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세 전쟁의 최종 목표는 중국?! 관세 정책의 최종 목표는 제조업 부활이에요. 미국은 관세를 통해 무역적자를 줄이고, 외국 기업의 미국 투자를 유도해서 자국 내의 제조업을 부활시키는 데 이용하고 싶어 해요. 이 의도는 3월 1일 미국 무역대표부(USTR)가 공표한 ‘2025년 대통령 무역정책 아젠다(이하 아젠다)’에 잘 나와 있어요. ‘아젠다’는 미국 행정부의 무역 정책 우선순위와 비전을 제시하는 문서예요. 정책 방향을 설정하고 행정부의 의도를 알리기 위해 작성되어 의회와 대중에게 행정부의 경제 목표를 전달해요.
‘아젠다’는 고임금, 일자리, 혁신, 국가안보를 위한 통상 정책을 강조하며 ‘생산 경제(Production Economy)’라는 제조업 중시 경제 비전을 제시했어요. ‘아젠다’가 말하고자 하는 트럼프 2기의 관세 전쟁의 목표는 명확해요. 전임 바이든 정부가 동맹국과 우방국이 함께하는 공급망 안정을 추구했다면, 트럼프 2기는 중국에 맞설 제조업을 미국 스스로의 힘으로 구축하는 게 목표예요.
미국의 GDP에서 총수입 비중은 11%로 다른 나라에 비해 무역의존도가 낮은 편인데요. 그렇기 때문에, 과거와 같은 제조 강국의 영화를 되찾겠다는 게 가능할지도 모르죠. 단, 미국의 낮은 수입 비중이 곧 낮은 해외의존도를 뜻하지는 않아요. 예컨대, 국민의 생명을 지키는 의약품의 경우는, 원재료(API)의 중국 의존도가 매우 높아요. 그래서 의약품에도 관세를 매기겠다는 계획은 반발을 불러 일으키고 있는 거고요. 이미 임금이 높고, 제조 관련 기술이 많이 사라진데다 제조 인프라도 낙후된 나라가 과도한 보호조치를 내걸고 과거로 역행하겠다고 하는 발상은 현실적으로 보이지 않아요.
미국은 ‘아젠다’ 공개 뒤, 고관세를 피해 미국으로 제조 공장들이 돌아오는 ‘트럼프 효과(Trump Effect)’ 홍보에 열중했어요. 현대자동차그룹은 3월 24일 백악관에서 향후 4년간 미국에서 자동차, 부품, 물류, 철강, 미래 산업 및 에너지 등에 총 210억 달러(약 31조 원) 규모로 신규 투자를 진행하겠다고 발표하기도 했죠. 트럼프 2기 출범 이후 한국 기업의 투자 계획 중 최대 규모예요. 현대차는 이번 투자로 미국에 1,300개의 일자리가 생길 거라고 강조했어요.
현대차의 전기 제철소가 들어설 루이지애나는 공화당 지지 성향이 강한 ‘레드 스테이트’예요. 이 자리에서 트럼프는 현대차 인사를 일일이 호명하고 연신 고맙다, 위대하다고 말하며 이를 관세 효과로 포장했어요.
그런데, 왜 제조업일까요? 제조업은 미국의 ‘아킬레스건’이기 때문이에요. 미국은 독일, 일본, 한국, 중국이 순차적으로 저렴한 임금과 산업정책을 무기 삼아 제조 강국으로 부상하는 동안, 자신들은 희생당한 피해자라고 보고 있죠. 미국이 지금은 우방국이나 동맹국도 사정을 봐주지 않고 공격하고 있지만, 사실은 세계 최대 제조 강국인 중국과의 본격적인 대결을 준비하고 있는 거예요.
‘불확실성’은 미국 경제도 해쳐요 불확실성은 미국의 관세 전쟁에 숨어 있는 최대 뇌관이에요. 미국이 지금 벌이고 있는 관세 전쟁은 혼돈 그 자체죠. 트럼프 대통령이 정책적으로 일관적이지 않고, 즉흥적인 것처럼 보이기 때문에, 이에 대한 대응이 어려워요.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식 당일 4월 1일까지 ‘미국우선주의 통상정책’ 추진에 필요한 모든 사전 준비 사항을 검토해 보고하라고 해놓고, 곧바로 캐나다, 멕시코, 중국을 대상으로 관세 폭탄을 터뜨렸어요. 트럼프 1기 당시는 340억 달러 상당 관세를 중국에만 부과하는데 약 18개월을 준비했던 것과 달랐죠. 이번에는 4270억 달러 상당의 대중국 수입품이 단 2주 만에, 약 9000억 달러 상당의 캐나다, 멕시코 수입품에 단 한 달 만에 관세를 부과했어요.
