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은 혹시 보험의 ‘납입면제’ 기능에 대해 들어본 적이 있나요? 보험 가입자라면 용어는 접해 보셨을 거예요.
누군가 현직 보험설계사인 저에게 가장 좋은 ‘보험금’이 무언지 묻는다면 ‘보험료 납입면제’라 말하고 싶어요. 보험에 가입한 사람이 질병에 걸리거나 재해를 겪었을 때 보험회사가 수익자에게 금전적인 보상을 해주는 것이 ‘보험금’인데요. ‘보험료 납입면제’를 왜 ‘보험금’이라 한 건지 궁금하지 않으신가요?
소비자 입장에서 한번 생각해 볼게요. 납입면제 덕분에 보험료를 납부하지 않고도 가입한 보험의 보장을 유지할 수 있다면, 이는 마치 보험사가 보험료를 대신 납입해 주고 있는 것과 같아요. 그렇다면, 이 또한 금전적인 보상이라 할 수 있으니 납입면제 역시 보험금의 일종이라 봐도 무방하지요.
납입면제 조건은 어떻게 되나요?
자, 그럼 앞서 언급한 질문에 대한 답을 확인해 볼까요? 납입면제의 적용여부를 알기 위해서는 약관과 장해분류표를 확인해야 해요. 보험료 납입면제도 상품에 따라 조금씩 달라요. 특히, 사람의 생명을 보장하는 생명보험사(생명사)와 사고로 인한 손해를 보장하는 손해보험사(손보사)나 화재보험사(화재사)는 기본 납입면제 조건이 각각 다른데요.
생명사의 경우 동일한 사고나 질병으로 신체에 영구적인 손상이 발생했을 때, 장해분류표를 기반으로 장해지급률을 합산한 결과가 50% 이상이 되면 이후의 보험료를 더 이상 납입하지 않아도 돼요.
*장해분류표: 사고나 질병으로 인한 신체적 손상의 정도를 체계적으로 분류하여, 보상이나 지원을 결정하는 기준이 되는 표
*장해지급률: 사고나 질병으로 인해 신체에 영구적인 손상이 발생했을 때, 해당 손상의 정도에 따라 보험사가 지급하는 보험금의 비율
그렇다면 손보사나 화재사는 어떨까요? ‘장해분류표에서 정한 장해지급률이 80% 이상에 해당하면 보장보험료는 납입면제, 적립보험료는 납입을 중지한다’라고 약관에 쓰여 있어요.
수치들이 의미하는 바를 구체적인 예를 들어 설명해 볼게요. ‘위암 진단 후 위 전체 절제’는 50%에 해당해요. 한쪽 팔이나 다리를 절단한 경우는 60%, 사고나 질병으로 인한 치매(CDR 3점 이상)는 60%고, 영구 투석은 75%에 해당해요.
2005년 4월 이후부터는 전 보험사가 동일한 장해분류표를 따르고 있어요. 하지만 이전에 가입한 보험 상품은 각 보험사의 공시실을 통해 약관에 명시된 장해분류표를 확인해 보아야 해요. 표준화된 장해분류표에 의하면 신체를 각 13개 부위로 나누고 있는데요. 이에 질병과 재해를 더하면 경우의 수는 수만 가지죠. 그중 납입면제 기본 조건이 50% 인지 혹은 80%인지에 따라 상당한 차이가 발생할 수 있어요.
보험 가입할 때 ‘납입면제 특약’을 확인하세요
손보사나 화재사의 경우에는 장해지급율이 생명사에 비해 높은 만큼 이를 보완하기 위헤, ‘O대 질병’(예를 들어, 6대질병은 암·뇌출혈·급성심근경색증·말기신부전증·말기간질환·말기폐질환 등을 말해요)의 납입면제 특약을 부과할 수 있는 상품을 내놓기도 했는데요. 보험에 가입할 때에는 기본 납입 면제 조건 외에 이렇게 납입면제 특약 여부와 내용에 대해 세심하게 체크하는 게 좋아요.
생명사의 경우, 납입보험료에 적립보험료 부분이 포함되어 있어요. 납입면제를 받으면 가입자는 더 이상 보험료를 내지 않지만, 보험 회사가 대신 납입해 주고 적립금이 쌓이므로 추후 해지환급금을 받을 수 있어요. 다만, 보험 상품에 따라 적립 및 환급률은 달라질 수 있어요. 이와 달리 손보사나 화재사는 적립보험료를 따로 부과하는 구조라 납입면제를 받으면, 적립보험료 납입이 중지되기 때문에 사실상 적립금은 더 이상 쌓이지 않아요.
납입면제는 보험이 갖고 있는 본질적인 측면을 설명하기 좋은 제도예요. 보험은 소비자가 보험료를 납부하는 대신 앞으로 마주할 수 있는 위험의 부담을 낮추기 위해 두는 장치죠. 소비자 입장에서는 보험료 납부 의무를 면제받고, 보장을 받는 데다 적립보험료까지 쌓인다면 큰 혜택일 수 있어요. 반대로 보험사 입장에서는 보험료 납입면제가 그다지 달갑지는 않을 거고요.
보험은 보험사와 소비자의 이익 사이에서 균형을 맞추기 위해 끊임없이 변화하고 있어요. 보험료 납입면제도 그 일환이고요. 보험금 수령이나 납입면제를 받을 만큼 큰 시련이 없는 것이 가장 좋겠지만, 불확실성이 날로 커지는 현대 사회에서 보험은 생존 가방과 같아요. 오래 보관하는 데 부담이 없을 정도로 적당히 잘 꾸리되 나에게 꼭 필요한 것들을 잘 고민해서 마련해 두어야 필요할 때 진가를 발휘할 수 있어요. 그러므로 현명한 보험 가입을 위해서는 소비자도 보험을 잘 알아야 해요. ‘보험 화이트박스’가 그런 여러분께 유의미한 도움이 되길 바라며 이번 이야기를 마칩니다.
📌 필진 소개: 어피티 구독자 여러분 안녕하세요. 글 쓰는 보험설계사 서지은입니다. 2022년 ‘보험 족보’ 시리즈로 만난 후 3년 만인데요, 그동안 보험에도 많은 변화가 있었습니다. 지난 시간이 보험의 입문 편이었다면 이번에는 일상에서 정말 궁금했던 보험 관련 이야기들을 실제 사례들과 함께 콕콕 집어 전해드리려 해요. 열어보기 전에는 알 수 없는 블랙박스가 아닌, 누구나 쉽게 알 수 있는 ‘보험 화이트박스’로 매주 찾아뵙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