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은 만들었지만 시행은 못해
연금 줄 돈이 없었기 때문에 💸
1973년, 중화학공업육성계획과 함께 발표된 <국민복지연금법>의 핵심 내용은 다음과 같아요.
- 급여 지급 기준: 일정 연령이 되면 소득에 비례하여 연금을 지급하는 방식으로, 노후 소득 보장을 목표로 했어요
- 의무 가입 대상: 만18세~60세의 근로자 및 자영업자를 포함하는 광범위한 연금제도를 설계했어요
- 재원 조달 방식: 가입자가 일정 비율의 보험료를 납부하고, 정부가 연금 기금을 관리하도록 규정했어요
지금의 국민연금과 크게 다르지 않죠? 1970년대는 막 출산율이 낮아지고 핵가족화가 진행되기 시작한 시점이었어요. 경제전문가들은 장기적으로 가족과 친인척이 아니라 사회가 노후 부양을 할 수밖에 없는 시대가 오리라고 예측했어요.
어피티: 나름대로 앞날을 정확하게 내다보았네요?
옛날 사람: 그땐 개발도상국이었으니까 참고할 만한 선진국이 많았어. 다 똑같이 사람 사는 곳인데 외국이 먼저 겪은 문제, 그대로 우리나라에도 발생한다고 생각하고 준비했어. 🤗
어피티: 사람들이 시골에서 대도시로 이사해오고, 친인척이 모여살던 대가족에서 핵가족이 되고…
옛날 사람: 지금은 1인가구가 대세라면서? 어쨌든, 정부는 핵가족만 해도 노부모를 모시기 어려워진다고 판단했어. 그때 사회보장제도가 없으면 그 혼란을 어떻게 감당하겠어?
고도성장기는 곧 사회보장제도를 준비해야 할 시기였어요. 하지만 복지는 돈이 많이 드는 일이에요. 필요성을 알고 있어도 돈 쓰자는 이야기가 어려웠죠. 정부예산이 도저히 보편복지를 감당하기 어려운 시기였어요. 그때 얼마나 나라에 돈이 부족했냐면, 1인당 GDP가 300달러를 넘지 못했어요. 2020년대와 비교해보면 당시 우리가 얼마나 가난했는지 짐작할 수 있어요. 2020년대 우리나라 1인당 GDP는 35,000~36,000달러 사이를 오가거든요. 우리는 50년간 국민소득이 120배나 증가한 나라에 살고 있는 거죠.
그럼에도 경제기획원과 한국개발연구원이 ‘장기적인 사회 유지와 경제 발전에 반드시 필요하다’며 대통령과 정부를 설득했다고 해요. 당시 정부는 국민연금이 ‘세금 잡아먹는 하마’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경제 전문가들은 정책적 의사결정자의 인식을 바꾸기 위해 굉장히 노력해야 했어요.
하지만 당시 <국민복지연금법>은 입법만 되고 끝내 시행에는 실패했어요. 제1차 오일쇼크가 터지면서 나라 사정이 더욱 어려워졌거든요.
경제관료가 대통령에게 던졌던
초거대 복지 도입 인센티브 🌷
어피티: 그래도 당시 상황은 꽤 고무적이었네요. 돈도 없는데 전문가가 제안한다고 복지 시스템 도입을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말이에요.
옛날 사람: 꼭 복지 관련 결정이기만 했을까? 😏
어피티: 그럼 다른 이유가 있나요?
옛날 사람: 지금 코스피랑 코스닥에서 말이야. 국민연금이 완전히 고래, 그러니까 큰손 아니야?
어피티: 그렇죠. 국민연금이 어디에 투자하느냐에 따라 주가가 출렁이기도 할 정도니까요.
