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 90%가 1주택자인 나라, 싱가포르

글, 어예진

📌 필진 소개: 안녕하세요. 해담경제연구소 어예진 소장입니다. 저는 한국경제TV에서 기자와 앵커로 일했고요. 지금은 국내 경제, 그리고 해외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사건과 뉴스들을 어떻게 이해하고 받아들여야 할지를 탐구하는 연구자이자 방송인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세계 여러 나라의 청년 주거 정책을 돌아보는 ‘청년 주거 세계여행’ 마지막 연재입니다. 오늘 여행은 자가 주택 보유 비중이 90%에 이르는 1주택자 천국, 싱가포르로 떠나봅니다. 


부자가 모이는 나라 싱가포르


한동안 강남 부자들이 한국의 높은 세금에 이민을 고민하던 때, 싱가포르가 그들의 대안으로 떠오른 적이 있습니다. 상속세도 없고, 증여세도 없는 데다 거주 환경, 교육 수준까지 탁월해 살기 좋다는 인식 때문이었어요.


지난 2020년 홍콩보안법이 시행됐을 당시에는 홍콩에 근거를 둔 기업과 부자들이 싱가포르로 탈출하는 일이 있었습니다. 이때 몰려든 사람들로 인해 싱가포르 주택 수요가 폭증했죠. 시진핑 중국 주석이 3연임을 확정했던 2022년 10월 말 이후 중국 본토에서도 부유층에 대한 제재 심화를 우려한 부자들의 엑소더스(대탈출)가 이어졌습니다. 이들의 목적지 역시 싱가포르였죠.   


싱가포르에 순유입된 해외 백만장자에 대한 통계가 있었는데요. 2022년 기준 2,800명으로 2019년 대비 87%가 늘었고 이들 중 상당수는 중국계인 것으로 나타난 바 있습니다. 


당시 외신에서는 싱가포르 은행들이 넘쳐나는 현금으로 뭘 해야 할지 고민하고 있다는 사실을 보도하기도 했어요. 자금 사용처를 못 찾다가 결국 싱가포르 통화청에 우리 돈으로 따지자면 300억 원어치의 싱가포르 달러를 빌려주기도 했죠. 


아시아 부자들, 특히 중국 부자들이 싱가포르로 몰려들었다는 증거는 현지 곳곳에서 나타났습니다. 프라이빗 골프 클럽 회원권 가격이 두 배가량 올랐으며 벤틀리, 롤스로이스 등 고급 차량 등록 건수가 2019년 대비 많게는 90% 이상 늘었습니다. 무엇보다 고급 저택, 고급 콘도 같은 민간주택의 중국인 매매 건수가 압도적으로 높아지면서 주택 가격이 고공행진을 하는 결과를 낳았어요.


이때 싱가포르 국적의 국민들은 그나마 국가가 제공하는 임대주택에서 비교적 안정적인 가격에 지낼 수 있었지만, 싱가포르에 와서 살던 평범한 외국인들은 큰 어려움을 겪게 되는데요. 이들은 국경을 마주한 말레이시아로 넘어가 국경 근처에 상대적으로 저렴한 집을 얻어 자동차로 출퇴근하는 방법을 찾기도 했습니다. 


결국 싱가포르 정부는 집값 안정을 위해 지난해(2023년) 외국인 대상 취득세율을 대폭 인상키로 했습니다. 원래도 싱가포르는 자국민과 외국인에게 다른 요율의 세금을 적용합니다. 그런데 이번에 외국인이 싱가포르에서 주택을 구매할 때 내야 하는 취득세를 기존 30%에서 60%로 두 배나 올린 거예요. 10억 원짜리 집을 구매했다면 세금만 6억 원을 내야 하는 거죠. 이건 그냥 외국인들은 집을 사지 말라는 얘기나 마찬가지인 셈입니다. 


