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갑으로 낳은 국민연금, ‘이럴 거면 왜 낳았나’ 자세히 답해드려요

글, 정인


급변하는 인구구조 때문에 국민연금의 지속가능성에 의문이 제기되고 있어요. 2025년 3월, 연금개혁이 한 차례 이루어졌지만 청년세대의 의구심은 아직 해소되지 않았어요. 


어피티: ‘더 내고 더 받기’, ‘더 내고 그대로 받기’ 같은 이야기가 나오고 있지만, 우리는 그냥 ‘진짜 받을 수 있냐’가 제일 궁금하다니까요? 우리 이야기를 진지하게 들어달라고요.

옛날 사람: 국민연금을 진짜 받을 수 있느냐를 두고 싸우기 시작한 건 1990년대 후반이었어. 이제 와서 새삼 충격적인 질문은 아니라는 거지. 🙄

어피티: 그때부터 25년이 넘게 지나는 동안 아직도 제대로 해결을 못했다고요? 😡

옛날 사람: 다~ 이유가 있으니까 그랬던 거야. 라떼는~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고. 이 어른의 말씀을 처음부터 차근차근 들어보란 말이야.


전국민을 보편적 대상으로 하는 복지제도는 우리나라에 언제 처음 입법되었을까요? 정답은 1973년이에요. <국민복지연금법>이 제정되며 시작됐죠. 1973년은 우리나라 정치와 정책 역사에 꽤 중요한 이정표가 되는 해예요. 1973년에 벌어진 큼직한 사건 몇 개만 잘 이해해도 2025년의 우리나라를 파악하는 것에 문제가 없을 정도랍니다. 


1973년, 장기집권하려면

명분과 실질적인 혜택이 필요해

1973년은 박정희 정부의 유신헌법이 본격적으로 시행된 첫 해였어요. 박정희 전 대통령은 당시로부터 10년 전인 1963년부터 집권을 시작했어요. 그러면서 헌법을 개정해 대통령이 2회 연임할 수 있도록 했죠. 1969년에 3선까지 할 수 있도록 재차 개헌했고, 그 이후에도 계속해서 집권하기 위해 1972년 10월 유신 계엄령을 선포했어요. 다음해인 1973년부터는 정권을 유지하기 위해 언론·집회·결사의 자유를 심각하게 훼손하게 되었어요. 


그러는 과정에서 정치적 탄압도 심각해져 야당 대표였던 김대중 전 대통령이 도쿄에서 중앙정보부에 납치되기도 했죠. 이 일은 한일관계를 급격하게 냉각시켰어요. 당시 한미관계도 좋지 않았어요. 미국의 닉슨 행정부가 재정적· 정치적 부담을 이유로 들며 주한미군을 일부 철수하자 우리 정부가 자체 핵무장 카드를 꺼냈거든요.


그런데 경제 면에서는 지금 우리나라의 토대를 만든 정책이 시행되었어요. 무리한 장기집권에 대한 국민들의 반발이 심했기 때문에 명분을 갖출 수 있는 실질적인 정책적 성과를 내야 한다는 압박이 있었으니까요. 


1973년에는 우선 중화학공업 육성정책이 발표되었어요. 적극적인 수출 진흥 정책으로 우리나라 기업들이 동남아시아와 중동으로 진출하기 시작했고요. 기업들에게만 혜택을 준다고 해서 모든 게 해결되지는 않죠.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의 삶의 질도 개선되어야 불만이 누그러져요. 정부는 사회보장제도와 사회복지의 틀도 갖춰나가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지금 국민연금의 기초가 된 <국민복지연금법>도 그런 상황에서 탄생했어요.

법은 만들었지만 시행은 못해

연금 줄 돈이 없었기 때문에 💸

1973년, 중화학공업육성계획과 함께 발표된 <국민복지연금법>의 핵심 내용은 다음과 같아요.


  • 급여 지급 기준: 일정 연령이 되면 소득에 비례하여 연금을 지급하는 방식으로, 노후 소득 보장을 목표로 했어요
  • 의무 가입 대상: 만18세~60세의 근로자 및 자영업자를 포함하는 광범위한 연금제도를 설계했어요
  • 재원 조달 방식: 가입자가 일정 비율의 보험료를 납부하고, 정부가 연금 기금을 관리하도록 규정했어요

지금의 국민연금과 크게 다르지 않죠? 1970년대는 막 출산율이 낮아지고 핵가족화가 진행되기 시작한 시점이었어요. 경제전문가들은 장기적으로 가족과 친인척이 아니라 사회가 노후 부양을 할 수밖에 없는 시대가 오리라고 예측했어요. 


