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업_TMI.zip

글, 정인

독자 여러분이 궁금해하셨던 경제·금융 관련 tmi. 이번 주제는 ‘조선업’입니다. 

“우리나라 경제에 조선과 해운업이 중요하다는데, 왜죠?”

the 독자: 중국을 제치고, 다시 우리나라 조선업계의 수주액이 높아지고 있다면서요?

어피티: 맞아요. 연초부터 들려온 반가운 소식이었죠. 수출도 회복하면서 해운업계에서는 물건을 실을 컨테이너가 부족할 정도로 호황이랍니다

the 독자: 그런데 해운업과 조선업의 차이가 정확히 뭔가요?

어피티: 해운은 ‘해상운송’의 줄임말이에요. 우리나라에서 물건을 수출할 때는 보통 부산항에 가서 커다란 컨테이너선에 싣고 전 세계 각국으로 운송한답니다. 조선은 ‘물건을 운송할 컨테이너선 등의 배를 만드는 산업’이죠. 수출을 하려면 해운은 필수인데, 해운 비용을 아끼려면 직접 배를 만들어야 하니까 같이 움직인다고 볼 수 있어요.

the 독자: 둘다 규모가 엄청날 것 같은데, 두 산업에서 우리나라가 다 잘 나갔다는 거죠?

어피티: 2016년까지만 해도 한진해운이 세계 1위 해운사였답니다. 부산항은 세계 5~7위 안에 드는 항구였고요. 

the 독자: 대체 언제부터 이렇게 잘 나간 건가요? 

어피티: 일단 수출을 많이 해야 해운업이 잘 나가고, 배를 지을 조선소가 있어야 조선업이 발전할 수 있겠죠? 1970년대, 불가능에 가까운 두 가지 미션을 우리나라는 돈 한 푼 없이 해냅니다.

the 독자: (흥미진진)

*우리나라 조선업계 소식,
자세히 알아보고 싶다면
지난 머니레터를 확인해보세요! 

tmi 1.
1971년부터 시작된
미션 임파서블

1973년 한국은행이 발행한 500원짜리 지폐

“이게 우리의 거북선이오.

영국의 조선 역사는 1800년대부터라고 알고 있는데

우린 그보다 300년 앞서 철갑선을 만들었소.

쇄국 정책으로 산업화가 늦었지만, 잠재력은 그대로요” 

<‘500원짜리 지폐’로 따낸 투자… 造船최강국 디딤돌이 됐다>
2019.10.30 / 문화일보 / 곽선미 기자

the 독자: 현대건설 고(故) 정주영 회장의 일화를 들은 적이 있어요. 거북선이 그려진 500원짜리 지폐를 들고 영국 바클레이즈 은행장을 찾아가 설득한 끝에 조선소를 세울 초기자금을 받아왔다고요. 현대사에 보기 드문 영웅담처럼 느껴져서 인상적이었어요.

어피티: 고도 성장기에 우리나라 기업인들의 능력은 어마어마했지만, 전설 같은 일화들이 사실인지는 알 수 없습니다. 최고로 가난했던 나라가 30년 만에 조선업처럼 거대한 최첨단 산업에서 세계 1인자가 되다 보니 각종 전설이 설득력을 갖게 되긴 했지만요.

말도 안 되는 성공,
그 뒤의 이야기

1960년대 후반에서 1970년대 초, 전 세계에 대형 컨테이너선과 대형 유조선 건조 붐이 일었습니다. 중동 정세가 불안정해 수에즈 운하가 봉쇄된 게 원인이었죠.

중동에서 나는 원유는 주로 수에즈 운하를 통과해 유럽과 아시아에 도착하곤 했는데, 운하가 막히면 유조선이 몇 배나 되는 거리를 빙 돌아와야 합니다. 

유조선의 이동거리가 길어지면서 배가 자주 다니지 못하자, 원유가 필요할 때 그전만큼 물량을 대기가 어려워졌습니다. 고심하던 국가들은 ‘한 번에 많이 가져오는 편이 좋겠다’라는 결론을 내리게 돼요. 초대형 유조선이 여러 척 필요해진 거죠.

바로 이 시점에 우리나라 정부와 기업은 유조선 산업에 뛰어들기로 결심합니다. 이 타이밍에 초대형 유조선을 만들어서 납품하지 않으면 다시는 이 시장에 진입할 기회가 없겠다 싶었던 거죠.

the 독자: 유조선 제조 시장을 꼭 잡아야 했던 이유가 있었을까요?