그럴 수 없는 조건인데 안정된 집값


싱가포르는 우리나라의 부산과 면적이 비슷한 도시 국가입니다. 그 안에 600만 명이 살고 있기 때문에 인구 밀도가 세계 3위에 달해요. 돈 많은 사람도 많아서 1인당 국민소득은 우리나라의 두 배 수준입니다. 한 가지 가장 다른 점은 토지의 90%가 국가 소유라는 거예요. 나머지는 개인이 소유하고 있죠. 


그래서 주택도 공공주택과 민간주택으로 나뉩니다. 여기서 공공주택은 싱가포르 주택개발청(Housing & Development Board)이 정부 차원에서 건설해 일정 소득을 넘지 않는 국민들에게 저렴한 가격에 판매한 아파트를 말합니다. 흔히들 HDB라고 부르죠. 싱가포르 국민의 80% 이상이 HDB에 살고 있을 정도로 싱가포르에서 가장 흔한 주택 형태입니다. 

공공주택이라고 하면 작은 평수의 아파트를 떠올릴 수 있지만, HDB는 방 2개부터 5개까지 다양한 평수와 다양한 형태가 존재합니다.


싱가포르의 자가 주택 보유율은 90%로 단연 세계 최고입니다. 시민권을 가진 가구의 90%가 자기 집을 가지고 있다는 얘기죠. 어떻게 이게 가능하냐고요? 바로 싱가포르의 주택 정책 덕분입니다. 싱가포르 정부는 ‘모든 국민이 집을 소유할 수 있는 나라’를 만드는 것을 오랫동안 주거 정책의 핵심으로 여겨왔습니다. 


싱가포르는 다문화 국가인데요. 중국인이 제일 많고, 말레이인, 인도인 등이 모여 살고 있습니다. 싱가포르 정치인들은 이들을 하나로 통합하고 국가 충성심을 높이기 위한 최상의 방법이 자신의 재산을 소유하게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싱가포르 사람들도 보통 결혼하면서 집을 삽니다. 공공주택의 경우 민간주택 공급가 55% 수준의 저렴한 가격으로 분양받을 수 있는데요. 게다가 싱가포르의 공공주택은 거주 기간을 채우면 매각할 수 있는 99년 기한의 임대주택이라는 게 큰 특징이에요.


싱가포르가 가진 면적과 인구, 국민 소득, 몰려드는 이민자들로 인한 주택 수요 증가 등은 집값이 오르기 딱 좋은 조건이지만, 이러한 정책 덕분에 공공주택에 사는 사람들은 비교적 안정적인 가격에 지낼 수 있습니다. 


물론 민간주택 대비 반값이라고 해도 집값은 집값이기 때문에 적은 비용은 아닙니다. 하지만 싱가포르의 청년들은 우리로 따지면 국민연금에 해당하는 중앙적립기금(CPF)과 정부 지원금을 통해 큰 어려움 없이 공공주택을 분양받을 수 있어요. 싱가포르 국민은 CPF를 의무적으로 가입해야 하며, 매달 월급의 37%를 떼어가 적립합니다. 우리나라 국민연금이 9%인 걸 감안하면 CPF는 싱가포르의 월급 도둑이라고 할 수 있죠. 근로자가 20%를 내면 고용주가 17%를 보조해 주는 구조입니다. 


이렇게 강제로 하는 저축에 싱가포르 사람들은 크게 반발하지 않습니다. 자신이 낸 CPF 적립금을 주택구매, 의료비 등 큰돈이 필요할 때 언제든지 사용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미리 당겨서 쓸 수도 있는데요. 예를 들어 5억짜리 공공주택을 구매한다고 하면 일부는 CPE 적립금으로 충당하고 일부는 소득에 따른 정부 보조금, 그리고 나머지는 앞으로 20년 또는 30년간 납입할 CPF에서 차액 충당이 가능합니다. 잘하면 대출 없이도 공공주택을 분양받을 수 있는 거죠. 그래서 국민의 90%가 자신의 집을 소유할 수 있는 겁니다.

