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게 장 보려고 국경을 넘는 ‘원정 쇼핑’ 이야기 🛒


글, 어피티 


10여 년 전, 첫 유럽 배낭여행 중 스위스에서 린트 초콜릿을 샀어요. 스위스 제품이니까 스위스에서 구매하는 것이 가장 저렴할 거라고 생각했고, 스위스 본토에서 구매한다는 것이 의미있게 느껴졌거든요. 하지만 몇 개 담지도 않았는데 금세 한화로 7~8만 원이 되는 걸 보고 ‘역시 스위스 물가는 보통이 아니구나’ 싶더라고요. 그런데 그다음 행선지였던 이탈리아에서 충격적인 일이 있었어요. 이탈리아의 한 마트에서 동일 제품이 30% 이상 저렴하게 팔리고 있었거든요. 

(왼) 이탈리아 린트초콜릿 약 3,300원, (오) 스위스 린트초콜릿 약 6,200원 ⓒ어피티, COOP


스위스는 전반적으로 물가가 높은 나라로 유명하죠. 반면 이탈리아는 상대적으로 물가가 낮은 편이에요. 그래서 스위스에서 생산된 제품이라도 이탈리아에서 유통되면 현지 물가 수준에 맞춰 가격이 책정되는 거예요. 결과적으로 생산국인 스위스보다 이탈리아에서 더 저렴하게 살 수 있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벌어지는 거죠.


그래서 물가가 높은 나라의 현지인들은 생필품 구입을 위해 국경을 넘나들곤 한답니다. 아시아에서는 싱가포르와 말레이시아, 유럽에서는 스위스·프랑스·이탈리아·독일 간 국경 지역에서 국경을 넘어 쇼핑하는 것이 흔한 풍경이에요. 주말에 차를 타고 옆 나라로 장을 보러 가는 게 일상이 된 거죠.

왼쪽으로 가면 프랑스, 오른쪽으로 가면 스위스 ⓒ어피티P


최근에는 세계 경제가 흔들리며 이런 ‘원정 쇼핑’ 현상이 더 확산하고 있어요. 홍콩인들은 상대적으로 물가가 저렴한 중국에서 주말을 보내기도 하고, 슈퍼 엔저일 때, 우리나라에서도 쇼핑을 하러 일본에 가기도 했죠. 아르헨티나의 경우, 작년 12월 하비에르 밀레이 대통령 취임 이후 물가가 폭등해 일부 생필품 가격이 미국이나 유럽보다 비싸졌대요. 그래서 이웃 나라인 칠레로 생필품, 의류, 전자제품 쇼핑을 가고 있다고 해요. 


스웨덴의 상황도 심각해요. 스웨덴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1년간 식료품 가격이 1951년 이후 처음으로 역사적인 상승을 기록했대요. 이 때문에 많은 스웨덴 사람들이 이웃 나라 노르웨이로 원정 쇼핑을 떠나고 있다고 하죠. 오늘은 잘쓸레터의 현지 특파원이 직접 경험한 해외 원정 쇼핑의 현장을 여러분께 생생하게 전해드리고자 해요. 특파원의 눈으로 본 이 독특한 쇼핑 문화, 함께 들여다볼까요?

🍺 스위스에서 벌어서 독일에서 쓴다 🍺

먼저, 아름다운 알프스가 있는 스위스로 가볼게요. 스위스는 빅맥 지수 1위로 꼽힐 만큼 물가가 높은 나라예요. 고임금에 임차료도 비싸고, 대부분의 공산품을 수입에 의존하다 보니 이웃 나라들과 비교하면 물가 차이가 꽤 크답니다. 그래서 생겨난 게 바로 ‘원정 쇼핑’(Einkaufstourismus)이에요. 코트라 자료에 따르면, 스위스 거주자의 25%가 정기적으로 독일이나 프랑스에서 물건을 구매한다고 해요. 원정쇼핑족이 나날이 늘어나자, 스위스에서서는 “Shopp Schwiiz! Here I live, here I buy” (스위스에서 쇼핑하세요! 여기서 살고, 여기서 삽니다) 캠페인까지 벌였다고 해요.

 세계 빅맥지수 1위 스위스, 출처: IMF, 맥도날드, 톰슨 로이터, 더 이코노미스트


스위스 사람들이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 같은 이웃 나라로 쇼핑을 가는 거죠. 나라마다 차이가 있지만, 대략 10-30% 정도 싸게 살 수 있고 면세까지 받을 수 있어서 더 이득이라고 해요. 과자나 시리얼, 세탁세제, 샴푸, 통조림 같은 공산품은 똑같은 브랜드, 똑같은 제품인데도 스위스에서 파는 게 비싸니, 어쩔 수 없다고 해요. 심지어 매달 1~2번씩 독일로 쇼핑을 가서 생활비를 아낀다는 사람들도 있답니다. 스위스 국경과 인접한 주변 도시는 주말이면 스위스에서 온 사람들로 북적북적해요. 쇼핑몰 주차장의 절반 이상이 스위스 번호판을 단 차량인데다가, 세관 앞에는 세금 환급 도장을 받으려는 스위스인들의 긴 줄이 늘어서기도 하죠.

