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은 직업이기 전에 삶을 즐기는 방식이에요

person taking photo using Canon camera in shallow focus lens
글, 장단


명품 브랜드들은 ‘왜’에 시간과 비용을 많이 씁니다. ‘왜’가 견고해야 시장에서 오래도록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으니까요. 개인의 커리어도 마찬가지예요. ‘왜’라는 기둥이 단단하면, 자신만의 색깔을 지키면서 발전하는 삶을 살 수 있죠. 


스튜디오 오프비트의 포토그래퍼 최근우 님은 자신이 ‘왜’ 이 일을 하는가에 대한 철학이 단단해 명품을 연상케 하는 사람이에요. 근우 님이 업으로 삼은 사진은 그의 삶에서 중요한 가치인 ‘이타심’을 실현하면서도, 생활을 유지할 수 있게 해 주는 만족스러운 수단입니다. 


오늘 커리어 다이어리에서는 포토스튜디오를 이끌어가는 대표, 근우 님의 이야기와 함께 프리랜서 포토그래퍼가 갖고 있는 ‘일의 철학’을 탐험해 볼게요. 언젠가는 내가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삼아 자유로운 삶을 살기를 꿈꾸는 독자님이라면 꼭 끝까지 읽어 보세요!

원래는 기자가 되고 싶었어요


저는 고교 시절부터 신문부 활동을 하면서 기자의 꿈을 키웠어요. 대학교에 입학한 후에는 학교의 구석구석을 취재하고 기록했죠. 제가 목격한 현장을 그대로 전달하려고 노력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사진의 매력에 빠져들었어요. 이후 학교 영어잡지사에 합류하게 되었고, 학교 발전홍보팀에서 사진 기자로 일할 기회도 얻었어요. 


진로 결정의 순간은 입대해 헌병으로 근무하던 시기에 찾아왔어요. 부대의 게이트를 지키며 눈으로는 사진을 담는 연습을 하면서, 머릿속으로는 ‘제대하면 뭐하고 살지’ 하는 고민을 되뇌고 있었죠. 


저는 사람들에게 어떠한 형태로든 ‘이타심’을 발휘할 수 있는 일을 직업으로 삼고 싶었어요. 기자를 꿈꿨던 것도 사람들의 이야기를 전해 도움을 주고 싶어서였거든요. 


경험해 보니 기자라는 직업은 이타심보다는 공정함, 그리고 날선 비판도 할 수 있는 예리한 논리가 더 중요한 직업이었어요. ‘마음 가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했던 제게 기자라는 직업은 어울리지 않을 수 있다는 결론에 이르게 되었죠. 


‘그럼, 내가 할 수 있는게 뭐지? 아! 사진이 있구나.’


사람들의 모습을 사진으로 담는 작업은 제가 생각하는 이타심을 온전히 발휘할 수 있는 일이에요. 인물 사진을 찍을 때면 온전히 피사체에 집중하면서 ‘참다운 모습을 잘 담아야지’ 하는 생각을 해요. 그렇게 찍은 사진을 건네면 사람들도 제 진심을 알아주었어요. 사진에 제 진심이 고스란히 담겨있으니까요. 그렇게 사진은 저의 ‘직업’이 되었습니다. 


사진을 직업으로 삼기로 하고, 군 제대 후에는 사진 동아리에서 활동했어요. 사진을 찍을 수 있다면 어디든 마다하지 않고 찾아 다녔더니 사람들이 저를 ‘카메라 들고 다니는 친구’로 부르기 시작했어요. 학교는 저에게 맘껏 사진 찍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 주었어요. 학교를 졸업하며 제가 찍은 학교 사진을 모아 책도 내고, 전시도 했어요. 


학교를 졸업한 후에는 온전히 사진 찍는 일에만 집중했어요. 사진을 찍어 얻게 되는 수익이 커지고, 기업 고객들이 생겨나면서 세금계산서를 발행해야 했죠. 그러다 보니, ‘창업해야지’ 하는 목표를 세울 겨를도 없이 자연스럽게 스튜디오를 창업하게 되었어요.


돈을 버는 ‘직업’이자 삶을 즐기는 ‘방법’이에요


대학 시절, 큰 페스티벌의 공식 사진가 중 한 명으로 발탁되어 일한 적이 있어요. 선배들이 해 온 일이었는데 감사하게도 제게도 기회가 주어졌어요. 한창 축제 현장을 촬영하던 중, 옆에서 한 선배가 그러시는 거예요.


“이런 곳은 카메라 놓고 와서 놀아야 재미있는 건데.”


“그런가요?” 하고 대꾸했지만, 생각해 보니 저는 그렇게 느끼지 않았어요. 이렇게 사람들이 즐겁게 축제를 즐기는 곳에서, 행복한 사람들의 모습을 담는 게 제게는 훨씬 재미있었죠.


