 2023년 8월 17일

 

최근 한 달 새 달러당 원화 가치가 1,260원에서 1,330원대까지 폭등했다. 달러 강세에 따른 반작용과 역외 외환시장 부재에 따른 가수요가 더해진 탓이 크지만 우리 경제의 구조적 취약점을 반영한다. … 미국 경제는 다른 나라와 다르다. 기축통화국이어서 돈을 마구 찍을 수 있다. 굳이 달러를 밖에서 벌어올 필요가 없다. 심지어 에너지와 식량 자급률도 높다. 덕분에 코로나19로 인한 경제적 반사이익을 가장 크게 누렸다. 중국 견제로 입은 타격도 가장 적다. 올 상반기 미국 증시가 급등한 것은 미국 경제를 반영한 결과다. 하지만 다들 미국 증시와 금융시장만 바라보고 있을 때 다른 나라들의 경제는 수요 위축의 늪에 빠져들고 있었다. … 지금과 같은 상황이면 금융위기 이상의 경제위기를 겪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기축통화가 왜 필요해?

세계에는 약 200개의 국가가 있다고 해요. 이 중 100개국과 기축통화 없이 무역을 하려면 회사에서는 100개국의 통화를 모두 다뤄야 합니다. 환율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100개국의 정보를 모두 추적해야 하고, 변수가 늘어나는 만큼 위험성도 커질 거예요.

그래서 기준을 만들었습니다. 무역을 할 때 기준으로 사용되는 기축통화가 그 역할을 담당하죠. 지금은 언제 어디서나 미국 달러를 내밀면 웬만큼 거래할 수 있습니다. 

글로벌한 관점에서 보면 기축통화만 ‘진짜 돈’이고 다른 나라의 통화들은 그저 기축통화와의 교환권에 그칠 수도 있어요.

‘진짜 돈’을 보유하고 있으면 국내 경제를 컨트롤하기도 편하고, 결론적으로 세계 금융 질서를 주도할 수 있습니다. 수요가 굉장히 크기 때문에 돈을 좀 많이 찍어내도 인플레이션 충격이 덜합니다. 

다른 나라 눈치를 덜 보고, 국내 경기 상황에 따라 통화정책을 펼칠 수 있어요. 다른 나라가 기축통화국의 통화정책에 맞춰 움직여야겠죠. 

미국이 가져온 ‘기축통화국’의 지위

미국 달러는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미국 브레튼우즈에서 열린 44개국 연합 통화금융회에서 기축통화로 결정됐어요. 한 번쯤 들어보셨을 ‘브레튼우즈 체제’예요.

돈이 신용보다는 금의 가치와 함께 움직이던 시절, 금 1온스를 파운드화가 아니라 미국 달러 35달러에 고정하기로 하면서 미국은 기축통화국이 되었습니다. 

영국이 기축통화국 지위를 순순히 내준 건 제2차 세계대전에서 미국이 한 역할 덕분이에요. 미국의 전쟁 물자 생산능력은 어마어마했거든요. 

미국이 참전한 1941년 이후 제2차 세계대전은 천천히 연합군의 승리로 기울었습니다. 전쟁 후 폐허가 된 영국은 미국의 경제력과 리더십 앞에 가만히 물러날 수밖에 없었어요.

영향력만큼 책임은 따라오는 법

기축통화국은 세계 경제에 책임감을 갖고 있어야 합니다. 영향력이 어마어마한 만큼 국내 정책을 국내 정책으로만 생각하기 어려워요. 전 세계에 영향을 끼치게 되니까요. 

기축통화국의 가장 큰 단점도 여기에 있습니다. 기축통화는 널리 쓰이는 만큼 세계 여기저기 구석구석 퍼져있어야 해요. 돈을 헬리콥터에서 뿌려줄 수는 없고, 물건을 사고 달러를 줌으로써 무역을 통해 퍼뜨려야 합니다. 

결국 기축통화국은 계속 물건을 사야 하니까 적자를 볼 수밖에 없어요. 이 적자를 감당할 체력과 각오가 없으면 기축통화국이 되기 어렵습니다. 기축통화국 자리를 노리는 다른 나라들도 바로 이 부분 때문에 아직은 자격이 되지 않는다는 평가를 받고 있어요. 

현재 기축통화국인 미국도 적자 때문에 고민입니다. 그래서 미국 국내 정치에서는 미국이 기축통화를 포함해 세계적인 리더십을 계속 유지해야 한다는 주장과, 조금 더 국내 사정을 먼저 챙기면서 적자 폭을 줄여나가야 한다는 주장이 종종 맞부딪쳐요.

“생존은 불공평해”

각국 통화의 지위는 불공평해요. 각국의 정치경제적 상태도 사실은 공평하지 않습니다. 영국이 마지막으로 기축통화국 지위를 유지하고 있던 1941년, 덩케르크에서 필사적으로 살아남으려던 병사들은 ‘생존은 불공평해’라고 말했어요. 

총탄에 구멍이 뚫린 배를 바다에 띄우기 위해서는 무게를 줄여야 했는데, 무게를 줄이기 위해서는 결국 특정한 병사가 내릴 것을 요구받았죠. 그 병사에게 생존은 얼마나 불공평했겠어요. 

하지만 영화 전체를 보면 이야기는 조금 달라집니다. 불공평할 수 있는 생존의 조건들을 뛰어넘어 사람들이 조금씩 희생하고, 조금씩 더 책임을 짐으로써 3만 명만 탈출해도 성공이라고 했던 덩케르크 철수는 30만 명의 목숨을 살리며 대성공을 거두게 되죠.

기축통화도 마찬가지입니다. 기축통화는 세계 시장에서 절대적으로 유리한 지위를 누릴 수 있지만, 그 유리함은 전 세계의 경제적 안정에 대한 책임감과 함께 존재합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영국은 그 부분에서 명예를 지켰다고 볼 수 있어요. 

“생존은 불공평해”

<덩케르크>를 볼 수 있는 OTT


어피티의 코멘트

  • 정인: 지금 극장가에서는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오펜하이머>가 흥행하고 있어요. 세계 최초로 핵폭탄을 개발한 ‘맨해튼 프로젝트’를 이끈 물리학자 오펜하이머 이야기입니다. 역시 제2차 세계대전이 영화 배경이에요. 저는 1940년대야말로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현대의 밑그림을 그린 시대라고 생각해요. <오펜하이머>를 보실 때도 ‘핵폭탄’ 그 자체에 포커스를 맞추기보다는 핵무기 개발 성공이 국제 질서를 어떻게 바꿨고, 또 어떻게 유지하고 있는지 생각해 보시면 좋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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