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몇 년 사이 한국 기업이 미국에 투자한다는 소식이 자주 보도되었어요. 최근에는 하이닉스가 미국 인디애나에 대규모 공장을 건설한다고 발표했고, 삼성전자는 텍사스 지역에 대규모 공장을 이미 건설하고 규모를 꾸준히 확장하고 있습니다.
이런 기사를 읽다 보면 ‘그런 대규모 공장을 한국에 지으면 더 좋을 텐데 왜 다른 나라에 짓느냐’는 반응을 어렵지 않게 접할 수 있습니다. 어떻게 보면 일리가 있는 말로 느껴지기도 하죠.
기업의 이익과 국가의 이익은 다를 수 있어요
하지만 한국의 상당수 대기업 또한 전 세계에 걸쳐서 기업 활동을 하고 있어요. 기업의 입장에서 최선의 선택과 국가의 입장에서 최선의 선택은 다를 수 있으며, 국가에서 기업의 활동을 강제할 수는 없습니다.
먼저 국가경제 측면에서 생각해 보겠습니다. 기업의 생산활동은 노동력을 필요로 하기에 생산활동이 활발해지면 일자리가 늘어납니다. 기업의 판매 수입은 임금을 통해 노동자에게 돌아가고, 이윤은 주주들에게 돌아가요.
이걸 한국 기업이 미국에 투자한 상황에 그대로 적용시키면 어떻게 될까요? 미국의 노동자들이 한국 기업의 공장을 건설하고, 그 공장에서 일하게 됩니다. 결론적으로 미국의 일자리가 늘어나요. 하지만 기업의 이윤은 결국 한국 기업이 갖게 되며, 이것이 한국경제에 풀리면 그만큼 국가 경제에 도움이 됩니다.
즉, 기업의 투자를 통해 발생한 긍정적인 경제 효과가 일부는 미국에, 일부는 한국에 발생해요. 그러므로 아주 단순하게 생각하면, 외국에 투자하는 것이 투자하지 않는 것보다는 분명히 긍정적입니다. 물론 한국에 투자하는 것과 비교한다면 외국인 미국에 투자하는 것이 아쉬운 부분이 있을 수는 있습니다. 국가적 차원에서 본다면 말이죠.
하지만 기업은 국내에 투자하기보다 외국에 투자하는 편이 유리한 경우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기업은 어떤 이유로 외국에 투자하기로 결정하는 것일까요? 한국에서 상품을 만들어서 외국에 수출해도 될 것 같은데, 왜 굳이 외국에 공장을 만들고 현지 법인을 만드는 것일까요?
한국 기업이 외국에 법인과 공장을 설립하는 이유
비교적 단순노동으로 움직이며, 첨단 기술이 필요하지 않은 상품의 생산이나 공정은 임금이 저렴한 개도국에서 진행하는 것이 비용 면에서 유리해요. 이 때문에 최근까지 많은 대기업들이 중국에서 생산을 했고, 근래에 중국의 노동비용이 높아지자 베트남이나 인도 등으로 이동하기도 했죠.
기업 입장에서 비용을 낮추는 것은 중요하기 때문에, 운송만 효율화 한다면 거리가 조금 멀어도 외국에서 생산하는 게 이득인 경우가 많아요.
상품 수요에 발빠르게 대응하기 위해 현지 법인을 세우고, 생산부터 마케팅까지 현지에서 진행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소비자들의 즉각적인 피드백이 일어나는 분야일수록 이런 전략을 많이 택해요.
트렌드 변화를 빠르게 파악하여 생산에 반영할 수 있고, 그 나라에 투자한 사실 자체가 현지 소비자들에게 기업의 이미지를 좋게 하는 마케팅 효과로 이어지기도 하기 때문이죠.
한편, 상대적으로 선진국에 투자를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 경우 비용 절감보다는 동원할 수 있는 양질의 인적·물적 인프라, 그리고 국가가 제공하는 지원책이 많은 영향을 줍니다.
미국에 투자한 삼성과 하이닉스 모두 각각 텍사스와 인디애나의 대학교와 연계하고 있고, 바이든 정부에서는 인플레이션 감축법(IRA)를 포함한 다양한 지원책을 통해 미국에 투자하는 외국 기업들에 혜택을 주고 있어요.
