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시간에 인플레이션, 디플레이션의 개념과 각각이 갖고 있는 장단점에 대해 자세히 살펴보았습니다. 결론은 인플레이션이건 디플레이션이건 과도해지면 위험하다는 거예요.
과도해지면 안 좋은 건 알겠는데, 그렇다면 무엇으로 과도해지지 않게 통제할 수 있을까… 하는 궁금증이 생기실 겁니다. 네, 이걸 조절하는 곳이 있죠. 바로 ‘중앙은행’이에요.
중앙은행은 무슨 일을 하나요?
중앙은행은 은행들의 은행이라고도 하죠. 한국의 중앙은행은 한국은행인데요, 지금 이 글을 읽고 계시는 분들 중 그 누구도 한국은행과 거래할 수 있는 분은 없을 겁니다. 정부와 시중은행들만이 중앙은행과 거래할 수 있어요.
한국은행이 가진 가장 중요한 권한은 한국의 화폐인 원화를 발행하는 거예요. 그리고 그 원화를 시중 은행을 통해 공급해 시중의 유동성을 조절해요.
여기에서 ‘유동성’은 물건을 사거나 투자할 때 필요한 현금을 말합니다. 자동차나 시계, 혹은 핸드폰을 갖고 있다고 해서 이걸로 물건을 자유롭게 살 수는 없죠. 편하게 거래할 수 있는 현금 등을 유동성이라고 합니다.
지난 시간에 인플레이션을 물가 상승이라고 볼 수도 있지만, 화폐 가치의 하락이라고 볼 수도 있다고 설명해 드렸죠? 중앙은행은 화폐를 발행하는 권한이 있지만, 그 반대급부로 발행한 화폐의 가치를 안정시켜야 하는 의무도 함께 갖고 있어요.
인플레이션이 심각해져서 중앙은행이 발행한 화폐 가치가 급격하게 하락한다면 화폐 가치 안정을 유지해야 하는 중앙은행 입장에서는 매우 중대한 문제겠죠.
인플레이션을 어떻게 조절하나요?
그런 상황이 벌어지지 않게 하려면 중앙은행은 어떻게 해야 할까요? 가장 먼저 떠올릴 수 있는 건 화폐의 공급을 줄이는 것이겠죠. 돈의 가치가 낮다는 건, 시중에 그만큼 돈의 양이 많다는 것이니까요. 중앙은행이 돈줄을 죄버리면 됩니다. 그것이 바로 ‘금리 인상’이에요.
금리는 쉽게 말해 ‘돈의 가격’입니다. 금리가 오르면 중앙은행이 시중의 돈을 마구 흡수하게 돼요. (예를 들자면, 시중은행이 중앙은행에 예치하는 돈에도 이자가 지급될 수 있답니다. 금리가 오르면 은행들은 이자수익을 늘리기 위해 중앙은행에 돈을 더 넣을 수 있어요.) 그렇게 되면 시중에 돈이 모자라게 되니, 돈의 가치가 오르게 되죠. 이것이 중앙은행이 인플레이션을 조정하는 대표적인 방법이에요.
지난해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위원회(이하 연준)가 기준금리를 인상했는데요. 이 역시 40년 만에 찾아온 인플레이션에 맞서기 위해 단행했던 겁니다.
디플레이션일 땐 어떻게 하나요?
반대로 디플레이션이 찾아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물가는 내려가고 화폐 가치가 상승하는 것이 디플레이션이죠. 화폐 가치가 너무 많이 오르면 사람들이 화폐 가치가 더 오르기를 기대하면서 화폐를 사용하지 않고 묶어두게 돼요. 다시 말해 소비와 투자가 줄어요. 그렇게 되면 불황이 올 가능성이 높아집니다. 마치 일본처럼요. 그럼 이때는 반대로 돈의 공급을 늘려줘야겠지요.
돈의 공급이 늘어나게 되면 시중의 화폐 양이 늘어 화폐의 가치가 하락하게 되니, 심각한 디플레이션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중앙은행 역할
생각보다 간단해 보이는데요?
물가가 오르면 금리를 인상하고, 물가가 내리면 금리를 인하하고… 이렇게 쓰고 보니까 중앙은행의 역할이라는 게 언뜻 쉬워보이기도 하네요.
그런데 이게 실전으로 넘어오게 되면 정말 복잡해집니다. 먼저 미국의 경우를 볼까요. 미국의 중앙은행은 연준은 두 가지 목표를 갖고 있습니다. 하나는 물가의 안정이고요, 다른 하나는 성장, 즉 고용의 극대화입니다.
물가도 안정시키고 경기도 좋게 하는, 말 그대로 모두가 행복한 상황을 목표로 하는 셈이죠. 이걸 실제 경제 흐름을 통해서 구체적으로 묘사해 볼까요.
경제가 강한 성장세를 보인다고 가정해 봅시다. 그럼 기업들이 투자를 늘리면서 고용을 늘리겠죠. 그럼 사람들의 소득이 늘고, 이로 인해 소비도 늘어날 거예요. 늘어난 소비가 수요를 끌어올리면서 물가를 밀어 올리게 되겠죠. 인플레이션이 일어납니다.