옛날 사람: 정부 입장에서 국민연금 같은 장기적인 기금이 쌓이면 말이야 아주 좋아… 왜냐하면 외국에서 비싼 이자를 주고 돈을 빌려올 필요가 없거든. 라떼는~ 우리나라가 외국에 빚이 많았어. 🥴
우리나라는 원래도 해외에서 꾸어온 달러빚이 많은 나라였어요. 공장을 짓고 물건을 만들려면 우선 기계설비부터 들여와야 하는데 당연히 기축통화인 달러로 사야 하니까요. 우리로서는 달러를 벌어들이려면 목숨을 걸고 수출하는 수밖에 없었죠. 마음대로 되지 않는 문제였어요. 그런데 1970년대와 1980년대에는 상황이 더 심각해졌어요. 더 비싼 설비와 기술이 필요한 중화학공업을 육성하기 위해 더욱더 많은 돈을 빌려야 했거든요.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빚이 너무 늘어난 나머지 1980년에도 우리는 1997년 같은 외환위기를 겪었답니다. 1985년에는 세계에서 네 번째로 외국에 진 빚이 많은 정부가 되었고요. 이자비용으로만 GDP의 6%까지 사용해 본 적이 있을 정도예요. 이 빚은 결국 1997년 외환위기의 원인 중 하나가 되었어요.
그러니 국민연금 같은 장기간 투자할 수 있는 ‘국내 저축액’을 확보하게 되면, 정부 입장에서는 얼마나 유용하겠어요. 외국 차관은 물론 국내에서도 빚문서인 국채발행을 줄일 수 있어요. 그렇게 알뜰하게 모인 돈으로 국내 인프라에 투자하고, 경제가 성장해서 금융시장이 발전하고 세금이 많이 걷히면 복지 서비스로 돌려주면 돼요. 당시에는 이런 선순환을 ‘내자동원(內資動員)’이라는 네 글자로 불렀어요. 바로 ‘국내에서 자본을 동원한다’라는 뜻이에요. 복지 역할만큼이나 강제 저축 성격 또한 매력적이었던 거예요.
지금의 국민연금은 OECD 기준 세 번째로 큰 연기금이에요. 900조 원 넘는 금액이 쌓인 국내 거대 자본으로서 사회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답니다. 이렇게 많은 돈이 완전히 사라지고 말 거라니, 잘 믿기지 않을 만큼 말이에요. 그래서 국민연금기금이 소진되면 복지 뿐 아니라 자본시장에도 큰 변화가 일어나게 됩니다.
시행 연기됐던 국민연금,
1986~1988년부터 수금(?) 시작
처음 논의되었을 당시엔 재정 부족으로 미뤘던 국민연금 도입, 10년이 지나자 실제 필요성이 누적되며 이제는 정말로 시행해야 할 때가 찾아왔어요. 핵가족화와 노인 부양 문제, 사회 고령화 문제는 이미 1970년대 후반부터 우리나라의 주요 사회 이슈로 떠올라 있었거든요.
1986년, <국민복지연금법>은 <국민연금법>으로 개정되며 민주화 직후인 1988년부터 제한적으로 적용되기 시작했어요. 10인 이상 재직하는 사업장의 근로자부터 적용했고, 연금보험료 요율은 첫해 월 근로소득의 3%에서 5년 간격으로 3%씩 상향해 10년 후 최종적으로 9%가 되도록 했어요. 이 요율은 아직까지도 변함이 없어요. 바로 이 요율 인상이 2024~2025년 연금개혁안의 핵심 중 하나죠.
신장개업!
뭐든지 처음에는 후하게 줄 수밖에 없어
사실 모든 제도는 맨 처음 도입할 때 가장 거부감과 저항이 크게 나타나요. 노후 부양은 당연히 가족이, 그 중에서도 장남 부부가 해야 한다는 문화가 강력했던 시기였으니까요. 1980년대에는 부양받는 사람도, 부양받을 사람도 당연히 주고받을 것을 기대했어요. 이런 사회 분위기 속에서 국가가 현재 나의 월급에서 일정 부분을 가져가 먼 미래에 돌려준다는 제도는 ‘필요한 건 알겠는데 그게 내 지갑에서 나가면 싫은’ 일이었어요.
