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뷰티 수저’를 물고 태어난 한국 인재들

글, 박종대


K-뷰티의 성공은 그야말로 ‘오래된 미래’라고 볼 수 있어요. 한순간 뜨고 지는 유행이라기보다는, 준비된 자가 좋은 운을 맞은 쪽에 가까워요. 지난 20년에 걸쳐 쌓은 탄탄한 산업적 역량이 ‘K 열풍’을 타고 전 세계를 강타하고 있는 것이죠. 


K-뷰티의 성장의 역사: 미샤부터 올리브영까지 

보통 2003년을 우리나라 화장품 산업의 새로운 시작으로 잡아요. 2002년 가계 신용카드 대출 부실 사태가 발생하고 로드숍이 망해 가던 시기였어요. 그때 미샤가 등장합니다. 가격 거품을 모두 빼고 퀄리티 높은 내용물로 채운 화장품을 출시했죠. 이후 더페이스샵 등 ‘원브랜드숍’이 잇따라 생기면서 국내 화장품 시장은 이전과 판이해져요. 생산과 브랜드가 분리되기 시작했거든요. 이전에는 대규모 생산공장이 가능해야 화장품 브랜드 사업을 할 수 있었어요. 진입장벽이 대단히 높았죠.


하지만, 원브랜드숍이 본격화하면서 이제 공장은 필수가 아니었어요. 약간의 돈과 아이디어, 가맹점주를 모을 수 있는 네트워크만 있으면 누구든지 화장품 사업을 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아울러, 자연스럽게 ODM(제조자개발생산) 산업이 성장하게 됐어요. 브랜드는 생산설비에 제약 없이 맘껏 상품기획을 하고, ODM은 특정 브랜드에 구애받지 않고 맘껏 신제품을 개발에만 집중했어요.


원브랜드숍 시장에서 온라인, 올리브영 같은 H&B(Health & Beauty) 채널로 유통채널이 진화하면서 진입 장벽은 더욱 낮아졌어요. 이런 변화가 진행되면서 우리나라 화장품 시장은 전 세계에서 가장 경쟁이 치열하고, 혁신적인 신제품이 많이 출시되는 시장이 되었습니다. 지금 일본과 미국을 비롯해 전 세계 화장품 시장을 선도하고 있는 마스크팩과 BB크림, 에어쿠션, 스틱파운데이션, 틴트, 선세럼, 멀티밤 등이 모두 이 당시에 개발된 제품들이에요.


팬데믹이 K-뷰티 산업에 기회가 된 이유 

성공에는 늘 운이 따르기 마련이에요. 최근 몇 년 사이 미국 등 해외에서의 성공이 주목받게 된 배경을 살펴보면 다분히 운이 좋았다고 볼 수 있어요. 20년 동안 성장해 온 K-뷰티의 역량이 마치 풍선처럼 터지기 일보 직전인 상태였으니까요. 그동안은 세계로 나갈 기회가 적었어요. 고작 해봐야 중국 시장 정도였는데 중국 또한 한한령 등으로 인해 시장이 닫혀 버렸죠. 하지만 팬데믹이 우리나라 화장품 산업에는 매우 큰 기회였어요.


미국이라는 나라가 굉장히 특이한 게, 색조 제품 비중이 굉장히 높아요. 통상적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들의 화장품 시장을 보면, 색조 제품의 비중이 28% 정도거든요. 그런데 미국은 46%가 색조입니다. 포인트 메이크업이 대세였던 거죠.


하지만 코로나 19 팬데믹으로 상황이 달라졌어요. 메이크업하고 나가서 놀아야 하는데, 집에만 있게 됐잖아요. 그러면서 예전에는 보이지 않았던 잡티, 주름, 여드름과 같은 피부의 단점들이 보이기 시작했죠. 마침, K-드라마와 K-팝이 미국에 퍼지기 시작했어요. 미국 소비자들이 한국 연예인의 좋은 피부와 K-뷰티, 그중에서도 기초 화장품 라인에 자연스럽게 관심을 두게 됐죠.


같은 시기 틱톡을 통해 스킨1004, 조선미녀, 아누아 등 우리나라 화장품 브랜드들이 대대적인 마케팅을 시작했어요. 아마존을 통해 화장품 판매도 시작했고요. 틱톡과 아마존이 없었다면, 어떻게 국내의 인디 브랜드가 미국 소비자들을 만날 수 있었을까요? 마치 우주의 기운이 K-뷰티의 성공을 향해서 모인 것 같은 느낌도 듭니다.


미국에서의 성공이 의미하는 것

미국 시장에서 성공한다는 것은 매우 큰 의미를 갖습니다. 미국에서 성공하면 세계 어느 지역으로도 다 들어갈 수 있기 때문이에요. 2015년 중국에서의 성공과 비교해 보면, 중국은 내수 시장이 크지만, 그곳에서 성공한다고 해서 다른 나라로 진출할 수 있는 건 아니었어요. 그런데 미국은 다르죠. 세계 1등을 하려면 뉴욕으로 가라는 말도 있잖아요. 패션, 영화, 음악, 화장품, 모든 영역이 마찬가지예요.


