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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버리지와 빚 부담 사이에서

글, 정은길

최근 들어 가계대출이 엄청나게 늘어났다고 하죠. 경제 뉴스를 조금만 관심 있게 보셨다면 그 이유를 눈치챌 수 있을 텐데요. 네, 바로 집값과 주식 투자 때문입니다. 집을 한시라도 빨리 사거나, 크게 오른 전셋값을 감당하기 위해 특히 2030 세대에서 대출을 많이 받고 있다고 해요. 카카오게임즈 같은 신규 상장기업에 투자하기 위해 빚을 내기도 한다죠.

금세 지나가는 뉴스지만, 생각해보면 참 황당합니다. 사람들은 빚을 내는 게 무섭지도 않은 걸까요? 아무리 대출금리가 낮다고 해도 어쨌든 빚은 갚아야 할 돈인데 말이죠. 매달 신용카드 결제일에 돈 나가는 것도 감당하기 어려운데, 대출을 몇억 원씩 받는 사람들이 역대 최고 수준으로 많아졌다니. 새삼 다른 세상 이야기 같은데요.

여기서 잠깐. 님이 한 가지 이해하고 넘어가야 할 사실이 있습니다. 현실에서는 빚을 내지 않고 집을 살 수 없습니다. 현금 부자가 아니라면 말이죠. 그래서 내 집을 사고 싶다는 마음을 먹었다면 가계대출을 무턱대고 두려워해서는 안 됩니다. 슬픈 이야기지만, 무조건 대출이 무서워서 거부했다가 망해본 사람이 바로 저이기에 자신 있게 이런 말씀을 드릴 수 있어요. 

체크 포인트 1.
착한 빚을 거부하지 마세요

‘빚에도 종류가 있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빚을 크게 ‘나쁜 빚’과 ‘착한 빚’으로 나누죠. 나쁜 빚은 단순 소비를 위한 빚입니다. 여행이나 명품 소비, 자동차 구입 등을 위해 내는 빚이 여기에 해당합니다. 이렇게 소비를 위해 빚을 내면, 그 빚을 갚느라 월급이 꼭 필요해지죠. 이직하고 싶어도, 공부를 더 하고 싶어도 당장의 수입이 필요해 미래의 나까지 희생시켜야 합니다.

반면 착한 빚은 ‘레버리지’를 일으켜주는 투자금입니다. 대표적인 게 부동산을 사기 위한 대출입니다. 내가 버는 돈이 물가 상승률을 따라갈 수 없으니, 일단 빚과 손잡고 내 집을 마련해두는 겁니다. 20~30년의 장기 대출 계획에 따라 돈을 갚는 몇 년 사이 집값이 오를 수 있습니다. 집을 팔아 대출을 갚고 내 돈을 돌려받고도 차익을 얻을 수 있죠.

집을 팔지 않더라도 ‘내 집’이라는 자산이 있으니 훨씬 안정적입니다. 만약 대출이 두려워 집을 사지 않았다면 이러한 자산을 마련하지 못했겠죠. 결과적으로는 빚 덕분에 가능한 일이었으니 착한 빚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그런데 대학을 갓 졸업하고 사회생활을 시작한 지 얼마 안 된 우리가, 사회생활을 열심히 하느라 세상 물정을 익힐 새도 없었던 우리가, 갑자기 몇억 원이나 되는 대출을 아무런 두려움 없이 받기는 좀 어렵지 않나 싶은데요.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그래도 필요한 대출은 받아야 합니다. 실체 없는 두려움을 버리고 착한 빚을 힘껏 끌어안으셔야 해요. 왜 그런지, 지금부터 저의 실패담을 말씀드릴게요. 

약 10년 전, 29살이었던 저는 1억 원을 모아 동작구 사당동에 위치한 오래된 반지하 빌라를 1억 5천만 원에 샀습니다. 7,500만 원의 전세를 끼고요. 당시 저는 대출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 때문에 대출을 받는다는 건 상상도 하지 못했던 상황이었습니다. 빚을 내서야 살 수 있는 아파트는 보지도 않았죠.

전세 세입자가 사는 몇 년 동안 저는 5천만 원을 더 모았습니다. 전세 계약 기간이 끝나면 제가 직접 들어가서 살 계획이었거든요. 

첫 번째 회고: 이때 착한 빚, 즉 주택담보대출을 일으켜 괜찮은 아파트를 전세 끼고 매입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저는 집을 사고 2년 뒤 결혼을 했습니다. 그 당시 남편은 1억 3천만 원의 20년짜리 대출을 낀 경기도 외곽의 아파트를 분양받은 상태였죠. 아파트의 분양 가격은 2억 원대 초반이었습니다. 제 생에 이렇게 엄청난 빚은 처음이었어요. 

맞벌이를 해야 했으니 경기도 아파트보다는 제 소유 반지하 빌라가 더 나았습니다. 그래서 남편의 아파트는 7천만 원에 전세를 주고, 사당동 반지하 빌라에 들어갔습니다. 

두 번째 회고: 이때 사당동 빌라와 경기도 아파트를 모두 팔고 대출을 받아 서울 이내에 아파트를 사는 전략을 취했어야 했습니다. 

저는 빚이 너무 무서웠습니다. 왜 그렇게 두려웠는지 모르겠지만, 빚은 무조건 없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저는 이미 두 번의 실수를 저지른 뒤에도 또다시 어리석은 선택을 하게 됩니다.

체크 포인트 2.
빚 빨리 갚는다고
누가 상 주는 거 아닙니다

사당동 빌라에 실제로 살아보니 불편한 점이 많았어요. 그래서 집을 산 가격과 동일하게 1억5천만 원에 겨우 팔고, 근처 아파트에 전세로 들어가 살기로 했습니다. 경기도 아파트는 그대로 둔 채로요. 그때가 2010년이었는데 그 당시는 지금처럼 너도나도 집을 살 때가 아니었어요. 

