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한 마케터예요”

글, 조이

‘좋아하는 일’을 하며 사는 게 가능할까요?

‘좋아하는 마음’이 있더라도, 그게 ‘일’이 되면 좋아하던 마음마저 사라져 버릴까 두렵기도 합니다. 그 전에 좋아하는 일을 찾지 못했거나, 좋아하는 일을 찾더라도 용기가 없어 내일로 미루게 되는 게 직장인의 현실이기도 하고요. 

하지만 좋아하는 일을 하며 사는 사람들이 분명히 있습니다. 더 정확하게는 ‘좋아하는 마음’과 ‘먹고사니즘’ 사이에서 건강한 균형점을 찾아낸 사람들 말이에요. 

‘민’ 님도 그런 사람입니다. 민 님은 어린이와 청소년을 위한 도서관 콘텐츠를 만드는 분이에요. 지금의 일상이 ‘5점 만점에 10점’을 주고 싶을 정도로 만족스럽다고 말하죠.

오늘의 프로일잘러, 민 님

조이: 하고 계신 일을 소개해 주세요.

민: 도서문화재단 ‘씨앗’에서 콘텐츠를 만들고 있어요. 

어린이와 청소년들이 ‘나’를 자유롭게 탐색하고, ‘나’의 이야기를 표현하도록 하는 다양한 형태(공간, 경험, 재료, 장비 등)의 콘텐츠를 만듭니다. 

이 콘텐츠가 더 많은 사람들에게 닿을 수 있도록 전국의 공공 도서관과 협업해서 일하기도 해요. 멋진 동료들과 함께 만든 콘텐츠가 전국의 도서관으로 퍼져나갈 때, 매번 설렘을 느껴요.

“대기업에서 감사한 마음으로 일했지만, 마음 한구석이 허전했어요”

조이: 예전에는 기업에서 마케터로 일했다고 들었어요.

민: 자동차를 만드는 대기업에서 마케터로 일했어요. 

전 직장에서는 글로벌 컨설팅 기업과 함께 프로젝트를 진행하거나, 어마어마한 예산으로 글로벌 마케팅 캠페인을 실행하는 기회를 누릴 수 있었어요. 

이 점에 감사하며 책임감을 갖고 열심히 일했지만, 늘 마음 한구석이 허전했어요. ‘더 이상 회사에서 하고 싶은 게 없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고, ‘나에게 딱 1년만 유예 기간을 주자’는 생각으로 퇴사를 결정했습니다.

특별한 계획을 갖고 퇴사한 게 아니라서 처음에는 두려운 마음이 들었어요. 하지만 돌이켜 보면, 그 덕분에 앞만 보고 달려온 길에서 이탈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비워진 시간은 큰 힘이 됐어요”

쉬는 동안 혼자 여행을 다니며 자신과의 대화를 깊게 나눴어요. ‘어린이’, ‘미술’이라는 키워드에 관심이 많아서 세계 4대 예술 축제를 한 달 동안 구경하기도 했고요. ‘해야 하는 일’이 아닌 ‘하고 싶은 일’을 밀도 있게 고민할 수 있었던 시간이었죠. 

이후 글로벌 IT 기업에 입사해 좋은 환경에서 일하게 됐지만, ‘하고 싶은 일’에 대한 미련이 계속 딴 생각을 하게 만들더라고요. 일하면서도 ‘어린이’, ‘미술’이라는 키워드에 레이더를 켜두었고, 우연한 기회로 지금의 일을 만날 수 있었어요. 

과거에는 ‘남 보기 좋은 선택’을 했다면 지금은 ‘나에게 좋은 선택’을 할 수 있게 됐어요. 이 변화에는 오롯이 나에게 집중하는 ‘비워진 시간’이 큰 힘을 주었죠.

민 님이 그림책을 산 곳

“가장 잘한 결정은 ‘경로를 이탈하기로 한 결정’이에요”

대학시절부터 ‘마케터가 되겠다’라는 목표를 잡고 전력질주 했어요. 한 번도 옆이나 뒤를 바라볼 여유는 없었죠. 그렇게 치열하게 살다가 과감하게 멈춰 ‘비워진 시간’을 만들어낸 제 자신이 너무나 기특해요.

최선을 다해 살아왔기에 ‘이게 아닌 것 같은데’라는 생각이 들었을 때, ‘한 번쯤은 괜찮지 않을까’라는 여지를 만들 수 있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늘 과거의 나에게 감사한 마음으로 살고 있어요. 지금도 미래의 내가 지금의 나에게 고마워할 수 있도록 매 순간 최선을 다하려 해요. 

