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플레이션 vs 디플레이션, 뭐가 더 나을까?

글, 오건영


📌 필진 소개: 신한은행 WM추진부 팀장 오건영입니다. 신한금융지주 디지털전략팀과 신한은행 IPS 그룹 등을 두루 거치며 글로벌 매크로마켓에 대한 전문적인 분석과 함께 매크로 투자 전략 수립, 대외 기관·고객 컨설팅, 강의 등의 업무를 수행했습니다. 「삼프로TV」, 「김미경TV」, 「스터디언」, KBS라디오, MBC 등 다양한 경제 미디어에 출연해 친절한 경제 전문가로 대중들과 소통해 왔어요. 저서로는 『부의 시나리오』, 『부의 대이동』 『인플레이션에서 살아남기』 등이 있습니다.


지난 연재에서는 우리가 왜 매크로경제를 공부해야 하는지 설명해 드렸어요. 어느 정도 공감이 되셨나요? 다음은 지금 실제 매크로환경이 어떤지 살펴볼 차례겠죠. 2024년 6월 기준, 현재 가장 두드러지는 경제 상황인 인플레이션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인플레이션이 정확히 무엇인가요?


인플레이션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자동으로 함께 떠오르는 단어가 있죠. 바로 디플레이션입니다. 인플레이션은 우리가 소비하는 재화의 가격이 오르는 현상, 즉 ‘물가 상승’을 말해요. 디플레이션은 반대로 재화 가격이 하락하는 ‘물가 하락’을 의미하죠. 너무 쉬운가요? 


똑같은 개념을 화폐 관점에서 보겠습니다. 천 원 주고 사던 물건이 만 원이 되었다고 가정해 볼게요. 물건 하나를 살 때 천 개의 화폐가 필요했지만 이제는 만 개의 화폐가 필요합니다. ‘물가가 올랐다’고 말할 수 있는 동시에 ‘화폐 가치가 하락했다’고 볼 수도 있죠.


디플레이션도 마찬가지예요. 천 원이던 제품 가격이 백 원이 되었다고 가정해 볼까요. 물건 하나를 사기 위해 천 개의 화폐가 필요했지만 이제는 백 개만 필요합니다. ‘물가가 하락’한 만큼 ‘화폐 가치가 올랐다’는 의미가 돼요.


왜 화폐 가치를 따져야 하나요?

인플레이션과 디플레이션이라는 현상을 왜 굳이 화폐 가치 측면에서도 바라볼까요? 물가만 따지면 좀 더 단순할 수도 있을 텐데요. 그건 바로 우리가 화폐를 통해 단순히 물건을 구입할 뿐 아니라 투자도 하고, 거래도 하기 때문이에요. 


MZ세대인 홍길동 씨가 대출을 많이 받았다고 가정해 볼게요. 홍길동 씨는 인플레이션을 좋아할까요? 디플레이션을 좋아할까요? 대출받은 것과 인플레이션, 디플레션이 무슨 상관인가 하는 생각이 드실 수 있어요. 그러나 이를 ‘화폐 관점’에서 해석하면 얘기가 달라져요.


부채는 ‘화폐 표시 자산’, 즉 현금 자산입니다. 화폐 가치의 하락을 의미하는 인플레이션 상황에서 화폐 표시 자산인 부채의 실질적 가치는 하락하게 돼요. 부채 부담이 낮아지는 것이죠. 반대로 화폐 가치가 상승하는 디플레이션 상황에서는 부채의 실질 가치가 상승해 부채 부담이 커지는 결과가 나와요.


아직도 조금 헷갈리시는 분들을 위해 극단적인 사례를 하나 들어 볼게요. 홍길동 씨가 받은 대출금은 1억 원입니다. 대출 부담이 크겠네요. 그런데 거대한 인플레이션이 찾아와서 새우깡이 1억 원이 됐어요. 그럼 전에 사두었던 새우깡을 팔아서 은행에 갖다 주면 빚이 다 사라지죠. 이렇듯 채무자 입장에서는 인플레이션이 상당히 유리합니다. 


반대로 디플레이션 상황에서는 어떨까요? 마찬가지로 1억을 대출 받은 상황에서 극심한 디플레이션이 찾아와 100억 원 하던 빌딩이 1억 원으로 떨어졌어요. 이제 홍길동 씨는 빌딩을 팔아도 1억 대출을 간신히 갚을 수 있어요. 이렇듯 부채가 많을수록 화폐 가치가 올라 부채의 실질 가치가 상승하는 디플레이션은 큰 고통이에요.


디플레이션이 일어나면 어떻게 되나요?


혹시 오랜 기간 이어진 디플레이션 하면 떠오르는 나라가 있으신가요? 네, 일본은 90년대 버블 붕괴 이후 30년이 넘는 기간 동안 디플레이션에 신음했습니다. 부동산 버블 붕괴 당시, 일본 가계는 엄청난 양의 부채를 보유하고 있었어요. 


집을 담보로 돈을 빌렸는데, 그 집값이 무너져내립니다. 집값은 급락하지만 빚은 줄어들지 않죠. 이런 상황을 ‘부채 디플레이션’이라고 하는데요, 이로 인해 일본 경제는 30년 동안 불황의 늪에서 빠져나오지를 못했죠.


