뱅크런_TMI.zip

글, 정인

독자 여러분이 궁금해하셨던 경제·금융 관련 tmi. 이번 주제는 ‘뱅크런’입니다. 

“2011년에 저축은행 7곳이 영업정지 됐잖아요.
교과서에서나 봤던 뱅크런이 우리나라에 일어났는데,
대체 어떻게 된 일인가요?”

‘뱅크런(Bank Run)’은 고객들이 은행에서 예금을 인출하기 위해 몰려드는 현상을 뜻합니다. 경제가 나빠져 금융시장에 불안감이 감돌거나, 은행의 건전성에 불신이 생겼을 때 발생하곤 합니다. 

1931년 7월 13일 독일 베를린에서 발생한 뱅크런 / 출처: 독일 연방 문서보관소

the 독자: 근데 한두 명도 아니고, 저렇게 많은 사람들이 달려가는 이유는 뭐예요?

어피티: 현대 금융 시스템은 신용으로 돌아가는데, 개인도 아니고 은행을 믿지 못하면 어떻게 거래하겠어요. 은행이 “고객님 계좌에 표시된 돈만큼 저희에게 현금이 없습니다, 죄송합니다 고객님 🙏”이라고 하면 어떡해요.

the 독자: 일단 자동이체해둔 카드값부터 연체되겠죠. 그러다 은행이 진짜 파산하면 그간 고생해서 번 돈은 다 날아가고… 생각만 해도 끔찍하네요.

어피티: 그러니 은행이 망할 것 같다는 소문이 돌면 다들 “은행 현금 재고가 떨어지기 전에 내 돈부터 일단 찾자”라는 불안함으로 은행에 달려가는 거예요. 
the 독자: 그런 일이 우리나라에 있었던 거죠?

어피티: 네. 그것도 겨우 10년 전인 2011년에 일어났어요. 

2011년, 프라임저축은행에서 410억 원이 인출되는 뱅크런이 일어났습니다. 이후 토마토은행, 솔로몬저축은행에서도 뱅크런이 발생했고, 2011년 2월 21일에는 전국 저축은행에서 하루 만에 4,900억 원의 뱅크런이 나타났어요.

*저축은행과 제2금융권이 궁금하다면?
이 글에서 확인해보세요!

tmi 1.
은행이 ‘파산’ 했다고
함부로 보도할 수 없는 이유

2011년 1월 14일, 금융위원회는 삼화저축은행의 영업을 정지시킵니다. 사연이 많지만, 가장 중요한 이유를 꼽자면 자기자본잠식과 허위공시 때문이었어요

다시 말해서, ① 은행에 손해가 많이 나서 고객이 맡긴 돈까지 까먹었는데 ② 그 사실을 숨기고 거짓 보고를 한 거예요.

이 사실이 밝혀지자 은행을 감독하는 금융위원회는 “이 상태로 계속 영업하면 안 되지! 대체 얼마나 심각한 거야? 일단 셔터 내려! 점검부터 해야겠어!”라면서 제재를 내렸습니다. 

삼화저축은행에 돈을 맡겨둔 고객들은 발만 동동 굴렀고, 다른 저축은행에 돈을 맡겨둔 고객들은 지점에 달려갔습니다. 

삼화저축은행이 예금자 돈까지 까먹었다는 이유로 영업정지가 됐으니 저축은행에 대한 신뢰도가 뚝 떨어진 거예요. 안심할 수 없으니, 맡겨둔 돈을 찾기 위해 저축은행으로 찾아간 거죠.

문제는 삼화저축은행뿐만 아니라 다른 저축은행들도 재무상태가 좋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고객이 예금을 빼가기 시작하면서 하나둘씩 픽픽 쓰러지기 시작했어요. 

이게 바로 2011년, 우리나라에 일어났던 뱅크런입니다. 정식 명칭은 ‘부실저축은행 구조조정 및 영업정지 사태’예요.

the 독자: ‘저축은행 연쇄부도’나 ‘저축은행 연쇄파산’ 이런 게 아니네요? 망한 건 아니라는 건가요?

어피티: 저축은행 7개가 영업정지를 당했는데, 이후 영업재개를 못 하면 망한 거라고 봐야죠. 영업재개 가능한 곳이 얼마 없었어요.

the 독자: 그런데 왜 굳이 ‘구조조정 및 영업정지 사태’라고 순한 맛(?)으로 표현한 거죠?

어피티: 삼화저축은행이 부실은행이라는 뉴스에 수많은 다른 저축은행에서 뱅크런이 일어났는데, 대놓고 ‘부도’, ‘파산’이라고 표현하면 어떤 사태가 나타났겠어요. 

the 독자: 아…

어피티: 그래서 당시 신문 기사를 보면 ‘영업정지’와 ‘부실’이라는 단어가 ‘파산’이나 ‘부도’라는 단어보다 훨씬 많이 등장합니다. 

