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턱 높은 장기요양보험의 현실

글, 박한슬


노인이 되면 막연히 돌봄이 필요하단 생각은 들지만, 과연 언제부터 돌봄이 필요해지는 것인지 깊이 생각해 볼 기회는 드물어요. 2023년 노인실태조사에 따르면, 전체 노인의 81.4%는 아무런 기능 제한 없이 살고 있다고 해요. 얼핏 보면 상황이 괜찮아 보이죠.

그런데 이 통계에는 함정이 숨어 있습니다. ‘노인’이라는 거대한 범주 안에 갓 65세를 넘은 액티브 시니어부터 100세 넘는 초고령 노인들까지 한데 섞여 있기 때문이죠. 75세 이상인 ‘후기노인’만 살펴보면 전혀 다른 그림이 나와요. 이 나이대에서 독립생활을 유지할 수 있는 사람은 68.9%, 초고령인 85세 이상으로 가면 47.5%로 급격히 줄어들어요.

다시 말해, 85세를 넘어가면 노인의 절반 이상이 ‘최소한의 가사 지원’ 없이는 독립적인 삶을 유지하기 어렵다는 거예요. 특히 식사, 배변, 세면, 옷 입기 같은 일상생활(ADL) 기능이 하나라도 제한된 노인 비율은 75세 이상에서는 16.4%나 돼요. 대소변을 스스로 처리하지 못하거나, 걷고 목욕하는 데 타인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거죠.


이런 사람들을 돕기 위해 도입된 게 장기요양보험이지만, 실제로 그 혜택을 누리기 위해선 꽤 높은 문턱을 넘어야만 합니다.

높디 높은 장기요양보험의 문턱

노인장기요양보험을 신청하기 위해 충족해야 하는 자격 요건은 두 가지입니다.

① 만 65세 이상일 것
② 노인성 질병(치매·파킨슨병 등)으로 6개월 이상 일상생활이 곤란한 사람

여기서 중요한 건 6개월 이상이라는 조건입니다. 단순히 현재 몸이 불편하다고 무조건 신청해서 받을 수 있는 제도가 아니라는 얘기예요.

예를 들어, 겨울철 빙판길에 넘어져 다리 골절을 입은 78세 어르신이 있다고 가정해 보죠. 당연히 몇 개월간은 거동이 어렵고, 돌봄이 절실할 겁니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도 6개월 이상 상태가 지속돼야만 등급 심사 대상이 됩니다. ‘오늘 걷지 못하는지’만 보는 게 아니라, 6개월 이상 같은 상태였다는 것을 증명해야 하거든요.

그래서 가장 빠르게 등급을 받을 수 있는 경우는 오히려 치매 환자입니다. 의료진에게 치매 진단서를 받으면 되니까요. 그런 이유로 어르신이 일부러 치매를 연기해서 병원을 찾는 일도 벌어진다는 얘기가 나올 정도입니다.

이렇게 어렵사리 신청 자격요건을 맞췄더라도, 다음 단계인 등급 판정 역시 녹록지 않습니다. 현재 장기요양보험은 총 6개 등급(1~5등급 + 인지지원등급)으로 구성돼 있어요

  • 1~2등급: 중증
  • 3~5등급: 경증
  • 인지지원등급: 치매에 한정된 별도 구간


2023년 기준으로 장기요양보험 등급을 받은 사람은 누적 110만 명. 그중 1~2등급을 받은 대상자는 고작 15만 명(11%)에 불과합니다. 원칙적으로는 이 1~2등급 노인들만 요양원 입소가 가능하고 나머지 노인들은 집에서 재가 돌봄서비스를 받아야 해요.

3~5등급 노인들이 받는 재가서비스는 일일 3시간 이내 방문본인부담금 15%라는 조건이 붙어요. 게다가 법적으로 규정된 ‘생활보조’의 범위가 생각 이상으로 모호하기 때문에, 노인의 생활보조에는 여전히 큰 공백이 존재합니다. 간단한 가사는 도움을 줄 수 있지만, 병원 방문 동행 같은 영역은 포함이 되지 않기 때문에 가족 돌봄이 반쯤 필수죠. 그런데 이보다 더 큰 문제가 있어요. 장기요양보험 등급을 받지 못하는 노인들도 적지 않다는 거예요.