지금으로써는 상상하기 힘들지만, 한마디로 매수자 우위 시장이었습니다. 집을 사는 사람이 적어서 ‘갑’이 되던 상황이었죠. 그러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아세요? 전셋값이 고공행진을 합니다. 아무도 집을 안 산다는 건 다들 전세를 구하고 있다는 뜻이거든요. 전세 수요가 많아 물량이 부족해지니 하루가 다르게 값이 올랐던 겁니다.

제가 집을 팔 때는 아무도 사려고 하지 않고, 제가 전세를 구하려니 하루하루 값이 올랐습니다. 난리도 아니었죠. 집을 팔고 1억5천만 원을 손에 쥐었지만, 그 돈으로 전세를 찾을 수가 없었어요. 결국 마이너스 통장까지 동원해 2억 원짜리 전세를 간신히 구했습니다.

저는 패닉에 빠졌습니다. 이미 경기도 아파트에 엄청난 빚이 있는데 전세를 위해 마이너스 통장을 끌어다 썼으니까요. 빨리 빚을 청산하지 않고는 견딜 수가 없단 생각이 머릿속에 가득했어요. 그래서 수입 대부분을 빚 탕감에 썼습니다.

그 당시 저희 부부의 월수입은 둘이 합쳐 5백만 원이 조금 안 됐습니다. 굉장히 현실적인 수입이죠? 저는 이 돈 중 300만 원을 다달이 저축했어요. 1년 동안 3,600만 원을 적금에 쏟아부었고, 두 사람의 인센티브나 부업을 통한 수입까지 합쳐 연 5천만 원 정도를 모을 수 있었어요. 2년에 1억 원을 모으는 시스템이었죠. 

그렇게 저는 2년 반 만에 20년짜리 대출을 모두 청산할 수 있었습니다. 3년 이내에 대출금을 상환하면 내야 하는 중도상환 수수료까지 깔끔하게 물어주면서요. 

세 번째 회고: 이때 저는 투자를 병행했어야 합니다. 빚이 너무 무서웠던 나머지, 월수입의 10~20%를 투자하라는 이야기도 귀담아듣지 않았죠. 제가 가진 대출은 착한 빚이었는데도 빨리 털어버리려고만 했어요. 

체크 포인트 3.
자본주의는 감당할 수 있는 만큼
‘이용’하세요

2013년에 모든 대출금을 청산하고 경기도 아파트에 들어간 저는 지금 어떻게 살고 있을까요? 5년 동안은 “빚이 없어 좋다”는 말을 하고 살았습니다. 그런데 그사이 부동산 시장에 커다란 변화가 왔죠. 저희 집만 빼고 다 오른 겁니다. 

저는 서울을 떠나지 말았어야 했지만, 돌이킬 수는 없는 일이죠. 경기도 외곽에서 서울을 오가며 일하는 게 너무 힘들었던 저는 서울로 이사를 시도했습니다. 하지만 2018년에도, 2019년에도 빚이 무서웠어요.

제가 살던 지역은 서울과 너무 멀었기에, 이사는 불가피한 선택이었습니다. 그래서 집을 팔고 서울과 조금이라도 더 가까운 지역으로 전세를 구했어요.

네 번째 회고: 이때 저는 전세로 들어가는 게 아니라, 대출을 받아 집을 샀어야 했습니다. 여전히 대출이 두려워 예산에 맞추다 보니 전세를 구한 건데, 결국 더더욱 감당할 수 없는 집값과 마주해야 했죠. 

더는 물러설 곳이 없어 보이자, 예전의 어리석은 선택을 하던 제 모습으로는 살고 싶지 않아졌습니다. 그래서 처음으로 용기를 내서 자발적 대출을 받았어요. 그리고 전세 1년 만에 집을 샀죠. 2020년 6월 초의 일이었습니다.

처음 집을 산 지 약 10년이 지나서야 착한 빚의 존재를 받아들이게 되었고, 그와 손을 잡는 단계가 됐습니다. 저는 이제야 조금씩 레버리지의 힘을 경험하는 중이에요. 

처음부터 자본주의를 이해하고 이익을 극대화하는 선택을 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그래도 지난 일을 되돌릴 순 없어도 지난 일을 회고하며 다른 선택을 준비할 수는 있겠죠. 지금, 저는 제가 감당할 수 있는 만큼의 대출을 받았고, 더 이상 빚을 두려워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대출을 받겠다고 해도 마음껏 받을 수 있는 건 아니죠. 정부 정책에 따라 주택담보대출비율(LTV)이나 총부채상환비율(DTI)을 따지면 더 받고 싶어도 못 받을 수 있어요. 제가 드리고 싶은 말씀은 정부가 정한 대출의 기준이 아니라, 내가 정한 ‘대출 감당 기준’을 정해야 한다는 겁니다. 그러면 대출이 무조건 두렵지도 않고, 무리한 대출 때문에 삶이 어려워지지도 않게 되거든요.

내가 감당할 수 있는 만큼의 대출이 어느 정도냐고요? 그건 나만 알 수 있습니다. 나의 상황에 따라 ‘내가 적어도 매달 이 정도는 갚을 수 있겠다’라고 정하는 금액이거든요. 갑자기 수입에 문제가 생겨도 그 상환 계획에는 차질이 없어야 합니다. 

그 금액을 월 상환액으로 치면 총 얼마의 대출을 몇 년 동안 갚을 것인지 대출 규모가 계산될 거예요. 그 대출 금액에 내가 가진 자산을 보태서 지금 옮길 수 있는 최대한의 거주지를 가늠해보세요. 내 집이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을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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