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기요양보험, 정확히 어떤 제도인가요?

글, 박한슬

📌 필진 소개: 약 대신 글을 짓고 있는 약사 박한슬입니다. 약과 질병에 대한 상식을 쉽게 풀어 쓴 <오늘도 약을 먹었습니다>를 시작으로 바이오산업과 의료정책에 대한 다양한 글을 쓰다, 최근엔 우리 사회의 현실을 데이터를 통해 살펴본 ⟪숫자한국⟫이란 책을 출간했습니다. 지난 <돌봄의 경제학>, <트럼프 시대의 제약-바이오 산업> 연재에 이어 노인 돌봄을 위해 도입된 장기요양보험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단편적 정보보다 깊은 맥락이 전해지길 바랍니다.

매달 월급명세서를 확인할 때마다, 눈에 들어오는 항목이 있죠. 건강보험료와 함께 적힌 장기요양보험료입니다. 대부분의 사람은 장기요양보험료를 매달 납부하면서도, 이게 어떤 제도인지 모른 채 지나가요. 아직 젊고 건강하다는 이유도 있겠지만, 돌봄이란 단어 자체가 막연하게 느껴지기 때문일 거예요. 그래서 오늘은, 그 막연함을 걷어내는 이야기부터 시작해 보려고 해요. 장기요양보험은 왜 도입되었고, 어떻게 운영되고 있을까요?


사회적 위험, 누구에게나 닥치는 재난
사람은 누구나 늙습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몸이 약해지고, 일상적인 활동이 점점 어려워져요. 밥을 차려 먹거나, 대소변을 가리거나, 욕실로 걸어 들어가는 일조차 힘들죠. 누군가의 돌봄이 필요하게 돼요.

문제는 그 돌봄의 무게를 누가, 어떻게 감당하느냐는 거예요. 예전에는 당연히 가족이 맡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어요. 누군가는 가족 간병을 위해 회사를 그만둬야 하고, 누군가는 집에 간병인을 별도로 들여야 하니까요. 그마저도 그 비용은 대부분 개인적으로 감당해야 하니, 부담이 커요.

이럴 때 필요한 개념이 바로 ‘사회적 위험(social risk)’이에요. 학술적으로, 교통사고처럼 불의의 사고로 생기는 위험은 ‘특수 위험’이라 하고, 노쇠·질병·실업처럼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위험은 ‘사회적 위험’이라 불러요. 개인이 감당하기엔 너무 넓고 무거운 위험이기에, 사회가 공동으로 책임지는 구조가 필요하단 점에서 이런 이름이 붙었죠.


사회적 위험을 사회가 함께 나누기 위해 만들어진 제도가 바로 사회보험(social insurance)이에요. 의료보험, 산재보험, 실업급여처럼요. 장기요양보험도 이 연장선에 있어요. 모두가 겪을 수 있는 노쇠와 돌봄이라는 위험을 사회적으로 함께 짊어지기 위해 고안된 사회보험이죠. 우리나라에서 장기요양보험은 언제부터 생긴 걸까요?


사회적 위험을 미리 대비하는 노인장기요양보험의 등장
한국 사회에서 ‘노인 돌봄’은 오랫동안 사적 영역에 속해 있었습니다. 노부모는 자식이 돌보는 거라는 가족주의가 강했던 탓인데요. 2000년대 들어서면서 이런 방식의 노인 돌봄은 한계에 봉착하게 돼요. 전반적인 핵가족화, 여성의 경제활동 확대, 고령 인구의 증가가 동시에 겹치자, 전통적인 가족 내 돌봄이 더는 작동하지 않는 시대가 온 것이죠.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별도의 사회보험이 필요하단 논의가 이어졌고, 이웃 나라인 일본에서 개호보험(介護保險)이란 이름의 유사한 제도가 시행되는 걸 눈여겨 본 정부에선 한국판 개호보험인 노인장기요양보험을 2008년 본격 출범시킵니다. 누구나 늙고, 누구나 돌봄이 필요해지게 되니, 그 위험을 미리 조금씩 나눠 내서 대비하자는 거죠.

특히나 지금도 큰 사회적 문제인 저출생·고령화 문제가 심각해지던 2010년대 초입, 노인 빈곤 문제도 사회적 의제로 떠올랐어요. 노인 복지에 대한 지원 방안이 큰 사회적 호응을 얻던 분위기 속에서 노인장기요양보험은 노인 돌봄을 위한 좋은 수단이라는 인식이 자리잡았어요. 그런데 장기요양보험료, 매달 얼마나 내는 걸까요?

