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일쇼크
미국 기준금리가 21.5% 된 사연
글, 정인
지난 주, 중동지역에서 석유시장이 어떻게 탄생했는지 살펴보았어요. 영국과 미국의 메이저 석유회사가 중동의 석유 시추를 시작했고, 중동 국가들은 1970년대가 되어서야 자국에서 나는 석유에 대한 통제권을 가져왔다는 내용이었습니다.
1970년대, 산유국들의 모임인 OPEC이 석유시장의 공급 측면을 통제하기 시작하면서 유가는 크게 뛰어올랐습니다. 이 시기 일어난 유가 급등을 ‘오일쇼크’ 내지는 ‘석유파동’이라고 불러요.
오일쇼크가 금융에도 영향을 미쳤어요
우리나라는 원유 순수입국입니다. 원유가 모자라고 원유 가격이 비싸지면 경제 전체가 어려워져요.
이게 끝이 아닙니다. 오일쇼크는 금융에도 큰 영향을 미쳤어요.
올해 3월에도 유가 급등 때문에 언론 보도에 오일쇼크라는 단어가 등장했습니다. ‘오일쇼크에 따른 교역 조건 악화 때문에 원·달러 환율이 급등해서, 우리나라 금융시장과 무역 성적표가 큰일’이라는 내용이에요.
사실 1970년대 있었던 두 번에 걸친 오일쇼크도 세계 금융에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미국이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 금리를 올렸거든요.
기준금리 연 21.5%, 상상이 가세요?
현재 미국의 기준금리는 연 2.25%~2.50%입니다. 한국은행이 발표하는 우리나라의 기준금리도 미국과 비슷하게 연 2.50%예요.
우리나라는 미국의 기준금리를 따라갈 수밖에 없습니다. 미국보다 금리가 낮으면 돈이 빠져나가면서 원·달러 환율이 치솟거든요.
기준금리가 연 2.5%만 돼도 이자 부담이며 시장 침체며 곡소리가 나는데, 두 차례 오일 쇼크를 겪으면서 미국의 기준금리는 최고 21.6%까지 올랐어요.
기준금리가 시중금리에 주는 영향은 다소 복잡합니다. 하지만 단순하게 상상을 해볼게요. 만약 주택담보대출 금리가 지금의 7배, 8배가 된다면 어떻게 될까요? 이자만 내는 것만으로도 엄청 힘들지 않겠어요?
오일쇼크가 터지고 물가가 치솟았어요
제1차 오일쇼크가 일어났던 1973년 1월, 미 연준 기준금리는 연 5%였어요. 그러다가 오일쇼크가 터지고 인플레이션이 치솟자 최고 연 11%까지 단번에 오릅니다.
당시 고정환율제였던 우리나라는 원·달러 환율을 20%나 인상해야 했어요. 신문기사를 보면 환율 20% 인상으로 당장 도매물가가 11% 뛰었다고 해요. 도매 물가가 그 정도 오르면, 일반 소비자 물가는 훨씬 더 오릅니다.
오일쇼크로 물가와 원·달러 환율이 빠르게 오르고 기준금리는 올라가는 상황. 익숙하지 않나요? 지금 환율 상승으로 겪는 우리 소비자물가 상승세와 비슷해요. 올해 들어서만 환율이 1달러에 1,200원대에서 1달러에 1,400원으로 올랐죠.
제1차 오일쇼크가 진정됐어요
제1차 오일쇼크가 터졌던 1973년으로 돌아가 볼게요. 금리 인상과 물가 상승, 환율 상승으로 엄청 힘들었지만 다행히 제1차 오일쇼크는 나름대로 금방 진정됐습니다.
일단 오일쇼크의 원인이었던 제4차 중동전쟁이 끝났어요. 전쟁이 벌어진 1973년 그해에 바로 끝났습니다. 여기에 나름대로 적절히 대응한 덕분에 연 14.33%까지 올랐던 미국 기준금리는 1974년 말에 연 3.87%까지 낮아져요.
중동 국가가 가격 결정권을 갖게 되었어요
중동지역 원유 생산과 공급의 주도권은 중동 국가로 넘어왔습니다. 이제까지는 영·미 회사가 중동에서 원유를 발견하면 그 원유의 소유권은 회사에 있었거든요. 하지만 이제는 자신이 발견한 원유를 구매할 권리를 가질 뿐 소유권은 정부에 있기 때문에, 중동 국가가 부르는 가격으로 계약을 할 수밖에 없게 됐어요.
중동 국가에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었던 영국과 미국은 굉장히 화가 났고, 국제 에너지 기구인 IEA를 세웁니다. 프랑스는 석유 대신 원자력 발전에 집중하며 세계 최고를 다투는 원전 대국이 됐어요.
1차 오일쇼크가 끝이 아니었어요
그렇게 모든 일이 마무리되나 싶었습니다만, 1978년 12월 제2차 오일쇼크가 발생하면서 1981년 미국 기준금리는 단숨에 연 19%를 기록합니다. 참고로 미국 기준금리 최고기록은 1981년의 연 21.6%예요.
미국 기준금리에 맞춰 움직여야 하는 우리나라의 금리도 난리가 났어요. 안 그래도 인플레이션 때문에 이미 1978년 예금 금리는 18.6%, 대출금리는 19%까지 오른 상황이었거든요.
제2차 오일쇼크 발생 바로 다음 해인 1979년 한해는 금리 인상 없이 버텼지만, 1980년이 되면서 환율은 또 20% 오르고, 금리도 대폭 올리게 됩니다. 우리나라에 진짜로 큰 영향을 준 충격은 제2차 오일쇼크였어요.
제1차 오일쇼크가 남긴 영향
다음 주 화요일, 제2차 오일쇼크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 전에, 제1차 오일쇼크 당시 우리나라 경제인들이 얼마나 화가 났는지 보고 갈게요.
“빈부의 간격, IMF의 증자, 국가별 쿼터와 투표권의 조정 등은 모두 석유를 팔아 벼락부자가 된 산유국이 해결해주어야 할 몫이 증대되고 있음을 의미하는데 그들에게 기대하기는 어려운 일 아닐까. 산유국이 그만큼 도의적 책임과 세계 경제의 발전 문제를 중요시하고 있다면 본질적으로 석유가격을 그토록 급격히 올리지 않았어야 할 것이다.”
– 매일경제, 1975.09.03 –
분노가 50년을 넘어 모니터 밖으로 전해져 옵니다. 그런데 이때도 잘 몰랐을 거예요. 제1차 오일쇼크는 제2차 오일쇼크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는 사실을 말이죠.
이 글을 쓰는데 참고한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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