어피티: 나름대로 앞날을 정확하게 내다보았네요?

옛날 사람: 그땐 개발도상국이었으니까 참고할 만한 선진국이 많았어. 다 똑같이 사람 사는 곳인데 외국이 먼저 겪은 문제, 그대로 우리나라에도 발생한다고 생각하고 준비했어. 🤗

어피티: 사람들이 시골에서 대도시로 이사해오고, 친인척이 모여살던 대가족에서 핵가족이 되고…

옛날 사람: 지금은 1인가구가 대세라면서? 어쨌든, 정부는 핵가족만 해도 노부모를 모시기 어려워진다고 판단했어. 그때 사회보장제도가 없으면 그 혼란을 어떻게 감당하겠어?


고도성장기는 곧 사회보장제도를 준비해야 할 시기였어요. 하지만 복지는 돈이 많이 드는 일이에요. 필요성을 알고 있어도 돈 쓰자는 이야기가 어려웠죠. 정부예산이 도저히 보편복지를 감당하기 어려운 시기였어요. 그때 얼마나 나라에 돈이 부족했냐면, 1인당 GDP가 300달러를 넘지 못했어요. 2020년대와 비교해보면 당시 우리가 얼마나 가난했는지 짐작할 수 있어요. 2020년대 우리나라 1인당 GDP는 35,000~36,000달러 사이를 오가거든요. 우리는 50년간 국민소득이 120배나 증가한 나라에 살고 있는 거죠.


그럼에도 경제기획원과 한국개발연구원이 ‘장기적인 사회 유지와 경제 발전에 반드시 필요하다’며 대통령과 정부를 설득했다고 해요. 당시 정부는 국민연금이 ‘세금 잡아먹는 하마’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경제 전문가들은 정책적 의사결정자의 인식을 바꾸기 위해 굉장히 노력해야 했어요.


하지만 당시 <국민복지연금법>은 입법만 되고 끝내 시행에는 실패했어요. 제1차 오일쇼크가 터지면서 나라 사정이 더욱 어려워졌거든요. 


경제관료가 대통령에게 던졌던

초거대 복지 도입 인센티브 🌷

어피티: 그래도 당시 상황은 꽤 고무적이었네요. 돈도 없는데 전문가가 제안한다고 복지 시스템 도입을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말이에요.

옛날 사람: 꼭 복지 관련 결정이기만 했을까? 😏

어피티: 그럼 다른 이유가 있나요? 

옛날 사람: 지금 코스피랑 코스닥에서 말이야. 국민연금이 완전히 고래, 그러니까 큰손 아니야? 

어피티: 그렇죠. 국민연금이 어디에 투자하느냐에 따라 주가가 출렁이기도 할 정도니까요.

옛날 사람: 정부 입장에서 국민연금 같은 장기적인 기금이 쌓이면 말이야 아주 좋아… 왜냐하면 외국에서 비싼 이자를 주고 돈을 빌려올 필요가 없거든. 라떼는~ 우리나라가 외국에 빚이 많았어. 🥴


우리나라는 원래도 해외에서 꾸어온 달러빚이 많은 나라였어요. 공장을 짓고 물건을 만들려면 우선 기계설비부터 들여와야 하는데 당연히 기축통화인 달러로 사야 하니까요. 우리로서는 달러를 벌어들이려면 목숨을 걸고 수출하는 수밖에 없었죠. 마음대로 되지 않는 문제였어요. 그런데 1970년대와 1980년대에는 상황이 더 심각해졌어요. 더 비싼 설비와 기술이 필요한 중화학공업을 육성하기 위해 더욱더 많은 돈을 빌려야 했거든요.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빚이 너무 늘어난 나머지 1980년에도 우리는 1997년 같은 외환위기를 겪었답니다. 1985년에는 세계에서 네 번째로 외국에 진 빚이 많은 정부가 되었고요. 이자비용으로만 GDP의 6%까지 사용해 본 적이 있을 정도예요. 이 빚은 결국 1997년 외환위기의 원인 중 하나가 되었어요.


그러니 국민연금 같은 장기간 투자할 수 있는 ‘국내 저축액’을 확보하게 되면, 정부 입장에서는 얼마나 유용하겠어요. 외국 차관은 물론 국내에서도 빚문서인 국채발행을 줄일 수 있어요. 그렇게 알뜰하게 모인 돈으로 국내 인프라에 투자하고, 경제가 성장해서 금융시장이 발전하고 세금이 많이 걷히면 복지 서비스로 돌려주면 돼요. 당시에는 이런 선순환을 ‘내자동원(內資動員)’이라는 네 글자로 불렀어요. 바로 ‘국내에서 자본을 동원한다’라는 뜻이에요. 복지 역할만큼이나 강제 저축 성격 또한 매력적이었던 거예요. 