그래서 국민연금제도는 홍보도 할 겸 조금 후한 혜택을 약속합니다. ‘이 정도라면… 속는셈 치고 보험료 내지 뭐.’ 하는 마음이 들 정도로요. 그래서 추후 받을 수 있는 급여수준과 보험료 부담 수준이 맞지 않아요. 적게 내고, 낸 것보다 훨씬 많이 받거든요. 물론, 한창 고도성장중인 경제의 고금리 환경 또한 반영되어 있었고요.
경제활동인구가 조금 더 내서 노후의 기본적인 생활에 필요한 빈 부분을 어느 정도 채워주는 것은 전 세계 노후부양기금에서 흔히 찾아볼 수 있는 자연스러운 구조예요. 우리도 이제껏 그래왔고요. 하지만 그 수준이 과도하게 벌어지면 상황이 달라져요. 인구구조변화로 우리는 지속가능성 자체가 의심스러운 상황에 처하게 되었는데, 이렇게까지 저출생·고령화가 심해질지 예측하지 못했던 거예요.
게다가 이때 설계한 국민연금제도에는 같은 세대 안에서도 겪어야 하는 형평성 문제가 있었어요. 당시 10인 이상 사업장에서 일하는 근로자는 사실 우리 사회에서도 중간층 이상에 속하는 사람들이었어요. 그래서 ‘원래 잘 살던 사람’이 ‘노후보장까지 받는’ 불평등한 제도가 되어버렸어요.
그렇다고 우리나라 일자리 대부분을 차지하던 5인 미만 사업장까지 제도를 확대하려니 그 사람들의 소득 수준은 도저히 보험료를 감당할 수 없거나, 소득의 9%를 적립한다고 해도 나중에 의미 있는 연금으로 돌려주기 힘든 수준이었어요. 자영업자가 포함되지 않는 것은 당연했고, 심지어 농어촌지역도 제도에서 배제됐어요. 이게 지금 심각한 우리나라 노후빈곤의 원인 중 하나예요.
그래도 현실적으로 생각해보면, 없던 제도를 만든 것만 해도 크게 잘한 일이에요. 하지만 오래도록 박수를 받으려면 시대에 뒤떨어지지 않게 업데이트가 필요해요. 지금 국민연금제도의 문제는 업데이트를 거의 하지 않았다는 사실에 있어요.
1997년 외환위기가 지나면서
뭐든 이대로는 안된다고 생각했어
옛날 사람: 모든 상황이 변한 건… 우리나라가 망해버린 때였어. 1997년에 휩쓸고 간 외환위기 말이야. 😔
어피티: 국민연금을 지급할 수 없게 되었나요?
옛날 사람: 그렇게 단순한 문제가 아니었어. 자고 일어나면 대기업이 하나씩 망해나갔어. 사람들은 하루아침에 실직했고 말야. 함께 살지 못하는 가족이 급증했고, 가정이 완전히 해체됐어. 이 상황에서 가족의 노후 부양? 꿈 같은 얘기였지.
어피티: 아…. 😢
옛날 사람: 그러자 공공 사회보장이, 국민연금이 정말로 필요하겠구나 처음으로 느껴버린 거야.
1997년 외환위기 직후, 한국 사회는 대량 실업과 구조조정으로 사회안전망의 부재를 절실히 체감했어요. 국민연금을 포함해 모든 형태의 공적 연금에 사회적 관심이 쏠리기 시작했죠. 진지하게 들여다보니 희박한 지속가능성을 이대로 두고볼 수 없었던 거예요. 게다가 방치해 두었던 만큼 기금 운용에도 투명성이 부족했고, 부정부패가 아직 심하던 때라 정치적 개입도 의심됐죠.
결국 1998년 1차 개혁을 통해 소득대체율을 낮추는 구조조정을 시행했어요. 연금 가입기간 평균소득의 70%를 보장해 준다고 했던 것을, 60%까지 10% 낮췄어요. 사실 놀랄 만큼 큰 변화는 아니었어요. 그래도 ‘처음 깎는’ 거였으니 이보다 더 낮추기는 어려웠을 거예요. 또, 너무 낮춰버리면 저소득 가입자는 최저생계비도 받지 못할 수 있었으니까요.
