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려한 무늬가 매력적인 봉황새 이불감, 출처 SK이노베이션 뉴스룸
옛날 사람: SK가 혹시… ‘봉황새 이불감’ 팔다가 ‘스마트 학생복’ 만들던 회사 말하는 건가? 그… 선경그룹…
어피티: SK그룹은 석유화학이랑 반도체 하는 회사인데요…? 반도체 대장주 SK하이닉스 모르세요?! 🤨
옛날 사람: 하이닉스인지 뭔지 하는 그거, 원래 LG반도체였어! 가만, 그 다음엔 현대전자였나? 다 기억났어! 맞아! 그게 다 노태우 딸이랑 결혼한 덕분에~
어피티: 하하하, 잠깐 저희끼리 따로 얘기할까요?
LG가 반도체에 진심이던 시절
1997년 외환위기 전까지만 해도 LG그룹을 대표하는 사업은 전자, 화학, 그리고 금융이었어요. 사명을 LG로 바꾼 것이 1995년이니 그 이전에는 ‘럭키금성’이라고 불렀죠. 럭키금성의 히트상품은 ‘럭키치약’과 ‘금성라디오’, ‘금성냉장고’, ‘금성테레비’, 그리고 ‘금성투자금융’이 있었죠. 오래가고 튼실한 가전으로 유명한 LG가 금융업이라니 조금 낯설죠?
격동의 1980년대를 되돌아보자면 이렇습니다. 금성투자금융은 카드와 보험사업으로 뻗어나갔어요. 외환위기 직전까지 LG의 금융업은 참 잘나갔습니다. 현재 신한카드가 된 LG카드는 한때 카드 업계 1위를 다툴 정도였어요.
LG투자금융에 비하면 LG반도체는 훨씬 자연스럽게 느껴지죠? 현재도 화학과 전기전자를 주력으로 하는 기업이, 과거에 반도체를 미래 먹거리로 삼은 건 충분히 예상 가능한 수순이니까요.
럭키금성 시절, LG는 금성일렉트론이라는 반도체회사를 세웠습니다. 영국에 반도체 공장을 갖고 있었죠. 이게 다 무슨 소리냐고요? 이 모든 건 SK하이닉스의 초창기 모습을 이야기하기 위한 초석입니다.
1997년 연말이 저물어갈 즈음, 우리나라는 심각한 달러 부족 사태를 겪게 됩니다. 달러가 부족하면 외국에 진 빚을 갚을 수 없고, 석유처럼 중요한 에너지도 사 올 수 없어요. 그 유명한 IMF 외환위기의 시작이었죠.
외환위기의 가장 큰 원인 중 하나가 기업들의 방만한 경영이었기 때문에, 정부는 기업 간 구조조정에 나섭니다. 그중에는 ‘빅딜’도 있었어요. 기업집단을 산업과 사업별로 해체해 레고 조립하듯 재조립하는 것이었죠. 그리고 LG반도체도 빅딜의 대상이었습니다.
LG반도체가 현대전자 되고
현대전자가 SK하이닉스 된 사연
옛날 사람: 빅딜 때 LG반도체가… 현대전자로 갔어. 당시 LG를 맡고 있던 구자경 회장은 마지막까지 버텼지. 하지만 정부는 LG그룹에 모든 대출을 끊어버리며 압박했어. 결국 반도체는 현대로 넘어가고 말았지.
어피티: 그런데 왜 그 반도체 사업이 지금 현대에 없고 SK에 있는데요?
옛날 사람: 현대가 반도체 사업을 2년 만에 접었거든!
1999년 LG반도체를 가져온 현대전자는 2001년에 ‘하이닉스 반도체’로 사명을 바꿉니다. (며칠 전 삼성전자의 반도체 총책임자가 된 전영현 부문장이 바로 LG반도체 출신으로, LG반도체가 현대전자로 바뀔 때 삼성전자로 이직했다고 해요)
반도체는 돈이 많이 들어가는 사업이에요. 외환위기는 현대그룹도 똑같이 겪었습니다. 자금이 부족하기는 마찬가지였죠. 결국 반도체 사업을 유지할 만한 자금을 마련하지 못했고, 설상가상 반도체 경기까지 불황 사이클에 들어섰어요.
같은 해, 하이닉스 반도체는 공정거래법상 현대그룹에서 분리된 채 처치 곤란한 빚덩어리로 10년을 보내게 돼요. 그리고 2012년, SK그룹이 하이닉스를 인수합니다.
SK의 하이닉스 인수 능력과
이혼 위자료 사이의 관계
옛날 사람: SK가 하이닉스를 인수할 돈이 어디에서 났을까?
어피티: 사업을… 잘해서?
이번 판결문에 힌트가 있습니다.
재판부는 “노태우 전 대통령이 최종에는 SK그룹의 보호막이나 방패 역할을 하며 결과적으로 (SK그룹의) 성공적 경영활동에 무형적 기여가 있었다고 판단한다”며 SK그룹 경영에 노 관장의 기여분이 있다고 본 것이다. … 노 관장 측은 2심 과정에서 1990년대에 부친인 노태우 전 대통령의 ‘비자금’ 가운데 약 343억 원이 최종현 전 회장과 최 회장에게 전달됐으며, 1992년 증권사 인수, 1994년 SK 주식 매입 등에 사용됐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2024.05.30 조선일보)
2022년, 현대자동차그룹을 제치고 우리나라 재계 서열 2위로 올라선 SK그룹의 시초는 1953년 최종건 창업주가 경기도 수원시에 설립했던 일본기업을 불하받은 ‘선경직물’이에요.
*불하하다: 국가 또는 공공단체의 재산을 개인에게 파는 걸 말해요
선경직물은 1960년대 일본 화학섬유기업들과 합작하며 화학섬유를 생산했어요. 그때까지는 재계 서열에 끼지 못하던 회사였는데, 1980년에 석유공사를 인수하고 에너지와 정보통신회사로 주력사업을 바꾸면서 재계 서열 5~6위권으로 올라왔어요. SKC 공테이프와 플로피디스크는 선경그룹의 히트작이었죠.
그러던 1989년, 선경그룹의 후계자였던 최태원과 신군부의 실세였던 노태우의 장녀 노소영이 결혼을 발표합니다.
통신업에도 뛰어들어볼까?
옛날 사람: 그때 선경그룹 입장에서는 딱 한 끗 차이였어. 내가 생각해도 조금만 더 하면 치고 올라가서 삼성이며 현대며 이런 재벌그룹하고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을 거였다고.
어피티: ‘조금만 더 한다’는 게?
옛날 사람: 테이프며 플로피디스크에 붙어 있던 SKC 메이커는, 선경커뮤니케이션 준말이거든? 커뮤니케이션 기업으로서 정점이 뭐겠어. 바로 이동통신이야.
어피티: 어라? SKT?
1990년대에 들어서며 우리나라는 IT산업을 발전시키기 시작했어요. 그래서 그때까지는 ‘한국통신’ 하나뿐이었던 이동통신사를 늘리기로 합니다. 이때 선경그룹은 ‘선경텔레콤(지금의 SKT)’을 새로 세우며 제2이동통신사를 선정하는 프로젝트에 뛰어들었고, 사업권을 곧바로 따냅니다.
비자금 의혹, 의심이 확신으로 바뀐 판결
문제는 사업자 선정 뒷배경에 ‘사돈댁’인 노태우 대통령의 입김이 의심받았다는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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