지금의 국민연금은 OECD 기준 세 번째로 큰 연기금이에요. 900조 원 넘는 금액이 쌓인 국내 거대 자본으로서 사회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답니다. 이렇게 많은 돈이 완전히 사라지고 말 거라니, 잘 믿기지 않을 만큼 말이에요. 그래서 국민연금기금이 소진되면 복지 뿐 아니라 자본시장에도 큰 변화가 일어나게 됩니다.


시행 연기됐던 국민연금,

1986~1988년부터 수금(?) 시작 

처음 논의되었을 당시엔 재정 부족으로 미뤘던 국민연금 도입, 10년이 지나자 실제 필요성이 누적되며 이제는 정말로 시행해야 할 때가 찾아왔어요. 핵가족화와 노인 부양 문제, 사회 고령화 문제는 이미 1970년대 후반부터 우리나라의 주요 사회 이슈로 떠올라 있었거든요.


1986년, <국민복지연금법>은 <국민연금법>으로 개정되며 민주화 직후인 1988년부터 제한적으로 적용되기 시작했어요. 10인 이상 재직하는 사업장의 근로자부터 적용했고, 연금보험료 요율은 첫해 월 근로소득의 3%에서 5년 간격으로 3%씩 상향해 10년 후 최종적으로 9%가 되도록 했어요. 이 요율은 아직까지도 변함이 없어요. 바로 이 요율 인상이 2024~2025년 연금개혁안의 핵심 중 하나죠.


신장개업!

뭐든지 처음에는 후하게 줄 수밖에 없어

사실 모든 제도는 맨 처음 도입할 때 가장 거부감과 저항이 크게 나타나요. 노후 부양은 당연히 가족이, 그 중에서도 장남 부부가 해야 한다는 문화가 강력했던 시기였으니까요. 1980년대에는 부양받는 사람도, 부양받을 사람도 당연히 주고받을 것을 기대했어요. 이런 사회 분위기 속에서 국가가 현재 나의 월급에서 일정 부분을 가져가 먼 미래에 돌려준다는 제도는 ‘필요한 건 알겠는데 그게 내 지갑에서 나가면 싫은’ 일이었어요.


그래서 국민연금제도는 홍보도 할 겸 조금 후한 혜택을 약속합니다. ‘이 정도라면… 속는셈 치고 보험료 내지 뭐.’ 하는 마음이 들 정도로요. 그래서 추후 받을 수 있는 급여수준과 보험료 부담 수준이 맞지 않아요. 적게 내고, 낸 것보다 훨씬 많이 받거든요. 물론, 한창 고도성장중인 경제의 고금리 환경 또한 반영되어 있었고요.


경제활동인구가 조금 더 내서 노후의 기본적인 생활에 필요한 빈 부분을 어느 정도 채워주는 것은 전 세계 노후부양기금에서 흔히 찾아볼 수 있는 자연스러운 구조예요. 우리도 이제껏 그래왔고요. 하지만 그 수준이 과도하게 벌어지면 상황이 달라져요. 인구구조변화로 우리는 지속가능성 자체가 의심스러운 상황에 처하게 되었는데, 이렇게까지 저출생·고령화가 심해질지 예측하지 못했던 거예요.


게다가 이때 설계한 국민연금제도에는 같은 세대 안에서도 겪어야 하는 형평성 문제가 있었어요. 당시 10인 이상 사업장에서 일하는 근로자는 사실 우리 사회에서도 중간층 이상에 속하는 사람들이었어요. 그래서 ‘원래 잘 살던 사람’이 ‘노후보장까지 받는’ 불평등한 제도가 되어버렸어요. 


그렇다고 우리나라 일자리 대부분을 차지하던 5인 미만 사업장까지 제도를 확대하려니 그 사람들의 소득 수준은 도저히 보험료를 감당할 수 없거나, 소득의 9%를 적립한다고 해도 나중에 의미 있는 연금으로 돌려주기 힘든 수준이었어요. 자영업자가 포함되지 않는 것은 당연했고, 심지어 농어촌지역도 제도에서 배제됐어요. 이게 지금 심각한 우리나라 노후빈곤의 원인 중 하나예요.


