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정인
요즘에는 주 40시간, 1일 8시간(점심시간 미포함) 근무가 당연한 일이죠? 사실 이렇게 ‘짧게’ 일하게 된 지 얼마 안 됐습니다. 주 5일 근무제(이하 주 5일제)의 공공기관 시범운영은 2004년부터였고, 민간기업에서 강제로 시행한 건 그 이후의 일이거든요.
2006년까지만 해도 주 5일제로 일하는 기업은 전체 기업의 12%에 불과했습니다. 학교나 5인~19인의 소규모 회사에서 주 5일제를 도입한 건 2011년부터였죠.
🎬 Scene #1.
옛날 고등학생: 앗싸 토요일이다! 오늘은 오전 수업만 받으면 집에 간다!
요즘 사람: 세상에… 공부 너무 열심히 하는 거 아니에요?!
옛날 회사원: 오예 토요일이다! 오전 근무만 하면 퇴근이라고요!
요즘 사람: 토요일에도 출근을…? 주말근무인가요?! 그 회사 주말근무 수당은 나오나요?!
옛날 사람: 뭘 모르는 사람이네~ 라떼는 말이야~ 주 5일제 도입으로 전국이 발칵 뒤집혔어요!
2001년, 우리나라는 주 5일제 도입을 앞두고 치열한 갈등을 벌였습니다. 지금 돌아보면 아무 문제 없이 잘 정착한 제도인 것 같은데, 예전에는 왜 그렇게 반대가 심했던 걸까요? 그리고 주 5일제 시행 이후에 우리나라 경제는 어떤 부분이 달라졌을까요?
주 5일제에 관한 tmi. 오늘 라떼극장의 주제입니다.
개도국에서
선진국으로 변화할 때
🎬 Scene #2.
옛날 사장: 싼값에 불만 없이 오래 일해주는 사람♪ 그런 사람 뽑길 원하네♪
어피티: 사장님은 왜 오래 일하는 사람을 뽑고 싶으세요?
옛날 사장: 물건 10개를 파는 거랑 100개를 파는 거랑 어느 편이 이득이죠?
어피티: 당연히 100개요.
옛날 사장: 그럼, 1시간에 100개를 파는 거랑 하루에 100개를 하는 것 둘 중에서는요?
어피티: 1시간에 100개 파는 게 이득이죠.
옛날 사장: 1시간에 100개를 팔려면 하루 동안 팔아야 할 물건 2,400개가 필요하겠죠? 그럼 공장을 열심히 돌려야 하지 않겠어요?
어피티: 그니까 공장에서 물건을 빨리, 많이 생산해야 돈을 많이 벌 수 있다는 거죠?
옛날 사장: 그렇죠. 그런데 공장이 알아서 돌아가진 않잖아요. 사람이 있어야 해요. 이왕이면 인건비가 저렴하고 오래 일할 수 있는 사람이 좋죠.
제조업 중심의 개발도상국들은 대부분 이런 환경이었습니다. 값싼 물건을 많이 팔아 이익을 남기는, 박리다매 전략을 통해 돈을 벌어야 했거든요. 기술력을 내세워서 적은 인력으로 큰 부가가치를 만들어내는 선진국 방식과는 아주 달랐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주 5일제 이야기가 처음 나왔던 건 2001년 즈음입니다. 당시 정치계에서는 우리나라 경제가 개발도상국 방식에서 선진국 방식으로 전환되어야 한다는 얘기가 나오기 시작했어요. 사람들이 잘 놀고 잘 쉬어야 경제의 도약이 있다면서, 기술력과 창의력이 중요한 첨단 경제로 넘어가자는 주장이었죠.
경영계 생각은
다릅니다만
우리나라는 중소기업 제조업 중심 국가입니다. 2018년 말 기준으로 기업의 99%가 중소기업이고, 근로자의 83%가 중소기업에 다니고, 중소기업의 19.6%가 제조업이에요. 경영계가 중소기업 사장님의 이해관계를 대변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주 5일제는 ‘절대 반대’를 외칠 만한 큰 변화였습니다.
실제로 2007년, 중소기업의 85%가 주 5일 근무제 때문에 생산성이 줄어들었다고 답했습니다. 근무시간이 줄어들면 물건을 못 만드는 제조업뿐 아니라 판매·유통도 손해를 보는 건 마찬가지였습니다.
판매사원이 토요일에 출근하지 않으면 매출이 줄어들 테니까요.
하지만 우리나라의 평균 노동시간은 2017년 기준으로 세계에서 세 번째로 높은 데다, 그렇게 오래 일하고도 생산성은 OECD 가입국 중 최하위권이었습니다.
사람의 생명과 직결된 과학적인 연구결과도 나왔습니다. 초과근무가 줄어들수록 시간당 산업재해가 줄고 하루에 11시간 이상 일하면 심근경색 위험이 2.9배, 하루 8시간 노동 기준으로 일주일에 5시간 이상 초과근무를 하면 5년 이내 사망할 가능성이 2배라는 연구결과가 나왔거든요.
