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새 가장 뜨거운 이슈를 꼽으라면 역시 부동산이죠. 서울과 수도권 아파트 가격은 꾸준히 상승세고, 집값을 안정화하려는 각종 대책이 쏟아져 나오고 있습니다. 이런 현상은 외국도 마찬가지입니다. 코로나19로 침체한 경기를 살리려고 각국이 경쟁적으로 돈을 풀었고, 그 돈이 부동산 시장으로 흘러 들어가는 바람에 전 세계 집값이 역대 최대 상승 추세를 보이고 있어요.
여기서 잠깐. 전 세계에서 우리나라에만 전세제도가 있다는 사실, 알고 계신가요? 전세는 목돈을 보증금으로 집주인에게 맡기고, 세입자는 계약 기간 동안 추가 지출 없이 거주하는 임대차 제도입니다. 그런데 우리나라 말고는 어디에도 없는 전세 시장이 요즘 심상치가 않습니다.
전세와 관련된 주요 이슈들을 살펴보면 이 세 가지 정도로 압축이 됩니다.
① 신축 아파트를 분양받은 뒤에는 일정 기간 동안 전세로 내놓는 걸 금지하는 것
② 전·월세 계약 당사자를 보호하기 위한 주택임대차보호법 개정안(임대차3법)
③ 앞으로 전세 매물이 줄어들고 월세로 대체될 거라는 전망
오늘 라떼극장에서는 전세제도를 ‘집을 구하는 방법’ 중 하나가 아닌, 금융의 맥락에서 설명하겠습니다. 우리나라에 전세가 생기게 된 이유부터 시작할게요.
그때도 지금도
서울, 서울, 서울
조선 사람들의 한양(서울) 사랑은 유별났습니다. 도로가 불편하고 다른 고장으로 가려면 목숨을 걸어야 했던 시절, 한양에는 임금님이 있고 관직이 있고 큰 시장이 있는, 말 그대로 꿈과 기회의 도시였죠. 다들 한양에 가고 싶어 했습니다. 이런 분위기에 대한 증언은 일제강점기에 조선에 여행을 온 서양인들의 기록에도 잘 남아 있답니다.
당시에는 서민들의 가장 흔한 주거 형태가 전세였습니다. 그 이유는 정확히 알려지지 않았지만 여러 가지 이유로 지방에서 한양으로 올라온 사람들이 왜 전세를 살아야 했는지는 추론해볼 수 있답니다.
🎬Scene #1.
목돈으로 임차인
묶어놓기
집주인: 지방에서 올라오셨다고?
지방 사람: 네네
집주인: 월세로 했다가 월세 내는 날에 갑자기 고향으로 내려가 버리면 어떡해요? 그냥 목돈으로 보증금을 내요.
지방 사람: (목돈은 하늘에서 떨어지나요)
집주인(임대인) 입장에서, 당시에는 목돈을 받아서 돌려주지 않아도 크게 처벌받지 않았고 세입자(임차인)에게서 목돈을 받아주면 중간에 돈을 안 내고 도망갈 일도 없었습니다. 당연히 집주인 입장에서는 월세보다 이득이었겠죠? 이렇게 서울과 수도권 중심으로 지금의 전세와 비슷한 주택임대차 거래 형태가 진화하기 시작합니다.
고향을 떠나
일자리가 있는 도시로
전세가 지금과 유사한 형태를 잡아가기 시작한 건 일제강점기와 그 이후예요. 일제강점기 때, 일본이 강행한 조선 개발은 지역적 특색에 맞게 균형적으로 이루어진 게 아니었습니다. 수탈이 목적이었기 때문에 경성(서울)과 일본·중국으로 수출입을 하던 항구도시만 빠르게 근대화가 됐죠. 새로운 일자리도 거기에만 생겼고요.
많은 사람이 고향을 떠나 발전된 도시로 흘러들었어요. 일을 하려니 숙소가 당연히 있어야겠죠? 그런데 집주인 입장에서는, 외지에서 흘러들어온 사람들을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
🎬Scene #2.