그럼 인플레이션이 더 나은 건가요?


여기까지 읽으신 다음엔 그럼 인플레이션이 더 나은 건가, 하는 의문이 드는 분도 계실 텐데요. 하지만 최근 고물가로 모두가 힘든 국내 경제를 보면 또 그렇지는 않을 것 같죠. 이 의문에 답을 얻으려면 인플레이션, 디플레이션 안에서도 좋은 경우와 나쁜 경우로 나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해요.


인플레이션 중에는 경기가 좋아지고, 채용이 늘고, 소비가 늘어서 물가가 오르는, 이른 바 ‘수요 견인 인플레이션’이 있습니다. 경제 성장과 함께 수요가 늘면서 자연스레 물가가 오르는 상황을 의미하죠.


이런 경우엔 물가가 올라도 소득도 그만큼 올랐기 때문에 큰 걱정이 없습니다. 마치 몸무게가 늘었어도 키도 그만큼 컸다면 문제 없는 것과 비슷하다고 할 수 있죠. 간단히 말해 ‘좋은 인플레이션’입니다. 


반면 이런 케이스가 있습니다. 중동에 전쟁이 터집니다. 그러면서 원유 가격이 크게 올라요. 원유 수입 물가가 엄청 뛰어오르면서, 관련된 석유 화학 제품 가격도 급등해 버립니다. 강한 인플레이션이 찾아온 것이죠. 


사람들의 수요가 늘어나서 찾아오는 인플레이션이 아니라, 원자재 공급이 줄어들면서 나타난 인플레이션이에요. 사람들의 소득은 정체되어 있는데 물가가 오릅니다. 그럼 더욱 소비를 줄이게 되고, 경기는 점차 더 둔화되겠죠. 


이렇듯 경기 둔화와 함께 발생하는 인플레이션을 스태그플레이션(Stagflation)이라고 불러요. 경기 침체를 의미하는 스테그네이션(Stagnation)과 인플레이션(Inflation)을 합친 말이에요. 좋은 인플레이션과 반대되는, ‘나쁜 인플레이션’이에요. 


디플레이션은 어떻게 나뉘나요?


좋은 인플레이션과 나쁜 인플레이션이 있으니, 당연히 좋은 디플레이션과 나쁜 디플레이션도 존재하겠죠. 먼저, 좋은 디플레이션은 기술 혁신이 일어나면서 물가가 빠르게 안정되는 상황이에요. 


제 기억에 90년도 초에 컴퓨터 가격이 90만 원 정도였습니다. 당시로는 상당히 큰 돈이었죠. 그리고 지금도 90만 원에 살 수 있는 노트북이 있죠. 심지어 성능도 훨씬 좋습니다. 기술 혁신이 성능 향상과 가격 안정을 동시에 가져온 거예요. 보통 가전제품이나 전자기기에서 이런 현상을 쉽게 접할 수 있습니다.


기술 혁신에 기반한 ‘좋은 디플레이션’은, 기업은 낮은 비용에 고품질 상품을 대량 생산할 수 있게 되고, 소비자는 전보다 낮은 가격에 물건을 구입할 수 있게 되면서 수요와 공급이 모두 좋아지는 정말 아름다운 현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각국 정부가 너도나도 첨단 과학 발전과 기술 혁신을 위해 투자를 아끼지 않는 이유 중 하나예요.


반대로 나쁜 디플레이션도 존재해요. 경기 침체가 찾아옵니다. 그럼 사람들은 소비를 줄이게 되겠죠. 소비가 줄기에 기업들도 생산을 줄이고 고용을 축소합니다. 그럼 사람들의 소득이 줄어드니 소비가 더 줄어들게 되고, 기업들은 생산과 고용을 더 줄이고… 맞습니다, 수요 부진 디플레이션의 악순환이 시작되는 거예요. ‘나쁜 디플레이션’의 전형이라고 할 수 있죠. 


여기에 화폐 가치가 상승하는 디플레이션이 겹친다면, 경제에 그야말로 메가톤급 충격을 줍니다. 소득은 줄고, 빚 부담은 커지게 되는 것이죠. 가장 흉악한 시나리오라고 할 수 있어요.


가장 좋은 상황은 어떤건가요?


인플레이션과 디플레이션의 의미와 여러가지 케이스를 살펴보았어요. 인플레이션과 디플레이션 중에 무조건 한 쪽이 더 나은 것이 아니라 각각에 좋은 경우와 나쁜 경우가 있다는 걸요. 경제 성장이 담보되는 ‘수요 견인 인플레이션’과 과학의 발전에 힘입은 ‘기술 혁신 디플레이션’이 가장 좋다는 것을 알 수 있었죠.


그러나 기술 혁신 디플레이션에 필요한 첨단 기술은 하루 아침에 뚝딱 만들어지기 어렵습니다. 반면 수요를 이끌어내기 위해서는 금리 인하 등의 정책을 통해 단기로 효과를 내는 것이 가능하죠. 다만 이것이 지나치면 또 다른 부작용이 따를 수 있어요. 각국의 중앙은행이 2%대의 마일드한 인플레이션을 선호하고, 이를 방어하기 위한 노력이 매일 경제 뉴스에 보도되는 이유예요. 다음 시간에 더 자세히 알아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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