이것 말고도 그간 배제돼왔던 농어촌지역이나 자영업자 관련 문제가 있었고, 당시에는 제도적으로도 문화적으로도 노동시장 진입을 사실상 금지시켰던 여성의 노후에 관한 문제도 해결해야 했죠. 특히 평생 ‘4대보험이 되는’ 직장과 정규소득을 갖지 못하고 호주의 배우자로만 살았던 여성노인의 공적연금 수령은 까다로운 문제였어요.
변화는 조금씩만 주되
5년에 한 번은 업데이트 약속
1차 개혁, 상당한 논쟁 끝에 국민연금제도개선기획단에서는 다음과 같은 해결책을 제시했어요.
- 국민연금 낼 수 있는 사람들은 국민연금을 내고 받도록 하고, 저소득층이나 다른 배제되는 사람들을 위해 특정 나이가 넘으면 무조건 받을 수 있는 기초노령연금을 도입하도록 해요
- 연금 급여 수준(소득대체율)을 현행 40년 가입 70% 보장 수준에서 40년 가입 40% 수준으로 하향 조정하고, 연금보험료율은 5년에 한 번씩 조정하도록 해요
- 연금수급연령도 현행 60살부터 받는 것에서 2013년부터는 5년에 1살씩 올리도록 해요
하지만 보건복지부는 국민연금제도개선기획단의 최종안에서 결국 기초노령연금 도입안을 빼버렸어요. 소득대체율도 40%에서 크게 오른 60%로 변경되었어요. 하지만 그때는 이또한 괜찮았어요. 왜냐하면 5년마다 개혁하기로 약속했었거든요. 한번에 70%를 35%로 깎을 순 없잖아요. 5년마다 조금씩 조정하는 편이 훨씬 안정적이에요.
정부가 국회와 함께 했던 1998년의 주기적 연금개혁 약속을 ‘재정추계 5년 주기화’로 불러요. <국민연금법> 제4조에 따라 정부는 국민연금의 재정 상태를 5년마다 추계하고, 재정 불균형이 우려될 경우 제도 개선을 국회에 보고하고 논의하도록 정한 거죠.
난리법석이었던 2차 개혁이 끝나자
정치인들은 용기를 잃고 마는데…
어피티: 5년마다 개혁하기로 약속했다면… 2003년에 실제로 개혁이 되었나요?
옛날 사람: 보건복지부가 처음으로 국민연금 재정추계를 발표하기는 했지. 😇
어피티: 그래서 어떻게 되었나요?
옛날 사람: 공식적으로 2047년쯤 되면 그 많은 연금 적립금이 고갈될 수도 있다는 통계가 나왔지. 논란이 됐고 국정감사에서도 난리였단 말이야.
어피티: 😊
옛날 사람: 그래서 정부가 연금개혁을 하려고 했거든? 그런데 나라가 뒤집어졌어…. 너무 난리가 났던 나머지 이후로는 그 어떤 정부도 연금개혁을 적극적으로 하려들지 않았고.
1차개혁 때 했던 약속에 따라, 2003년 보건복지부가 국민연금 재정추계를 처음으로 발표했어요. 연금 고갈 논란이 수면 위로 떠올랐죠. 당시 전망에 따르면, 2047년경 국민연금 기금이 소진될 것이라는 계산이 나왔어요. 그러자 2004년 국회 국정감사에서도 국민연금의 지속 가능성이 문제로 제기되었고, 개혁 필요성이 공식적으로 논의되기 시작했어요.
당시 정부의 보건복지부 장관 입장을 보면, 현재에도 유효한 문제의식이 그대로 드러나요. 지금 나오는 이야기와 정확히 같은 이야기가 나오고 있음을 느낄 수 있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