‘나에게는 사진을 찍는 것이 축제를 즐기는 최고의 방법이구나.’


그때, 사진을 계속할 수만 있다면, 지치지 않고 즐겁고 풍부하게 일하며 살아갈 수 있겠다는 확신을 갖게 되었어요. 제게 있어 사진은 천직이라는 생각, 그 생각은 지금까지 한 번도 흔들린 적이 없습니다.

질문으로 ‘의미’를 찾아 사진을 찍어요


저는 사진촬영을 의뢰받으면, ‘어떻게’와 ‘왜’ 라는 질문을 통해 상상을 펼쳐, 피사체와 함께 사진을 만들어 갑니다. 질문을 통해 피사체가 갖고 있는 의미를 사진에 담기 위해 아래와 같은 흐름으로 인물 촬영을 진행하죠.


촬영 전: 신청 및 사전 질문 작성 


  • 첫 번째 질문 BEAT: 당신의 삶의 박자는 어떠한가요?
  • 두 번째 질문 OFF-BEAT: 가장 기억에 남는 OFF-BEAT(엇박)를 말씀해 주세요. 긴 호흡의 문장, 간결한 문장, 한 단어 모두 좋습니다.

촬영 당일: 촬영 전 상담


A를 주문받았으니 A를 주는 방식 대신, 왜 A 이어야 하는지를 재차 확인하고, A+가 더 나을지, 혹은 S가 더 효과적일지 같이 고민합니다. 사진은 메시지를 이미지로 표현하는 작업이라서 더 좋은 매개자가 되기 위해서는 맥락을 잘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거든요. 


이것을 저의 차별점이나 특장점이라고 말할 수는 없어요. 이건 사진의 본질이니까요. 진심을 담아 사진을 대하는 많은 사람들이 대부분 저와 비슷하게 접근할 거예요.

다만, 저 스스로를 ’비주얼 스토리텔러‘ 라고 소개하는 이유는 언제나 진심을 다해 이야기를 들을 준비를 하고, 의미를 담아 촬영하기 위해 노력하기 때문이에요. 


촬영 시작: 무대 진행 중 NOW ON STAGE


촬영이 시작되면 피사체를 무대에 모시고 다시 이야기를 나눕니다. 무대의 주인공은 퍼포머(Performer)가 되고, 촬영을 하는 저는 지휘자(Conductor)가 되어 무대를 지휘해요. 우리가 나눈 대화의 기억은 사라지고, 장면은 희미해지기 마련이지만, 기록은 영원하니, 제가 지휘하는 무대의 결과물은 ‘영원’이 되는 셈이에요. 


내일도 오늘처럼 길을 나서고, 새로움과 만나고, 사진에 담을 거라는 사실, 그리고 그게 바로 내가 앞으로도 원하는 삶이라는 사실이 사진이 제게 준 가장 큰 선물이에요. 


언제나 자유로운 삶을 꿈꿔요


여기서 말하는 자유는 행동의 자유, 표현의 자유 등을 포함하지만, 조금 더 정확히 말하면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사는 삶’을 의미해요. 


사실 사진이 제 첫 번째 꿈은 아니었어요. 대통령, 소방관, 경찰, 게임 기획자, 광고인, 그리고 기자 등 다양한 꿈의 연대기가 떠오르네요. 30대에 사진이 저의 마지막 직업이라고 단정짓기에는 이른 감이 있지만, 평생 사진을 하고 싶다는 마음은 변하지 않을 거라는 확신을 갖고 있어요. 


어떤 분야에서 큰 성과를 거둔 사람들은 그 일을 무척 좋아하는 경우가 많다고 해요. 좋아해야 남들보다 훨씬 깊이 파고들 수 있기 때문이죠. 밤낮 가리지 않고 좋아하는 일에  매진하는 사람들은 실은 굉장히 자유로운 상태라고 볼 수 있는 거예요. 저도 제가 좋아하는 사진에 몰두하며 자유롭게 살면서 큰 성과를 이뤄내고 싶어요. 


물론 힘든 순간들은 언제나 있어요. 사진 작업만 잘하기에도 벅찬데 스튜디오 운영도 잘 해야 한다는 현실을 자각할 때, 늘 시간을 쪼개가며 바쁘게 일하는데도 정작 중요한 일들을 놓치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을 때(스튜디오를 알리거나 우리 작업물을 정리하는 일 등) ‘멘붕’을 겪기도 해요. 


그래도 차근차근 해낼 겁니다. 저는 평생 좋아하는 사진을 하며 자유롭게 사는 것이 꿈이고, 지금 그 꿈을 이루기 위해 여행하는 중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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