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은 평생 행복하게 살았답니다”
어릴 적 읽었던 동화의 마지막은 항상 아름다웠습니다. 대학교를 졸업하고 취업을 한 후 그게 거짓말인 걸 알았죠. 대학만 가면 모든 게 다 끝날 줄 알았지만 ‘취업’이란 산이 떡하니 버티고 있었고, 취업만 하면 이제 숨 좀 돌리며 여유로운 삶이 가능한가 싶었더니 ‘고난의 시작’이었죠.
동화처럼 ‘평생 행복하게 살았답니다’라는 결말도 말이 안 되는 일이라는 걸, 이제는 현실적으로 아셔야 합니다. 내 집 마련도 똑같아요. ‘내 집만 마련하면 돼’라고 생각하면서 그걸 재테크의 종착역으로 생각해서는 안 돼요. 다시 말해, 내 집 마련으로 인생의 모든 재테크 미션이 끝나지 않는다는 거죠.
사실 제가 요즘 내 집 마련의 격변기를 거치고 있는데요. 내 집이 어떻게 있다가 없어지는지, 또 다시 생기게 되는지 자세히 제 경험을 풀어드릴게요.
체크 포인트 1.
내 집도 불편하다
제가 말하고 싶은 건,
내 집이라도 여러 가지 이유로 불편할 수 있다는 거예요. 저는 내 집이었던 두 곳이 다 마음에 들지 않아, 무주택자의 길을 선택했어요. 반지하 빌라에서 전셋집으로 갈 땐 무조건 아파트를, 경기도 외곽의 아파트에서 전셋집으로 갈 땐 무조건 교통을 봤어요. 과연 저는 만족할 수 있었을까요?
제가 29살에 산 첫 집, 동작구 반지하 빌라 이야기부터 할게요. 이 집은 ‘내 집’이라서 갖는 애정과는 별개로 생활하기에는 불편했습니다. 내 집이었기 때문에 물건을 마음대로 떨어트려 바닥이 상해도 괜찮았고, 물건을 옮기다 벽지에 손상이 가도 신경이 쓰이지 않았지만 딱 거기까지였어요.
소음, 아쉬운 환기 시스템, 거의 불가능한 주차, 쓰레기 무단 투기 등, … 단점들이 한두 개가 아니었습니다. 시간을 돌릴 수만 있다면 계약서를 쓰기 전으로 돌아가고 싶었습니다.
‘내 집’이 주는 안정감은 잠시뿐. 내 집이 주는 불편함에서 벗어나려고 6개월을 고군분투 했습니다. 여러 부동산에 집을 내놓았고, 제가 따로 찍은 예쁜 사진들도 다 돌렸습니다. 집을 보러 오는 분들에게 적극적으로 집을 보여줬고요.
그 집을 팔고 이사 간 경기도 외곽의 신축 아파트도 불편했습니다. 30분에 한 대씩 오는 버스, 버스를 타기 위해 20~30분은 걸어야 하는 정류장, 꼭 시간을 확인하고 타야 하는 경전철, 그마저도 시간표에 맞춰 오지 않는 순간들이 많아 힘들었어요. 층간 소음이나 옆집의 물건 적재는 애교에 속하는 불편함이었습니다. 약속 시간 3시간 전부터 외출 준비를 해야 했으니까요.
체크 포인트 2.
세입자도 불편하다
남의 집에 사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었어요. 첫 번째 전셋집은 1999년에 준공된 아파트였는데, 아파트 시공 때 설치한 보일러를 한 번도 교제한 적이 없었어요. 물론 고장이 나지 않는 이상 일부러 교체할 필요는 없지만, 하필이면 제가 살던 그해 겨울에 고장이 났습니다.
나: 보일러가 고장 났어요. 고쳐주셔야 할 것 같아요.
집주인: 그런 건 웬만하면 세입자가 알아서 고치지 않나요?
나: 7년 이내의 제품이 고장 나면 세입자 과실로 보고 직접 고치는 게 일반적이지만, 그 이상이면 노후가 원인이라 집주인이 고치는 게 맞다고 알고 있어요.
집주인: 저기요. 인생 그렇게 사는 거 아니에요.
이 말을 듣자마자 저도 모르게 통화 종료 버튼을 눌렀습니다. 제 입에서 험한 말이 튀어나올 것 같아서요. 집주인 말은 ‘세입자라면 어지간한 손해는 볼 줄 알아야 한다’라는 뜻이었을 거예요. 마음을 가라앉힌 뒤, 침착하게 보일러 수리 계획에 대해 문자를 보냈습니다.
