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21년을 마지막으로 미국 정계를 영원히 떠날 줄만 알았던 도널드 트럼프가 2024년 대선 승리를 통해 돌아왔습니다. 2020년 대선 패배에 대한 불복의 의도로 벌어진 의사당 난동의 주범으로 지목돼 수사를 받아온 점, 선거운동 기간에 갖은 소수자 차별 발언을 조장했단 점, 지난 1기 정부에서 쌓인 다양한 실정 등 갖은 악재에도 불구하고 재집권에 성공했어요.
이미 정해진 결과를 바꿀 수는 없으니 외교는 물론 무역과 국방 분야까지 전 세계 모든 국가가 새로 들어설 트럼프 2기 행정부에 어떻게 대응할지를 고민하는 상황이에요. 저는 고민의 범위를 여기서 조금 더 좁혀보려고 합니다. 제약-바이오 분야에 관심을 갖는 투자자들이 트럼프 2기 행정부에 어떻게 대응하면 좋을지 짚어보려 해요.
다만, 제약 산업 전반에 관한 내용을 다루기는 너무 방대하고, 양도 너무 많을 것 같습니다. 그런 내용을 갈무리해 ⟪바이오 투자의 정석⟫이라는 책을 내기도 했으니 관심 있으신 분들은 한번 살펴보시길 권해드려요. 이번 머니레터의 지면을 통해서는 좀 더 피부에 밀접한 현안에 대한 해설을 전해드릴게요.
제약-바이오의 의미부터 알아봐요
용어부터 한번 정리해 보겠습니다. ‘제약’과 ‘바이오’. 비슷하지만, 세부적인 의미는 약간 다른 느낌인데, 정확히 무엇이 다른지 설명하긴 어렵죠. 큼직하게 정돈하면 이렇습니다.
- 제약산업은 ‘화학적으로 만들어지는 화학합성 의약품’을 제조하는 업종
- 바이오산업은 ‘생명공학적으로 만들어지는 바이오 의약품’을 제조하는 업종
※ 단, ‘바이오’는 ‘생명공학(biotechnology) 기업’을 가리키는 경우도 있으니 맥락을 잘 살펴야 해요
이해를 돕기 위해 우리에게 익숙한 조미료를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같은 조미료라도 화학적으로 만드는 MSG 같은 제품 생산에 특화되었다면 제약산업에 속해요. 미생물의 발효를 통해 만드는 간장 같은 제품을 주로 생산한다면 바이오산업으로 분류되고요.
어느 공장에서든 똑같이 찍어낼 수 있는 MSG와 달리 간장은 어떤 미생물로, 어떤 조건에서 발효하느냐에 따라 맛과 향이 복잡하게 달라지죠? 그런 차이가 바이오의약품의 기술적 해자(독점적인 기술이나 지적 재산을 통해 얻는 경쟁 우위)를 만들어, 가격 방어를 가능하게 합니다.
그렇지만 우리가 익히 알듯, MSG 같은 화학조미료만 취급하는 회사나 간장과 같은 발효 조미료만 취급하는 회사는 드물어요. 보통은 두 가지를 같이 하는 곳들이 많고, 실제로 대형 제약회사들은 바이오의약품 역시 개발·생산·판매하고 있어요.
최근 15년간은 바이오의약품이 신약의 주류가 되어서, 새로운 바이오의약품을 개발하는 벤처회사들이 많이 늘기도 했습니다. 이런 곳이 계약을 통해 자사가 개발한 물질을 대형 제약회사에 판매하거나, 아예 통째로 인수되기도 하지요. 이런 이유로 제약-바이오로 묶어서 불리는 경우가 훨씬 많습니다.
미국 제약-바이오가 잘 나가는 이유
다른 첨단기술 산업도 마찬가지긴 하지만 제약-바이오 산업에서 가장 앞서가는 국가는 미국입니다. 2000년부터 2021년까지 전 세계 생명공학 특허 중 3분의 1이 미국에서 출원한 것이었을 정도로 기술력도 탄탄하고요. 신약 승인 건수도 계속 증가 추이죠.
미국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에서는 미국의 제약-바이오 산업 강점을 4가지로 꼽습니다.
① 강력한 특허법으로 의약품과 생명공학 기술의 지적재산권 보호
② 기초의학 연구를 위한 정부와 공공기관의 지속적인 투자
③ 벤처 기업들의 자금 조달이 쉬운 미국 특유의 투자 환경
④ 유망 의약품의 연구·허가·판매 역량을 갖춘 다국적 제약회사
바꿔 말하면 이들 강점 중 하나에 악재나 호재가 있을 때 산업 전반의 경향성이 바뀔 수 있다는 의미도 돼요.
과거 트럼프 1기 행정부의 상황을 살펴볼까요? 당시 미국 정부 코로나19 팬데믹을 겪을 당시, 천문학적인 공적 기금을 투입해 코로나19 백신을 개발하는 워프 스피드 작전(OWS)이라는 계획을 실행한 바 있어요. 그리고 같은 시기 제로금리 수준의 낮은 금리를 유지했죠. 앞서 네 가지 중 2번(공공투자)과 3번(자금조달) 측면에서 유리했던 거예요.
그다음 바이든 행정부에서의 상황을 살펴볼까요? 코로나19 대유행은 종식됐지만, 팬데믹 시기 경기 부양을 위해 시장에 대거 풀린 돈과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등으로 인해 물가가 치솟았고, 이를 잡기 위해 미 연준이 기준금리를 올리며 우리가 지금 익숙한 고금리 시대를 맞았습니다. 3번(자금조달) 측면에서 악재가 생겼다고 볼 수 있죠. 그렇다면 곧 시작될 트럼프 2기 행정부는 어떨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