문제는
돈, 돈, 돈
🎬 Scene #3.
옛날 경영계: 누가 그걸 몰라요? 문제는 돈이라니까요.
옛날 노동계: 사장님이 돈을 좀 덜 가져가고, 해고 안 하면 되잖아요!
옛날 경영계: 순진한 소리. 웬만한 월급쟁이들보다 못 버는 사장도 많아요.
옛날 노동계: 그 정도로 못 벌면 그냥 사장님 그만두고 취직하면 되잖아요?
옛날 경영계: 우리나라 자영업자들이 다들 하고 싶어서 창업한 줄 알아요? 회사에서 잘리고 취직이 안 돼서 자영업 시작한 사장님이 더 많거든요?
이렇게 주 5일제를 두고 결론 없는 토론이 반복됐습니다. 굉장히 익숙한 풍경이죠? 주 52시간제를 도입할 때도 똑같은 의견 대립이 있었답니다.
하지만 주 5일제를 도입하는 문제가 더 심각하긴 했습니다. 야간근무나 추가연장 근무를 따지는 게 아니라, 휴일의 개념 자체를 바꿔야 했으니까요. 생활 전반적으로 사람들의 우려가 아주 클 수밖에 없었습니다. 거의 ‘주말 셧다운’ 수준으로 다가오는 충격이었죠. 이런 식으로 말이죠.
🎬 Scene #4.
옛날 사람1: 주 5일만 근무하면, 토요일에 동사무소랑 은행이랑 다 안 연다고요?
옛날 사람2: 설마 119나 경찰도 토요일에 쉬어요?
옛날 사람3: 토요일에 애들이 학교 안 가면, 학력 저하 심각해지는 거 아닌가요?
옛날 사람4: 청소년이 갈 곳이 없어 비행 청소년이 늘어날 수도 있어! 범죄 늘어나는 거 봐요.
옛날 사람5: 토요일에 출근 안 하면, 어디 놀러가야 하잖아. 술이나 더 마시겠죠. 돈 낭비야!
옛날 사람6: 쓸데없이 놀러다니는 사람들만 늘어서 교통사고 많아지겠네요!
결론은
변화의 성공
결론적으로 주 5일제는 성공했습니다. 일단 ‘토요일은 휴일’이라는 인식이 정착됐습니다. 주 5일제가 시행된 지 10년 남짓 됐을 뿐인데 모두들 토요일에 일하는 건 평범하지 않다고 생각하게 됐죠.
경제성장률에도 타격이 없었습니다. 오히려 주 5일제 시행 이후 4년간 경제성장률은 3%대에서 4~5%대로 높아졌습니다. 1인당 노동생산성도 1.5% 증가했고, 주말 레저 산업 등이 발달해 취업자는 약 270만 명 가까이 늘어났죠.
동사무소 등 민원 공무원의 주 5일제는 다른 회사들도 모두 주 5일만 근무함으로써 문제가 자연스럽게 해결됐습니다. 전자정부시스템이 발전하기도 했고요. 은행의 주 5일제도 마찬가지로, ATM과 인터넷뱅킹 등으로 보완했습니다.
주 5일제 때문에 학생들의 학력저하가 일어나지 않았고, 토요일에 일하던 사람들이 갑자기 놀면서 생긴 교통사고 증가 등의 과도기적 문제는 시간이 지나면서 안정됐습니다.
주 5일제 도입 이후 우리나라 사람들의 행동 변화를 연구한 논문 중에서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남는 시간을 이용해 자기계발을 하는 사람이 많아졌다는 재미있는 결과도 있었답니다. 일본은 주 5일제를 도입한 이후에 여기저기 놀러다니고 재충전하는 여가시간이 늘어났는데 말이죠.
더 나은 변화는
우리의 몫
우리나라가 세계적으로 유명한 과로사회인 만큼 노동시간을 줄이려는 노력은 합리적이고 타당하다는 의견이 많습니다. 근로시간이 줄어들 때마다 산업재해율이 낮아지고 노동생산성은 높아진다는 사실은 연구 결과로 증명되어 있거든요.
앞으로도 사회는 계속 변화해갈 겁니다. 다만 과도기에 발생하는 문제를 어떻게 줄일 것인지, 구조적인 이유로 불가피하게 나타나는 단기적 피해가 과도한 건 아닌지, 제도를 받아들이는 사람이 어떻게 긍정적인 방향으로 적용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은 항상 필요해보입니다.
📚 <라떼극장>에 참고한 자료
- 박철성, 「주 5일 근무제도 실시의 노동시장 외적 효과」(2014), 노동경제논집 제37권 제4호, 한국노동경제학회
- 김태호·김형준, 「경영관리시스템의 안전적인 운영을 위한 준 5일 근무제에 따른 원가변화 분석과 업종별 생산성 향상 대책」(2004), 대한안전경영과학회지 제6권 제3호, 안전경영과학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