등급 외 노인의 종착지, 요양병원 

장기요양보험을 신청했으나 탈락하는 사람은 매년 12% 정도예요. 노인 10명 중의 1명은 장기요양보험료를 꾸준히 납부하고 있음에도 장기요양보험을 받을 수 없는 거죠. 우리나라의 노인장기요양보험이 모태로 삼은 일본의 개호보험(介護保險)과는 달라요. 개호보험의 경우 경증의 일상생활 기능장애를 겪는 노인들은 생활 보조만 제한적으로 제공되긴 해도, 돌봄 자체는 받을 수 있거든요.

그럼, 이들은 어디로 갈까요? 바로 ‘요양병원’입니다. 요양병원은 병원이기 때문에 ‘치료’를 명분으로 건강보험 혜택을 받을 수 있어요. 동시에 병원에 가는 데 별다른 자격이 필요하지 않듯, 노인 환자들도 무조건 입원이 돼요. 치료할 수 없는 퇴행성 질환(치매, 파킨슨병 등)이나 단순 노쇠 상태는 원래 입원 대상이 아니죠. 돌봄 서비스를 못 받는 노인들이 입원하는 것을 ‘사회적 입원’이라고 불러요.

이렇게 요양 병원에 입원할 수 없는 노인들은 비싼 사설 간병인을 쓰거나 전적으로 가족 돌봄에 의존하고 있어요. 가족 중 한 명이 퇴사하거나 휴직하고 노인을 돌보는 상황. 이는 단순한 수발이 아니라 시간과 체력, 감정까지 소모되는 고강도 노동이죠. 이른바 ‘가족돌봄 번아웃’(caregiver burnout)으로 이어지는 경우도 많아요. 가장 나쁜 형태로 뻗어가면 본인이 돌보던 가족을 해치는 간병살인까지도 발생하기도 하고요.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장기요양보험의 신청 요건을 완화하고 좀 더 폭넓은 재가서비스를 제공해야 해요. 그러기 위해선 장기요양보험 재정을 확충해야 하고요. 


돌봄재정 확충하는 세 가지 방법
돌봄 재정을 늘려야 한다는 논의는 꾸준히 있었어요. 어떤 방법으로 장기요양보험 재정을 확충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다양한 의견이 나왔습니다. 의견들을 종합하면 장기요양보험 재정을 확충하는 방법은 크게 세 가지로 구분할 수 있어요. 


첫 번째, 보험료 인상이 필요해요. 현재 장기요양보험 재정 중 보험료가 차지하는 비중은 80% 수준이에요. 그러니 보험료를 인상하는 게 가장 확실한 해결책이죠. 우리나라의 경우 전체 소득의 약 1% 남짓을 납부하는 수준이라, 다른 주요 선진국보다 낮은 편이에요.

두 번째, 세금 등의 국가재정 지원을 늘려야 해요. 일본은 중앙정부와 지방정부가 합쳐, 개호보험의 재정 50% 정도를 부담하고 있습니다. 현재 우리나라는 20% 수준을 지원하고 있어, 이 비중을 좀 더 높여야 해요.

세 번째, 건강보험의 재정을 일부 이전해야 해요. 현재 요양병원은 의료기관이면서도 기형적으로 돌봄 기능을 수행하고 있어요. 이 부분을 점진적으로 축소하고, 명목상 의료비지만 실질적으론 돌봄 지출인 금액을 원칙대로 돌봄 재정으로 이전하여 재정비하는 게 필요해요. 의료비 상승세도 가파르니 적절한 구조 재조정이 되는 거죠.

셋 다 쉬운 방법은 아니지만, 고령화라는 사회적 위험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구성원들의 연대 없이는 불가능해요. 장기요양보험, 당장 내 손에 잡히는 혜택은 없어 보일 수도 있지만, 먼 훗날의 내가 혹은 내 부모님이 미래에 누릴 돌봄을 생각하면 꾸준한 관심이 필요해요. 그 시작은 재정개혁이어야 할 거예요. 


📌 필진 소개: 약 대신 글을 짓고 있는 약사 박한슬입니다. 약과 질병에 대한 상식을 쉽게 풀어 쓴 <오늘도 약을 먹었습니다>를 시작으로 바이오산업과 의료정책에 대한 다양한 글을 쓰다, 최근엔 우리 사회의 현실을 데이터를 통해 살펴본 ⟪숫자한국⟫이란 책을 출간했습니다. 지난 <돌봄의 경제학>, <트럼프 시대의 제약-바이오 산업> 연재에 이어 노인 돌봄을 위해 도입된 장기요양보험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단편적 정보보다 깊은 맥락이 전해지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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