싱가포르에서 가장 화려한 공공주택 Pinnacle@Duxton


공공주택과 민간주택의 중간지점인 공공-민간 하이브리드(PPH)도 있습니다. 이런 집들을 이그제큐티브 콘도미니엄(EC)이라고 부릅니다. EC는 싱가포르 사람들을 위해 개발된 민영 주택인데요. 소득 한도를 초과해 HDB에는 살 수 없지만 그렇다고 훨씬 비싼 민간주택을 구입할 수도 없는 싱가포르 국민을 위해 마련된 대안입니다. 그런 PPH의 가장 큰 장점은 결국에는 민영화할 수 있다는 거예요. 

정부 보조금을 받는 아파트를 구입한 뒤 5년 동안 임대나 매각하지 않고 실거주를 하면 공개 시장에서 집을 팔 수 있으며, 10년이 지났다면 외국인에게도 팔 수 있습니다. 

다들 집에 수영장 하나씩 있는 것 아녜요?


민간주택은 다시 콘도미니엄, 클러스터 하우스, 방갈로, 숍하우스 등으로 나눕니다. 이들이 공공주택과 크게 다른 점은 훨씬 비싸지만, 국가의 규제가 적은 편이라는 겁니다. 콘도는 대부분이 수영장과 헬스장, 바베큐존, 테니스코트 등의 편의시설이 갖춰져 있는데요. HDB보다 깨끗하고 보안도 우수해 선호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민간주택 중에는 콘도가 가장 저렴한 선택지이기 때문에 HDB에 살던 사람들이 집을 업그레이드 하고자 할 때 민간 콘도를 목표로 세우죠.

싱가포르의 콘도

출처: sg.finance.yahoo.com

클러스터하우스

출처: www.propertygiant.com

클러스터 하우스는 단독으로 분리된 집이지만 수영장과 테니스코트, 주차장 등 편의 시설은 단지 내 이웃 주택과 공유하는 우리 식의 타운하우스와 비슷한 개념입니다. 


만약 주택 형태에 방갈로(Bungalow)라는 말이 들어간다면 그건 싱가포르의 부자들이 사는 곳이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방갈로는 단독주택을 말하는데요. 토지도 내가 온전히 소유하고 있다는 게 가장 큰 차이점이에요. 방갈로 중에서도 GCB(Good Class Bungalow)는 싱가포르에서 가장 부유하고 유명한 사람들이 사는 집으로 간주합니다. 그래서 가격도 매우 비쌉니다.


숍하우스는 역사가 깊은 주택 형태입니다. 1층에는 상점, 위층은 거주 공간이 있지요. 1840년대에서 1960년대 사이에 건설된 이 같은 주택 형태는 과거 싱가포르의 도시 구조의 대부분을 이뤘습니다. 당시에는 집주인들이 1층에서 장사를 하고 위층을 집으로 이용하는 일이 많았습니다. 숍하우스는 현재까지도 보수를 거쳐 본래의 목적으로 계속 사용되고 있습니다. 다만 지금은 현대식 주택 개발로 차이나타운 등 일부 지역에서만 그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숍하우스 외관

출처: Urban Redevelopment

전통 방식 그대로 복원한 내부

출처: Urban Redevelopment authority

반전은 렌트비


대부분의 싱가포르의 청년들 그리고 외국인들은 싱가포르에서 월세로 지냅니다. 싱가포르에서 월세를 구할 때는 방 한 칸만 렌트해 공동생활을 할지, 집 전체를 렌트할지 고민할 수 있어요. 집주인이 자기 집 방 한 칸을 렌트 하는 경우도 있고, 전체를 세를 놓을 수도 있죠. (공공주택의 경우 집주인이 최대로 세를 놓을 수 있는 방 개수가 집에 있는 총 방 개수에 따라 달라집니다.) 내가 좀 빠듯하다고 하면 방 한 칸만 임대할 수 있는데 화장실이 딸린 마스터룸이냐, 거실 화장실을 공유하는 일반 룸이냐에 따라 가격 차이가 벌어집니다. 가끔 돈이 없는 외국인 노동자들을 노리고 불법으로 규정보다 훨씬 많은 세입자를 한 집에 받아 살게 하는 경우도 있다고 해요.