일제강점기에도
반복된다
집주인: 조선인만 오는 것도 아니고, 일본인에, 중국인에…
어피티: 그래도 조선인은 같은 조선인이니까 믿을 수 있지 않나요?
집주인: 꼭 그렇지만도 않아요. 월세 밀리면 조선인이든 일본인이든 속수무책이라고. 게다가 요즘 치안도 좋지 않은데. 어떤 집에서는 집주인이 밀린 월세 독촉하다 해코지당하고 세입자는 만주로 갔다는 소문도 있더만.
어피티: 앗, 조선시대에도 집주인 분이 비슷한 얘길 하셨는데…
한국전쟁이 휩쓸고 간 이후에는 이런 현상이 더 심해졌습니다. 정말 모든 게 파괴됐으니까요. 그 무엇도 확실하지 않은 상황이었습니다. 세입자의 신분도 의심스럽고, 공공치안을 믿을 수 있는 편도 아니었죠. 집주인 입장에서는 집값의 반 이상 되는 목돈을 먼저 받아두는 게 마음 편했겠죠. 물론 목돈을 보증금으로 받았으니 월세는 아주 적은 금액(요즘의 반전세)이거나 없었습니다(전세).
그러다 한국이 고도성장을 해버립니다. 고도성장을 한다는 건, 요약하자면 이런 의미입니다.
① 물건을 많이 생산하고(공급을 늘리고)
② 그 물건이 국내에서든 해외에서든 잘 팔리고
③ 물건 판 돈으로 회사에서 월급을 올려주고
④ 오른 월급으로 물건을 많이 사고
⑤ 물건을 많이 사니까(수요가 늘어나니까) 물건 가격이 오르고
⑥ 물건 가격이 오르니까 돈이 잘 벌리고
⑦ 돈이 잘 벌리니까 물건을 더 많이 생산하고(공급을 늘리고)
그런데 ① 이전에 선행돼야 할 게 있어요. 바로 기반 시설에 대한 투자입니다. 물건을 많이 생산하려면 설비에 먼저 투자를 해야 합니다. 투자는 돈과 기계와 땅으로 하는 거죠. 기업이 투자하려면 은행에서 돈을 빌려야 하는데, 당시에는 은행에도 돈이 부족했습니다.
고도성장을 할 때는 종종 이렇게 돈이 귀해진답니다. 그러면 당연히 돈의 값, 금리가 오르겠죠? 귀한 돈 저축해주셨는데 비싼 이자 드려야죠. 전세 보증금으로 세입자에게서 목돈을 받아다가 은행에 넣어 놓으면 이자가 그렇게 잘 붙을 수가 없습니다. 앉아서 돈이 막 벌립니다. 전세제도가 없어질 이유가 없죠. 최고 금리가 두 자릿수인 시절도 있었는걸요.
저금리 시대
삐걱대는 전세제도
하지만 고금리 시대는 이미 사라진 지 오래. IMF 외환위기 후유증에서 완전히 회복되지 않기도 했고, 날아오르는 로켓처럼 성장하기엔 이미 경제 규모가 충분히 커버렸어요. 그런데 금리가 제로금리 수준으로 낮아진 지금도 왜 전세제도가 없어지지 않고 남아 있을까요?
🎬Scene #3.
전세를 고수하는
진짜 이유
어피티: 진짜 이상해요. 목돈을 갖고 있어도 이자가 안 붙는데 왜 월세로 안 돌리고 계속 전세를…?
집주인: 그게 월세로 돌린다고 내 맘대로 가격을 책정할 수 있는 게 아니에요. 월세라고 보증금이 아예 없는 것도 아니고, 법적으로 정해진 전월세전환율을 적용해버리면 월세로 돌려도 별로 남는 것도 없어. 아휴, 그리고 예전부터 전세 받아 왔는데 굳이 월세로 돌리기도 귀찮고. 요새 건물 산 사람들은 처음부터 월세 받기도 하더라만.
어피티: 음…진짜 그런 이유뿐인가요?
