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정인
무슨 일이 있었냐면요
원자력발전소에서 사용후 핵연료봉(폐연료봉)을 재활용할 수 있게 됩니다. 미국이 사용후 핵연료봉을 4세대 원자력발전소인 소듐냉각고속로(SFR)의 핵연료로 재활용하는 ‘파이로 건식 처리시설 연구 결과’를 공식 승인했기 때문이에요.
방사능을 내뿜는 폐연료봉은 굉장히 위험합니다. 후처리 과정에서 실수를 할 수도 있고, 폐연료봉을 활용해 핵무기를 만들 수도 있거든요. 그래서 폐연료봉을 재활용하기 위해서는 기술력과 정치적 안정성에 대한 국제사회의 신뢰를 얻어야 합니다. 이번에는 우리 정부가 2010년에 시작한 프로젝트로 10년 동안 애쓴 결과를 얻어낸 거예요.
좀 더 설명하면 이렇습니다
폐연료봉은 1978년 우리나라의 첫 원자력발전소인 ‘고리 1호기’가 가동을 시작한 뒤로 43년간, 각 발전소 부지 임시저장 수조에 포화 직전까지 쌓여가고 있었습니다. 이번에 재활용 기술을 인정받으면서 약 2만 톤의 폐연료봉을 처리할 수 있게 됐어요. 아직 실증연구와 상용화 단계가 남아 있지만, 기술력과 외교적 인증을 받았다는 점에서 어마어마한 성과입니다.
전문가들은 파이로프로세싱을 이용해 제2세대 원전의 방사능 폐기물을 안전하게 처리할 수 있다면, 이를 핵원료로 재사용하는 제4세대 원전은 친환경 에너지를 생산할 수 있을 거라고 해요. 참고로 우리나라는 제2세대 원전이 주류를 이루고 있습니다. 원전 정책이 탈원전 기조에서 ‘제4세대 원전 건설’로 바뀐다고 하더라도, 수명이 지난 이전 세대 원전은 친환경 에너지 생산이 가능한 원전으로 대체하는 편이 바람직하겠죠.
✔️ 우리나라의 원자력 기술 개발과 실제 적용은 한·미 원자력협력협정의 규제를 받고 있습니다. 미국의 승인과, 그 승인이 협정에 반영되는 방식이 중요한 이유예요. 협정을 개정할 때마다 이 파이로프로세싱을 허용해달라고 요청했지만, 번번이 거절당하다가 드디어 이번에 인정된 거죠. 원자로를 국내에 20기 이상 가진 국가 중 폐연료봉 재활용이 금지된 나라는 우리나라뿐이었거든요.
✔️ 우리나라를 포함해 189개국이 가입한 핵확산금지조약(NPT)에 의하면 미국·러시아·중국·영국·프랑스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 5개국을 제외하면 핵무기를 보유할 수 있는 국가는 없어요. 인도·파키스탄·이스라엘이 실질적 핵무기 보유국이기는 한데, NPT에 가입한 적이 없고요. 우리나라는 가난하던 시절, 핵무기를 개발하지 않겠다고 약속한 대신 미국의 안보적 지원을 받기로 하면서 NPT에 가입했습니다. 당시 우리나라 정부도 상당히 NPT 가입을 싫어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