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차를 마셔야 비로소 봄

📌필진 소개 : ‘차’와 관련된 모든 것을 기획하는 ‘차 문화 기획자’ 세레나입니다. 차 여행, 찻자리, 전시 등을 기획하고 있고, 현재는 서울 서촌 라운지에서 계절 차회를 진행하고 있어요. 인스타그램에서는 숨겨진 찻집을 소개하고, 한국차를 알리는 티-크리에이터로 활동 중입니다. 도서 《내가 좋아하는 것들, 차》를 썼습니다.

“이런 걸 상상해 봐.

넌 숲속을 걷고 있고, 땅에는 나뭇잎이 깔려 있어.

한참 비가 내리다 그쳐서 공기는 축축하고.

넌 그런 곳을 걷고 있어.

왠지 이 차에는 그 모든 게 담긴 것 같아.”

– 영화 <애프터 양> 중에서


정말 좋은 차 한 잔을 마시면, 그 안에 계절이 들어 있는 것 같아요. 비 내린 숲의 공기, 젖은 나뭇잎, 흙냄새, 초록의 기운까지. 거리를 걷다 보면 ‘아, 이제 여름이 오고 있구나…’ 싶어요. 이제 곧 수국이 피고, 이팝나무가 흐드러지겠죠?


그런데 바로 이 시기, 5월이 ‘햇녹차’를 마시기에 가장 좋은 때라는 거 알고 계셨나요? 햇사과, 햇양파처럼 녹차도 그해 처음 수확한 잎으로 만든 게 가장 향긋하고 싱그러워요. 저 같은 차덕후는 이 햇녹차를 마셔야만 진짜 한 해가 시작된 기분이 든답니다. 그런데 올해는 차를 마시는 데 그치지 않고, 직접 녹차를 만들러 지리산에 내려왔습니다. 무려 5주 동안이요. 지금도 이 글을 지리산 자락에서 쓰고 있답니다!

지리산 다원의 모습 ⓒ세레나


혹시 작년 잘쓸레터 독자님들과 함께했던 바질 차담회 기억하시는 분 계실까요? 그때 첫 번째로 우렸던 차가 바로 경남 산청의 우전 녹차였어요. 실제로 찻집에서 일해 본 경험이 있다고 말씀해 주신 한 구독자분께서 “제가 마셨던 녹차 중 가장 맛있어요!”라며 극찬을 해주시기도 했는데요, 그 녹차를 만든 다원에 지금 제가 와 있습니다.


서울에서 차를 우리던 저는 이제 지리산에 내려와 꼭두새벽부터 찻잎을 따고, 솥 앞에서 덖고, 비비고, 말리고 있어요. 벌써 3주째인데요. 이곳에서 보고 듣고 겪은 이야기를 여러분과 나눌 수 있어서, 입이 근질근질하던 참이었답니다.


10년 뒤엔 진짜 녹차가 사라질 수도 있다?
지금 당장 녹차를 맛봐야 하는 이유


지리산에 도착하자마자 들은 충격적인 이야기는 “이 녹차, 10년 뒤엔 못 마실 수도 있어요.” 라는 말이었습니다. 처음엔 농담인 줄 알았어요. 하지만 이 곳에 있다보니 점점 그 말이 현실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우리나라에도 보성, 하동, 제주, 산청, 강진, 해남 등, 꽤 다양한 차 산지가 있어요. 그런데 문제는, 좋은 녹차를 만들 수 있는 ‘일손’이 점점 사라지고 있다고 해요. 녹차는 굉장히 손이 많이 가는 작물이거든요. 


특히 우전, 세작처럼 고급 등급은 찻잎 하나하나를 손으로 따야 해요. 그 작업을 하시는 분들은 대부분 70~80대의 할머니들이에요. ‘찻잎 따는 선수들’이라 불릴 만큼 손끝이 정교하신 분들이죠. 하지만 그분들도 이제 연세가 들어 점점 아프시고, 어느새 이 일을 더 이상 할 수 없는 상황이 오고 있어요. 어느 날은, 한 할머니가 새벽에 찻잎을 따고 오후에는 쉬기로 했는데 “고사리 철이기도 하니까 고사리도 따야지…” 하시며 산으로 나가셨다가 그대로 앰뷸런스에 실려 가셨고, 결국 돌아가셨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그때 정말 마음이 먹먹하더라고요.


그럼, 기계로 따면 되지 않을까요?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어요. 하지만 경사가 급한 야생차밭은 기계 수확이 거의 불가능하고, 설령 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기계로 딴 잎은 향과 맛이 쉽게 날아가 버려요. 맛이 밋밋해지죠. 손으로 딴 찻잎에서만 나오는 미묘한 감칠맛, 부드러운 향기, 그 모든 건 사라지고 마는 거죠. 이런 생각을 하다 보니, 정말로 지금처럼 좋은 수제 녹차를 마실 수 있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앞으로는 수제차는 점점 귀해지고 비싸지고 기계로 만든 저퀄리티 녹차만 남게 될지도 모르겠네요.


그래서 더욱 소중하게 느껴지는 녹차, 한 잔이라도 더 의미 있게 즐기기 위해 우리가 알고 있으면 좋은 정보들을 알려드릴게요. 먼저, 녹차의 등급 이야기부터 해볼게요.

찻잎으로 고르고 덖는 모습 ⓒ세레나


녹차 패키지에 적힌 ‘우전’, ‘세작’ 무슨 뜻인가요?

