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시간에 이어 조금씩 승기를 잡아가는 인플레이션과의 전쟁에 관해 이야기 나눠볼게요. 22년 6월 미국의 소비자물가지수는 전년 대비 9.1%로 발표되면서 고점을 형성했습니다. 이후 빠른 속도로 안정되면서 23년 6월 3.0%로 내려왔죠. 이 당시 분위기가 상당히 고무적이었습니다. 이 속도면 23년 말이면 연준이 목표로 하는 2.0%까지 내려오는 것 아니냐 하는 얘기들이 오갔죠.
그렇지만 이후 물가가 다시 튀어 오르면서 미국 소비자물가지수가 3% 언저리를 1년간 횡보했습니다. 이후에도 안정세를 이어가긴 했지만, 3.0%에서 2.0%대까진 가는 길이 생각보다 험난했어요. 2024년 7월 지수가 2.9%로 발표되며 비로소 목표치에 한 발 다가서게 되었죠.
오늘은 인플레이션이 이제 진정세를 보이는 것 아닌가 하는 희망 섞인 기대와는 반대되는, 인플레이션과의 전쟁이 장기화될 수 있는 가능성에 대해서 말씀드려보겠습니다.
기대인플레이션이라는 것도 문제라고요?
연준 파월 의장은 22년 8월 잭슨홀에서 있었던 기자회견에서 ‘두 마리의 용’에 대해 언급했죠. 혹시 연준 볼커 전 의장에 관한 이야기를 기억하시나요? 볼커는 70년대 장기 인플레이션을 제압한 인물로 잘 알려져 있죠. 연준의 파월 현 의장은 볼커의 말을 인용하면서 볼커가 당시 두 마리의 용과 싸웠다고 말합니다.
하나는 지금 우리가 맞닥뜨린 인플레이션이라는 용이고요, 다른 하나는 인플레이션에 대한 대중의 기대, 즉 기대인플레이션이라는 용입니다. 인플레이션을 제압하더라도 인플레이션 기대, 즉 물가가 오른다는 기대가 남아있다면 인플레이션과의 전쟁이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점을 강조한 거예요.
일본 경제가 잃어버린 30년을 겪었다는 말씀을 드렸었죠. 일본 역시 비슷한데요, 디플레이션 그 자체도 문제였지만, 물가가 하락할 것이라는 만성적인 디플레이션에 대한 기대가 제품에 대한 수요를 줄이면서 제품의 가격 하락을 더욱 부추겼던, 즉 디플레이션을 심화시켰던 사실이 있습니다.
지금이 40년 만의 인플레이션이죠. 과거에 인플레이션을 전혀 겪어보지 못했던 사람과 과거에 이미 인플레이션으로 힘겨운 시기를 겪어본 사람 사이에는 시각과 태도에 분명 차이가 있기 마련입니다. 인플레이션을 처음 겪어보는 사람들은 물가 상승으로 인한 고통 및 지속 가능성을 보다 크게 느낄 수 있습니다.
그래서 볼커는 인플레이션 그 자체의 제압도 중요하지만 기대인플레이션이라는 용 역시 함께 제압해야 씨를 말릴 수 있다고 말한 것입니다. 파월 의장은 이런 볼커의 두 마리 용을 언급하면서 기대인플레이션의 안정 역시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고요.
2024년 8월 기준 미국의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2.0%대로 돌아왔죠. 이제 인플레이션이 종료되는 것은 시간문제일까요? 지난 연재에서 여기서 방심했다가는 언제든 다시 지수가 오를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해 드렸어요. 이번에는 하나를 더 보겠습니다.
물가가 잡혀도 끝이 아니라고요?
미국의 물가 상승률이 연준이 목표로 하는 2.0%를 넘어선 것은 지난 2021년 3월입니다. 2024년 여름까지 거의 3년 반 동안 인플레이션의 늪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것이죠. 홍길동이라는 사람이 감기에 걸렸는데 기침이 3년 반 동안 이어진 셈이에요. 분명 예사 감기는 아니죠. 이미 감기라기보다는 폐렴 등의 질환으로 옮겨갔을 가능성이 높아 보입니다. 기간이 이렇게 오래되면 고질병이 될 수도 있겠죠. 고질병은 치료도 쉽지 않지만, 치료가 되더라도 조금만 무리하면 언제든 재발할 수 있다는 점에서 상당히 치명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인플레이션이 장기간 이어지면 어떤 일이 벌어지게 될까요?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인플레이션에 익숙해질 수 있죠. 인플레이션에 익숙해졌다는 것은 인플레이션에 대한 기대가 강해지고, 이를 겪어본 만큼 두려움 역시 남아있을 것임을 의미합니다.
이렇게 인플레이션이 고착화된다면 약간의 정책 실수 등에도 시장이 매우 민감하게 반응할 수 있죠. 예를 들어 물가가 안정된 듯 해서 예전처럼 금리를 인하했더니 기저에 강하게 남아있던 인플레이션 기대가 재차 점화되면서 물가가 다시 치솟는 문제가 생길 수 있는 거예요. 미국의 70년대가 이러한 가정을 뒷받침하는 실제 예시입니다. 70년대 당시 미국의 소비자물가지수 추이를 보시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