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 펠리칸 병잉크, (우) 브라우스 딥펜
간절하게 바라는 것이 많았던 미대생 시절, 마음이 힘들 때면 브라우스 딥펜에 펠리칸 병잉크를 찍어 조용히 캘리그래피를 쓰곤 했어요. 주로 파란색으로 썼는데, 나도 모르게 그저 파랑에 마음을 기댔던 것 같아요.
훗날 미셸 파스투로의 ⟪파랑의 역사⟫를 읽고 알게 되었어요. 인류가 가장 늦게 재현한 색인 파랑은 다른 색에 비해 아늑하고 중립적이라 충격이나 상처를 주지 않는다 하더라고요. 힘든 마음을 위로받고, 위로하고 싶었던 제 마음이 파랑을 원했던 거예요.
각자의 마음이 원하는 ‘색’은 언제나 존재한다고 생각해요. 나만의 색을 몰랐던 지난날 속에서도, ‘파란 잉크’는 늘 곁에 두었던 소중한 색이었던 것처럼요. 독자님들의 색은 어떤 색인가요? 혹시 아직 잘 모르겠다면, 이렇게 한번 골라보세요.
예전만큼 그 앞에 서서 신중히 볼펜을 고르는 사람은 많지 않지만, 교보문고 같은 대형서점 문구 매대에는 여전히 색색의 볼펜들이 진열되어 주인을 기다리고 있어요. 오랜만에 그 매대를 찾아 눈길이 가는 색깔의 볼펜을 하나를 골라 구매해 보세요. 그리고 가방 속에 가지고 다니며 무엇이든 써보세요. 오늘의 할 일을 적어도 좋고, 아무 의미 없는 낙서를 해도 좋아요. 그렇게 작은 기록 통해 지금 내 마음이 원하는 색이 조금씩, 자연스럽게 내 일상을 물들일 거예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