미국에서 성공하니 유럽 시장으로 자연스럽게 들어갈 수가 있게 되었어요. 유럽에 진출하니 중동으로 흘러갈 수 있었고요. 이어서 독립국가연합(CIS), 러시아, 인도까지 수출이 많아졌어요. 동남아는 말할 것도 없고요. 2024년 미국, 2025년 유럽에 이어서 2026년에는 중동, 중남미 지역에서 또 하나의 큰 판이 열릴 거예요.


세상을 바꾸려면 AI를 하고, 돈을 벌려면 뷰티를 해라

그래서, 수많은 인재가 화장품 사업에 출사표를 던지고 있습니다. ‘세상을 바꾸려면 AI를 하고, 돈을 벌려면 뷰티를 해라!’는 말이 나올 정도죠. K-뷰티의 현재도 좋지만, 미래를 더욱 긍정적으로 보는 이유 중 하나가 이것이에요. 우리나라 최고의 인재들이 화장품 산업으로 들어오고 있다는 점이죠. 어느 시대에나 창업의 DNA를 가진 0.1%의 인재들이 있거든요. 그 인재들이 30대 초중반일 때 시대의 흐름이 어땠느냐가 중요하죠.


1970년대생이 30대 초중반이었던 2010년, 당시 가장 큰 변화는 스마트폰 보급률 확대로 인한 온라인화였어요. 소비가 오프라인에서 온라인으로 변화했고, 창업의 DNA를 가진 수많은 인재가 플랫폼을 만들었습니다. 쿠팡, 배달의민족, 당근마켓 창업자가 모두 1970년대생이에요. 이어 1980년대생이 30대 초중반이 되는 2020년, ‘한류’가 대세가 되었죠. 한류에 편승해서 돈을 벌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지 찾기 시작했고, 이들이 떠올린 것은 소비재였어요.


인재들이 화장품 산업에 도전하는 이유 

소비재 중에서도 왜 하필 화장품일까요? 패션, 푸드도 있지만, 화장품이 진입장벽이 제일 낮기 때문이에요. 설비를 갖출 필요가 없고 아이디어만 있으면 됩니다. 제조는 전 세계에서 가장 화장품을 잘 만들어주는 ODM 기업 코스맥스, 한국콜마가 맡아주고, 유통은 실리콘투에서 직매입으로 해외와 연결해주죠. 브랜드는 마케팅만 잘하면 돼요. 


또 화장품은 레버리지가 큰 분야예요. 식품이나 패션은 중소기업에서 히트 상품을 내도 돈을 별로 못 벌어요. 전체 제조설비가 현저히 부족해 생산능력에 한계가 있기 때문이에요. 주문이 5만~10만 개가 들어온다 해도 재고를 입고할 수가 없어요. 식품이 히트했을 때 품절되는 일이 잦은 이유죠.


반면, 화장품은 코스맥스와 콜마가 제품을 100만~200만 개도 만들어줘요. 덕분에 히트만 치면 매출이 엄청나게 커지죠. 2025년 아마존 신규 화장품 K-뷰티 톱3가 닥터엘시아, 닥터멜락신, 이퀄베리인데요. 2024년엔 매출이 400억~800억 원밖에 되지 않았지만, 2025년 매출이 3000억 원이었어요. 중소기업에서 이런 매출 성장이 가능한 산업은 화장품밖에 없어요.


워런 버핏이 그런 말을 했죠. 자신이 투자에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 중 첫 번째가 미국에서 태어났다는 사실이라고요. 마찬가지입니다. 창업자들 입장에서 본다면, 우리나라에서 화장품 사업을 한다는 것은 정말 행운이에요. 우리나라만큼 화장품 산업 인프라가 완벽하게 갖춰져 있는 지역이 없어요. 아이디어만 있으면 그걸 바로 제품으로 완벽하게 실현해 줄 수 있는 전 세계 최고의 부자재·ODM 업체들이 클러스터를 이루고 있고, 실리콘투를 통해 전 세계로 유통이 가능해요. 글로벌 수출 파이프라인은 더 커지고 있어요. 전방 산업과 후방 산업이 완벽하게 갖춰진 환경이에요.

💌 <K-뷰티 투자 가이드>는 수요일에 연재됩니다.

📌필진 소개: 안녕하세요. 메리츠증권 리서치센터에서 소비재와 화장품 산업을 분석하고 있는 박종대입니다. 20년 가까이 유통·화장품 업종을 중심으로 리서치를 해왔고, 화장품 산업이 성장하는 과정을 현장에서 지켜봤습니다. 중국 소비 변화, K-뷰티의 부상과 구조적 전환을 이른 시점부터 분석해, 그 흐름을 투자 관점에서 설명하는 데 집중해 왔습니다. 이번 연재에서는 숫자와 트렌드 뒤에 있는 화장품 산업의 진짜 경쟁력과 변화를 차분하게 짚어보려 합니다. 지은 책으로는 K-뷰티 어디서 왔고, 어디로 가고 있는가?, 화장품은 한국이 1등입니다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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