이걸 통제하려면 금리를 인상해야 하겠죠? 높아진 금리로 인해 이자 부담이 높아지게 되니 사람들은 소비를 줄이게 될 겁니다. 그럼 수요가 줄어들게되고 물가도 주춤하겠죠.
기업들은 줄어든 소비를 보면서 함부로 설비 투자를 늘려서는 안되겠다는 생각을 하게 돼요. 투자를 안 하니 고용도 줄어들게 되고, 사람들의 소득도 위축되면서 소비가 더욱 쪼그라들 수 있어요. 경기 둔화로 인해 물가는 안정되겠죠. 다만 실업률이 높아지는 등 경기가 너무 안 좋아지면 다시 금리를 인하하면서 경기 부양에 나서야 할 거예요.
그럼 이론대로 하면 되는 것 아닌가요?
문제는 이게 말처럼 쉽지가 않습니다. 다시 경기가 좋고 물가가 오르는 상황으로 돌아와 볼게요. 이때 물가를 잡으려고 금리를 인상하게 되면 국민들이 좋아할까요?
실물 경제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중요한 것은 물가뿐만이 아니죠. 금리가 오르면 이자 부담이 커집니다. 그리고 실물 경제가 둔화되면서 회사에 취업하기도 힘겨워지죠. 물가를 잡으려다 경기까지 함께 잡는 결과가 나타날 수 있는 거예요. 그렇게 되면 대중의 불만을 사게 되죠.
연준이 금리를 인상해 민심을 잃는 동안 미국 정부는 무슨 생각을 할까요? 정부는 기본적으로 경제가 성장하기를 바랍니다. 국민들처럼 금리 인상을 꺼려요. 그럼에도 중앙은행은 물가를 잡아야 하기에 금리를 인상해야 합니다. 언뜻 2대1의 싸움 같아 보이기도 하죠.
연준 입장에서도 금리 인상은 상당한 부담이 따르는 일이에요. 하지만 필요하다고 판단되면 실행에 옮길 수밖에 없어요. 연준이 금리 인상을 두고 고심하는 기간은 마치 병을 치료하려면 수술을 해야 하는데, 환자와 보호자가 아픈 걸 무서워하는 바람에 수술이 미뤄지는 상황과도 같아요.
현실의 사례를 한번 살펴볼게요. 여전히 코로나19의 영향권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21년, 상반기에 풀어놓은 돈 때문에 물가가 빠르게 높아지고 있었죠. 이때 어설프게 금리를 인상했다가 팬데믹을 겪으며 연약해진 실물 경제에 타격을 줄 수도 있기에, 당시 연준에서는 지금의 물가 상승은 일시적인 겁니다… 라는 얘기를 하면서 금리 인상에 나서지 않았어요.
그러다가 40년 만에 강한 인플레이션을 만나게 된 겁니다. 그리고 아직까지 물가가 안정되지 않아서 욕을 먹고 있죠… 물가를 잡는 방법은 알지만, 성장을 크게 훼손시키지 않고, 사람들을 힘들게 하지 않으면서 잡아야 합니다. 상당히 어려운 미션같지 않나요? 연준이 가진 숙명적인 딜레마 중 하나입니다.
중앙은행도 참 난감하겠네요…
그리고 이런 딜레마도 존재해요. 연준은 ‘미국’의 기준금리를 인상하고 인하하는 역할을 합니다. 오롯이 미국의 중앙은행이죠. 그런데 미국의 금리는 미국뿐 아니라 전세계에 영향을 줍니다.
이게 왜 문제인지 예를 들어 설명해 볼게요. 전 세계에서 미국 경기는 정말 좋은데 다른 국가들의 경기는 이른바 최악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미국이 자국의 뜨거운 경기와 물가를 제어하기 위해 미국 금리를 과감히 인상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미국에서 이자를 더 준답니다. 안 그래도 힘든 경기와의 싸움을 이어가는 다른 국가들에서 투자자금이 빠져나와 더 높은 이자를 주는 미국으로 몰려가지 않을까요? 실물 경제도 어려운데 시중 유동성까지 줄어들면서 다른 국가들은 이른바 엎친 데 덮친 격의 고통을 받게 돼요.
연준은 기본적으로 미국의 경기를 보면서 기준금리를 인상하겠지만, 다른 국가들이 미국 금리의 영향을 받기 때문에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없어요. 너무 많은 국가들의 경제 상황이 안 좋아지면 결코 미국에게도 좋은 일은 아니겠죠?
예를 들어, 다른 국가들의 경기가 급격히 둔화되면 해당 국가에 투자한 미국의 투자은행들의 부실이 커질 수도 있고, 그들 국가에 수출하는 미국 기업들의 실적이 악화할 수도 있어요. 부메랑처럼 미국 경제에 악영향을 줄 수도 있는 거예요.
인플레이션과 디플레이션을 조절하는 중앙은행, 그 중에서도 미국 연준의 역할에 대해 말씀드려봤습니다. 이론상으로는 참 쉬운데, 실전에서는 정말 답이 안나오는 딜레마에 처한 입장까지 함께요. 다음 회차에서는 결코 쉽지 않은 물가 조정이 사실상 실패해 인플레이션이 일어난 실제 사례들을 살펴볼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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