싱가포르 임대료는 코로나 이후 국경이 열리고 외국인들이 쏟아져 들어오면서 상승에 속도가 붙었습니다.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올라 올해 상반기까지 오르기를 거듭했죠. 싱가포르 사람들은 임대료 폭등을 두고 중국인들이 부동산 쇼핑에 나서면서 주택 가격을 올려놨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세계 물가 비교 사이트 NUMBEO에 따르면 싱가포르 도심의 방 한 개짜리 민간주택(아파트/콘도)의 평균 월 임대료는 3600 싱가포르 달러입니다. 우리 돈으로 따지면 대략 370만 원 정도가 되겠네요. 중심부에서 벗어난 곳이라고 해도 같은 조건의 월평균 임대료가 한화 270만 원 선이니 어마어마하지요? 평균이 이 정도고, 좋은 지역에 시설이 잘되어 있는 곳이라면 방 한 개짜리 월 임대료가 한화 400~500만 원에 이르는 곳도 적지 않습니다. 싱가포르의 임대료가 서울보다 평균 160%가량 높다고 하니 임대료만 보면 정말 사람 살 곳이 못 되는 것 같죠?    


물론 공공주택에서도 월세를 구할 수 있는데 민간주택 대비 훨씬 저렴합니다. 싱가포르 부동산 중개 업체 Property Guru에 따르면 방 한 칸만 임대할 경우 한화로 월 최소 80만 원부터 150만 원, 원룸 형태의 HDB라면 월 150만 원~300만 원 정도에 가격이 형성되어 있습니다. 


최근에는 싱가포르가 외국인 숙련 노동자에게 주는 비자 기준을 강화하면서 취업 비자 소지자 수, 즉 들어오는 외국인들이 줄었는데요. 이로 인해 고용시장이 부진한 모습을 보이면서 임대 수요 감소로 5월 이후 싱가포르 콘도와 HDB 임대 가격이 소폭 하락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민간주택 시장에서도 높은 주택 가격에 대한 구매자의 저항이 증가하면서 전반적인 가격 상승이 둔화되는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 아시아 부자들이 싱가포르로 몰려들면서 전반적인 주택 가격 상승을 부추겼습니다. 이에 정부는 집값 안정을 위해 지난해 외국인 대상 취득세율을 기존 30%에서 60%로 올렸습니다.
  • 싱가포르 토지의 90%를 국가가 소유하고 있습니다. 국민의 80% 이상은 국가가 마련한 공공주택에 살고 있으며, 시민권을 가진 사람들 가운데 90%가 주택을 소유하고 있습니다. 
  • 싱가포르의 공공주택을 HDB라고 부릅니다. 민간주택은 크게 콘도, 클러스터하우스, 숍하우스, 방갈로 등으로 나뉩니다. 
  • 싱가포르 청년들과 외국인들은 대부분 월세로 거주합니다. 다만 코로나 이후 임대료가 폭등하면서 방 하나짜리 원룸에도 수백만 원에 달하는 경우가 많아졌습니다. 
  • 최근에는 정부가 외국인 숙련 노동자들에게 주는 취업 비자 기준을 강화하면서 고용시장이 부진한 모습을 보였습니다. 이는 임대 수요 감소로 이어져 싱가포르 HDB와 민간주택 임대 가격을 소폭 낮추는 결과를 만들었습니다.

8회에 걸쳐 세계의 다양한 주거 이야기를 나누어 봤습니다. 사는 모습은 모두 다르지만 각 나라에 살고 있는 사람들, 그중에서도 청년들은 하나 같이 더 나은 미래를 위해 끊임없이 애쓰고 도전하고 있었습니다. 바로 우리들처럼요. 보내주시는 피드백을 보면서 머니레터 독자분들의 출근길이 더욱 즐거워졌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글을 썼습니다. 일상에 작은 즐거움과 도움이 되는 이야기였기를 바랍니다. 앞으로도 다양한 지면과 방송을 통해 인사드릴게요.


💌 지금까지 <청년 주거 세계여행>과 함께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지난 연재는 어피티 홈페이지에서 모아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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