“저는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한 마케터예요”

조이: 좋아하는 마음을 일로 연결했지만 여전히 단, 짠이 존재할 것 같은데요?

민: 일단 저의 타겟고객이 어린이, 청소년이라는 점이 강력한 ‘단맛’이 되어줍니다. 일에 지쳐 힘들다가도 어린이와 청소년들이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면 마음이 사르륵 녹아요.

가장 행복한 마케터는 자신이 좋아하는 고객에게 자신이 확신하는 물건(서비스)를 판매하는 마케터라고 생각해요. 이런 점에서 저는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한 마케터랍니다. 

물론 힘든 점도 있긴 해요. 일과 삶을 분리하기 어렵거든요. 365일 언제 어디서나 일의 버튼이 반쯤 눌려있는 상태예요. 좋아하는 일일수록, 잘하는 것 이상으로 오래 할 수 있도록 나를 돌봐야겠다는 생각을 하곤 해요.

“생각보다 번아웃이 자주 와요”

조이: 열정적으로 일하는 만큼 번아웃 관리도 필요할 것 같아요.

민: 생각보다 번아웃이 자주 와요. 

그럴 때는 ‘좋아하는 마음’을 일이 아닌 것에서 찾으려고 노력해요. ‘그래, 나는 좋아서 사는 사람이지’ 하면서 스스로를 다독이고 환기할 수 있는 시간을 가져요. 

몸과 마음이 지칠수록 이성을 잠시 끄고 감성에 집중하는 시간, 심장이 ‘쿵’하고 감탄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려고 노력합니다.

독립서점에서 진행한 민 님의 그림책 전시회

‘일잘러’ 위의 ‘일잼러’
민 님의 한 끗 차이

① 나보다 센, 우리의 힘을 믿어요

민 님은 기존의 관습, 방식을 본능적으로 거부하고 ‘왜 안 돼?’라고 묻는 사람이에요. 조금 피곤한 스타일일 수도 있지만, 지금의 조직과 동료들은 민 님이 원하는 만큼 새로운 시도를 할 수 있도록 지지해 준다고 해요.

그러니 민 님은 더 큰 꿈을 꾸며 신나서 일하게 되고, 조직과 동료 모두 모두가 ‘윈윈’할 수 있죠. 민 님도 동료들과 함께 보내는 시간이 꿀잼이라고 합니다. 각자의 전문성에 진심을 더해 일하는 것은 물론, 먹성과 식성까지 잘 맞는 유쾌한 동료들이라고 해요. 

② 나만의 뾰족한 기준으로 일을 판단해요

사회초년생일 때는 ‘민은 ~한 사람이야’라고 불릴 수 있도록 노력했다고 해요. ‘일이 돌아가는 현황을 가장 잘 아는 사람’, ‘절대 오타를 내지 않는 꼼꼼한 사람’처럼요. 누군가 민 님을 떠올렸을 때 확실한 ‘USP(Unique Selling Point)’가 있길 원했거든요.

연차가 쌓이면서는 타인의 시선보다는 스스로에 대한 감을 쌓아가기 시작했어요. 내가 하고 싶은 일, 나에게 잘 맞는 일을 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었을 때, ‘내가 잘 가고 있구나’라고 생각했다고 해요. 

일이 제대로 (잘) 되게 만드는 과정에서는 ‘나다운’, ‘나 아니면 안 되는’ 영역이나 방식을 발견하고 구현했을 때 잘하고 있다고 판단했고요. 

③ 지금이 전성기라고 생각해요

민 님은 존경하는 동료들과 함께, 진심으로 하고 싶은 일을, 확신있게 마음껏 해나갈 수 있는 환경에서 만족감을 느끼고 있어요. 동시에 지금과 같은 기회가 언제나 찾아오는 건 아니라고 생각하죠.

때로는 ‘지금 이 순간’ 누리고 있는 행복과 몰입감이 사라질 수 있다는 두려움도 느끼지만, 그래서 지금 더 많이 시도하고 실험해서 최대한 많은 경험 데이터를 쌓아두려 노력합니다. 

이렇게 쌓은 데이터가 더 많은 사람들에게 공유되어야 세상에 더 큰 임팩트를 줄 수 있다고 생각하니까요.


필진의 코멘트

  • 조이: 민 님은 본인이 ‘좋아하는 마음’을 키워온 경로가 누군가의 마음에 닿아, ‘한 번쯤 이탈해도 괜찮다’라고 생각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다들 좋아하는 일을 하는 세상, 좋아서 사는 세상이면 좋겠다는 생각에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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