녹차는 수확 시기와 찻잎의 크기에 따라 네 가지로 나뉩니다. 원래는 시기별로 구분했지만, 요즘은 이상기후 등 변화가 많아 꼭 날짜를 정확하게 구분하고 있지는 않아요. 그래서 시기별로 정해진 건 아니지만, 대체로 이렇게 구분돼요.


  • 우전 (4월 중순): 가장 어린 새순만을 따서 만든 고급 녹차예요. 부드럽고 감칠맛이 깊으며, 가격도 가장 비싸요.
  • 세작 (4월 말 ~ 5월 초): 향긋하고 부드러우면서도 살짝 쌉싸름한 맛이 있어요. 가장 대중적이고 균형감 있는 녹차로 많이 즐기시는 등급이에요.
  • 중작 (5월 중순 이후): 맛이 점점 더 진해지고, 쌉싸름함이 강해지기 시작해요.
  • 대작 (5월 말 이후): 맛이 떫고 거칠어져서, 보통 블렌딩이나 파우더용으로 사용됩니다.

우전과 세작처럼 부드럽고 향기로운 차일수록, 손으로 하나하나 딴 잎을 사용하는 경우가 많고, 그만큼 정성과 시간이 더 많이 들어가요.


좋은 녹차를 고르고 싶은데, 어떤 걸 사야 할까요?

  • 라벨에 이런 단어가 있는지 주목해보세요
    ‘우전’, ‘세작’, ‘햇녹차’, ‘4월~5월 수확’ 등 시기와 등급이 명확히 표기되어 있다면 신뢰도가 높아요.
  • 산지명을 체크해보세요
    하동, 산청, 보성, 제주 등이 우리나라 대표적인 차 산지라 믿고 마실 수 있어요. 가격이 저렴하다고 해서 좋은 건 아니에요. 가격이 너무 저렴하다면 중작, 대작일 가능성이 높고, 블렌딩용 녹차일 수도 있어요.

어떻게 우리는 게 좋을까요?

  • 물 온도
    팔팔 끓인 물을 한김 식혀서 약 80도 정도의 온도로 우리는게 가장 좋아요. (끓는 물을 바로 붓는다면 2~3초 안에 우려내는 것도 방법이에요.)
  • 우리는 시간
    찻잎 2~3g + 물 150ml 기준, 1분 안쪽으로 우리고 이후엔 내 입맛에 맞게 더 우려도 괜찮아요. 유리 주전자나 표일배 같은 간단한 도구도 OK! 도구는 꼭 전문적일 필요 없어요.

좋은 녹차란 무엇일까?


좋은 녹차의 기준은 사람마다 달라요. 그런데 제가 있는 다원 사장님께서 해주신 말씀이 인상 깊었어요. “녹차는 맑은데, 그 안에 뭔가 꽉 차 있는 느낌이 좋아요.”

일본은 ‘우마미’라고 해서 다시마나 미원 같은 감칠맛을 중요하게 생각하지만, 우리나라 녹차는 그보다는 맑고 깨끗한 맛을 더 선호한다고 해요. 입안에 은은하게 퍼지는 단맛이나, 끝 맛이 깔끔하게 떨어지는 느낌이 있는 차가 좋은 차라는 거죠.

 ⓒ세레나


그리고 하나 더. 차를 우렸을 때 물빛(수색)이 너무 탁하거나, 컵 바닥에 침전물이 많다면 보관 상태를 한번 의심해보는 것도 좋아요. 녹차는 섬세해서, 작은 차이에도 맛이 달라지거든요.


좋은 찻잎은 한 번 우리고 남은 것을 활용해서 다시 먹어도 괜찮아요. 귀한 녹차를 그냥 버리기 아깝다면 요리 재료로 사용해 보세요. 어린 잎으로 만든 우전이나 세작은 그 자체로도 부드러워서 간장, 참기름, 깨를 넣고 비벼 먹으면 아주 고소하고 맛있어요. 김밥에 넣어도 좋고, 국수 고명으로도 잘 어울려요. 많은 다원이 대부분 유기농이라 한국산 녹차는 믿고 먹을수 있답니다. 아니면 잘 말려서 냉장고, 옷장, 신발장에 넣어 천연 탈취제로 써도 좋아요.


녹차 구매처도 알려드릴게요.

  • 브랜드 찻집: 맥파이앤타이거, 다도레
  • 차 전문 플랫폼: 티웃, 차예마을

  • 세레나가 추천하는 다원 
    • 하동: 혜림농원, 한밭제다, 연우제다, 섬진다원, 쟈드리, 도재명차, 만수가 만든 차, 청석골 감로다원 등 
    • 보성: 몽중산다원, 보향다원 등
    • 기타: 산청 제다원, 강진 백운옥판차, 해남 설아다원

혹시 저처럼 직접 찻잎을 따보고 싶은 분 계신가요? 매년 봄, 인스타그램에서 #파머투비 를 검색해보시면 찻잎 채엽 체험이나 원데이 녹차 만들기 체험도 신청할 수 있어요. 제가 몸으로 부딪혀 보니, 마셔보는 거랑 또 완전히 다른 감동이더라고요. 아쉽게도 올해 4-5월 체험기간은 지났지만 내년을 꼭 기약해보세요. 


요즘 전 세계가 말차에 열광하고 있죠. 근데 우리에겐 수제 녹차라는 훌륭한 자산이 있어요. 이런 차를 쉽게 손에 넣을 수 있는 건 우리나라만의 꽤 큰 혜택이랍니다. 이번 주말, 한 잔의 햇녹차로 계절을 마셔보는 건 어떨까요? 어디에서든 좋은 녹차 한 잔과 함께라면 지리산의 정취를 느낄 수 있을지도 몰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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