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절한 부탁과 되돌릴 수 없는 선택
가족이 연명치료를 시작하게 되기까지, 많은 보호자분들이 비슷한 상황을 겪습니다. 환자가 갑자기 쓰러져, 가족들이 급히 응급실로 달려옵니다. 다행히 환자의 목숨은 살렸지만 회복할 가능성이 낮다는 청천벽력같은 소식을 접하게 되죠.
이때 환자에게 적극적인 연명치료를 할 것인지 보호자의 의사를 묻게 됩니다. 대부분의 보호자들은 ‘무조건 살려달라’라고 답합니다. ‘한번 시작하면 되돌릴 수 없다’는 설명도 그때는 귀에 들어오지 않아요.
대부분의 연명치료는 보호자 스스로 정확히 무슨 결정을 내렸는지 모르는 상태에서 시작됩니다. 이 상태가 얼마나 지속될지, 앞으로 어떤 상황들과 마주하게 될지 알지 못한 채로요.
2004년을 기점으로 많은 것이 바뀌었어요
여기까지 읽으신 다음, ‘환자가 회복할 가망이 없을 때, 그때 가서 고민하고 그만둘 수 있지 않겠느냐’라고 생각하는 독자분이 계실지도 모르겠습니다. 예전엔 관례적으로 가능하기도 했지만, 2004년을 기점으로 많은 게 바뀌었어요.
1997년, 서울 보라매병원에 입원해 있던 어느 환자의 부인이 경제적 부담 등을 이유로 소생 가능성이 낮은 남편을 퇴원시키고자 했어요. 의료진의 만류에도 각서까지 쓰며 산소호흡기를 제거했고, 환자는 5분 뒤 사망하게 되었습니다.
해당 사건이 경찰에 고발되고 2004년, 보호자와 의료진까지 대법원에서 유죄판결을 받았습니다. 이후 보호자 의사에 따라 연명치료를 중단하는 것은 자칫하면 살인죄로 처벌을 받을 수 있는 범죄행위가 되었습니다. 그때부터 ‘무조건 살려달라’는 보호자들의 간절한 부탁은 ‘되돌릴 수 없는’ 선택으로 이어지게 되었죠.
2018년부터는 ‘연명의료결정법’이 시행되며 배우자와 19세 이상의 직계존비속* 전원이 동의할 때는 연명치료를 중단할 수 있는 방법이 생기기도 했어요. 그러나 한 명이라도 반대하면 의미가 없고, 그 논의 과정 자체가 보호자인 가족들에게는 또 다른 고통이 되기도 합니다.
*본인을 기준으로 혈연관계에 속하는 윗세대와 아랫세대로 형제자매, 사위와 며느리 등은 포함하지 않아요
삶의 마지막을 스스로 결정할 권리
이런 일을 방지하기 위해 본인이 결정을 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만약 스스로에게 소생 가능성이 극도로 낮은 상황이 온다면, 연명치료를 받지 않고 비교적 존엄한 상태로 생을 마감하겠다는 것을 본인이 의식이 있을 때 미리 확약해 둘 수 있어요.
이런 의사를 체계적이고 법률적으로 작성해서 남기는 방법이 바로 사전연명의료의향서입니다. 예기치 못한 순간이 닥쳤을 때 스스로의 마지막을 결정할 수 있는 제도예요.
대부분의 현대인에게 죽음은 먼 단어입니다. 내가 연명치료 대상자가 될 수 있다는 상상은커녕, 언젠가는 죽음을 맞이할 것이라고 생각해 보는 일도 드문 게 현실이에요.
그러니 ‘돌봄’을 고민하기 시작하셨다면, 더욱 이 문제를 주변과 나누고 미리 상의해 보시기를 권해드려요. 돌봄의 과정은 물론 그 끝에서도 우리가 반드시 지켜야 하는 것은 나와 내 가족의 존엄이니까요.
내가 미래에 누릴 돌봄은 현재 결정됩니다
돌봄에 대해 전보다 잘 알게 되었더라도 여전히 나와는 먼 일로 느껴지는 분들도 많이 계실거라고 생각해요.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변화가 일어나지 않으면 현재 기성 세대가 받고 있는 돌봄이 바로 내가 받는 돌봄이 될 것이란 사실이에요.
내가 미래에 누릴 돌봄은 현재 결정됩니다. 그러므로 우리 사회에서 돌봄 영역에 있는 문제에 관심을 갖고 개선에 참여해야 해요.
<돌봄의 경제학>이 독자분들이 만들어 나갈 돌봄의 모습을 그려보는 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기를 희망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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