당시 저는 경기도 외곽의 아파트를 보유하고 있었고, 그곳에 세입자를 들인 상태였습니다. 만약 집이 아예 없는 상태였다면 집주인의 말이 큰 상처가 됐을 거예요. 계약 만료를 2년 앞두고 집주인이 ‘3천만 원 인상’이라고 이야기를 할 때 “아뇨. 저는 제 집으로 들어갈 거라 재계약 안 합니다”라고 힘을 실어 대답했습니다.
경기도 외곽의 아파트를 팔았을 땐 완전한 무주택자로 전셋집에 들어갔어요. 집주인은 고양이를 키우는 저희 부부를 상대로 ‘반려동물이 집 손상 시 100% 원상복구’라는 특약을 추가했어요. 그런 특약이 없었더라도 반려동물 때문에 집이 손상되면 당연히 제가 물어야 하는 부분이 맞습니다.
그런데 고양이와 함께 산 지 얼마 되지 않았던 저는 고양이가 얼마나 사고를 칠지 알 수 없는 노릇이었죠. 그 집으로 이사를 가기 직전에 카펫만 9장을 샀어요. 고양이가 뛰면서 마룻바닥에 스크래치를 낼까 걱정이 됐거든요.
청소할 때마다 카펫의 먼지를 털고 개키고 다시 너는 과정은 고역이 따로 없었습니다. 다행히 이사 나갈 때 제가 물어줘야 했던 일은 없었지만, 집을 조심스럽게 써야 하는 불편함이 컸어요. 그래서 다시 ‘내 집 마련’으로 돌아갔습니다. 일부러 집을 험하게 쓸 건 아니지만, 집에 흠집이 좀 생겨도 마음 편히 살고 싶어서요.
체크 포인트 3.
집주인도 불편하다
네, 저는 집주인으로 사는 것에도 엄청난 불편을 느꼈습니다. 계약 기간 만료를 꽤 앞두고 세입자가 당장 돈을 해달라고 하더군요. 세입자가 비상식적이어도 제대로 따지지 못하는 제 모습을 보고, 스스로도 많이 놀랐습니다.
세입자: 저 계약 기간보다 먼저 이사 나가요. 제 이사 날(9월)에 맞춰서 돈 빼주세요.
나: 계약 만료는 11월인데요?
세입자: 그 집도 겨우 구했어요. 그때 잔금 치르지 않으면 안 돼요.
나: 저는 계약 기간 맞춰서 돈을 준비할 수 있어요.
세입자: 돈 미리 안 주셨다가 제가 이사 갈 집 못 구해서, 이 집에서 안 나가면 어쩌려고 그러세요?
어차피 빼줘야 하는 돈, 다투기 싫어서 간신히 세입자에게 보증금을 돌려주고 약 2개월 동안 빈집으로 둘 수밖에 없었어요. 그 세입자가 짐을 뺀 후에 확인하니 집도 많이 망가져 있었습니다.
저에게 말도 안 하고 벽걸이 TV를 걸었다가 뗐고, 벽 곳곳엔 못을 박았다 뗀 흔적과 문이란 문엔 꽃 스티커를 붙인 후 떼지도 않았더라고요. 첫 입주를 했음에도 마룻바닥 곳곳이 썩어 있었습니다. 이를 문제 삼자 “원래 그랬었다”는 대답을 들었어요.
그래서 지금은요,
제가 내린 결론은 하나였습니다.
‘그나마 크게 불편을 느끼지 않는 내 집에서
언제든 이사를 갈 수 있다는 마음으로 살기’
저는 비교적 짧은 시간 동안 자가 거주, 세입자, 집주인 등을 경험했습니다. 그래서 지금은 대출을 더해 비교적 만족하는 집을 샀고, 카펫을 깔지 않은 채 고양이와 즐겁게 살고 있습니다. 물론 대출 금액이 없으면 좋겠지만 대출이 무서워 가성비 좋은 집을 찾다 실패하고, 세입자로 살면서 마음이 불편한 걸 경험한 후 내린 선택입니다.
우리가 할머니, 할아버지가 됐을 땐 평생 살 마음에 드는 내 집이 나타날까요? 주변을 보니 꼭 그렇지도 않더라고요.
삶에는 생각보다 변수가 많습니다. 그 변수에 따라 내 생각과 가치관도 바뀌고요. 집 문제에 있어서도 우리는 유주택자였다가 무주택자가 되기도 하고, 다시 유주택자가 될 수도 있습니다.
선택이 필요한 순간마다 만족할 만한 결정을 내리려면 ‘삶의 변수’를 항상 떠올려야 해요. 그리고 그 변화의 과정을 언제든 실행할 수 있다는 마음으로 ‘내 집’을 생각하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