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주식은 왜 ‘싸다’는 말을 듣는 걸까요?

글, 이경연



“한국 주식은 싸다.”

주식 투자에 조금만 관심을 가져도 꼭 한 번쯤 듣게 되는 말이에요. 같은 실적을 내는 회사라도, 한국에 상장되어 있으면 더 낮은 가격에 거래된다는 뜻이죠.

주식이 싸다는 건 결코 칭찬이 아니에요. 개별 기업을 넘어 우리나라 시장 전체가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고 있다는 신호고, 가격이 깎여 있다는 뜻이에요. 그래서 이런 현상을 ‘코리아 디스카운트(Korea Discount)’라고 부릅니다. 세계 시장 전체가 한국 기업의 주식을 할인된 가격에 거래하고 있다는 뜻이죠.


숫자에서 보이는 코리아 디스카운트
PER(주가수익비율, Price Earnings Ratio)은 기업의 주식이 1년에 벌어들이는 이익의 몇 배 가격에 거래되고 있느냐를 뜻해요. PER이 10배(10x)라면 ‘이 회사가 올해 1억 원을 벌면, 주식 가치는 10억 원으로 평가된다’는 뜻이죠. PER이 높다는 건, 앞으로 이 회사가 잘 되리라 믿는 시장의 기대가 크다는 뜻이에요. 그래서 높은 PER은 기업에 대한 신뢰와 성장 가능성을 반영한 것이기도 하죠.

그런데 우리나라 기업들은 PER이 10배(10x) 이하인 경우가 많아요. 반면, 미국이나 유럽 기업들은 20배(20x)를 넘기도 하죠. 같은 돈을 벌어도 우리나라 기업은 절반 가격에 거래되고 있다는 뜻이에요.

PBR(주가순자산비율, Price-to-Book Ratio)도 마찬가지예요. PBR은 ‘이 회사의 자산 가치에 비해, 얼마나 비싸게 팔리고 있느냐’를 보여줘요. 예를 들어, 자산이 1조 원인데 주식시장에서 7000억 원밖에 안 쳐준다면? PBR이 0.7배라는 건데, 보통 PBR 1 미만인 주식을 두고 시장은 ‘저평가’되었다고 판단해요 .

즉, PER과 PBR이 낮다는 건 ‘주가가 제값보다 저렴하다’는 의미예요. 문제는 우리나라 기업들의 해당 수치가 오랫동안 낮게 머물러 있다는 점이에요. 싸게 샀지만, 오르지 않는다면? 그건 기회가 아니라, 묶여 있는 자산일 수 있어요.

외국인 투자자들은 이렇게 말하죠. “한국 주식은 위험을 감안하면 싸지도 않다.” 이 말은 돈을 잘 버는 기업이 많은데도, 그 수익이 주주에게 제대로 돌아오지 않을 거라는 불신이 숫자 속에 그대로 담겨 있다는 의미예요. 그게 바로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시작입니다.


지배구조는 왜 주가를 깎아 먹을까?
지난 1화에서 다루었던 카카오 이야기를 다시 꺼내볼게요. 카카오페이, 카카오뱅크, 카카오게임즈 같은 자회사들이 잘 성장했지만, 그 과실이 기존 주주에게 돌아오진 않았어요. 오히려 주가는 내려갔어요. 이유는 하나예요. 기업의 의사결정 구조, 즉 지배구조(Governance) 문제예요.

지배구조는 쉽게 말해 ‘누가, 어떻게, 무엇을 결정하느냐?’에 관한 회사 내부의 룰(Rule)이에요. 우리나라 기업들은 대체로 오너(Owner, 창업주) 중심 구조로 되어 있어요. 이사회 구성도 오너 측 인물 중심이고, 중요한 결정은 대주주와 경영진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죠. 그런 구조에선, 소액주주인 우리는 ‘주주’지만, 결정에는 끼지 못하는 존재가 되기 쉬워요. 내가 투자한 회사가 배당을 안 해도, 유망한 자회사를 분할해서 상장해도, 그 과실이 내 몫이 되리란 보장은 없는 거예요.

그러니 투자자들은 점점 이런 생각을 하게 돼요. ‘이 회사가 잘돼도, 내 수익은 아닐 수도 있겠네.’ 그 불신이 바로 기업 가치에 붙는 ‘할인’, 즉 코리아 디스카운트로 이어지는 거예요. 카카오만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나라 자본시장 전체가 안고 있는 구조적 리스크인 거죠.

그럼, 이 구조는 진짜 바뀌고 있는 걸까요?
최근 이 구조를 제도적으로 바꾸려는 움직임이 시작됐어요. 2025년 7월 3일, 국회는 상법 개정안을 통과시켰고 그중 가장 주목할 변화는 바로 이거예요. “이제부터 이사는 회사뿐 아니라 ‘주주 전체의 이익’을 위해서도 충실하게 일해야 한다.”

이 문장은 공포 즉시 효력을 발휘하는 조항이에요. 쉽게 말해, 이제는 주주의 이익을 무시한 결정이 법적으로 문제 될 수 있는 시대가 열린 거죠. 생각해 보면, 너무 당연한 이야기잖아요. 내가 투자한 회사인데, 내 이익도 챙겨줘야 하는 거 아닌가요?

그 상식이 드디어 법에 새겨진 거예요. 이번 상법 개정에는 이사회나 감사제도, 주주총회 방식 같은 다른 변화도 함께 담겼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건 이거예요. “회사가 잘되면, 주주도 같이 잘돼야 한다.” 한국 자본시장이 지금 가장 근본적인 방향에서 바뀌고 있다는 신호입니다.

이유를 아는 것, 그게 똑똑한 주주의 출발점이에요
이제 우리는 단순히 “한국 주식은 싸다”는 말 뒤에 숨어 있는 복잡한 구조와 감정을 알게 되었어요. 투자자는 단순히 돈을 넣는 사람이 아니라, 회사와 함께 미래를 결정하는 파트너예요. 그 파트너의 목소리를 무시하는 구조에서는 아무리 실적이 좋은 기업이라도 그 가치가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는 건 당연한 일일지도 몰라요. 하지만 이제, 그 구조를 바꾸는 첫걸음이 제도적으로 시작됐어요. 상법 개정이 통과되면서 이제는 주주가 회사의 진짜 파트너가 되는 길이 열린 거예요.

다음 편에서는 이번 상법 개정이 우리나라 자본시장에 어떤 구조적 변화를 불러올 수 있는지, 그리고 그 변화가 어디까지 가능한지를 함께 생각해 볼게요. 희망과 한계, 그 사이에서 우리가 기대할 수 있는 ‘현실적 변화’를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 필진 소개: 안녕하세요. 대신증권 리서치센터에서 지속가능투자와 ESG를 담당하고 있는 애널리스트 이경연입니다. 첫 직장 기획재정부에서 정책 리서치를 하고, 한국 국채를 발행하는 부서에서 외국인 투자자를 만나면서 시장을 보는 시야를 넓혔어요. 정책과 제도, 시장과 투자자의 시선을 모두 경험한 덕분에, 요즘엔 특히 기업지배구조와 제도 변화에 관심을 두고 있어요. 멀게만 느껴지는 제도 변화가 어떻게 내 주식 수익률로 이어지는지, 그 연결고리를 쉽게 풀어내고 싶습니다. 똑똑한 주주로 함께 성장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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