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정인
근로시간 제도 개편안으로 떠들썩한 요즘입니다. 혹시 2018~2019년에도 근로시간 제도 개편안 때문에 난리였던 것 기억하세요? 그때는 주 최대 52시간제 도입으로 말이 많았었어요.
당시에는 법정근로시간인 주 40시간을 기준으로 최대 연장근로 가능 시간이 28시간인 주 총 68시간제였다가, 최대 연장근로 가능 시간을 12시간으로 줄인 총 주 52시간제로 바꿨습니다.
근로시간 개편안(예정) 2023.ver
이번에 다시 바꾸는 개편안(예정)에 따르면 주 6일 기준으로 일주일 최대 69시간, 주 7일 기준으로 일주일 최대 80.5시간까지 일할 수 있게 됩니다.
또, 주 단위로 총 근로시간을 따지는 것이 아니라 월이나 분기, 연으로 따질 수 있도록 합니다. 이건 70년 만에 이뤄지는 개편이에요.
기간별로 합법인 야근 시간을 정리하자면,
- 2019년 이전: 주 28시간까지 추가 근로가 합법
- 2019년 이후부터 2023년(예정)까지: 주 12시간까지 야근이 합법, 휴일 근무는 무조건 추가근로에 포함
- 2023년(예정)부터: 월 최대 52시간, 분기 최대 140시간, 반기 최대 250시간, 연 최대 440시간까지 야근과 휴일근무 포함 추가 근로가 합법
주 단위로 끊었던 것은 매주 어느 정도 일상생활을 누리도록 하기 위해서였어요. 월이나 분기, 연 관리 단위는 일상 유지보다는 업무집중과 휴식의 유연성을 중심으로 두는 계산이에요. ‘몰아서 일하고 몰아서 쉴 수 있게’ 되거든요.
아래 표는 고용노동부 공식 페이스북에 올라온 개편안 월 단위 연장근로 예시예요.
각 제도에 따라 연장근로가 어디까지 합법적인 선인지 사례를 들어볼게요.
평행우주 ① 주52시간제
📅 3월 13일(월)
어피티에 근무하는 JYP 대리는 갑자기 업무가 밀려서 밤 11시 57분까지 야근을 하고 야간할증이 붙은 택시를 타고 집에 갔습니다. 총 5시간 57분을 추가로 근무했어요.
📅 3월 14일(화)
JYP 대리는 화요일 9시 정상출근을 합니다. 메일함을 틀어 보니 클라이언트가 어젯밤에 보낸 제안서 여기저기가 맘에 안 든다고 합니다. 울고 싶지만 어른이니까 차분하게 편의점으로 향합니다.
JYP 대리는 편의점에서 고카페인 음료를, 약국에서 비타민B와 타우린이 섞인 자양강장제 앰풀 등을 사다가 포션을 제조해 몸에 때려 붓습니다. 그렇게 또다시 밤 11시 59분까지 야근을 합니다. 지금까지 총 11시간 56분의 추가근무를 했어요.
📅 3월 15일(수)
아직 일이 남았지만, 이제 근로기준법상 JYP 대리가 오후 6시 4분을 넘겨 퇴근하는 순간 회사는 범법행위를 저지르게 됩니다.
게다가 JYP 대리는 토요일에 출근할 수 없습니다. 이미 12시간의 추가 근무 시간을 다 사용했거든요. 이전에는 휴일 근로가 연장근무가 아니었지만 주52시간제에서는 휴일근무는 무조건 연장근로로 간주됩니다.
평행우주 ② 2023년 개편안(예정)
JYP 대리가 일하는 시간은 위의 상황과 동일합니다. 회사 ‘어피티’는 고용노동부 예시처럼 월 단위로 추가근무시간을 관리하고 있어요.
📅 3월 15일(수)
JYP 대리는 이미 월요일과 화요일에 추가근무를 11시간 56분 한 상황입니다. 그런데 메일함을 틀어 보니 클라이언트가 제안서 여기저기가 맘에 안 든다고 합니다. JYP 대리는 오늘도 3시간 4분 동안 추가 근무를 합니다. 이제 추가 근무 시간은 총 15시간입니다.
📅 3월 17일(금)
금요일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어째 프로젝트는 끝이 보이지가 않네요? 상사는 JYP 대리에게 이렇게 말해요.
상사: JYP 대리…. 내일 토요일인 거 아는데, 나와서 일해야겠어. 나도 나올 거야.
JYP 대리는 주말에 나와서 추가 근무를 9시간 더 합니다. 정신 차려 보니까 주말이 훌쩍 지나가 있어요. 이제 총 초과 근무 시간은 24시간 입니다. 이 24시간을 갖고 JYP 대리는 3주 차나 4주 차에 사흘 연속 휴가를 쓸 수 있어요.
한편, 긴 휴가를 몰아쓰는 것이 비현실적이라는 지적도 있어요. 일상 업무가 있거나 거래처와 상대해야 하는 경우, 회사에 대체 인력이 적은 경우 등, 휴가가 너무 길어지면 회사 경영에 문제가 생길수도 있어 일반 사무직이 길게 휴가를 쓰기는 어렵다는 지적이에요.
이런 식으로 분기 단위 관리, 연 단위 관리도 추가 근무 형태가 달라집니다. 정리하면, 주 69시간 근무(주 6일 시)나 주 80.5시간 근무(주 7일 시)는 연 단위 관리일 때 등장하는 근로 형태예요. 월에서 연으로 가는 등 단위기간이 길어지면 추가 근로시간 총량은 이론적으로 줄어드는 버전입니다.
포괄임금제라면 다릅니다
추가 근무한 시간에 대해서는, 포괄임금제 🏷️가 아니라면 추가근무한 만큼 수당을 받아야 합니다. 수당을 주지 않으면 불법이에요. 반대로 말하면, 포괄임금제라면 추가근무를 해도 수당을 받지 않습니다.
#포괄임금제🏷️
포괄임금제는 근로계약을 할 때 연장·야간·휴일근무를 하는 것으로 가정하고 연봉에 관련 수당을 포함하는 임금 산정 방식입니다.
근로시간을 엄격하게 통제하기 힘든 시스템이나 선택적 근무제 등 비교적 자유로운 근무 문화를 가진 회사의 경우 포괄임금제로 연봉을 산정하는 경우가 많아요.
포괄임금제는 일반 사무직처럼 정규근로시간 외 야근할 일이 언제 생길지, 얼마나 하면 될지 예측 불가능한 경우 야근수당 매번 계산하기 힘들고, 그렇다고 365일 칼퇴만 시키는 건 불가능할 것 같아 도입한 임금체계예요.
어렵게 느껴지지만 별 거 아닙니다. 계약서가 ‘이 연봉이 사실은 온갖 추가수당을 다 포함한 연봉입니다’라고 말하는 거죠. 할 수도 있고 안 할 수도 있는 야근, 미리 돈을 주고 시작하겠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위의 JYP 대리는 포괄임금제로 계약했다면 야근 수당을 받기 어렵게 됩니다. 자신의 근로계약에 서명하기 전 포괄임금제가 무엇인지 이해하는 것이 중요해요.
필진의 코멘트
- 정인: 이번 개편안이 뜨거운 이슈가 되는 이유도 포괄임금제 때문이에요. 당장 포괄임금제 폐지가 어려운 상황에서 추가 근무 시간을 열어두면 회사가 ‘공짜야근’이라고 생각하고 오남용할 수도 있거든요. 정부도 포괄임금제 오남용에 강력히 대응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아직 세부적인 대응 방안은 나오지 않았지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