(왼) 스위스 국경 인근의 독일 마트, (오) 독일 마트에서 장을 보는 카트 ⓒ어피티


스위스에서 주변 국가로 이동하는 과정은 정말 쉽고 편리해요. 같은 유럽 연합 국가들이라 출입국 심사도 없죠. 한 걸음 차이로 스위스와 프랑스가 갈리고, 트램을 타고 한두 정거장만 가면 프랑스나 독일로 넘어갈 수도 있어요. 우리나라로 치면 서울에서 경기도로 장을 보러 가는 것과 비슷한 느낌이라고 할까요? 프랑스에서 바게트를, 독일에서 맥주를 사 올 수 있는 셈이죠. 게다가 임금 수준이 높은 스위스에서 돈을 벌어 물가가 상대적으로 저렴한 이웃 국가에서 소비할 수 있다는 것도 큰 장점으로 여겨져요. 생활비도 훨씬 줄일 수 있을 테니까요. 만약 우리나라가 이런 환경이었다면 어땠을까요? 상상해 보게 되네요.

여행이 아니라, 쇼핑을 위해
🧳 캐리어를 끄는 싱가포르 사람들 🧳


금요일 저녁, 싱가포르에서 말레이시아로 향하는 국경은 사람들로 북적이기 시작해요. 주말 내내 이어지는 교통 체증은 이제 흔한 풍경이 되었죠. 왜 이런 현상이 생겼을까요? 바로 싱가포르의 높은 물가 때문이에요. 살인적인 주거비용과 물가에 지친 싱가포르 사람들이 주말이면 인접한 말레이시아의 조호바루로 향하는 거예요.


조호바루는 말레이시아 최남단에 위치해 있어요. 조호르 해협을 사이에 두고 싱가포르와 다리로 연결되어 있죠. 버스로 40분이면 갈 수 있을 만큼 가까워요. 하지만 주말마다 사람들이 몰리면서 심각한 교통체증이 발생한답니다. 다리 하나만 건너면 물가가 훅 떨어지거든요.

(왼) 조호바루행 로컬버스, (오) 캐리어를 끌고 장을 보는 싱가포르인들 ⓒ어피티


그래도 많은 싱가포르 사람들이 조호바루로 향해요. 버스에 오르면 캐리어를 든 사람이나 큰 배낭을 멘 사람들로 가득해요. 모두 쇼핑한 물건들을 담아올 만반의 준비를 하고 온 거죠. 그만큼 조호바루는 쇼핑의 메카로 통해요. 대형 쇼핑몰만 해도 십여 개가 넘는답니다. 싱가포르에 비해 물가가 훨씬 저렴해서 싱가포르 현지인들도 주말이면 쇼핑을 즐기러 많이 방문해요. 특히 조호르바루 시티 스퀘어나 KSL 시티 몰 같은 대형 쇼핑몰은 꼭 한 번씩 들르는 명소가 되었어요. 

(왼) 조호바루 KSL 시티몰, (오) 조호바루에서 공산품 구매 ⓒ어피티

이곳에서는 쇼핑뿐만 아니라 다양한 서비스도 즐길 수 있어요. 미용실이나 네일아트 샵은 예약이 모두 차 있을 정도로 인기가 많답니다. 싱가포르의 절반도 안 되는 가격으로 미용과 뷰티 케어를 받을 수 있으니까요. 그래서 싱가포르의 젊은이들에게 조호바루는 없어서는 안되는 핫플레이스예요. 주말 데이트 코스로 조호바루를 선택하는 것이 일상이 되었죠. 저렴한 가격에 쇼핑도 하고, 맛있는 음식도 즐기고, 다양한 서비스도 경험할 수 있으니 인기가 많을 수밖에요.

조호바루에서 싱가포르로 돌아가는 길, 사람들의 행렬 ⓒ어피티


심지어 싱가포르를 방문한 여행객들도 일정이 가능하다면 기념품을 사러 조호바루로 당일치기 여행을 가는 경우도 많답니다. 물론, 돌아오는 길은 만만치 않아요. 특히 일요일 저녁은 싱가포르로 돌아오려는 사람들 때문에 길이 막히는 건 물론이고 거대한 버스 터미널 전체가 사람들로 가득 차요. 자유롭게 걸어다닐 수도 없을 정도죠. 하지만 몸이 조금 고생하더라도 최대 1/3까지 꾸밈비와 생활비를 아낄 수 있는 조호바루행을 포기하기란 어렵겠죠.


우리나라에서는 싱가포르나 스위스처럼 육로로 국경을 넘어 쇼핑을 하는 건 불가능하지만, 해외여행을 계획할 때 이런 ‘원정 쇼핑’ 전략을 활용해 볼 수 있어요. 유럽여행을 간다면 스위스에서의 쇼핑은 최소화하고, 대신 이탈리아나 독일에서 쇼핑을 즐겨보는 건 어떨까요? 동남아 여행을 계획 중이라면 싱가포르보다는 말레이시아 조호바루에서 쇼핑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 될 거예요. 이렇게 하면 여행 경비를 상당히 아낄 수 있을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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