그래도 현실적으로 생각해보면, 없던 제도를 만든 것만 해도 크게 잘한 일이에요. 하지만 오래도록 박수를 받으려면 시대에 뒤떨어지지 않게 업데이트가 필요해요. 지금 국민연금제도의 문제는 업데이트를 거의 하지 않았다는 사실에 있어요.


1997년 외환위기가 지나면서 

뭐든 이대로는 안된다고 생각했어

옛날 사람: 모든 상황이 변한 건… 우리나라가 망해버린 때였어. 1997년에 휩쓸고 간 외환위기 말이야. 😔

어피티: 국민연금을 지급할 수 없게 되었나요?

옛날 사람: 그렇게 단순한 문제가 아니었어. 자고 일어나면 대기업이 하나씩 망해나갔어. 사람들은 하루아침에 실직했고 말야. 함께 살지 못하는 가족이 급증했고, 가정이 완전히 해체됐어. 이 상황에서 가족의 노후 부양? 꿈 같은 얘기였지. 

어피티: 아…. 😢

옛날 사람: 그러자 공공 사회보장이, 국민연금이 정말로 필요하겠구나 처음으로 느껴버린 거야.


1997년 외환위기 직후, 한국 사회는 대량 실업과 구조조정으로 사회안전망의 부재를 절실히 체감했어요. 국민연금을 포함해 모든 형태의 공적 연금에 사회적 관심이 쏠리기 시작했죠. 진지하게 들여다보니 희박한 지속가능성을 이대로 두고볼 수 없었던 거예요. 게다가 방치해 두었던 만큼 기금 운용에도 투명성이 부족했고, 부정부패가 아직 심하던 때라 정치적 개입도 의심됐죠. 


결국 1998년 1차 개혁을 통해 소득대체율을 낮추는 구조조정을 시행했어요. 연금 가입기간 평균소득의 70%를 보장해 준다고 했던 것을, 60%까지 10% 낮췄어요. 사실 놀랄 만큼 큰 변화는 아니었어요. 그래도 ‘처음 깎는’ 거였으니 이보다 더 낮추기는 어려웠을 거예요. 또, 너무 낮춰버리면 저소득 가입자는 최저생계비도 받지 못할 수 있었으니까요.


이것 말고도 그간 배제돼왔던 농어촌지역이나 자영업자 관련 문제가 있었고, 당시에는 제도적으로도 문화적으로도 노동시장 진입을 사실상 금지시켰던 여성의 노후에 관한 문제도 해결해야 했죠. 특히 평생 ‘4대보험이 되는’ 직장과 정규소득을 갖지 못하고 호주의 배우자로만 살았던 여성노인의 공적연금 수령은 까다로운 문제였어요.


변화는 조금씩만 주되

5년에 한 번은 업데이트 약속

1차 개혁, 상당한 논쟁 끝에 국민연금제도개선기획단에서는 다음과 같은 해결책을 제시했어요.


  • 국민연금 낼 수 있는 사람들은 국민연금을 내고 받도록 하고, 저소득층이나 다른 배제되는 사람들을 위해 특정 나이가 넘으면 무조건 받을 수 있는 기초노령연금을 도입하도록 해요
  • 연금 급여 수준(소득대체율)을 현행 40년 가입 70% 보장 수준에서 40년 가입 40% 수준으로 하향 조정하고, 연금보험료율은 5년에 한 번씩 조정하도록 해요
  • 연금수급연령도 현행 60살부터 받는 것에서 2013년부터는 5년에 1살씩 올리도록 해요

하지만 보건복지부는 국민연금제도개선기획단의 최종안에서 결국 기초노령연금 도입안을 빼버렸어요. 소득대체율도 40%에서 크게 오른 60%로 변경되었어요. 하지만 그때는 이또한 괜찮았어요. 왜냐하면 5년마다 개혁하기로 약속했었거든요. 한번에 70%를 35%로 깎을 순 없잖아요. 5년마다 조금씩 조정하는 편이 훨씬 안정적이에요.


정부가 국회와 함께 했던 1998년의 주기적 연금개혁 약속을 ‘재정추계 5년 주기화’로 불러요. <국민연금법> 제4조에 따라 정부는 국민연금의 재정 상태를 5년마다 추계하고, 재정 불균형이 우려될 경우 제도 개선을 국회에 보고하고 논의하도록 정한 거죠.


난리법석이었던 2차 개혁이 끝나자 

정치인들은 용기를 잃고 마는데…

어피티: 5년마다 개혁하기로 약속했다면… 2003년에 실제로 개혁이 되었나요?