우리나라 장기요양보험은 저부담·저복지
현재 노인장기요양보험은 건강보험료 징수 시에 함께 징수돼요. 정확히 말하자면, 징수는 한꺼번에 하지만, 건강보험료의 12.95%(25년 기준)가 장기요양보험료로 따로 책정되는 구조죠. 전체 소득 기준으로 보면 약 0.9% 수준이에요. 그렇게 모인 장기요양보험료 재정은 따로 관리됩니다.

건강보험과 마찬가지로, 노인장기요양보험료는 직장가입자과 지역가입자로 구분돼요. 직장가입자의 경우 회사가 절반 몫을 부담하고, 지역가입자는 전액을 본인이 내야 하는 구조죠. 국가에선 지역가입자의 부담을 완화해 주기 위해 일정 비율의 세금을 국고에서 헐어 지원하긴 하는데, 이 비율이 생각보다 낮아요. 일본은 세금 지원이 차지하는 비율이 50%에 달하지만 한국은 20% 수준이죠. 그러니 같은 사회보험이라 해도 제도 안정성이나 재정 여력은 꽤 차이가 나요.

우리나라는 왜 장기요양보험을 적게 내는 방식으로 설계했을까요? 그건 우리나라에서는 돌봄을 의료 영역에서 함께 다루기 때문이에요. 돌봄 시설의 대표 격으로 여겨지는 요양병원은 어디까지나 ‘병원’이라, 건강보험 재정을 써요. 노인 돌봄을 맡고 있는데도 장기요양보험 재정을 쓰지 않는 것이죠. 제도가 혼합된 거예요.

돈을 덜 내는 건 좋지만, 실제로 받을 수 있는 돌봄서비스의 양도 적다 보니, 현재 우리나라의 노인 돌봄은 사회보험보단 민간 영역에 강하게 의존하는 상태예요. 그러니 막상 돌봄이 필요해졌을 때, 돌봄 수요자들은 이런 불만을 품기도 하죠. 이럴 거면, 그냥 낸 만큼 받는 민간보험으로 만들면 안 되냐는 거예요. 


미국의 민간 장기요양보험이 실패한 이유
민간보험은 보험사가 아무리 심사를 까다롭게 하더라도, 건강과 같은 민감정보는 정보 비대칭성이 커요. 즉, 보험 가입 시 아픈 사람이 아프단 걸 숨기기 쉬운데, 이럴 경우 정당한 절차를 통해 가입해 보험료를 내는 선의의 피해자가 생겨요. 게다가 건강한 사람은 애초에 보험에 가입하려는 의지가 적으니, 보험엔 아픈 사람만 들어오게 돼 위험의 분산이란 본래의 목적을 달성하지 못하게 돼요. 이걸 대표적으로 보여주는 게 바로 미국이에요.

미국에서는 공적인 장기요양보험 대신 민간 장기요양보험이 그 자리를 대신했어요. 고령화가 가속화되며 급격히 성장한 민간 장기요양보험 시장이 붕괴한 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어요. 민간 장기보험의 수익률이 보험사들이 보험금 지급 위험을 과소평가해 보험료를 지나치게 낮게 선정한 데다, 과도한 가격 경쟁으로 수익성이 악화했어요. 게다가 돌봄 필요성이 큰 아픈 노인들만 가입하려고 들다 보니, 재정적으로 감당할 수 없는 수준이 됐죠. 보험사들은 수익성을 위해 보험료를 계속 올릴 수밖에 없었지만, 높아진 보험료에 해지하는 사람들이 늘어났고, 결국 일부 보험사들이 해당 사업을 중단하거나 파산했죠. 


사회보험은 민간보험과 달라요. 전 국민 의무가입이라는 설계를 통해 건강한 사람도 가입하게 만들고, 덕분에 위험을 넓게 분산시킬 수 있어요. 이 글을 보시는 분들 중 지금 당장 장기요양보험의 혜택을 체감하는 사람은 많지 않겠지만, 아마 부모님이 75세를 넘기면 사정이 달라질 거예요. 노인의 절반 가까이가 일상생활에 제약을 느끼고, 많은 이들이 가족 없이, 스스로를 돌보는 데 어려움을 겪게 되거든요. 그런 위험을 방지하기 위한 최소한의 안전장치가 장기요양보험인 셈이에요. 다음 시간에는 장기요양보험 신청 조건과 등급 등 구체적인 기준과 어떤 서비스를 제공하는지 살펴볼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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