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라떼극장>에서 이어지는 내용입니다. 먼저 이 기사를 읽고 와주세요.
IMF 때 직장인: 아, 라떼는 뉴스 보기가 무서웠다니까. 국제신용평가사들이 우리나라 신용등급 또 강등시킬까 봐.
지난주 <라떼극장>에서는 국제신용평가사 3사와 국가신용등급의 대략적인 역사를 알아보았어요. 국제신용평가사는 100년 넘은 회사들로, 인터넷이 없어 정보의 유통이 쉽지 않던 시절에 시장과 산업에 대한 통계를 책으로 내 히트친 ‘출판사’로 시작했다는 내용이었죠.
오늘은 지난주에 예고한 대로
① 그래서 대체 국가의 신용등급은 어떻게 매겨지며, 무슨 역할인지
② IMF 때 우리나라가 국가신용등급 때문에 결정적인 타격을 받았다는 건 뭔지
③ 요즘은 국가신용등급이 어떤 역할을 하는지
이 세 가지를 중심으로 더 알아보도록 해요.
① 신용등급은 어떻게 매겨지며,
무슨 역할을 하는 걸까?
🎬Scene #1.
국가: 돈이… 부족해…
어피티: 국민들이 내는 세금이 있는데, 돈이 왜 부족해요?
국가: 정책을 집행하고 국가를 잘 운영하려면 세금만으로는 부족해요. 미리 짜놨던 예산으로 충당이 안 되기도 하죠. 그래서 추가경정예산을 짜는 거고요.
어피티: 개인이 돈이 부족하면 은행에서 대출받으면 되는데. 국가가 돈이 부족하면 어떻게 하나요?
국가: 채권을 찍어서 투자자에게 판답니다. 국가가 발행해서 국채인데, 투자자들에게 ‘우리나라 국채 사주면 나중에 이자 쳐서 돌려줄게요’ 라고 하는 거죠.
어피티: 투자할 만하다는 근거를 어떻게 확인하죠?
국가: 이 나라가 돈을 잘 갚을 수 있는지 없는지 나타내는 ‘국가신용등급’을 보면 돼요. 투자할 만한 국가인지, 리스크는 얼마나 되는지 보여주는 지표거든요.
어피티: 그 평가를 국제신용평가사가 하는 거죠?
국가: 네, 과장 좀 섞으면 전 세계에서 국제신용평가사 3사만 할 수 있는 일이라고 봐야죠.
국가를 운영하기 위해 세금보다 더 많은 돈이 필요할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외국의 개인이나 기관으로부터 투자를 받고 싶어 하죠. 채권은 이럴 때 발행됩니다. 채권을 투자자가 사가면, 정해진 기간 후에 이자를 더해서 원금을 돌려줘요. 이때 투자자는 투자를 결정하기 위해 국가신용등급을 보고 이 나라의 채권을 사도 될지, 말지 평가합니다.
국가신용등급을 평가하는 기준은 회사나 개인의 신용등급을 평가하는 것과는 좀 다릅니다. 국제신용평가사가 그 나라의 정치적 요소와 경제적 요소를 모두 고려하거든요. 내 신용등급을 평가할 때 우리 집안이 얼마나 화목한지는 안 따지지만, 국가의 신용등급을 평가할 때는 정치적으로 얼마나 평화로운지도 중요하다는 거죠. 그 나라 정부의 성향도 꽤 따지고요.
이렇게 복잡한 작업을 수행할 능력을 지닌 신용평가사가 세계에 몇 없기 때문에 S&P와 무디스, 피치 이렇게 3대 국제신용평가사가 자꾸만 힘이 세지는 거랍니다.
📚 최호상(2017), 「재정위기 이후 국가신용등급 결정요인 분석에 관한 연구」, 경제연구 제36권 제1호 146p.~168p. , 한국경제통상학회
② IMF 때 우리나라가 신용등급 때문에
결정적인 타격을 받았다고?!
IMF 외환위기가 왜 일어났는지, 우리 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는 예전 머니레터에서 2회에 걸쳐 다뤘었죠.
조금 거칠게 요약하자면
① 세계적으로 금리가 낮아
② 우리나라도 마구 돈을 빌려서 사업을 확장했는데
③ 미국이 갑자기 금리를 올리는 바람에 세계 금리가 따라 올라서
④ 원금과 이자를 갚을 돈(달러)이 부족해지는 바람에
⑤ IMF 구제금융을 신청한 거였어요.
하지만 당시 우리나라가 정말로 돈이 없었던 상태였냐, 하면 그런 건 아닙니다. 다음 달 월급 믿고 카드 긁다가 순간적으로 월급보다 카드 결제금액이 많이 나온 상황에 가까웠죠. 전문용어로는 ‘유동성 위기’ 상황이었습니다. 정부가 외국의 투자자들에게 돈을 갚아야 하는데, 갚은 돈이 일시적으로 부족한 상황이었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부탁하죠.
🎬Scene #2.
정부: 다음 달에 돈 들어오면 다 갚을 수 있다니까? 우리가 돈을 못 벌어서 그런 게 아니라 잠깐 현금흐름이 삐끗한 건데, 갚는 날짜 조금만 미뤄주라! 상환 기간 연장 좀 해달라고!
투자자들: 그래…?
정부: 그럼! 진짜야! 우리가 잘나가는 수출 국가인 거 알지?
