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1> 365kV
그래서 한전은 345kV급 고압 송전망을 30개 이상 동시다발적으로 건설할 계획이에요. 위 그림이 그 계획의 뼈대입니다. 지방 전기를 서울로 끌어오는 시설이라는 게 보이시나요? 특히 호남 지역에 주목하세요. 이 지역과 서울을 잇는 선이 아주 많죠? 건설 계획이 이렇게 많으면 반대의 강도는 어떨까요?
한전은 주민 탓, 주민들은 정부 탓
전북 무주는 물 좋고 공기 좋은 곳이지만 인구 소멸 지역이에요. 이곳에 송전탑 반대 비상대책위원회가 꾸려졌어요. 바로 옆 장수, 진안도 마찬가지입니다. 임실도 그래요. 사실 전라북도 모든 군에 이 비대위가 있어요. 계획 중인 송전탑과 선이 전북의 모든 자치단체를 빠짐없이 지나가거든요.
이들에게 전력망은 단순한 님비(혐오시설 기피 현상) 시설이 아니에요. 지방엔 불이익만 주고, 모든 것을 서울로 끌어당기는 현실을 상징해요. 이익의 불균형한 분배가 낳은 결과물이죠.
이런 속도면 송전선이 계획대로 지어지는 건 어려워요. 지금까지 90% 이상이 지연됐고, 앞으로도 그럴 거예요. 전력망 확충에 70조 원 정도를 쓸 계획인데, 실제로는 훨씬 더 들 가능성이 커요. 보상은 더 해주고 계획은 기약 없이 늦어질 테니까요. 한전은 주민 탓을, 주민들은 정부 탓을 합니다. 믿지 못하고, 지연되고, 갈등은 심각하고 비용은 눈덩이로 불어납니다.
태양광 패널이 아니라 전력망이 최대 병목이에요
호남 지역에 전력망이 추가로 필요한 주요한 이유는 신재생에너지 때문이에요. 호남 지역은 태양광과 바람이 풍부한 ‘재생에너지의 보고’여서 잠재력이 높아요. 지금 당장이라도 태양광 패널과 풍력 바람개비를 설치만 하면 청정에너지 생산이 가능할 정도죠.
문제는 생산은 되는데 수요처가 없다는 점이에요. 공장도 소비자도 없어요. 지역에는 쓸 사람이 없으니 지역 바깥으로, 수요가 있는 곳으로 보내야 하죠. 그게 수도권입니다. 그런데 보낼 전력망이 없는 거예요. 그럼 생산하면 안 되죠. ‘상하기 쉬운 생선’인 전기는 만드는 즉시 써야 하고, 만약 쓰지 않으면 버려지는 동시에 망에도 부담을 주니까요.
이 때문에 정부는 호남에서 재생에너지 발전소 신규 건설을 허가하지 않아요. 새로 발전소 지어도 전력망에 연결해 주지 않겠다, 전기 사주지도 않겠다고 하죠. 진퇴양난입니다.
그러니까 우리나라 재생에너지 발전 비율이 OECD 꼴찌인 건 태양광 패널이나 풍력 터빈 문제가 아닙니다. 땅이 부족해서도 아니고, 돈이 없어서도 아니에요. ‘망이 없어서’예요. 새로운 재생에너지 시대에 맞는 분산형의 새로운 전력망을 깔아야 하는데, 그게 너무 어려워서입니다.
결국엔 제도로 풀어야 해요
우리나라에는 갈등을 조율해 낼 국가 차원의 프로세스가 없어요. 법적 기반이 여전히 모순투성이죠. 구체적이거나 체계적이지 않고 형식적이죠. 주민들은 화가 났고, 한전은 이도 저도 못하고 있죠.
제도로 풀어야 해요. 절차 역시 체계화되어야 하고요. 보상 금액도 현실화해야 하죠. 충분한 논의와 충분한 보상, 합의 등을 거치려면 비용과 시간이 더 오래 걸릴 거예요. 누가 부담해야 하는지도 곰곰이 따져봐야 하고요.
권효재 COR 지식그룹 대표는 ‘우리는 전기 요금에서 송전 비용이 12% 정도밖에 안 되지만, 유럽은 25%가 넘는다’고 말해요. 우리가 당연한 비용을 내지 않아 왔다는 거죠. 그동안 너무 쉽게 누군가를 희생시켰던 거예요.
“덴마크는 에너지 전환이 굉장히 빠른 나라로 알려졌지만, 처음 시작하고 한 10년은 사실 거의 진도가 안 나갔어요. 매주 전국적으로 토론회를 했어요. 에너지 전환을 왜 해야 하냐 전기 요금이 올라가는데 이걸 왜 올려야 되느냐, 정말 나중에 이익이 되냐? 그렇게 대화를 계속하다 보니 지금은 굉장히 원활합니다. 시민들은 적절하게 보상을 요구하고 합의도 잘 됩니다.
10년, 15년을 바라보고 지금 사회적 대화를 통해서 국민 각자가 에너지 인프라가 내 집 앞에 들어왔을 때 나한테 어떤 영향을 주고 내가 무엇을 요구해야 하는지를 알아가는 과정을 가져야 해요. 교육과 대화가 굉장히 중요하다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느리더라도 훨씬 예측할 수 있고, 민주적이고, 지속 가능한 프로세스가 필요하다는 것이죠.
그런데, 여기서 또 꼭 짚어야 할 것이 하나 있어요. 아무리 전력망을 건설하는 프로세스를 확립해도 지속 불가능한 것이 있거든요. 바로 수도권의 에너지 독식입니다. 밀양과 전북이 송전탑으로 고통받아야 했던 이유, 그리고 동서울에서 갈등이 일어날 수밖에 없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어요. 본질적인 문제죠. 이 부분은 다음 연재에서 좀 더 자세히 알아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