어피티: 우리나라도 앞으로 수출로 먹고살아야겠다고 생각했으니까요.

the 독자: 그러니까 수출로 먹고살려면 해운부터 잡아야 하고, 해운을 잡으려면 조선소가 필요하다고 판단한 거군요.

어피티: 맞아요. 일단 어떻게 맨땅에 조선소를 세우고 돈과 기술을 빌려와 선박을 만들어야 할지 고민하기 시작했죠. 특히 막대한 건설 자금이 문제였습니다. 그래서 일본에 제일 먼저 찾아갔어요.

일본과는 과거사도 있고 문화도 비슷한 데다, 같은 동북아시아 경제권이라서 경제적으로도 서로 잘 되는 게 좋습니다. 서양보다는 일본이 우리나라의 요청을 우호적으로 검토할 여지가 크죠.

하지만 예상과 다르게, 일본은 단번에 거절했습니다. 허허벌판인 한국에 비싼 조선소 건설 자금을 투자해봤자 실패할 게 뻔하다고 생각했거든요. 

일본에 거절당한 우리나라는 유럽으로 눈을 돌립니다. 당시 유럽은 조선업 세계 1위 자리를 일본에게 내놓은 직후였습니다. 십여 년 전까지만 해도 전 세계 선박의 40% 이상을 만들다가, 일본에 밀려 10% 전후까지 추락했어요. 

그래서 조선소나 설비, 기자재 등이 운영되지 못하고 놀고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기술자도 대량 해고되어 경제적 충격이 컸죠. 우리나라는 바로 이 부분을 공략합니다.

the 독자: 어차피 남아도는 기자재와 기술자, 돈 줄 테니 사용하게 해달라고 한 거군요?

어피티: 정확해요. 서로의 이해관계가 맞아 떨어졌죠. 워낙 무모했던 사업이라, 우리 입장에선 거의 나라를 걸고 조선소를 짓기 시작했어요. 사람들은 이를 갈고 배우며 해냈습니다. 그렇게 조선소 건설과 선박 건조를 동시에 진행하는 말도 안 되는 일을 성공시켰어요.

조선소 건설은
절박한 과제

the 독자: 그렇게 조선소 건설에 절박했던 이유는 뭔가요?

어피티: 물건을 아무리 잘 만들어도 팔리지 않으면 소용이 없죠. 많이 팔린다고 해도 생산지에서 소비자에게 운반되지 못하면 안 팔린 거나 마찬가지예요. 그래서 내수에서는 물건을 실은 차량이 달릴 수 있는 물류 고속도로가, 수출과 수입에서는 물건을 잔뜩 선적한 대형 화물선이 다닐 수 있는 해운이 중요합니다. 

특히 우리나라처럼 삼면이 바다와 접해 있는 국토를 가졌고, 바다를 통하지 않으면 현실적으로 외국에 나갈 수 없는 나라에선 해운은 그야말로 경제의 기반, 신체로 따지면 혈관이랍니다.

우리나라 수출입 물동량의 99.7%가 해운으로 이뤄진답니다. 원유와 가스 같은 에너지가 바다로 들어오죠. 시야를 전 세계로 넓혀봐도 마찬가지예요. 2019년 기준, 전 세계 교역 물동량의 90%가 해운으로 오갑니다. 

이렇게 수출입의 절대량을 해운에 기대고 있는데, 물건을 배에 실을 때마다 다른 나라 선박을 빌려와야 한다고 생각해보세요. 물건이 많이 팔릴수록 선박 임대료도 많이 나가니까 마진도 줄어들겠죠. 

그러면 빌리는 대신 사는 게 낫지 않을까 싶은데, 그렇지도 않습니다. 최첨단 선박은 정말 비싸거든요. 올해 한국조선해양이 수주한 LNG선 3척은 2,880억 원이나 한답니다. 한 척에 거의 1천억 원 수준이에요. 이 예산이면 서울 전역에 무료로 WiFi를 제공할 수 있어요. 

선박을 많이 사용하는 우리나라가 매번 다른 나라에 1천억 원의 돈을 주고 사올 수는 없었겠죠? 절박하게 조선소를 건설하고, 선박 건조 기술을 익히려던 이유가 여기에 숨겨져 있었습니다. 

tmi 2.
해운업계 1위 한진해운
3천억 원이 없어서 망했다?

the 독자: 그런데 해운업계 1위인 한진해운이 배 세 척 값이 없어서 망했다고요?

어피티: 2016~2017년 일인데요. 세계적인 해운경기 침체와 한진해운의 투자실패가 맞물려서 그만 부도가 나 버렸어요.

the 독자: 세계 1위 업체가 부도가 났으니 그 여파가 엄청났겠네요.