저축은행들이 영업정지를 받은 뒤, 뱅크런이 일어나고, 뱅크런이 기사를 통해 이슈화되고, 이슈가 대중의 관심에서 잊혀질 때쯤 하나둘, 조용히 파산신청 하는 순서였습니다. 

이 중 ‘뱅크런이 기사화’ 되는 단계에서, 언론이 ‘부도’나 ‘파산’이라는 말을 함부로 사용하지 않은 이유는 (앞으로 망할 것이 뻔해도) 법적으로 파산 신청을 한 건 아니었고, 함부로 자극적인 단어를 썼다가 난리가 나면 아무도 책임질 수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여기서 난리는 정말 큰 난리가 될 수도 있습니다. 2001년, 아르헨티나에서는 뱅크런 끝에 폭동이 일어나 대통령이 헬기를 타고 긴급하게 피신할 정도였어요.

삼화저축은행 영업정지 이후, 대전저축은행, 부산저축은행, 제일·제일2저축은행, 프라임상호저축은행,

토마토저축은행, 파랑새저축은행 등은 파산신청을 합니다. 저축은행 영업정지 사태의 시발점이 되었던 삼화저축은행도 몇 달 뒤에 파산해요.

한 달 조금 넘는 사이에 7곳이나 영업정지가 돼서 이슈가 됐지만, 그 이후 30곳이 조용히 영업정지 또는 파산합니다.

tmi 2.
저축은행이 
망한 이유

the 독자: 그런데 2011년에 저축은행은 왜 망한 거예요? 

어피티: 크게 ① PF 대출 부실화 ② 부정부패가 문제였어요.

당시에 저축은행들은 건설사에 대출을 많이 해줬습니다. 부동산 프로젝트 파이낸싱이라고, 아파트 한 단지 짓는 프로젝트, 지하철 몇 구간 건설하는 프로젝트, 한강 다리 하나 짓는 프로젝트 식으로 건설 프로젝트 하나 붙잡고 이자가 비싼 대출을 해주는 거예요.

큰돈이 거래되기 때문에 문제가 생기면 그 타격도 어마어마합니다. 요즘도 저축은행에서 사고가 터졌다 하면 부동산 PF인 고수익 고위험 대출이 원인인 경우가 많아요.

그런데 2007년 미국발 서브프라임 모기지의 신용경색으로 부동산 실물시장의 침체, 2008년에 글로벌 금융위기가 터졌잖아요. 그 뒤로 부동산을 포함해 세계 경기가 침체됩니다. 건설사도 부도가 나면서 PF에 돈을 빌려준 저축은행들은 원금도 돌려받기 어렵게 됐죠.

그 와중에 고질적인 경영 문제도 있었습니다. 저축은행들은 대출을 받아 새로운 대출을 갚는 돌려막기를 하고, 경영상태를 공시할 때 허위정보를 공시하고, 금융당국이 수사를 못 하도록 정치권에 로비를 하는 등의 부정부패가 만연해있었죠. 

원래부터 부실했던 경영 상태와 PF 문제가 합쳐져 ‘2011 저축은행 부실사태’가 발생한 거예요.

tmi 3.
돈, 못 돌려받았죠

the 독자: 2011년 부실화 사태 이후에 고객들은 맡겼던 돈을 돌려받았나요?

어피티: 안타깝게도 대부분 돌려받지 못했어요. 2012년 5월 기사에 따르면 약 5만 명이 원리금을 돌려받지 못했습니다

the 독자: 그럼 한 푼도 못 돌려받았다는 거예요? 

어피티: 그건 아니고요. 예금자보호법이 적용된 예금상품에 돈을 넣어둔 고객들은 최대 5천만 원까지 돌려받을 수 있었어요. 5천만 원이 넘는 금액은 돌려받지 못했죠.

the 독자: 예·적금도 일종의 투자니까 개개인이 투자에 대한 책임을 지라는 거네요.

어피티: 그런 셈이죠.

저축은행 금리는 대출을 받을 때도 높지만 예·적금 금리도 제1금융권보다 높은 편이에요. 은행이 고객의 예·적금으로 고수익 고위험 상품에 투자하기 때문이죠. 

2019년에는 저축은행에 예금자보호법이 적용되지 않는 계좌로 6조 5천억 원이 예금되었습니다. 요즘 같은 저금리시대에 높은 금리를 제공하는 상품에 투자하고 싶은 게 소비자 입장에선 당연하겠죠. 

금융사고에서 소비자를 보호하는 건 중요한 이슈지만, 현실적으로 한 번 사고가 나면 피해자가 구제받기 어렵습니다. 개인의 책임 문제와 금융상품 구조의 부조리함이 복잡하게 뒤엉켜 있기 때문이에요.

물론 불합리한 구조와 관행은 반드시 개선돼야 하지만, 당장 피해를 보는 건 나 자신입니다. 그러니 스스로 책임질 수 있는 부분에서는 최대한 똑똑한 소비자가 돼야 해요. 올해에도 저축은행의 PF 부실화주의보가 있으니, 이 내용도 꼭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 <경제사tmi>에 참고한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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