옛날 사람: 보건복지부가 처음으로 국민연금 재정추계를 발표하기는 했지. 😇

어피티: 그래서 어떻게 되었나요? 

옛날 사람: 공식적으로 2047년쯤 되면 그 많은 연금 적립금이 고갈될 수도 있다는 통계가 나왔지. 논란이 됐고 국정감사에서도 난리였단 말이야.

어피티: 😊

옛날 사람: 그래서 정부가 연금개혁을 하려고 했거든? 그런데 나라가 뒤집어졌어…. 너무 난리가 났던 나머지 이후로는 그 어떤 정부도 연금개혁을 적극적으로 하려들지 않았고. 


1차개혁 때 했던 약속에 따라, 2003년 보건복지부가 국민연금 재정추계를 처음으로 발표했어요. 연금 고갈 논란이 수면 위로 떠올랐죠. 당시 전망에 따르면, 2047년경 국민연금 기금이 소진될 것이라는 계산이 나왔어요. 그러자 2004년 국회 국정감사에서도 국민연금의 지속 가능성이 문제로 제기되었고, 개혁 필요성이 공식적으로 논의되기 시작했어요.


당시 정부의 보건복지부 장관 입장을 보면, 현재에도 유효한 문제의식이 그대로 드러나요. 지금 나오는 이야기와 정확히 같은 이야기가 나오고 있음을 느낄 수 있어요.

 🥀

1.

김근태 보건복지부 장관은 24일 … “국민연금 제도의 핵심은 재정안정”이라며 “좀 더 많이 내고 적게 받는 것을 감수해야 한다”고 말했다. … 이는 ‘급여수준만 낮추고 보험료율은 동결하자’는 열린우리당측 입장에 대해 급여수준을 낮추고 보험료율은 올리는 정부안을 받아줄 것을 거듭 밝힌 것이어서 주목된다. … 김 장관은 “국민연금 문제는 현세대가 부담을 져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다음 세대 부담이 크다”며 “곧 고령화사회가 닥치므로 지금 해결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강조했다. 

(<김 복지 “국민연금,더내고 덜받기 감수해야”> 2005.3.24. 머니투데이)


2.

오는 2008년 이면 지난 20년동안 보험료를 냈던 3백만 명이 연금을 받는 이른바 ‘꿈의 복지’ 시대의 막이 오릅니다. 그러나 처음 정부가 약속했던 그 액수를 그대로 받을수 있다고 생각하는 국민은 거의 없습니다. 국민연금 재정은 정부 계산으로도 오는 2047년이면 바닥나고 파탄 시기가 더 앞당겨 질 지도 모릅니다. 이런 가운데 새로 취임한 유시민 복지부 장관은 국민연금을 개혁하겠다는 의지를 밝혔습니다.


[유시민/보건복지부 장관 (지난 7일 유시민 장관 인사청문회) : 현 세대가 자기 부모님 세대는 못 본 척하고 자신들은 적립한 것보다 더 많은 돈을 찾아가도록 해 놓아서… 정당하다고 보기 어려운 이 기득권이 쌓여가는 것 만큼은 현 시점에서 중지시켜야 하지 않겠느냐.] 

(<‘파탄 앞둔 시한폭탄’ 위기의 국민연금> 2006. 02. 13.SBS)

2005년, 정부가 개혁안을 발표했어요. 아예 연금의 구조를 바꾸어야 한다는 전문가 결론이 나와서 대대적인 손질을 하려고 했어요. 당시 개혁안의 핵심 내용은 소득대체율을 더 낮추고, 연금 수급 개시 연령을 높이는 것이었어요. 하지만 반발이 커지면서 국회 논의가 굉장히 지연되었고, 개혁안은 해당 정부가 임기를 마칠 무렵인 2007년에서야 본격적으로 추진되었어요.


그때 얼마나 논란이 컸었나 하면, 두 보건복지부장관 모두 국민연금 개혁이 직간접적인 원인이 되어 장관 자리에서 물러났어요. 일각에서는 여당이었던 열린우리당이 연금개혁을 하느라 현 장노년층인 당시 중장년층 유권자의 민심을 잃어 대선에서 졌다는 이야기까지 나와요. 


당시 야당이었던 한나라당의 반발도 극심했어요. ‘연금은 국민의 미래인데 정부가 국민의 미래를 포기했다’는 비판까지 했거든요. 하지만 기금 고갈이라는 문제를 끝까지 외면할 수는 없었어요. 대선을 앞두고 있어 국정을 책임질 수 있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도 중요했죠. 정부안에서는 50%로 제시되었던 소득대체율 목표를 40%로 더 낮추는 대신 기초노령연금을 도입해 사각지대를 해소하는 것으로 정부와 여당, 야당은 정치적 합의를 이루었어요. 실제로 합의를 이끌어내는 모습에 표심은 많이 움직였어요.