집주인: (모른 척)
저금리 시대에 전세금은 적금이나 곗돈을 타지 않는 이상 일반인이 한 번에 목돈을 만져볼 수 있는 거의 유일한 기회입니다. 전세제도가 유지된다는 건 어딘가 목돈이 필요한 곳이 있다는 거죠. 목돈이 필요한 곳, 어딜까요?
🎬Scene #4.
폭탄… 아니
전세금 돌려막기
집주인: 집은 많이 가질수록 좋아. 그런데 집을 살 때 말이야, 은행에서 대출을 얼마 안 해준다고. 은행에서 70%를 해주면 나는 30%를 내야 하잖아. 50%를 해주면 50%를 내 돈으로 마련해야 하고.
어피티: 그렇죠. 설마 그게 전세금…?
집주인: 그렇지. 그렇게 집을 늘리는 거지. 집값이 계속 오르잖아. 쌀 때 사서 비싸게 팔 수도 있고 얼마나 좋아. 재산 증식은 그렇게 하는 거라고.
어피티: 그러다가 세입자가 나가면서 돈 돌려달라고 하면요?
집주인: 새로운 세입자를 구하기 전엔 돈 못 주지. 새 전세금 받아다 주는 거지. 그런데 그때마다 또 전세금도 조금씩 올려받을 수가 있단 말이지? 그리고 누가 그렇게 자주 이사를 하겠어.
어피티: 완전 돌려막기네요…
이렇게 전세금은 은행 대출을 끼고 주택구매를 하기 위한 목돈으로 활용됩니다. 집값이 오르기 때문에 더는 금리가 높지 않아도 충분히 활용 가치가 있는 셈이에요. 보증금으로 이자 수익을 얻는 대신, 집을 팔았을 때 차익을 남길 수 있으니까요. 개개인으로서는 똑똑한 재테크이지만 사회적으로는 문제가 있을 방법입니다.
깡통전세와
하우스푸어
‘깡통전세’와 ‘하우스푸어’ 들어보셨죠? 요새는 집값이 너무 높아졌다고 난리이지만 2010년~2017년 사이에는 집값 폭락과 지나친 주택담보대출로 인한 가계부채가 우리나라 가계경제의 가장 큰 문제였습니다. 지금의 엄격한 규제는 이때의 문제를 해결하고 있는 과정이기도 해요.
깡통전세는 주택담보대출로 받은 대출금액에 전세 보증금을 합친 금액이 집값의 70~80%에 달하는 전셋집입니다. 예를 들어, 집값이 1억 원인데 주택담보대출 3천만 원에 전세 보증금 6천만 원이 들어간 전셋집일 때 깡통전세라고 하죠. 이 상황에서 집주인의 돈은 1천만 원밖에 들어가지 않은 겁니다.
1천만 원밖에 없으면서 일단 먼저 전세 들어올 사람을 구해 전세 보증금 6천만 원을 받고, 나머지 3천만 원을 대출받아 1억 원짜리 집을 산 거죠. 보증금과 대출금 모두 돌려줘야 하는 돈입니다. 갑자기 세입자가 나가야겠다고 하면, 돌려줘야 할 돈 6천만 원을 어디서 구하겠어요. 극단적으로 상황이 흘러가면 집을 팔아서 대출도 갚고 전세자금도 돌려줘야 합니다.
그런데 2010~2017년처럼 집값이 내려가는 상황에서는 훨씬 더 큰 문제가 됩니다. 전세가 6천만 원인데 집값이 5천만 원이 됐어요. 그런데 돌려줘야 할 돈이 9천만 원인 상황이 되는 거예요. 집값이 내려가는 시장에서는 집을 사려는 투자수요가 적어지기 때문에 집도 잘 안 팔립니다. 그럼 세입자가 전세금을 돌려받지 못한 상태로 집은 경매에 넘어가고, 집주인은 대출을 갚지 못해 신용불량자가 되는 결과를 낳습니다.
하우스푸어는 위의 상황처럼 세입자의 전세 보증금을 끼고 대출을 왕창 받아 집을 샀을 때, 월 소득 수준보다 주택담보대출 이자가 너무 높아 이자 내기도 버거워 삶의 질이 떨어지는 현상을 일컫는 단어입니다.