투자자들: 근데, 국제신용평가사들이 너희 말 거짓말이래.
정부: 뭐?! 국제신용평가사들아, 우리 갚을 수 있다니까? 좀 자세히 조사해보라고!
투자자들: 와, 한국 신용등급 끝없이 내려가네. 안 되겠다. 지금 돈 갚아. 이러다 돈 떼이겠네.
정부: 국제신용평가사들 완전 저승사자네. 그래, 난 오늘부터 죽었다고 생각한다. IMF님들… 돈 좀 빌려주세요…
IMF 구제금융의 내용도, 국제신용평가사들의 신용등급 강등 조치도 사실은 그럴 필요까진 없었던 과한 대응이었다는 의견이 많아요. 하지만 1997년에 너무너무 고생한 나머지 아직 그 후유증을 겪고 있는 우리나라는 국가신용등급에 굉장히 민감해졌습니다. 국제신용등급이 변할 때마다 핫뉴스가 되는 이유예요.
③ 요즘은 국가신용등급이
어떤 역할을 하는가?
🎬Scene #3.
전 세계 국가들: 아 진짜, 국제신용평가사들 그냥 확! 절교할까 보다!
어피티: 무슨 일이죠?
전 세계 국가들: 점수 매기면서 큰소리치는 거 이해해요. 시험성적으로 실력 전부를 평가할 순 없는 거지만 그래도 시험을 안 치르면 뭘 보고 뽑아야 할지 아예 모르게 되니까요. 시험 내고 점수 주는 쪽이 갑이죠. 근데 그러면, 최소한 중간고사 A+ 맞은 놈이 학사경고 받는 일은 없어야 하는 거 아닌가요?
어피티: 국제신용평가사들의 평가가 정확하지 않다는 말씀이신가요?
전 세계 국가들: 그렇다니까요! 그것 때문에 우리가 본 손해가 얼마나 큰지 알아?! 안전하다고 해서 안심했더니 여기저기서 위기가 팡팡 터지고 말이에요.
위에 언급한 논문을 인용하자면 ‘국가신용등급은 한 국가와 그에 속한 기업과 금융기관이 원활한 경제활동을 할 수 있는지 나타내는 기준’이라고 합니다. 은행이나 대기업의 신용등급은 거의 그 국가의 국가신용등급과 동기화돼있거든요. 사실상 외국인 투자자들은 국가신용등급을 보고 은행과 대기업, 국영기업, 공기업 등과 거래를 하는 것이지요.
그런데 국제신용평가사들도 당연히 완벽하지 않습니다. 결국에는 사람이 하는 일이거든요. 1997년 우리나라의 외환위기 때도 그랬지만 2008년 세계 금융위기 때도 그랬습니다. 2008년 위기는 미국에서부터 일어났습니다. 당시 ‘리먼 브라더스’라는 175년 된 회사가 무너지면서 시작했죠. 그런데 리먼 브라더스가 망하기 전에 국제신용평가사들은 이 회사와 이 회사의 채권이 안전하다고 했었어요.
이후 국제신용평가사들을 믿지 못하겠다는 아우성이 빗발쳤지만, 어쩌겠어요. 2008년 이후 세계 경제가 너무 안 좋아지는 바람에 조금이라도 잘못 투자하면 큰일 나게 생겨서, 오히려 국제신용평가사들이 가장 안전하다고 한 국가와 회사에만 투자할 수밖에 없게 돼버렸는걸요. 전 세계적인 위기상황이니 애먼 데 투자하는 것보다는 아쉬운 평가방식이라도 ‘가장 안전하다’고 평가한 곳에 투자하는 게 안전하다 싶었겠죠.
🎬Scene #4.
정부: 그래서 말인데, 국제신용평가사뿐 아니라 기자, 학자, 정책에 관심 많은 일반인까지도 절대로 흠을 잡을 수 없도록 모든 방면에서 완벽한 ‘엄친딸’, ‘엄친아’가 되는 수밖에 없는 것 같아요.
어피티: 불가능하지 않을까요…?
정부: 시도라도 해 보는 거죠.
국제신용평가사 3사의 현행 평가 방식에 대한 문제 제기는 잠시 뒤로 하고 금융위기 발 경기침체를 이겨내자고 다짐한 순간, 코로나19 팬데믹이 터져버린 게 2020년이었답니다. 다행히 다른 나라 국가신용등급은 줄줄이 강등되는 와중에 우리나라만 신용등급이 유지되는 애국심 차오르는 뉴스가 나왔습니다. 예상치 못한 이슈로 전 세계 국가가 경제적인 위기를 맞게 되면서, 신용등급 유지가 칭찬할 일이 되는 웃픈 상황이 벌어진 셈이에요.
지난주부터 이번 주까지 2주에 걸쳐 국가신용등급이 왜 중요한지, 국가신용등급 발표 뉴스에 우리가 왜 관심을 가져야 하는지 살펴봤습니다. 돈을 빌릴 수 있는 능력이자, 갚을 수 있는 능력을 뜻하는 ‘신용’. 자본주의에서는 정말 중요한 개념이죠.
나라는 개인의 신용등급 못지않게, 내가 소속된 기업과 국가의 신용등급도 중요하답니다. IMF 때처럼 개개인의 삶에도 영향을 미치는 결과를 만들 수 있거든요. 우리가 신용의 중요성을 이해하고 신용을 높여가려고 노력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