핑크 필라테스 프린세스를 따라 하기 위한 스타터팩, 출처: 레딧
이어, 클린걸 트렌드는 점점 더 많은 요소를 필요로 하기 시작했어요. 그중 하나가 ‘핑크 필라테스 프린세스’ 열풍이에요. 파스텔 핑크의 레깅스와 스포츠 브라, 양말까지 톤온톤으로 맞춰 입고 우아한 필라테스 동작을 따라한 뒤, 거울 앞에서 OOTD 셀카를 찍는 거예요. 포인트는 땀 흘리는 모습이 사진에 보이면 안 된다는 점이죠.
자, 지금부터 이해하기 편하게 2025년을 사는 클린걸의 하루를 한 번 상상해볼게요.
아침에 눈을 뜨고 레몬워터를 마셔요. 젠틀 클렌저로 세안하고, 토너, 에센스, 비타민C 세럼, 히알루론산 앰플, 아이크림, 수분크림, SPF 50 선크림까지 꼼꼼하게 발라요. 컨실러로 잡티를 살짝 가리고 파운데이션, 크림 블러셔, 연한 립글로스로 마무리해요. 헤어는 슬릭백 번이나 포니테일로 정리하고 아보카도 토스트와 말차 라떼로 아침을 먹어요. 점심은 샐러드나 포케를 먹고요. 퇴근 후엔 핑크색 필라테스복으로 갈아입고 스튜디오로 향하죠. ‘오운완’ 거울 셀카도 빠질 수 없고요. 저녁은 집에서 직접 만든 그릴 치킨 샐러드나 연어 스테이크로 건강하게 마무리해요. 밤엔 오일 클렌저로 시작해 폼 클렌저, 토너, 에센스, 레티놀 세럼, 모이스처라이저까지 순서대로 바르며 하루를 마무리하죠.
우리나라에서도 ‘꾸안꾸(꾸민 듯 안 꾸민)’ 스타일은 이미 오래전부터 인기였지만 클린걸은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간 듯 보여요. 메이크업을 자연스럽게 하고 옷을 깔끔하게 입는 것뿐만 아니라, 삶 전체가 깔끔하고 정돈된 모습을 보여야 비로소 완성되거든요. 깔끔한 포니테일, 투명한 립밤, 말차 라떼를 마시며 필라테스를 하고, 미니멀 인테리어가 돋보이는 집에서 브이로그를 찍는 모습처럼요. 클린걸은 패션 스타일을 뛰어 넘어 이제는 하나의 라이프 스타일 트렌드가 된 듯해요,
이렇게 진화하기 시작한 클린걸 트렌드에는 모순이 생기기 시작했어요. 클린걸이 처음 등장했을 때는 ‘자연스러움’과 ‘미니멀함’처럼 기존에 요구되던 미의 기준에서 덜어내는 것이 핵심이었지만, 클린걸이 되기 위해 점차 더 많은 조건과 규칙이 생겨나고 있으니까요. 노력하지 않은 듯한 모습을 위해 더 많은 뷰티 제품이 필요하고, 건강하고 정돈된 삶을 연출하기 위해 더 많은 돈과 시간이 들어갈 수밖에 없어요. 30만 원짜리 피부 관리, 20만 원대 필라테스 회원권, 5만 원짜리 말차 파우더처럼요.
그리고 통통한 몸, 다크서클, 여드름 피부는 클린걸과 공존할 수 없어요. 아이를 키우는 엄마나 3교대로 일하는 간호사, 하루 종일 사무실이나 다양한 현장에서 몸을 바쳐 일하는 사람들은 물론이고 나이 든 사람도 클린걸의 이미지에서는 배제될 수밖에 없죠. 더러워지고 낡고 헤질 수밖에 없는 생활 속에서 클린걸 트렌드는 사람들의 체형이나 나이, 직장에서 얻은 피로까지 모두 ‘클린’하지 못하다고 간주하는 것 같아요.
그래서 등장했습니다. 메시걸과 타이어드걸
클린걸 트렌드에 지친 사람이 적지 않은 모양입니다. 완벽하게 정돈된 모습을 연출하는 것이 피로해진 사람들 새롭게 찾기 시작한 스타일이 바로 ‘메시걸’과 ‘타이어드걸’이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