정부가 부동산 경기를 부양하겠다고 대출을 과하게 풀었을 때 나타나는 문제들이에요. 분명히 집값은 잡혔지만, 부동산이라는 매력적인 투자처에 너도나도 뛰어들기 때문에 발생하는 부작용이죠. 이렇게 쌓인 가계부채, 모두가 어느 순간 대출을 상환할 수 없는 지경이 되면 은행에서부터 개개인까지 한 번에 부도가 날 수 있답니다.
다주택자가 새로운 집을 살 때 받을 수 있는 은행 대출을 없애거나 줄이는 정책이 왜 전세제도에 영향을 미친다고 하는지 아시겠죠? 목돈의 활용처를 없애버리기 때문에 집주인들이 굳이 월세를 두고 전세를 놓을 이유가 없어지는 것이랍니다.
전세제도
정말 사라질까?
전세는 최빈국에서 급속도로 선진국이 되어버린 우리나라에서만 찾아볼 수 있는 주택 임대차 방식입니다. 물론 개발금융이라든가 더 복잡한 이야기가 뒤에 있지만, 전세가 이제껏 유지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이러한 맥락이에요.
우리나라도 경제적으로 선진국이 되었으니, 다른 선진국들과 형태가 비슷해지는 게 자연스러운 흐름이겠죠? 이런 맥락에서 장기적으로는 전셋집이 줄어들 수 있지만 당장 사라지지는 않을 거예요. 전세가 사라지려면 전세 계약 자체가 사라져야 합니다. 그러면 지금 전세 사시는 분들이 다 나가주셔야 하거든요.
전세 세입자를 나가게 만들려면 집주인이 전세금을 돌려줘야 할 텐데, 대부분의 집주인은 전세금을 이미 다른 주택 사는 데 다 써버렸을 거예요. 그런 목적으로 전세를 놓아 오셨으니까요. 그러니까 지금 집주인들이 빚을 다 갚기 전에는 전세가 사라지진 않을 겁니다.
부동산,
차갑고 냉정하게
전반적인 부동산 시장의 흐름과 별개로, 지금 부동산에 대한 관심은 지나치게 뜨거운 면이 있답니다. 시장은 수요와 공급의 법칙이 기본적으로 작동하는 곳이기 때문에 ‘지금 사지 않으면 너무 올라버릴 거야!’라는 공포가 작동하면 모두가 ‘지금’ 사려고 달려들어서 더더욱 가격이 오르는 자기실현적인 면모가 있습니다. 패닉 바잉(panic buying)이라고 하죠.
이렇게 모두가 눈에 불을 켜고 달려들 때는 언론 보도도 자극적인 맛을 띄게 됩니다. 앞으로도 집값이 더 높게 올라갈지, 조정기가 올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지만, 다른 건 몰라도 이런 시기에 부동산 기사를 어떻게 봐야 하는지는 어피티가 잘 알려드릴 수 있어요.
① 한두 군데의 예시를 들어 가격이 이렇게 많이 올랐다고 말해주는 기사는 ‘특정 동네의’ 호가(매매 체결 전 서로 가격 흥정하는 단계)에 한정돼 있지 않은지 살펴본다
③ 정책은 항상 정책 시차가 있기 때문에, 대책이 발표되자마자 쏟아지는 기사는 순간적인 시장 반응이나 예측치임을 참고해서 기사를 받아들인다
④ 시장 상황과 상관없이 내가 언제, 어느 지역의, 어느 크기의, 어느 거주 형태에 살고 싶은지 구체적인 기준을 세워 두고 그 기준을 위주로 모니터링한다
부동산을 포함해서 모든 상황이 쉴 새 없이 변하고 있는 어지러운 시기입니다. 이런 시기일수록 자신만의 원칙을 정하고 차분한 마음으로 정보를 선별해 받아들이는 자세가 필요하답니다. 여러분이 자신의 안목을 세워가는 그 날까지 어피티가 함께 할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