종합하면 기업은 여러 가지 조건을 고려해 투자를 결정하고, 국가와 지자체들도 이러한 기업들의 투자를 유치하기 위해 여러 노력을 합니다. 최근 국제경제 흐름을 보면 기업들간 경쟁만큼이나 기업들을 모셔오기 위한 국가들의 경쟁 역시 갈수록 치열해지는 걸 볼 수 있어요.
외국 기업이 한국에 투자하는 이유
물론, 한국에 투자하는 외국 기업들도 많아요. 글로벌 콘텐츠 개발을 위해 한국에 지속적으로 대규모 투자를 이어가고 있는 넷플릭스가 대표적인 예죠.
외국 기업의 한국 투자는 한국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요? 기본적으로는 반대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외국 기업이 이윤을 가져가기는 하지만 또한 한국에 투자하는 만큼 한국의 고용이 창출되고, 한국에서의 생산활동이 활발해져서 한국에 경제적 이익이 됩니다.
다만, 외국 기업의 한국 투자는 국내 기업과의 경쟁으로 이어지기 때문에 국내 기업이 어려움에 처할 가능성이 항상 있습니다. 외국 기업의 한국 투자가 해당 산업에 기회가 될지, 아니면 국내 기업에 피해를 주는 부분이 더 클지는 각 산업의 환경과 각 기업의 상황에 따라 차이가 나요.
넷플릭스의 활발한 한국 진출을 보더라도, 한국에서 만들어진 드라마와 영화를 전 세계에서 쉽게 볼 수 있게 되면서 한국 콘텐츠에 관한 글로벌 시장의 관심을 크게 끌어올린 계기가 되었다는 순기능도 있는 반면, 넷플릭스와 경쟁하는 국내 OTT나 기존의 영화, 드라마 제작업계는 비용상승 등으로 인해 어려움이 심해졌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어요.
로컬 기업과 글로벌 대기업이 협력할 때 어느 쪽이 유리할까요? 보통 글로벌 대기업이 자본력이 강한 만큼 대체로 유리할 것으로 생각하기 쉽지만, 때에 따라서는 현지 기업이 기술력과 독창성이 뛰어난 경우 글로벌 대기업이 현지 기업과 협력하면서 현지 기업에 유리한 계약을 제시하기도 합니다.
국가와 기업의 역할 분담이 중요해요
한국은 반도체를 비롯한 최첨단·대형 제조 분야에서 글로벌 대기업으로 성장해 여러 해외 시장에 성공적으로 안착한 동시에, K-콘텐츠, 뷰티 등 몇몇 분야에서는 다른 글로벌 기업이 쉽게 침투할 수 없는 독자적인 시장을 구축하고 있어요.
이런 장점을 이용하면 자국 시장을 방어할 수 있고, 또는 외국의 현지 기업 또는 외국의 거대 플랫폼 기업과 유연하게 협력할 수도 있습니다.
거대 기업일수록 국익과 흐름을 같이하다 보니 기업의 해외 투자 문제가 정치적인 논란으로 번지는 경우도 많은데요. 문재인 정부 때 일어난 한국 기업의 미국 투자는 보수 진영에서 비난하고, 윤석열 정부 때 일어난 한국 기업의 미국 투자는 진보 진영에서 비난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벌어지기도 해요
이는 한국의 특수한 상황이 아니며, 미국에서도 어떤 성향의 정당이 정권을 잡았느냐에 따라 미국 기업의 중국 진출을 놓고 야당의 입장이 달라지는 등 정치적 논쟁이 자주 발생합니다.
하지만 정치적인 이해득실을 기준으로 기업의 투자를 판단한다면 긍정적인 측면과 부정적인 측면을 냉정하게 분석하기 어려워요. 결국엔 결국엔 기업의 입장에서 스스로에게 도움이 되는지 철저한 검증을 거쳐 냉정하게 결정해야 해요.
한국이 세계적인 대기업을 많이 갖고 있지만 기업활동에 대한 과도한 간섭은 지양되어야 합니다. 정부 입장에서는 기업과 협력은 필요하지만 기업에게 부당한 요구를 하거나 애국심을 강조해서는 안 돼요.
한국 정부는 외국 정부와 경쟁하면서 한국 기업들의 한국 투자 및 다른 외국 기업들의 한국 투자를 끌어내는 것을 우선순위로 삼아야 합니다. 일자리 창출과 지역 경제 활성화를 꾀하면서도, 과도한 특혜로 국가의 부담이 너무 커지지 않게 주의가 요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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