개혁을 시도하는 쪽이 정치적 희생을 크게 치렀다 보니 2008년 시행된 개혁안이 2025년 현재까지 ‘실제 시행 기준’ 마지막 개혁안이에요. 1차 개혁 때 했던 약속은 이후 지켜지지 않은 셈이에요.


당시 개혁안의 핵심 내용을 살펴볼게요. 

  • 소득대체율을 기존 60%에서 2028년 40%까지 단계적으로 낮추도록 개정했어요
  • 연금 수령 개시 연령은 기존 만60세에서 2033년 만65세까지 단계적으로 올리도록 개정했어요
  • 저소득층과 국민연금의 사각지대에 있는 고령층을 보호하기 위해 기초노령연금을 신설했고, 2008년 바로 시행하기 시작했어요

 

왜 2008년 이후 20년 가까이 

본격적인 연금개혁이 없었을까?

5년마다 한 번씩 업데이트를 하기로 했던 약속 때문에 2008년 이후에도 2024년까지 국민연금 개혁 논의는 총 세 차례 본격적으로 진행되었어요. 하지만 논의만 되었을 뿐, 모두 실제 개정으로 이어지지 못했어요. 논란이 되고 있는 이번 개혁안도 만약 한덕수 대통령권한대행이 대통령재의요구권(거부권)을 행사하면 시행되지 않을 거예요. 


아래에 연도별 논의 내용과 실제 시행까지 가지 못했던 이유를 간단히 정리해드릴게요.


2013년 (박근혜 정부)

  • 국민연금과 기초노령연금을 통합하거나 연계하려는 논의를 나누었어요.
  • 기초노령연금 월 20만 원을 모든 노인에게 보편 지급하려던 대선 공약을 현실적으로 조정하려고 했어요.
  • 국민연금 소득대체율을 40%로 낮추는 목표를 다시 50%로 복원하려는 논쟁이 있었어요.

하지만 이 모든 논의는 박근혜 전 대통령의 대선공약이었던 기초노령연금 보편 지급 약속이 지켜지지 않으면서 정치적 신뢰가 실종돼 동력이 사라졌어요. 공무원연금 개혁 문제까지 겹쳐, 아무도 손댈 수 없는 뜨거운 돌멩이로 취급됐어요.


2018년 (문재인 정부)

우선 보건복지부가 다음 4가지 개혁 시나리오 발표를 구상해 발표했어요.

① 보험료율 동결 + 급여 축소

② 보험료율 인상 + 급여 확대

③ 보험료율·급여 동시 인상

④ 공적연금 + 사적연금 병행 (다층화)


그러면서 기초노령연금을 월 30만 원 지급하는 것으로 인상했어요. 국민연금 관련해서는 대통령 직속 국민연금개혁위원회를 구성하려고 했죠. 하지만 정부는 시나리오만 제시하고 4가지 안 중 어떤 안을 시행할 것인지는 국회에서 결정하도록 했어요. 여당과 야당은 총선을 앞두고 모두 적극적이지 못한 태도를 보였어요. 특히 여당 내부에서도 분열이 일어나면서 논의가 진전되지 못하다가 코로나19 팬데믹이 발생해 모든 이슈가 묻혀버렸어요.


2023~2024년 (윤석열 정부)

2023년 10월, 정부가 국민연금 제5차 재정추계 결과를 발표했어요. 2015년부터 본격화된 저출생·고령화 시나리오가 보다 심각해져, 기금고갈시점이 2055년으로 임박했다는 결과가 나왔어요. 정부는 보험료율을 1986~1988년 정했던 9%에서 15%로 인상하는 안을 만들었고, 연금 수급 개시 연령도 조정하려고 했어요. 


그런데 이번에도 연금개혁 문제는 정치권 이슈가 되었어요. 2024년 4월 총선을 앞두고 정치권은 연금개혁을 회피하기 시작했어요. 정부는 국민연금개혁안을 어떻게 할 것인지 여부는 다시금 국회로 넘겼어요. 그 과정에서 정부의 일방적인 개혁안 내용 변경도 있어 문제가 되었어요. 


지난 3월, 18년 만의 연금개혁안이 여야 합의로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것에 언론은 ‘협치가 드디어 작동했다’며 긍정적인 보도를 내보냈어요. 내용은 둘째치고 그간 ‘연금 개혁처럼 골치아프고 표가 되지 않는 문제는 다음 정권에 넘기자’는 분위기를 2008년 이후 처음으로 깬 것이기 때문이에요.