여기서 끝이 아니에요. 마침내 4월 2일 상호관세 부과를 발표하고 누가 뭐라 해도 밀어붙이겠다고 했었죠. 그러더니 4월 9일 불과 발효 13시간 만에 중국을 뺀 모든 나라에 대하여 10% 기본 관세만 놔두고 90일간 유예를 전격 선언했어요. 왜 그랬을까요? 바로, 국채 시장이 급등했기 때문이에요.
트럼프가 90일 유예를 선언한 이유 트럼프 대통령은 주가보다 국채금리 움직임에 민감해요. 우선 연방정부의 총부채가 GDP 대비 약 122%에 이르고 이자 비용은 약 9500억 달러로 미국에 엄청난 부담이기 때문이죠. 게다가, 이자 비용이 늘면 적극적으로 추진 중인 감세 얘기를 꺼내기 힘들어져요. 더욱이 금융시장에서 미 국채는 안전자산으로 인식되어 주가가 내리면 채권 가격은 상승(국채 금리는 하락)하는데, 이번에 상호 관세 발효 직후 10년물 국채금리가 4.5% 넘게 상승했다는 것은 그만큼 시장이 관세 전쟁으로 인해 미 국채에 대한 신뢰마저 거두고 있다는 뜻이에요. 이건 매우 불길한 시그널이죠.
미국의 대표적인 퇴직연금제도 401(k)에 대한 얘기도 잠깐 해볼까요? 국채 금리가 급등하고, 채권 가격이 하락하면서 퇴직연금 평균 수익률이 3월 마지막 주에 2.1% 하락했어요. 미국의 50대 이상 은퇴 예정자들이 타격이 크죠. 이들에게 401(k)은 노후를 보장해 주는 매우 중요한 자산이에요. 그러니 뱅가드, 피델리티 같은 퇴직연금 투자사들이 식겁을 했고요. 공화당 내부에서도 국채금리 불안은 유권자들의 은퇴자산을 건드려 정치적 역풍이 될 수 있다고 말렸어요.
결국 이런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월가 출신 베센트 재무장관이 트럼프에게 전달했고요. (그리어 미 무역대표부 대표는 관세 유예 소식을 전혀 모르고 의회에 가서 열심히 상호관세 부과 필요성을 설득하던 도중에 그 소식을 들었답니다) 401(k) 얘기가 국내에선 그다지 조명받지 못했다는 게 좀 아쉽네요.
현실적인 면에서도 상호관세는 불필요한 행정상의 번거로움과 비용을 유발해요. 이미 그 조짐이 나타나고 있고요. 만일 무역상대국간에 보복관세의 악순환에 빠지면 더 복잡해지는데요. 최혜국대우 원칙이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된 것은 바로 이런 현실적인 이유 때문이에요. 과연 이러한 현실을 감안해서 제대로 작동하는 상호 관세 운영 방안, 그것도 수많은 무역상대국마다 맞춤형 운영이 필요한 방안이 만들어질 수 있을까요?
트럼프의 오락가락 관세로 인한 ‘카오스’ 상황은 이미 주가, 물가지수, 소비 지표 등 다양한 경제지표에 반영되고 있어요. 관세 부과를 발표한 후, 미국의 S&P 500지수는 지난 11월 트럼프의 당선 이후의 상승분을 다 반납했어요. 현재 미국의 주가 흐름은 유럽이나 중국 증시가 상승하는 것과는 동떨어져 움직이고 있어요. 4월 2일 발표된 트럼프의 관세 조치에 맞서 중국의 보복 관세가 발표된 4월 4일부터 9일까지 미국 증시는 2020년 팬데믹 이후 최악의 폭락을 겪기도 했어요.
미국 경제 환경은 좋지 않아요. 제조업 업황은 하락세이고, 중장기 기대 물가수준은 32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어요. 3월의 소비자신뢰지수(57.9)는 2022년 11월 이래 최저 수준이에요. 2월의 소비자물가지수(CPI)는 1월(3%) 대비 소폭 하락(2.8%)했으나 불확실한 경기 전망을 반영한 것이니 호재라고 볼 수도 없어요.
시장의 변동성과 불확실성이 커지자, 국내 생산자와 소비자들은 관세로 물가가 더 오르기 전에 미리 투자와 소비, 수입을 앞당기고 있어요. 요즘엔 한국의 선크림마저 사재기 대상이 되었다고 하네요. 최근엔 스태그플레이션(저성장과 물가상승이 동시에 일어나는 현상)에 대한 우려도 나오고요. 2026년에 고물가 경기 침체를 예상하는 투자자 비율이 7개월 만에 최고치를 기록하기도 했는데요. 더 이상 미국만 성장하는 예외주의는 기대하기 힘들어지고 있죠. 주요 기관들의 2025년 미국 경제 성장 전망치는 낮아지고 있어요.
지금까지 트럼프의 관세 정책의 목표와 특징을 살펴보았는데요. 다음 시간에는 트럼프 행정부가 내세우고 있는 ‘감세-관세 혼합 정책’이 무엇인지, 이 정책이 미국 경제의 만능 해결책이 될 수 있을지 알아볼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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