어피티: 그렇죠. 한진해운이 우리나라 화물만 운송하는 게 아니라 전 세계 화물을 운송하기 때문에, 세계적인 물류대란을 불러왔답니다. 그때 한진해운이 운반하던 화물들이 전 세계 어느 항구에도 들어가지 못하고 유령선처럼 바다를 떠도는 모습이 아직도 충격적인 장면으로 남아있어요. 기간산업에 대한 국가의 정책적 개입이 얼마나 중요한지 큰 교훈을 남긴 사태였습니다.

금융위기가 불러온
나비효과

한진해운의 파산을 이해하려면 해운업계의 특성을 알아야 해요. 배는 비싼 만큼 한 번 사면 오래 사용합니다. 이번에 배를 주문한 곳에서 한 달 후에 또 같은 주문을 넣는 일은 드물다는 거예요. 

그래서 한 번 납품을 하고 나면 그 배가 낡거나, 세계 경기가 너무 좋아져서 물동량이 획기적으로 늘어 새 선박이 필요해지기 전까지는 주문이 거의 들어오지 않습니다. 벌어둔 돈으로 살아야 하는 거죠. 

게다가 워낙 큰돈이 들어가는 사업이기 때문에 기업의 부채비율도 다른 산업보다 평균적으로 높습니다.

그런데 2008년에 세계 금융위기가 닥치고 말았습니다. 경기침체가 이어지면서, 기업이 벌어둔 돈을 다 써버릴 때까지 주문이 거의 들어오지 않았어요.

국내 해운업계는 2000년 즈음부터 이럴 때를 대비해 새로운 해양 신사업을 개발하려고 투자를 해왔는데요, 2013년 이후에는 그것도 투자비를 건지지도 못할 만큼 어려워졌습니다. 한진해운도 마찬가지였죠.

한진해운 파산에
뒷말 나오는 이유

그래도 기업의 숨통이 끊어지지 않도록 살려만 놓으면 어떻게든 기지개를 켤 수 있었을 텐데, 당시 정부와 금융 쪽 채권단은 그 부분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어요. 한진해운의 누적결손금이 2조 5천억 원이 넘는 시점에 채권단 관리에 들어갔습니다. 

한진해운이 기업회생 요구사항을 모두 채웠지만 금융당국은 원칙대로 법정관리에 넘겼습니다. 마지막으로 현금 3천억 원 확보를 요구했는데, 한진해운이 그 돈을 마련하는 데 실패했거든요. 결국 한때 세계 1위를 자랑하던 한진해운은 그대로 파산해버리고 말았죠.

그 이후 우리나라는 해운 경쟁력이 회복되지 못하고 있어요. 한진해운이 파산한 뒤, 우리나라 수상운송업계 매출액은 4조 원이나 줄어들었습니다. 

the 독자: 저는 그때 관련 노조들과 경영계가 한 편이 돼서 항의하는 거 처음 봤어요.

어피티: 해운업계와 관련된 중소기업과 관련업계 종사자 모두 어마어마한 피해를 봤으니까요. 당시 정부의 판단에 실수가 있었다는 게 전문가의 공통된 의견이에요. 오죽하면 국가 공영방송에서 정치적 음모 아닌가 하는 의문까지 제기한걸요. 

정책은…
여파를 남기고

최근에 아시아나항공이 위태로워지자, 산업은행 등 채권단이 나서서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을 빠르게 인수합병시켰죠. 대한항공과 채권단이 아시아나를 위해 사용한 돈만 최소 1조 5천억 원이고요. 그 이유로 한진해운 사태를 다시 겪지 않기 위해서란 이야기도 있어요. 

정부는 5년마다 바뀌지만 정책의 여파와 교훈은 오래 남습니다. 2016~2017년 국가 기간산업 파산이 우리 경제에 남긴 상처 때문에, 이번 대한항공&아시아나 항공산업 지원 결정은 발빠르게 이뤄졌다는 사실. 알고 나면 재밌는 tmi죠?

📚 <경제사tmi>에 참고한 자료

  • 박영구, 「1971년의 한국 현대조선공업 시작은 정말 어떠하였는가?」 (2016), 한국민족문화 (61), 2016.11, 431-462(32 pages), 부산대학교 한국민족문화연구소
  • 서문성, 「동아시아의 환경변화와 한국해운조선산업의 중흥과 부산항의 발전전략에 관한 연구」 (2019),  한국항만경제학회지 35(1), 2019.3, 139-162(24 pages), 한국항만경제학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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