2025년 연금개혁안, 

핵심 내용 소개해요

어피티: 하지만 청년들에게는 내용도 큰 문제란 말이에요. 😠

옛날 사람: 그렇다면 이슈를 한 번 주도해 봐. ‘우리는 이렇게 했으면 좋겠다’고 주장을 관철시키란 말이야. 라떼는~ 실력행사를 했어~ ☕

어피티: (얄미워)


이번 연금개혁안은 청년과 그 이하 세대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조금 더 자세하게 정리를 해볼게요. 우선 2023년 10월에 처음 제출된 보건복지부안을 소개해요.


  1. 보험료율은 모수개혁을 통해 인상
  • 모수개혁은 연금의 틀은 그대로 두고 그 안에서 조정하는 방법
  • 현행 9% → 15%까지 단계적 인상 제안
  • 세대별로 차등 요율 상승(50대는 매년 1%p, 40대는 0.5%p, 30대는 0.33%p, 20대는 0.25%p)을 적용하기로 함
  • 하지만 시기·속도는 국회 판단에 맡김
  • 2025년 3월 여야 합의로 전 세대 일괄 매년 0.5%p 올리기로 함

  1. 소득대체율은 현행 40% 목표로 유지
  • 추가 인상은 없으며, 일부 여야 의원 및 전문가들은 45~50%까지 복원을 제안했지만, 정부는 재정 부담 이유로 유지 선택
  • 2025년 3월 여야 합의로 43%까지 인상

  1. 연금 수급 개시 연령 상향 검토
  • 현행 63세이며, 2033년부터 65세로 예정되어 있던 연금 수급 시기를 67세까지 상향해도 되는지 가능성을 검토

  1. 자동조정장치 도입 제안
  • 출산율과 기대수명 변화 등 국민연금의 재정 자체에 영향을 주는 변수에 따라 급여·보험료를 자동조정하도록 해 정치적 논란 없이 제도 지속 가능성을 확보(도입 필요성은 인정되나, 실제 어떻게 할 건지 구체적인 설계는 연구 필요)

  1. 기초노령연금 인상 논의와 연계
  • 2025년 기준 소득 하위 70% 노인이 받는 월 최대 30만 원 받는 기초노령연금을 소득 하위 50% 노인에게 월 최대 40만 원 지급하는 것으로 인상하기로 대선에서 공약함
  • 국민연금과 ‘노후소득 보장 2층 구조’로 연계되지만, 재정은 분리해서 운영하는 것으로 제안

옛날 사람: 이중에서 여야 합의 본 게 뭐랑 뭔데?

어피티: 보험료율이 13%로 오르는 거랑, 소득대체율 최종 목표가 40%에서 43%로 높아지는 거요. 자동조정장치는 따로 이야기를 하쟤요.

옛날 사람: 그건 구체적인 계산을 정교하게 해야지, 엣헴. 대충 뚝딱 해버리면 안 되지. 그런데 왜 그렇게 화가 났는데?

어피티: 인구절벽이 생겨서 앞으로 보험료 낼 사람이 없다니까요? 더 내는 건 그렇다고 치고 왜 더 받게 됐냐는 거죠. 😡 그것도 이제껏 더 안 냈던 세대부터 당장 받잖아요. 나중에 그만큼 우리도 받는다고 하지만, 그게 불가능하다니까요. 왜 여기에 답을 안 해주느냐고요.


국민연금, 청년 세대는 

‘진짜 질문’에 답해주기를 바라요

원론적으로 말하자면, 연금 같은 사회보장제도는 본질적으로 윗세대가 아랫세대의 도움을 얻도록 되어 있어요. 그렇지 않으면 사회복지는 아예 불가능해요. 핵심 문제는 지금의 청년세대가 과연 미래의 납부자가 될 아랫세대의 도움을 얼마나 받을 수 있을지 불확실하다는 사실이에요.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가장 심각한 저출생·고령화 사회로, 국민연금의 지속 가능성이 흔들리고 있거든요. 2000년 1.48명이었던 합계출산율은 2023년 0.72명으로 OECD 최저를 기록했어요. 앞으로도 크게 개선되리란 전망은 어려워요. 반면 만65세 고령인구는 2050년 전체 인구의 38%, 2070년에는 절반에 가까운 46%가 될 거예요. 지금의 청년세대도 해당 ‘고령인구’에 들어가요. 받을 사람만 잔뜩 늘어나는 미래가 기다리고 있는 것이죠.


