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우지우
영화 <작전>은 말 그대로 어떤 집단의 ‘작전’ 과정을 담은 영화입니다. 증권시장에서의 작전은 쉽게 말해 주가 조작 행위입니다. 증권 브로커와 주포, 기업의 대주주 등 ‘작전 세력’이 공모해 특정 기업의 주식을 사들여 주식값을 폭등시키고, 일반 투자자까지 들어와 시세가 잘 오를 때쯤에 주식을 되팔아 이익을 챙기는 방식이죠.
이 과정에서 불특정 다수의 일반 투자자, 소위 말하는 ‘개미 투자자’들이 아무것도 모르고 참여했다가 큰 피해를 보기도 합니다. 작전 세력이 만든 함정인 줄 모르고, 기업에 호재가 생겨 주가가 오른 거라고 생각하고 뛰어들었다가 작전 세력이 팔고 나올 때 고점에 물리는 거예요.
그런데 말이죠. 일반 투자자가 들어오기 전, 작전 세력들은 어떻게 주가를 올리는 걸까요? 일반 투자자들이 급등한 주가를 보고, 너도나도 주식을 사려고 하면서 주가가 더 오르는 건 이해가 되는데 말이죠.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주가를 올리는 건 대체 어떻게 한 걸까요?
작전 세력이
주가를 올리는 방법
영화 <작전> 속 메인 작전은 ‘대산토건’이라는 기업이 타깃이었습니다. 작전 세력들은 대산토건의 주가를 올리기 위해 ‘통정거래’를 시작하죠.
통정거래는 주식을 매수할 사람과 매도할 사람이 사전에 약속을 하고 일정 시간에 일정 가격으로 주식을 매수, 매도하는 방식을 뜻합니다. 이때 거래시간을 아주 정확하게 맞춰서, 빠르게 사고 팔기 때문에 다른 사람이 끼어들 틈이 거의 없어요.
예시를 들어볼게요. 어피티와 우지우가 세상에 딱 1주만 존재하는 주식을 가지고 작전을 도모했다고 해봅시다. 이 둘은 미리 정해둔 시각에 서로 맞춤 거래를 합니다. 먼저 주식을 갖고 있던 사람을 우지우라고 해볼게요.
- 어피티가 우지우에게서 1주를 10,000원에 매수합니다.
= 우지우가 어피티에게 1주를 10,000원에 매도합니다. - 우지우가 어피티에게서 1주를 11,000원에 매수합니다.
= 어피티가 우지우에게 1주를 11,000원에 매도합니다. - 어피티가 우지우에게서 1주를 12,000원에 매수합니다.
= 우지우가 어피티에게 1주를 12,000원에 매도합니다. - 1~3처럼 서로 주식을 주고받으며 주식의 가격을 올리는 과정을 계속 반복합니다.
이 과정이 반복되면 호가창에 표시되는 주가는 계속 올라갈 겁니다. 사실은 짜고 치는 거래지만, 아무것도 모르고 호가창을 보고 있는 일반 투자자들에게는 이 장면이 다르게 해석될 거예요. 마치 이 회사의 주식이 활발하게 거래되는 것처럼 보일 테니까요. 이런 방식을 통해 어피티와 우지우는 주식의 가격을 자신들이 원하는 만큼 올리거나 내릴 수 있습니다. 시세를 인위적으로 조종하는 거예요.
주가 상승을 떠받치는
‘어떤 이슈’
그런데 주식이 활발하게 거래되면서 주가가 오르는 것처럼 보인다고 하더라도, 투자자들이 아무 이유 없이 오르는 주식에 큰돈을 베팅하기는 어렵겠죠. 투자자들이 회사를 믿고 주식을 사게 만들기 위해서는 그들의 마음을 흔들 ‘이슈’가 필요합니다. ‘증권가 찌라시’라고 부르는 뉴스를 시장에 돌리는 게 그 수단이에요.
영화 <작전>에서는 ‘대산토건’이 수질 박테리아를 연구하는 벤처기업, ‘한결’을 인수한다는 이슈가 있었습니다. 작전 세력이 인수합병(M&A) 이슈를 퍼뜨리면, 미디어에서는 이 이슈를 긍정적으로 보도하는 방식으로 대산토건의 호재가 세상에 알려졌죠. 대산토건의 재정은 부실한 상태였지만, 주가가 빠르게 오르는 게 더이상 이상한 일이 아니게 됐습니다.
실제로 2018년에 이슈를 이용한 황당한 주가조작이 있었습니다. 신일그룹이 금괴 150조 원어치가 실려있는 보물섬(돈스코이호)을 발견해, 인양하겠다고 주장하면서 관련 기업들의 주가가 크게 올랐거든요. 특히 제일제강의 경우, 신일그룹이 최대주주라는 가짜 뉴스가 나오면서 1,800원에 머물던 주가가 5,400원까지 오르기도 했어요.
결국 금융당국이 제일제강 주가 조작에 대한 조사에 들어가, 관계자를 고발하면서 이 사건은 마무리됐습니다. 이들은 주가 조작을 통해 58억 원을 빼돌리려고 했다는 혐의를 받고 있어요.
주가 조작이
진짜 나쁜 이유
우리가 주식을 사고팔 때, ‘거래소’라는 곳에서 공개적으로 거래하는 이유는 뭘까요? 바로 자유시장의 대전제 때문입니다.
모든 자산은 자유시장에서 공정가치가 결정된다.
공정한 거래는 자유시장을 움직이게 하는 중요한 전제조건입니다. 위와 같은 자유시장의 대전제가 정상적으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불특정 다수의 합리적인 의사결정이 동시다발적으로 이루어져야 해요. 작전 세력들이 시세 조종을 시도하는 건 자유시장의 대전제를 방해하는 셈이죠.
우리나라 자본시장법 상에서도 시세조종을 가장 최고의 형벌로 다루고 있습니다. 그 형벌 규정은 시세조종으로 인한 이득의 규모에 따라 다릅니다. 50억 원 이상의 이익을 본 경우는 5년 이상의 징역 혹은 무기징역까지도 받을 수 있어요. 우리나라 형법 중 ‘몇 년 이상의 징역형’을 규정한 법이 많지 않은 걸 고려해보면, 상당히 강한 처벌이라는 걸 짐작할 수 있죠.
영화 <작전> 속
현실
작전 세력은 시장 자본주의의 근간을 흔들 수도 있는 위험한 존재입니다. 그래서일까요? 개인적으로는 영화 <작전>을 보면서 주인공 편을 응원하는 것에 대해 거부감이 들었습니다. 영화상에서는 주인공이고 더 나쁜 악당들이 있긴 했지만, 결국 주인공 또한 작전 세력에 가담했던 주가조작 범죄단 중 하나라고 생각했거든요.
물론 영화를 구성하기 위해 선과 악을 나눌 수밖에 없었겠지만, 최소한 현실에서는 악의 세력이 없어졌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어떤 곳보다 자유롭고 공정해야 할 주식시장에서 작전 세력이 판을 치면, 그 범죄로 인한 피해를 보는 이들은 불특정 다수의 일반 투자자일 테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