이번 연금개혁에서는 국가가 의무적으로 연금을 지급하겠다는 문구가 법안에 들어갔어요. 하지만 청년세대는 현실 앞에서 말과 글은 신뢰하기 부족하다고 주장하고 있어요. 


2024년에 20대인 청년은 기금 고갈 예상 시점인 2055년에 50대가 돼요. 국민연금을 수령하려면 아직 20년 가까이 남았는데 기금이 바닥날 수도 있어요. 물론 많은 국가가 지금 우리나라처럼 쌓아두고 나눠주는 것이 아니라 그때그때 필요한 만큼 내서 그때그때 받는 ‘부과식’을 택하고 있어요. 문제는 ‘그때’ 낼 사람은 적고 받을 사람은 많아도 너무 많다는 거예요. 더군다나 세대별로 차등해서 내기로 했던 요율 상승분도 전 세대 일괄 매년 0.5%p씩 올리기로 했죠.


옛날 사람: 우리나라 노후빈곤율이 너무 심한 것도 생각을 좀 해 줘야지.

어피티: 청년들도 어르신들의 문제 심각한 것 알아요. 그런데 이미 재정위기라는 국민연금으로 그걸 해결하려는 게 맞지 않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고요.

옛날 사람: 🤔…

어피티: 만약 앞으로 청년세대가 국민연금을 아예 받지 못하거나 현저하게 적게 받게 되면요, 지금 내는 보험료는 보험료가 아니라 마치 세금이 되어버려요.

옛날 사람: 사실 이런 종류의 사회보험이 준세금 성격이 있긴 해. 그게 사회안전망의 재원인걸.

어피티: 그건 그렇지만. 😒


국민연금제도는 반드시 필요해요. 모두가 개인적인 역량을 이용해 노후 준비에 성공하기는 불가능한 일이에요. 국민연금의 성격 중에서는 강력한 세대 내 재분배가 있어서, 같은 세대에서 부유한 납부자가 상대적으로 빈곤한 납부자의 생활을 부조하는 효과를 내요. 사회 양극화를 효과적으로 완화하죠. 그래서 사실 국민연금은 19세기 독일에서 처음 탄생할 때부터, ‘이것만 있으면 노후 준비 끝!’이라는 개념은 아니었어요. 사회가 힘을 모아서 아주 기본만 해주거나 개인의 준비에 적지 않은 도움을 더해주겠다는 개념에 가까웠어요. 금융문해력이 강조되는 지금은 ‘삼층 연금’이라는 구체적인 방법론도 널리 퍼져 있고요. 


하지만 우리나라는 모든 것이 너무 빨리 변했어요. 그래서 국민연금이 아니고서는 어떠한 도움도 기대하기 힘든 사람이 많아요. 그러니 지금 국민연금 소득대체율을 더 올려야 한다는 주장 또한 이유 있는 주장이죠. 게다가 모든 시대는 그 나름의 불공평함이 있어요. 특정 시대마다 겪을 수밖에 없는 문제점이 있으니까요. 지금 시대의 문제점 중 하나는 인구절벽이에요. 젊은 세대일수록 인구절벽에 따르는 부담을 더 많이 감당하게 되겠죠. 하지만 부담을 완화할 방법은 분명히 존재해요. 제도의 근본적인 지속가능성에 대해 보다 제대로 된 설명과 제대로 된 대안이 절실해요.


📚 <라떼극장>에 참고한 자료 

  • 김용하. (1998). 국민연금제도 도입 10년의 평가와 향후 발전방향 : 제 1 부 국민연금제도의 10년 평가와 선진국의 경험 ; 한국형 국민연금제도의 전개와 발전방향 – 국민연금 도입 10년을 평가하며 -. 한국사회보장학회 정기학술발표논문집, 1998(2), 9-43. 
  • 배준호. (2015). 국민연금 도입 목적: 내자동원설의 비관적 검토. 연금연구, 5(2), 1-41.
  • 주은선, 정해식. (2019). 2018년~2019년 한국의 연금개혁 논쟁과 연금정치: 계층, 세대담론의 시작과 사회적 대화. 비판사회정책, 64(0), 241-286.
  • 남보영, 이소민. (2024). 세대 간 불평등 인식과 국민연금・기초연금 복지태도 연구. 한국사회정책, 31(4), 39-60.
  • 성혜영, 한정림. (2024). 국민연금의 재정안정을 위한 자동조정장치 도입 방안 및 효과. 사회보장연구, 40(3), 2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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